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서장족자치구 옥림시 물가국은 원래 가난한 부서였다. 낡은 사무실건물과 낮은 복지대우를 받아왔다. 그러나, 새로운 물가국장 담소걸(覃紹杰)이 취임한 후에 "염어번신(鹽魚飜身, 소금에 절인 물고기가 몸을 뒤집었다는 말로 지위가 몰라보게 달라졌다는 의미임)"을 하게 된다. 2003년초부터 2004년 8월까지의 1년여의 기간동안 물가국은 600여만위안의 재산을 긁어모았다. 사건발생후 사람들은 물가국이 "지신가격사무유한공사"라는 껍데기회사를 통해서 교묘하게 뇌물을 받아왔고, 번 600여만위안중에서 300여만위안은 물가국의 39명의 직원들에게 "이익배당"으로 나누어주었다는 것이다. 이외에 담소걸등 물가국의 간부들은 수뢰과정에서 많은 뇌물을 따로 받았다.
2006년 3월, 광서장족자치구 고급인민법원은 이 뇌물사건에 대한 최종판결을 내렸다. 옥림시물가국의 기관뇌물수령죄로 위법소득 475만위안을 몰수하여 국고에 넣고, 벌금 50만위안을 과하였다. 담소걸에 대하여는 유기징역 18년에 재산 6만위안을 몰수했고, 다른 3명의 부국장과 3명의 중급간부들도 유죄판결을 받았다.
현재 나이 53세인 담소걸은 일찌기 광서의 북류시의 시위원회 부서기를 맡았었다. 2001년 3월에 옥림시 물가국의 국장으로 전보되었다. 비록 관직은 한 등급 승진하였지만, 취임후 담소걸은 약간 실망하였다. 왜냐하면 물가국이 너무 가난했고, 사무실도 낡았고, 차량도 낡았고, 경비도 없었다. 부유한 북류시에서 부서기를 하던 때의 '풍광'과 비교하면 오히려 한 등급이 떨어진 것같았다. 그래서 담소걸은 여러가지로 돈을 벌 고민을 했다. 비록 물가국이 행정, 사업성비용징수의 두가지 큰 업무를 담당하고, 함부로 비용을 거두는데 대하여 조사처벌권이 있었으나, 벌금이나 몰수금액은 모두 장부에 기재해서 상부에 올려보내야 했다. 이전에 물가국에서는 '소금고'를 만드는 방법으로 벌금이나 몰수금액을 남겨서 쓴 적도 있었으나, 쉽게 조사하면 발각되고 물가국의 간부들이 처벌을 받곤 하였다. 이러한 방법은 이미 낡은 방법이었다. 담소걸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였다.
똑똑했던 담소걸은 결국 하나의 방법을 찾아냈다. 만일 표면상 물가국과 전혀 관계없는 회사를 만들고, 벌금이나 몰수금을 자문비로 받아버리면, 처벌단위는 돈을 회사로 집어넣어버리고, 이렇게 되면 상부에서 조사해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회사는 기업이기 때문ㄷ에, 재정이나 감사에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담소걸은 즉시 부국장들과 협의했다. 모두 이것이 좋은 방법이라고 찬동했다. 이어서 담소걸은 물가국전체회의를 개최하였고, 회의석상에서 담소걸은 "자치구재정청과 물가국이 연합하여 공포한 제83호문건에 근거하여, 직원들의 복지를 창조하기 위하여 국에서 지신가격사무유한공사를 설립하기로 결정하였고, 회사는 직원들이 지분을 참여하는 방식이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사실 83호문건은 이것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이다. 회사를 만든다는 말을 듣고 물가국의 직원들은 모두 흥분했고, 찬성했다. 최후로 국장은 6000위안, 부국장은 5000위안, 과장은 4000위안, 부과장은 3000위안, 일반직원은 2000위안을 출자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국가기관은 회사를 차릴 수 없고, 공무원은 사업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직원들은 지분참여시 자기의 이름으로 하지 못하고, 사람들마다 가명을 쓰거나 친척명의로 지분을 받았다. 누가 회사의 대표인 동사장(회장)과 총경리(사장)을 맡을 것인가? 이 문제는 담소걸에게 골치였다. 물가국안의 사람이 맡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외부인에게 맡긴다면 말을 제대로 들을 것인지가 문제였다. 말을 잘 듣지 않으면 이 방식으로는 곤란할 수 있다. 생각하다가 생각한 것이 자기가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내던 여모씨였다. 그는 매우 성실했고, 퇴직한 사람이었으며 말을 듣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2002년말에 "지신공사"가 홀연히 등장했다. 회사가 공상등기를 마치고, 세무등기를 마치고, 동사장, 총경리, 회계, 출납, 감사를 두었고, 겉으로 보기에는 정상적인 회사였다. 사실 회사에는 단지 4명이 있을 뿐이었다. 법인대표 겸 총경리인 여모씨를 제외한 나머지 3 사람인 출납, 회계, 감사는 모두 물가국의 사람이 겸임하였다. 등록한 경영범위는 위임을 받아 가격의 원가산정과 F/S보고서작성을 하는 것이었는데, 실제로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여모는 과연 말을 잘 들었다. 담소걸은 회사에서 1000위안이상의 지출을 할 때는 모두 그의 승인을 받도록 하였고, 여모는 한푼이라도 자기가 알아서 돈을 쓴 적이 없었다. 사실 회사에 지출은 없었다. 겨우 장부사는 돈, 호지키스사는돈 뿐이었다. 왜냐하면 회사는 사업을 한 것이 없고 단지 paper company였기 때문이다. 하나의 도구(SPV, special purpose vehecle)이자, 허수아비였기 때문이고, 회사업무는 실제로 물가국의 직원들이 하는 것이었다.
물가국의 국장과 직원들이 이 "지신공사"를 어떻게 운영하였는가? 물가국에는 규정을 두었는데, 각 과에서 거둔 수입의 30%는 과로 돌려주고, 나머지 70%는 전체수입으로 하여 전체 직원들이 나눈다. 즉, 매 직원들은 적어도 수입의 2%는 가지는 것이다. 다만, 각 과별로 실적이 다르므로 매 사람마다 수입은 다를 수 있다. 이로써 각 과들간에는 경쟁적으로 일을 하게 되었다. 물가국의 각 과들은 세개의 조로 나누어서 업무를 하였고, 각개로 공략했다.
2002년말, 옥림시물가국은 옥림시교통경찰지대에 "칼을 들이댔다" 왜냐하면 백성들이 이 교통지대에서 비용을 함부로 거둔다는 불만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옥림시 교통경찰지대는 쉽게 함락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보험을 드는 것처럼, 광서자치구 물가국이 나서도록 요청하였고, 그들의 명의를 빌어 조사를 진행하였다. 광서자치구 물가국은 상징적으로 교통경찰지대에 이틀동안 머문뒤 철수하였다. 남은 업무는 옥림시 물가국 가격검사소에서 계속하였다. 조사한 결과는 놀랄만한 정도였다. 이 교통경찰지대에서 위법하게 거둔 비용이 무려 1,000여만위안에 달하였던 것이다.
"너희의 위법은 성격상 매우 엄중하다. 규정에 따라 전부 몰수하고, 위법한 비용징수항목을 취소한다. 그리고 너희들에게 500만위안의 벌금에 처하며, 전 자치구에 통보한다"고 검사에 참여했던 가격검사소 부소장 몽위강이 엄숙하게 말했다. 교통지대의 간부는 듣고는 깜짝 놀랐다. 이렇게 하면 교통경찰지대가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검사조가 퇴근한 후 급히 물가국장인 담소걸에게 전화했다. "담국장, 자치구쪽과 잘 얘기해줄 수 없겠는가? 처벌을 좀 경감해달라. 안그러면 우리는 파산한다." "그러면 우리가 최대한 해보겠다"고 담소걸은 매우 교통경찰지대를 생각해주는 것처럼 얘기했다.
이렇게 물가국은 사자입을 크게 벌렸다. 하나하나 위법하게 비용을 징수하는 기관이나 단위에게 처벌을 하거나 비용징수심사를 할 때, 기회를 잡아 "자문비" "연도검사비", "가격심사비"조로 모두 600만위안을 받았고, 그 중 거의 400만위안을 "지신공사"의 구좌로 집어넣었다.
지신공사의 "자문비"는 왜 이처럼 순조롭게 거두어졌는가? 사건발생후 몽위강은 내막을 얘기했다. "이것은 간부들간에 묵계와 같은 것이 있었다. 매번 피조사기관의 위법비용징수문제가 나타나면, 국장 담소걸과 부국장 진문룡은 나와 소장인 진충에게 악역을 맡게 하여 처벌금액을 높게 불러서 위협하고, 이렇게 하면 상대방은 자연히 담소걸이나 진문룡에게 부탁을 하게 되는데, 담, 진 두사람은 좋은 사람역할을 맡아서, 최종적으로 담소걸이 상대적으로 비교적 적은 숫자를 얘기하고, 나중에 지신공사의 이름으로 상대방에게 자문비를 받았다. 우리는 매번 자문비를 받을 때마다 이렇게 좋은 사람역할과 나쁜 사람역할을 맡아서 처리했다" 처벌받는 기관의 입장에서는 두 가지를 비교형량헤서 가벼운 쪽을 선택하므로 벌금으로 납부하는 것보다는 적은 자문비를 납부하는 쪽을 선택했던 것이다.
2003년부터 2004년 8월까지, 옥림시 물가국은 자문비를 거두기 위하여 50여개 기관에 칼을 들이대어서 최대 176만위안부터 적게는 5,000위안까지 거두었다. 그러나 어느 한 기관도 고발하지 않았다.
담소걸은 북류시 부서기를 할 때의 좋았던 시절을 회고하면서 이에 만족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주식이익배당의 방법으로는 직원에게 이익배당 1일 때, 부국장은 1.2, 국장은 1.4였으므로 국장들의 수입은 많아봐야 얼마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국장들의 개인적인 비용지출은 직원들보다 더 많았으므로, 다른 방법을 생각해냈다.
2002년말, 옥림시물가국은 옥림시골과의원에 대하여 검사하면서 180여만위안의 불법비용징수를 발견했다. 그래서 <<행정처벌사전예고서>>를 발급해서 보냈고, 당해 의원에 대하여 위법하게 징수한 비용을 몰수하고, 벌금을 부과하겠다고 하였다. 원장들은 놀라서 담소걸등을 찾아서 로비를 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물가국은 단지 골과의원의 위법비용징수금으로 20만위안만을 받기로 하였으며, 국장들은 별도로 10만위안을 받아서 나누어가졌다. 그들의 행위가 발각된 것은 바로 이 돈 때문이었다.
지신공사는 매번 큰 돈들이 들어왔는데, 담소걸은 이러한 비밀스럽고 완전히 자기가 통제하는 돈을 그대로 놔둘리는 없었다. 그가 관련 상사들을 방문할 때의 비용도 회사에서 계속 제공되었다.
지신공사는 비록 페이퍼 컴패니이므로 재정, 감사부서에서 조사받지는 않지만, 그러나 그것은 여전히 물가국내의 회사였다. 그래서 매번 수입은 모두 전 물가국 직원의 돈이므로 매번 돈이 들어올 때마다 모든 직원들에게 공개되었다. 사적으로 돈을 꺼내쓰게 되면 직원들의 불만을 사게 될 것이므로 반드시 장부는 맞우처야 했다. 그래서 총경리인 여모는 하나의 중요한 업무를 수행하게 되는데, 매번 각처에서 세금영수증을 구해다가 물가국장이 쓴 돈을 메꾸는 것이다. 식당에서 식사한 영수증, 차량수리공장에서 수리한 영수증, 심지어 직접 지방세국에 가서 영수증을 구해온 적도 있다. 1년여의 기간동안 담소걸은 지신공사에서 44만여위안을 꺼내썼고, 그 중에 39만여위안은 이러한 영수증으로 처리했다.
원래, 담소걸이 옥림시 물가국장으로 올 때 그의 나이는 이미 48세였다. 기본적으로 "배가 항구에 닿았고, 차는 종점에 도착했다" 다시 관직이 오를 가능성은 포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기의 수중에 돈이 많아지면서 승진의 기회를 엿보기 시작했고, 상사들에게 뛰어다녔다. 그러나, 얼마되지 않아 그의 뇌물이 밝혀지면서 모든 것은 수포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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