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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공통)

마작의 유래에 대한 세가지의 학설

by 중은우시 2006. 4. 6.

첫째,

 

마작의 원래의 이름은 "말장(抹將)"이다. 말(抹)은 수호지에 나오는 108명의 양산박호한을 가리킨다. 원나라말 명나라초에 만병조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시내암이 쓴 수호지의 양산호한을 매우 존경했고, 수호지의 이야기를 고관대작들도 알아서, 백성을 아끼고 사랑하게 되라는 뜻에서 마작을 발명하였다는 것이다.

 

마작은 108개의 기본패로 되어 이는데, 패중의 구조(九條, 조패는 우리나라에서는 索牌라고 한다)는 구조룡(九條龍) 사진(史進)을 가리키는 말이고, 이조(二條)는 쌍편(雙鞭) 호연작(呼延灼)을 가리키는 말이고, 일병(一餠, 병패는 우리나라에서 筒牌라고 한다)은 흑선풍(黑旋風) 이규(李逵)를 가리킨다고 한다.

 

만패, 병패, 조패의 세개의 유형으로 나눈 것은 마작을 발명한 만병조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을 따왔기 때문이라고 하며, 매유형마나 1에서 9까지 4장의 패로 하여 모두 108개로 만들었다. 108개는 바로 사방팔방에서 양산박에 모여들었으므로, 여기에 동, 서, 남, 북, 중의 각 방향마다 4개씩의 패를 만들어 모두 20장을 만들었고, 여기에 호한들도 부자도 있고 가난한 사람도 있어 각계각층에서 왔다는 것을 표시하기 위하여 여기에 "발(發)" "백(白)"을 만들었는데, 발은 부자를, 백은 가난한 사람을 의미한다. 이것 8장을 합쳐서 모두 136장이 되었다.

 

나중에 여기에 꽃패를 추가하여 합쳐서 144장이 되었다. 또 하나의 민간에 전해지는 얘기에는 마작상은 4방탁자인데 동서남북의 네 개의 방위를 가리킬 뿐아니라, 춘하추동의 사계절도 가리킨다는 것이다. 매 사람마다 13개의 패를 받는 것은 1계절이 13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4계절을 합치면 52주가 되고 모두 364일이 된다. 여기에 남는 한장을 합치면 바로 1년에 365일이 된다는 것이다. 이건 그저 재미로 하는 얘기다.

 

둘째,

 

마작의 기원은 양식창고를 지키는데서 유래되었다는 설이다. 마작패의 기원을 강소성 태창(太倉)으로 보고 있는데, 이것은 소주의 잡문작가인 "곡신지"가 연구를 통하여 얻어낸 결론이다. 태창은 예로부터 황가의 양식창고였다. 창고안에는 일년내내 쌀과 곡식이 쌓여 있었고, 북쪽으로 운송하기 위하여 보관되어 있었다. 곡식창고가 있다보니, 참새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창고를 지키는 병사들은 참새를 잡는 것으로 소일하였다. 창고관리는 병사들이 참새를 많이 잡도록 그들에게 대나무로 만든 패를 나누어주어 잡은 참새의 마릿수를 계산하도록 하였다. 병사들은 이 패위에 글자를 새겨서 놀이도구로 변신시켰다. 이 패는 나중에 보상을 받는 증빙으로도 사용되므로 경제적가치가 있어서 이것을 가지고 승부를 보는 도박을 하기 좋았다. 이런 놀이가 게속 이어지면서 형태가 바뀌어가면서 점차 모습을 갖추어가고 이것이 마작패가 되고 현재의 마작이 되었다. 그 놀이방법이나, 용어는 모두 마작을 잡는 것과 관련이 있다.

 

예를 들어, 통(筒), 색(索), 만(萬)의 세가지 패가 있는데, 통(筒)의 도안은 화승총의 상형부호이다. 몇개의 통은 몇개의 화승총이 되는 것이다. 색(索)은 속(束)으로 묶음인데, 잡은 참새를 몪어놓은 것이다. 그러므로 색의 도안은 새가 되는 것이다. 이색(二索)에는 대나무 마디와 같은 것이 있는데, 이것은 참새의 다리를 표시하는 것이다. 관리들이 검수할 때, 참새다리를 세어서 그 수를 확인하였다. 병사들은 참새의 묶음을 속이라고 불렀다. 만(萬)은 상금을 의미한다.

 

이외에, 동, 서, 남, 북은 모두 바람의 방향이다. 참새를 잡을 때 총을 쏘려면 바람의 방향을 고려하여야 하기 때문에 중요하다. 중(中)은 적중하였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붉은 색으로 표시한다. 백(白)은 백판으로 총을 쏘아서 맞지 않은 것을 의미한다. 발(發)은 상금을 내리는 것을 의미한다. 뻥은 바로 총소리를 의미한다. 패가 완성된 것을 훌라(和了)라고 하는데, 이것은 실질적으로 흘(새의 종료)을 의미한며 매의 일종이다. 이 매는 참새를 잡는 재주가 뛰어나서 흘만 있으면 참새(麻雀)잡는 것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이외에 마작중의 츠(吃), 깡등도 모두 마작을 잡는 것과 관련이 있다.

 

그렇다면 마작패는 왜 현재 중국에서는 마장패(麻將牌)라고 부르는 것일까? 원래 강소 태창의 방언에서 참새를 마장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참새를 잡는 것을 타마장이라고 한다. 그래서 마작패는 마장패라고도 하는 것이다.

 

셋째,

 

중국에서 최초의 마작에 대한 기재는 송나라때 양대년의 "마장경(麻將經)"이다. 그 안의 내용은 현재의 마작과 유사하다. 마작이 1색에 새그림으로 되어 있지도 않고, 7개의 자패는 공, 후, 장, 상, 문, 무, 백이었는데, 청나라때 이 마작은 반청복명과 관련이 된다고 생각하여 금지시켰다. 청나라 도광연간에 수재인 진실문(陳實門)이 그의 형의 배를 타고 천하를 유람하면서, 배 위에서 무료하여 선원들과 도박을 즐겼다. 진실문은 매일 보면서, 도박도구를 개선하려고 생각하게 되었다. 배가 운항할 때는 바람의 방향이 자주 바뀌므로 공, 후, 장, 상의 네글자를 동, 남, 서, 북바람으로 바꾸었다. 당시 배ㅔ서는 거래하는 화폐제도가 10통이 1색이고, 10색이 1만이었다. 그 중에 통은 중간에 구멍이 있는 동전을 말하는 것이고, 색은 동전을 10개묶은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이것을 마작에 활용하였다. 다만, 1색과 2색은 자주 헷갈려서, 어느날 그는 배위에서 기르는 새를 보고, 영감이 떠올라 1색은 "새"로 바꾸었던 것이다. 마작은 대체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렇다면, 문 무 백의 새 글자는 어떻게 되었는가? 진실문은 이에 대하여 머리를 여러가지로 굴렸다. 한번은 선원들이 장기를 돌 때 포로 상대방의 장군을 먹으면서 "내 포는 백발백중이야"라는 말을 들었다. 진실문은 이것을 들은 후에 문무백을 백발백중의 중발백에서 중, 발, 백으로 만들었고, 이것이 현재의 마작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