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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문화/중국의 문화42

설좌도석(說座道席): 중국 고대의 "좌석(座席)" 문화 글: 대도지행(大道知行) 상고시대에는 의자, 스툴(등받이없는 의자)같은 류의 앉는 도구가 없었다. 사람들은 땅바닥에 자리를 깔고 앉았다. 즉 석지이좌(席之而坐), 포석어지(鋪席於地)했다. 자리의 위에 무릎을 꿇고, 엉덩이를 발끝에 붙인다. 이렇게 "앉는 것(坐)"은 "꿇어앉는 것(跪)"과 비슷하다. 다만 허리를 펴지 못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며, 자리에 앉은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에 반드시 먼저 꿇어앉는 동작을 취해야 한다. 이것을 고대에 "장궤(長跪)" 혹은 "기(跽)"라고 불렀다. 허리를 펴고 꿇어앉는 것으로 장중함과 공경을 나타낸다. 위진남북조 이후, 의자류의 앉는 도구가 중국에 들어온다. 그리하여, "석지이좌"는 "수족좌(垂足坐, 의자위에 앉아서 다리를 늘어뜨려 땅바닥에 닫게 하는 자세)"로.. 2022. 5. 13.
상고시대의 십대신조(十大神鳥) 글: 사서능헌각(史書凌軒閣) 10. 구봉(九鳳) 에 이런 내용이 있다: "대황에 산이 있는데 이름이 북극거(大荒有山名北極柜), 바닷물이 북으로 들어간다(海水北注焉), 신이 있는데 머리가 아홉개이고(有神九首), 사람의 얼굴에 새의 몸을 하고 있다(人面鳥身), 이름은 구봉이라 한다(名曰九鳳)" 구봉은 구두조(九頭鳥)의 원형이다. 다만 구두조는 아니다. 왜냐하면 '인면조신'이기 때문이다. 구봉의 내력에 대하여 어느 정도 초(楚)의 땅에 전해져 내려오는 신화에서 단서를 찾아볼 수 있다. 구봉이 소재한 '북극거'산은 보통장소가 아니다. 바로 초나라사람들의 선조인 전욱(顓頊)과 그의 9명의 비빈이 묻힌 곳이다. 전욱은 한수(漢水)에 묻혔는데, 구봉(아홉비빈을 의미함)이 전욱과 함께 묻혔다. 구봉의 내력은 아마도 이.. 2021. 11. 23.
중국 고대의 의자(椅子) 문화 글: 역사백가회(歷史百家匯) 수천년동안 중국의 고전가구는 시종 사회의 젗이, 문화 및 사람들의 풍속, 신앙, 생활방식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예를 들어, 중국 고대의 의자는 중국예의와 등급 명분을 상징했다. 고대에, 남자만 의자에 앉을 권리가 있고, 여자는 앉을 수 없었을까? 고대의 의자는 도대체 어떠했을까? 하나하나 살펴보기로 하자. 중국고대의자와 등급문화 일찌기 사람들은 모두 "석지이좌(席地而坐, 땅바닥에 자리를 깔고 앉다)"했다. 민간에서 사용하는 가구는 존비, 장유, 남녀를 따졌다. 한(漢)나라때의 예속은 기본적으로 주(周)나라를 계승했다. 한나라때 사용한 석(席)은 장단을 구분했다. 긴 것은 3-4명이 앉을 수 있고, 짧은 것은 2명이 앉을 수 있었다. 더 짧은 것은 한명만이 앉는다. 등급으.. 2020. 10. 21.
중국 고대인의 "명함" 글: 역사백가회(歷史百家匯) 명함은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현대사회에서는 필수품이다. 가볍게 '이것이 제 명함입니다'라고 한 마디 하는 것은 아주 체면있고, 우아한 행위라고 여겨졌다. 왜냐하면 명함은 일반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다 가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가 급속히 발전하면서, 명함의 보급도 폭넓게 이루어졌다. 현대의 명함은 일반적으로 비지니스 교류에서 이루어지고, 그 위에 자신의 이름, 연락처, 회사직위등을 적는다. 간단히 말해서, 명함은 교류의 도구이다. 일종의 편리하고 빠르게 자신을 소개하는 방식이다. 현대사회에 명함이 이렇게 보급되어 있는데, 고대인들에게도 명함이 있었을까? 대답은 '그렇다'이다. 알(謁) 현대의 명함은 인쇄한 것이고, 장방형의 단단한 종이로 만들고 매우 가볍다. .. 2020. 8. 20.
중국고대의 인(印), 장(章), 새(璽). 글: 청풍명월소요객(淸風明月逍遙客) 중국의 인장문화는 이미 3000여년의 역사를 지녔다. 많은 인장의 배후에는 나름대로의 이야기가 있다. 도장은 실용과 예술의 결합체이다. 유구한 민족문화전통과 특색을 지닌 예술의 보배이다. 북경올림픽때 중국인을 채택한 이래, 인류 비물질문화.. 2018. 12. 31.
피휘(避諱): 천하에서 가장 한심했던 일.... 글: 의사리(衣賜履) 기원전64년, 한선제(漢宣帝) 유병이(劉病已)는 조서를 내렸다. 듣기로, 고대 천자(天子)의 이름은 민간에서 쓸 수 없다고 하니, 쉽게 피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나는 이름을 유순(劉詢)으로 바꾸기로 결정했다. 유병이가 이름을 바꾼 것은 사소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 2018. 10.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