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고대에 하루를 어떻게 나누어 표시했는지를 간략히 살펴본다.
1. 십이시진제(十二時辰制)
서주(西周)시대때부터 쓰였다. 한(漢)나라때에는 야반, 계명, 평단, 일출, 식시, 우중, 일중, 일실, 포시, 일입, 황혼, 인정으로 나누었다. 또한, 12지지를 사용해서 부르기도 하였는데, 즉 밤23시부터 새벽1시까지를 자시, 1시부터 3시까지를 축시, 3시부터 5시까지를 인시로 부르는 등이다.
子時(23:00-01:00) : 야반(夜半). 자야(子夜), 중야(中夜)라고도 불렸다.
丑時(01:00-03:00) : 계명(鷄明). 황계(荒鷄)라고도 불렀다.
寅時(03:00-05:00) : 평단(平旦). 여명(黎明), 조신(早晨), 일단(日旦)으로도 불렀다. 이 시간은 밤과 낮이 교차되는 시간이다.
卯時(05:00-07:00) : 일출(日出). 일시(日始), 파효(破曉), 욱일(旭日)로도 불렀다. 태양이 막 얼굴을 드러내고, 떠오르는 그 시간이다.
辰時(07:00-09:00) : 식시(食時). 조식(早食)으로도 불렀다. 옛 사람들의 아침식사시간이다.
巳時(09:00-11:00) : 우중(隅中). 일우(日禺)라고도 불렀다. 정오에 가까워질 때를 말한다.
午時(11:00-13:00) : 일중(日中). 일정(日正), 중오(中午)라고도 부른다.
未時(13:00-15:00) : 일질(日[日+失]). 일질(日跌), 일앙(日央)이라고도 한다. 태양이 서쪽으로 넘어간 상태를 일질이라고 한다.
申時(15:00-17:00) : 포시(哺時). 일포(日鋪), 석식(夕食)이라고도 한다.
酉時(17:00-19:00) : 일입(日入). 일락(日落). 일침(日沈), 방만(傍晩)이라고도 한다. 해가 서산으로 지는 때를 의미한다.
戌時(19:00-21:00) : 황혼(黃昏). 일석(日夕), 일모(日暮), 일만(日晩)이라고도 한다. 이 때는 태양이 이미 졌고, 하늘이 어두워졌으나 완전히 깜깜해지지는 않은 때를 말한다.
亥時(21:00-23:00) : 인정(人定).. 정혼(定昏)이라고도 한다. 밤이 깊어 사람들이 활동을 중단하고 편안하게 잠든 때라는 것이다. 인정(人靜)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2. 24시진제
송나라 이후에는 십이시진의 매지신을 초(初)와 정(正)의 두 부분으로 나누었다. 이렇게 하여 자초(子初), 자정(子正), 축초(丑初), 축정(丑正)...등과 같이 24시진으로 구분하였다.
3. 십시진제.
진나라이전에 있었다. 낮과 밤을 각각 다섯 시진으로 구분하는 것이다. <<수서 천문지>>에 따르면 낮은 조(朝), 우(隅), 중(中), 포(哺), 석(夕)의 다섯 시진으로 나누고, 밤은 갑(甲), 을(乙), 병(丙), 정(丁), 무(戊)의 다섯 시진으로 나누었다. 밤은 나중에 경(更)으로 표시하였다. 고대에는 술시를 일경으로 하고, 해시를 이경, 자시를 삼경, 축시를 사경, 인시를 오경으로 하였다. 1경은 5점으로 구분하였다. 현재의 시간으로 하면 1경은 120분, 1점은 24분이 된다. "사경에 밥을 짓고, 오경에 배를 띄운다"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밤 1시에서 3시에 밥을 짓고,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에 배를 띄운다는 것이 된다. 오경삼점이라고 하면 혀재의 아침 5시에 더하기 72분을 하면 되므로 6시 12분이 된다. 삼경사점이라고 하면, 현재의 1시에 96분을 더한 것이므로 2시 36분이 된다.
4. 백각제(百刻制)
하루를 균분하게 100각으로 나눈 것이다. 이것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물시계를 사용한 것과 관련이 있다. 아마도 상나라때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한나라때는 120각으로 하였고, 남조의 양나라에서는 96각, 108각으로 왔다갔다 했다. 명나라 말에 유럽의 천문학지식이 유입되면서 비로소 96각제로 개혁이 이루어지고, 청나라초에 확정하였다. 이에 따라 1각은 약15분이 된다.
중국의 고대에서는 그러나 시간을 정확하게 계산하여 표시하지는 않았었다. 일반적으로 해가 뜨면 단(旦), 조(朝), 조(早), 신(晨)으로 부르고, 해가 떨어지면 석(夕), 모(暮), 만(晩)으로 불렀다. 태양이 한가운데 올라오면 일중, 정오로 부르고 일중에 가까우면 우중으로 부르고, 서쪽으로 넘어가면 측(昃)으로 불렀다.
일입후에는 황혼이고, 황혼후에는 인정이었다. 인정후에는 야반이고, 야반후에는 계명, 계명후에는 매단(昧旦), 평명(平明)이었다. 이렇게 하루가 흘러갔다. 옛 사람들은 하루에 두끼를 먹었는데, 아침은 해뜨고 우중에 이르기 전이었다. 이 시간을 식시 또는 조식이라고 불렀다. 저녁은 일측후에 일입전에 먹었는데, 이 시기를 포시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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