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녀 : 동궈거거(東果格格) 1578-1652
고륜공주(固倫公主). 모친은 누르하치의 원비인 동가씨 하하나자칭이다. 명나라 만력6년(1578) 2월 22일 출생하였으며, 장녀일 뿐아니라, 누르하치의 자녀중 가장 연장자이다. 추잉과 다이샨은 그녀와 모친이 같은 남동생들이다. 명나라 만력16년(1588년) 11세때 동악씨인 허허리(何和禮)에게 시집을 간다. 이로 인하여 동궈거거라고도 불리우고 동궈공주라고도 불리운다.
허허리. 명나라 사람들은 호호리(好好里)라고 번역했었다. 명나라 가정 40년(1561년)에 태어났다. 명나라 만력 16년(1588년) 누르하치의 부하가 된다. 당시에 이미 처자가 있었으나, 누르하치는 다시 장녀를 그에게 준다. 이것만 보더라도 누르하치가 허허리를 얼마나 중시했는지 알 수 있다. 허허리는 후금의 개국공신의 하나이고, 후금정권이 건립된 후 1등대신이 되었으며, 군국대사를 결정하는데 참여하는 오대신중의 한 명이다. 후금 천명년간에 세습삼등총병관을 받아 후에 삼등자(三等子)라고 칭해진다. 천명9년(1624년)에 사망하니 나이 64세때였다. 순치제때 시호를 온순으로 내린다. 동궈거거는 1652년에 죽었으니 나이 75세때였다.
차녀 : 눈저거거(嫩哲格格) 1587-1646
화석공주(和碩公主). 모친은 누르하치의 측비인 이얼근줴뤄씨로, 아바타이(阿巴泰)의 모친이 같은 언니이다. 당방지 선생의 고증에 의하면 이 여인은 먼저 바투루 이라카에게 시집을 갔으나, 나중에 이라카가 그녀를 버린다. 누르하치는 이라카를 죽여버리고, 다시 그녀를 천명년간에 일찌기 그의 부하가 되었던 잠하부의 양서(楊書)의 아들이며 누르하치의 외조카인 궈얼뤄씨 다얼한에게 시집보낸다. 그녀는 넌저거거라고도 부르고, 잠하공주라고도 부른다. 다얼한은 일등자(一等子)에 봉해지며 관직이 도통에 오른다. 숭덕6년(1641년) 10월에 전공을 다투다가 고산액진을 박탈당하고 세습직도 박탈당한다. 순치원년(1644년)에 죽는데, 51세때이다. 넌저거거는 순치3년(1646년) 7월에 죽는데 그 때 나이 60세이다.
삼녀 : 망구지(莽古濟) 1590 - 1635
모친은 누르하치의 계비인 푸차씨 군다이이다. 망구얼타이, 더거레이, 페이양구가 모두 모친이 같은 형제들이다. 명나라 만력18년(1590년)에 태어났고, 29년(1601년) 12세의 나이로 하다부의 라라씨 우얼구다이에게 시집간다. 그래서 하다공주라고 부르기도 하고, 하다거거라고 부르기도 한다. 천명말년에 우얼구다이가 죽는다. 천총원년(1627년)에 다시 몽고 아오한부의 보얼지지터씨 수노무두링에게 시집가고, 개원(開元)의 땅을 하사받는다. 9년(1635년)에 망구지는 교만하고 광호하여 거거칭호를 박탈당하고 평민이 되며, 친척과의 교류를 금지당한다. 그 해에 부하인 집안노예 렁승지(冷僧機)에게 고소당한다. 그녀가 일찌기 동모형제인 망구얼타이, 더거레이와 함께 역모를 꾀하였다는 것이 밝혀져서, 죽임을 당한다. 우얼구다이와의 사이에 두 딸을 두는데, 한 딸은 하오거에게 시집가서 하오거에게 죽는다. 다른 딸은 웨퉈에게 시집가는데 웨퉈가 그녀를 죽이고자 하나 청태종이 막아준다.
사녀 : 무쿠스(穆庫什) 1595 - 1659
화석공주. 모친은 노르하치의 서비인 쟈무후줴뤄씨이다. 누르하치의 바부타이, 바부하이, 다섯째 딸, 여섯째 딸과 모친이 같다. 명 만력23년(1595년)에 태어났다. 36년 (1608년)에 14살의 나이로 해서여진의 오라부 패륵인 나라씨 부잔타이에게 시집간다. 부잔타이와 누르하치의 모순이 격화되면서 만력 40년(1612년)에 부잔타이가 그녀를 세워놓고 활을 쏜다. 이에 누르하치가 병사를 이끌고 가서 그녀를 데려온다. 후에 다시 후금의 개국공신인 뉴구루씨의 바투루인 어이두(額亦都)의 여덟째 아들인 투얼거(圖爾格)에게 시집간다. 허슈어거거라고 불렀고, 허슈어공주라고도 불렀다. 투얼거는 명 만력24년(1596년)에 태어나 무크스보다 1살이 어렸다. 이것은 불행한 결혼이었다. 누르하치가 살아있을 때, 두 사람은 누르하치의 얼굴을 봐서 표면적으로 부부관계를 유지하였지만, 부부의 감정은 계속 좋지 않았다. 숭덕2년(1637년)에 그들의 딸이 니칸(추잉의 셋째 아들)에게 시집가서 자식을 낳지 못하자, 여종이 낳은 딸을 자기가 낳은 딸인 것처럼 하였다. 사실이 밝혀지자, 무크스는 이 일로 화석공주의 칭호를 박탈당하고, 투얼거도 면직당한다. 그 해에 무크스는 투얼거와 이혼하고, 동모형제인 바부타이와 바부하이가 돌보아준다. 순치16년(1659년) 5월에 사망한다. 나이 65세였다. 투얼거는 나중에 군공으로 복직되며, 공을 쌓아 3등공에 이르며 순치2년(1645년)에 사망한다.
오녀 : 1597-1613
모친은 누르하치의 서비인 쟈무후줴뤄씨이다. 바부타이, 바부하이 및 무크스와 여섯째 딸과 모친이 같다. 명나라 만력 25년(1597년)에 태어났다. 26년(1608년)에 12살의 나이로 후금의 개국공신인 바투루 어이두의 둘째아들 다치의 처가 된다. 다치는 어려서부터 누르하치의 총애를 받았는데, 총애를 믿고 교만해졌으며, 부마가 된 후에는, 더욱 교만해졌다. 자주 누르하치의 아들들 앞에서도 행동거지가 무례하였다. 어이두가 여러차례 훈계했으나, 고쳐지지 않았다. 집안을 바로잡기 위하여 어이두는 다치를 죽여버린다. 명나라 만력 41년(1613년)에 다섯째 딸도 죽는데, 나이 17세때였다.
육녀 : 1600 - 1646
모친은 누르하치의 서비인 쟈무후줴뤄씨이다. 바부타이, 바부하이 및 무크스와 다섯째 딸과 모친이 같다. 명 만력28년(1600)년에 태어나고, 41년(1613년)에 14세의 나이로 해서여진 예허나라씨 쑤나이에게 시집간다. 쑤나이는 관직이 도독에 이르렀는데, 후금 천총9년(1635년)에 세습직을 박탈당한다. 숭덕5년(1640년)에 사망한다. 여섯째 딸은 순치3년(1646년)에 사망하니, 나이 47세때였다.
칠녀 : 1604 - 1685
향군의 품급이었다. 모친은 누르하치의 서비인 이얼근줴뤄씨였다. 명만력32년(1604년) 3월10일에 태어났다. 후금 천명4년(1619년)에 16세의 아니로 기도위인 나라씨 어퉈이에게 시집간다. 숭덕6년(1641년)에 어퉈이가 전쟁터에서 사망한다. 칠녀는 강희24년(1685년)에 사망하니 그 때 나이 82세였다.
팔녀 : 총구룬(聰古倫) 1612 - 1646
화석공주. 모친은 누르하치의 측비인 예허나라씨이다. 명만력40년(1612년) 12월 7일에 태어난다. 천명10년(1625년)에 14세의 나이고 카얼카몽고의 보얼지지터씨 타이지 구얼부시에게 시집간다. 구얼부시는 천명8년(1621년)에 누르하치에게 귀순하였으며 이등자(二等子)의 작위를 받고, 칭쭤리커구라는 명칭을 하사받는다. 10년(1625년)에 여덟째 딸을 시집보낸다. 천총연간에는 병부에서 일은 한다. 순치7년(1650년)에 일등자로 승진한다. 8년(1651년)에 죄를 받아 작위를 박탈당하나, 늙어서 복직된다. 18년(1661년)에 사망한다. 나이 65세때였다. 총구룬은 순치3년(1646년) 2월에 사망한다. 그 때 나이 35세였다.
양녀 : 바웨터거거 1590 - 1649
화석공주. 누르하치의 동생인 슈얼하치의 넷째딸이다. 모친은 슈얼하치의 계복진(繼福晉)인 과얼쟈씨이다. 명만력18년(1590년) 6월 21일생이다. 후금 천명초년에 누르하치는 그녀를 양녀로 삼고 군주에 봉한다. 천명2년(1617년)에 28살의 나이로 카얼카몽고의 보얼지지터씨 바웨다이타이지 언거더리에게 시집간다. 그래서 바웨터거거라고 부른다. 언거더리는 만력23년(1605년)에 누르하치에게 투항하며, 천명2년(1617년)에 공주를 취한다. 천총9년(1635년)에 동경 요양으로 옮겨오며, 나중에 삼등자에 봉해진다. 숭덕원년(1636년)에 죽는다. 공주는 천총9년에 화석공주로 되며, 순치6년(1649년) 4월에 사망하니, 나이 60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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