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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선진)113

대우전위(大禹傳位): 익(益)과 계(啓)의 왕위계승다툼 작자: 미상​대우(大禹)의 왕위승계에 대하여 기록에 따르면, 대우의 아들인 사계(姒啓)의 승계는 선양제(禪讓制)를 타파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배후에 과연 어떤 권력투쟁이 있었을까? 기록에 따르면, 대우가 사계에게 왕위를 승계시키는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당시 대우의 후계자가 될 자격이 있는 사람은 일찌감치 죽어버린 고요(皋陶)외에 치수에 공이 있는 익(益)이 있었다. 사계와 익의 관계에 관하여는 3가지 견해가 있다. ​첫째는 "익계읍양(益啓揖讓)"설.​ , 등 문헌이 대표적이다. 대우는 영명한 지도자라고 주장하면서, 계와 익은 모두 대현(大賢)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선양제가 폐지된 것은 대세의 흐름이고 사람이 이를 되돌릴 수 없었다고 한다.​맹자는 이렇게 말했다. 먼저 선양이 요순(堯舜)때는 합리적.. 2024. 11. 15.
이궐전투(伊闕之戰): 전국시대의 분수령, 전신(戰神) 백기(白起)의 등장. 글: 서북낭(西北狼)​기원전293년, 진(秦), 한(韓), 위(魏) 3국간에 분수령적 의미가 있는 전투가 발생한다. 바로 이궐전투이다. 이 전투에서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백기는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며 24만의 한,위 연합군을 섬멸한다. 한, 위 양국은 이후 도마위에 놓은 고기처럼 진나라에 유린당한다. 이 전투를 복기해보기로 한다.​이궐전투전의 국제형세​기원전307년, 진무왕(秦武王)이 무거운 것을 들다가 죽은 후, 진나라 국왕의 자리는 그의 동부이모의 친동생 진소양왕(秦昭襄王) 영직(嬴稷)의 머리 위에 떨어진다.​진소양왕의 즉위초기, 진나라는 상앙변법이래 국운이 쇠락한 시기였다. 영직이 즉위한 초기, 국내의 여러 공자들은 그에게 불복했고, 3년에 걸친 계군(季君)의 난이 발생한다. ​반란을 평정한 .. 2024. 10. 21.
황하(黃河) vs 이수(伊水): 대우치수(大禹治水)는 어느 강일까? 글: 지도제(地道帝) 비록 이미 4천여년이 흘렀지만, 고대 중화대지의 대홍수는 지금까지도 후손들 사이에 지워지지 않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대대손손 구술로 이어져 내려오면서 신화가 되었다. 황당무계한 신화적인 요소를 배제하면, 우(禹)가 홍수를 다스리는 과정에서 "공주(共主)"의 지위를 확립하게 된 것은 다툼없는 사실이다. 비록 하(夏)왕조의 창시자가 우인지 계(啓)인지에 대하여는 지금까지도 논쟁이 남아 있지만, 요순우(堯舜禹)가 번갈아가면서 우두머리가 되었던 선양제(禪讓制)에서 부사자계(父死子繼)의 방식으로 바뀐 것은 우와 계 부자사이에서 이루어졌다. 우의 권위는 치수에서 왔는데, 다만 그가 도대체 어느 강을 다스렸던가? 어떤 방식으로 다스렸던가? 이에 대하여는 지금까지도 정설이 없다. 우가 치.. 2023. 5. 24.
열국(夨國): 서북에 존재했던 수수께끼의 국가 글: 소연부독서(召燕不讀書) "보천지하(普天之下), 막비왕토(莫非王土), 솔토지빈(率土之濱), 막비왕신(莫非王臣)"(하늘 아래 왕의 땅이 아닌 것이 없고, 땅 위에 왕의 신하가 아닌 자가 없다). 이는 역사학자들이 서주(西周)시대를 개괄한 말 중에서 가장 적절한 말이다. 그 의미는 주왕조의 통치범위내에 모든 사람은 주나라천자에게 고개를 숙이고 칭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이치대로라면 일반적으로 다른 어느 사람도 '왕'이라고 스스로를 칭할 수 없다. 그러나, 실제 그랬을까? 섬서성(陝西省) 농현(隴縣)에는 서주의 도성에서 100킬로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열왕(夨王)"이라는 명문(銘文)이 새겨진 동기(銅器)가 나왔다. 이는 사람들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다. 그럼 서주시기에 감히 '왕'을 칭할 담량을 .. 2023. 5. 22.
<조씨고아(趙氏孤兒)>이야기에 대한 고증과 역사복원 글: 사량소(史良昭) 는 경극(京劇)에서는 라고 부른다(고아를 찾아서 고아를 구한다는 의미임). 이 명칭은 일목요연하다. 왜냐하면 이야기의 주인공은 강보에 쌓인 사내아이가 아니라, 조씨와 아무런 현련관계도 없지만, 전력을 다해서 '고아를 구해준' 정영(程嬰)과 공손저구(公孫杵臼)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자신의 인생신조를 지키기 위하여, 한 사람은 사생취의(捨生取義, 목숨을 버려 올바른 일을 행하다)하고 한명은 인욕부중(忍辱負重, 치욕을 참고 견디다)했다. 어려운 줄 알면서도 기꺼이 나아갔고, 의로운 일을 하기 위해 용감히 나섰으며, 죽음을 전혀 겁내지 않았고, 고난이 닥쳐도 포기하지 않았다. 인간의 본성중에서 집착 이외의 모든 약점을 버렸다고 할 수 있다. 현대인들은 그들의 행위에 대하여 결론을 내렸다.. 2023. 5. 14.
"대읍상(大邑商)": 은허(殷墟)도성역사의 비밀을 푼다. 글: 하육령(何毓靈) (광명일보 2023년 4월 9일자게재) 고고학은 고대 유적지의 구조와 배치를 연구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한다. 적게는 우물, 집터부터 크게는 묘지, 작방(作坊)등등 모두 유적지를 구성하는 핵심요소들이다. 모든 고고학자들은 모든 요소를 분명하게 설명하는 것을 꿈꾼다. 그러나 왕왕 생각처럼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실현하기 어렵다. 만일 시간과 공간적인 요소까지 고려한다면, 유적지의 발굴과 연구는 더욱 복잡하고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많은 대형 도성유적지는 거의 몇대의 고고학자들이 바통을 이어받아 연구하여, 비로소 풍성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문제도 연이어 나타난다. 갑골문(甲骨文)의 고향, 상나라말기의 도성(都城)인 은허(殷墟)는 더욱 그러하다. 은허의 갑골문에는 ".. 2023. 4.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