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농민반란은 중국역사를 진보시켰다.
중국의 중학교 교과서에는 농민반란을 언급할 때마다, 모두 진보적인 의미를 얘기한다. 만일 그들이 무슨 잘못을 저지른 것이 있으면, 바로 그들의 상층부들이 지주계급으로 변환했기 때문에 그렇다고 함으로써, 농민들은 잘못이 없다고 한다. 역사상의 절대다수의 왕조의 교체는 모두 대규모농민봉기 이후에 이루어졌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러나, 만일 직접 농민반란군이 건국한 한(漢), 명(明), 직접 군벌정권이 건국한 송(宋), 농만봉기후 본건군벌이 건립한 당(唐), 이들간의 누가 낫고 누가 못한지를 따지면 아마 누구도 결론을 내리지 못할 것이다. 고대에는, 농민은 지주계급보다 더 선진적인 것을 해낸다는 것이 불가능하였다. 하나의 왕조가 거의 멸망할 지경에 이르면, 농민봉기가 없었더라도, 그들은 다른 이유로도 망할 요소가 있었다. 동한은 황건적의 난이 없더라도 마찬가지로 끝장났을 것이다. 나무위의 과일은 스스로 익어서 땅바닥에 떨어지든, 아니면 동물이 먹어치우든 어쨌든 결국 속의 씨는 전파되는 것이고, 단지 방법이 다를 뿐이지, 결과는 동일하다.
다시 말해서, 왕조교체가 역사의 전진인가?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사회의 진보를 평가하는 유일한 표준은 생산력이고, 사회가 생산력의 제고에 유리한지여부를 봐야 한다는 것을. 우리의 왕조는 진한의 황족집권을 경험하고, 양진남북조의 많은 사족집안을 경험한 후에, 당송시기에 비교적 합리적인 왕조체계로 발전하였다는 것을 안다. 구체적인 과정은 매우 복잡하고, 중간에 몇차례 후퇴도 있었다. 그러므로 매번 왕조교체는 모두 전진하는 것은 아니었다. 당연히 역사의 진부에서는 역사를 뒤로 후퇴시키는 것도 있다고 말할 수 있고, 단지 하나의 부패한 왕조를 멸망시킨다면 그것 자체가 역사를 진보시킨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팔왕의 난이 사치한 서진의 멸망을 촉진하고, 후경의 난은 부패한 남량의 멸망을 초래했는데, 왜 그들은 역사를 앞으로 진보시켰다고 하지 않는가?
아마도 중국공산당은 농민의 도움으로 성공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모든 농민운동은 모두 진보적인 것이고, 비록 우매하고 낙후한 의화단까지도 "반제애국"운동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6. 유목민의 남하는 중국사회의 진보를 추진하였다
유목민족은 역사상 4번에 걸처 중원을 침입하였다. 주류의 의견은 계속 그 합리성을 인정했고, 이것은 최소한 민족융합을 촉진하였고, 원, 명의 양대에 걸쳐 중국은 판도를 넓혔다고 한다. 최근에 아주 인기있는 <<늑대토템>>은 더욱 이러한 이론을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렸고, 유목민족이 없었다면, 중화민족은 끝장났을 것이라고 한다. 유목민족국가는 대부분 무력이 강성했으므로,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중국을 통치하기를 희망하였다.
그러나 고대에, 무력이 강한 것이 국가가 강하고 사회가 선진화되었다는 것과 같은 의미인가? 인류가 만일 맨손으로라면 호랑이의 적수가 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호랑이가 사람보다 고등동물인가? 유목민족은 그 생활환경의 제약을 받아, 생산력이 낮고, 사회제도가 낙후되어 있다. 그들이 중원을 잘 관리하려면 무조건 중원문화를 받아들여야 했고, 유목민족의 생활방식을 포기하여야 했다. 그래서 가장 좋은 상황은 바로 그들이 완전히 한문화를 받아들이고, 하나의 한인으로 바뀌는 것이다. 이래야, 한족왕조와 비교할 때 적어도 후퇴는 없었던 것이 될 뿐이다. 그러나, 청나라를 제외한 다른 유목민족정권은 모두 한화를 거부했고, 그들이 관리하는 국가는 필연적으로 사회혼란을 야기시켰다.
그리고, 사회의 진보여부를 평가하는데는 생산력과 생산관계가 합리적인지 여부를 보는 것이지. 무력이 강한지 아닌지, 판도가 넓은지 아닌지, 민족융합을 촉진했는지 아닌지를 보는 것은 아니다. 북방유목민족은 남하전에는 모두 노예제 사회 혹은 원시사회였고, 그들이 중원에 들어온 이후 봉건제도가 어떤지를 한번에 알아낸다는 것은 매우 어려웠다. 그래서 그들의 국가는 자주 아주 농후한 노예제의 유습을 가지고 있고, 이것은 당시 중국사회의 발전에 매우 불리하였다.
7. 이연(李淵), 양견(楊堅)은 선비(鮮卑) 혈통이고, 그래서 수당은 소수민족정권이다.
이것은 극단주의자의 관점이고, <<늑대토템>>이 지지하는 설이다. 이런 관점은 비록 황당하지만 지지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고대에, 한 사람의 민족성을 판단하는 것은 현대처럼 엄격한 방법을 쓰지 않았고, 가장 믿을 만하고, 합리적인 것은 그들의 몸에 체현된 것이 어느 민족의 문화이냐는 것이다. 이연, 양건은 비록 선비혈통이지만, 그들은 어려서부터 한문화의 훈도를 받았는데, 어떻게 그들을 선비족으로 대우할 것인가. 다시 말해서 그들이 진정한 선비족이면 또 어떤가, 그들의 왕조는 상층관료로부부터 백성들이 거의 모두 한인이었는데, 그렇다면 한인의 왕조가 아닌가. 만일 건륭과 향비가 아이를 낳고, 그가 황위를 이어받았다면, 청나라가 회족으로 바뀌고, 이슬람국가로 바뀌는 것은 아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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