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신(文臣)이 죽은 후 받는 시호(諡號)중 가장 격이 높은 것은 "문정(文正)"이다. 문충(文忠)이 그 다음이고, 문공(文恭)이 그 다음이다. 이후는 차례로 문성(文成), 문단(文端), 문각(文恪), 문양(文襄)이다.
청나라때 군기처(신하들의 최고기관)에서 정할 수 있는 시호중 최고는 문충이었고, 문정공은 반드시 황제가 직접 내려야 했다. 청나라때, 문정의 시호를 받은 문신은 모두 8명에 불과하다. 시호를 보면 황제가 그 신하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를 알 수 있는 점도 있다. 청나라말기의 유명한 인물인 이홍장은 문충을 받았고, 좌종당, 장지동등은 문양을 받았다. 살아서 태부에 오르고 죽어서 문정의 시호를 받는 것은 신하로서의 최고의 영광이었다.
첫째, 탕빈(湯斌) (1627-1687)
자는 공백(孔伯), 호는 잠암(潛庵), 조주 사람. 순치때 진사가 됨. 관직은 공부상서에까지 올랐다. 문집에 <<잠암유고>>가 있다.
둘째, 유통훈(劉統勳) (1698-1773)
자는 이둔(爾鈍). 호는 연청(延淸). 제성 사람. 옹정때 진사가 됨. 관직은 동각대학사에 오르고, 태부(太傅)에 추증됨. <<유문정공집>>이 있음. 강희때의 명신 유용(劉鏞)의 부친
셋째, 조진용(曹振鏞) (1755-1835)
흡현사람. 건륭때 진사가 됨. 관직은 무영전대학사에 오름. <<논각연휘집>> <<화운헌영사시>>가 있음.
넷째, 주규(朱珪) (1731-1806)
자는 석군, 호는 남애. 나이들어서는 보타노인으로 불림. 건륭때 진사가 됨. 관직은 체인각대학사에 오름. 태부에 추증됨. <<지족재집>>이 있음.
다섯째, 두수전(杜受田) (1788-1835)
자는 지농, 산동빈주사람. 도광때 진사가 됨. 협판대학사에 오름.
여섯째, 증국번(曾國藩) (1811-1872)
자는 백함. 호는 탁생. 상향 사람. 도광때 진사가 됨. 관직은 무영전대학사에 오름. 태부에 추증됨. <<구궐재시집>>이 있음.
일곱째, 이홍조(李鴻藻) (1820-1897)
자는 난손, 직예 고양사람. 함풍때 진사가 됨. 관직은 하남학정에 오름.
여덟째, 손가내(孫家[乃+鼎]) (1827-1909)
자는 섭신, 안휘 수주 사람. 함풍때 진사가 됨. 태부에 추증됨.
탕빈은 강희시대의 이학자로 유명한 사람이었고, 주규, 두수전, 이홍조, 손가내는 모두 황제의 스승이었다. 황제의 스승자격으로 문정공에 오른 것이다. 증국번은 태평천국의 난을 제압한 공으로, 유통훈은 건륭때의 명신으로 강직하고 공적이 뛰어났으며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다. 단지 조진용은 평범한 인물이어서 그에게 문정을 내린 것은 후세에 두고두고 말이 많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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