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漢)나라때는 5일에 하루씩 쉬었다. 이러한 제도를 휴목(休沐)이라고 하였는데, 5일간 일하면 몸에 흙먼지도 많이 묻고 하니, 하루는 쉬면서 목욕을 하라는 취지였을 것이다. 서한때에 장부(張扶)라는 관리가 있었는데, 그는 일중독자였다. 휴목때에도 쉬지를 않고 평상시처럼 출근해서 일을 했다. 그러자, 그의 주변에 있는 공무원들은 모두 그를 눈엣가시처럼 여겼다. 결국은 장부의 상사인 군수 설선에게 말해서, 설선으로 하여금 그에게 명령을 내리게 하였다. "비록 공직에 있지만 집안 일도 중요하다. 당연히 집으로 돌아가서 처자와 이웃들과 즐기는 것이 옳다"는 내용이었다. 장부는 그제서야 관리로서의 처신을 깨달아 이후부터는 휴목일에는 일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남북조시대에는 5일에 하루 쉬던 것이 10일에 하루 쉬는 것으로 바뀌었다. 즉, 매월 10일, 20일과 말일에 쉴 수 있었다. 이렇게 쉬다보니 '휴목'이라는 용어는 적절치 않았다. 그래서 '순휴(旬休)'(旬은 10일이라는 뜻임. 한달을 상순, 중순, 하순으로 나눌 때의 순임)라고 불렀다.
당나라때가 되면서는 나라에 여유가 생겼다. 그러자, 1년에 노는 날이 많아졌고, 휴일이 50일을 넘어서게 되었다. 순휴 외에도, 신년, 동지, 황제생일, 부처생일, 노자생일, 단오, 중추에 완전히 놀았다. full day로 쉬었다.
송나라때가 되어서는 나라가 힘들어지고 빚도 많고, 사건도 많았다. 노자생일, 부처생일은 모두 취소했다. 그리고 1년의 총 휴일은 적지 않았지만 full day로 쉬는 날은 18일에 불과하였다.
원라를 세운 몽고사람들은 원래 휴가개념이 없었다. 1년에 휴가일은 단지 16일이었다.
명나라의 경우에는 개국황제인 주원장이 소나 기르고 농사나 짓고 구걸이나 하던 출신이다보니 휴일의 개념이 없었고, 관리들이 쉬는 것을 싫어했다. 그래서 경축일은 단 3일로 줄였다. 신년, 동지, 황제생일. 나중에는 이렇게 하니 너무 심하다 싶었는지 "한가(寒暇, 겨울휴가)"를 만들었다. 즉, 12월 20일부터 관청의 문을 걸어닫고, 한달 후에 다시 문을 열었다.
청나라에 이르러서는 명나라의 제도를 그대로 사용했다.
전체적으로 보면 명나라와 청나라 두 황조때 휴가제도가 가장 가혹했다. 특히 청나라의 황제는 몸도 튼튼하고 하다보니 관리들을 엄격하게 통제했다. 아침 조회는 새벽5시에 원명원에서 열었다. 신하들은 새벽 2,3시에 일어나서 몸을 움직여야 겨우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중국과 역사사건 > 역사사건 (공통)'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족(九族)은 무엇인가? (0) | 2006.05.16 |
---|---|
근현대 중국 국기의 변천 (0) | 2006.05.07 |
중국역사상의 두 명의 처녀황후 (0) | 2006.05.03 |
중국(中國)이라는 말의 유래 (0) | 2006.04.10 |
마작의 유래에 대한 세가지의 학설 (0) | 2006.04.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