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언(張嫣)
한나라 혜제(惠帝) 유영(劉盈)의 황후. 유영이 20세 되는 때, 여후(여치)는 장언을 유영에게 시집보낸다. 장언은 유영에게는 외조카가 되었다. 그 때 장언은 겨우 10살정도였다. 얼마되지 않아. 혜제가 미앙궁에서 죽었고, 그 때 나이 겨우 23살이었다. 황후는 겨우 14살이었다. 여씨들이 멸족되고, 아직 성년도 되지 않은 과부는 폐위되고 연금된다. 북궁에서 겨우 먹을 자유만 있고, 다른 자유는 없이 20년을 더 살 다가 나이 36세로 사망한다. 여후는 자기의 아들인 유영을 황제에 올리면서 외손녀인 장언을 황후로 세운다. 정혼때, 황제는 준마12필과 황금만냥을 예물로 장언의 집에 보내어 겨우 10살인 외조카딸을 맞이한다. 장언의 남동생은 나이가 아직 어려서 황금이 집에 쌓이는 것을 보고는 내방에 들어와 "언누나. 황제가 널 사려나봐"라고 하였다고 한다. 한혜제는 황후가 나이가 아직 어리자, 다른 비빈들과 지냈다. 그러자, 여후는 황제가 장언만을 총애하도록 하기 위하여 다른 비빈을 모두 죽이려고까지 하였다. 그래서, 장언은 부득불 회임을 가장하여 다른 비빈들의 목숨을 보전하도록 하였다.
상관씨(上官氏)
한나라 소제(昭帝)의 황후. 그녀는 한무제가 만년에 어린 아들을 맡긴 두명의 큰 인물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즉, 그녀는 상관걸(上官桀)의 손녀이면서, 곽광(霍光)의 외손녀가 된다. 6살때 당시 11살인 한소제에게 시집간다. 나중에 소제가 병으로 죽었을 때, 그녀는 겨우 15세이다. 15세에 과부가 되고, 태후(太后)가 된다. 나중에 황제가 된 유하(劉賀)가 등극한지 27일만에 해서난 안되는 일 1,127가지를 벌이는 바람에 폐위되고 다시 한선제(漢宣帝)를 세운다. 이렇게 되어 15세의 상관씨는 바로 태황태후(太皇太后)가 된다. 막 중학교를 졸업한 정도의 나이에 황제의 작은 할머니가 되었으니...이것이 행운인지 불행인지? 한선제 유순이 즉위한 후, 먼저 민간에서 처였던 허성군(許成君)을 황후로 세웠다. 나중에 곽광의 가족은 허황후를 독살한다. 이를 모르는 황제는 다시 곽광의 어린 딸인 곽성군을 황후로 세운다. 곽성군은 나이 17세였다. 이렇게 되자, 문제가 복잡해졌다. 당시 상관씨는 나이 19세이면서, 곽광의 외손녀였다. 이렇게 되자, 황실로 보면, 상관씨는 곽성군의 작은할머니가 되는데, 곽씨집안으로 보면, 상관씨는 곽성군의 조카딸이 되었다. 나중에 곽광이 모반죄로 처결된다. 그러자 곽황후는 부득이 자살하게 된다. 그러나, 상관씨는 권세도 남자도 없었으므로 요행히 살아남는다.
한나라는 외척의 세력이 매우 강대했던 시대이다. 황제를 세우고 폐하는 것이 태후집안의 사람이 한마디 하면 이루어지곤 하였다. 그래서 자주 나이어린 황제가 즉위하곤 하였다. 그러다보니 황후도 나이가 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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