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중국의 xujun516이라는 사람이 블로그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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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에, 서양사람들은 중국인, 일본인, 한국인을 구별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길거리에서 한눈에 중국인, 일본인, 한국인을 구별해낼 수 있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비결이 있기 때문이다.
국제공항의 로비에서 각 나라의 관광단을 보면, 우리는 그 중에서 중국인, 일본인, 한국인을 구분해 낼 수 있다.
예를 들어, 10명의 관광단에서 한 사람이 말을 하고, 나머지는 모두 들으면서, 때로는 웃고, 때로는 대답한다면 분명히 일본인이다; 10사람중에서 8,9명이 서로 크고, 작은 소리로 얘기하고 있다면, 한국인이다; 5,6명이 얘기하고 다른 사람은 한편으로는 들으면서, 한편으로는 사방을 둘러보고 있다면, 더 말할 필요도 없이, 중국인이다.
일본문화는 집단주의문화이다. 일본인들은 특히 집단우선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집단에 복종하고, 집단과 타협하고, 스스로를 집단속에 융합시키기를 원한다. 이를 위하여 그들은 자신의 개성은 기꺼이 희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집단을 대표하는 한 사람이 얘기하면, 9명은 조용히 듣는 것이다. 비록 다른 의견이 있더라도, 우선 듣고, 그 후에 집단행동에서도 협력하는 것이다. 비록 말하는 사람이 대표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자기주장을 내세우지 않는 일본인으로서는 우선 하는 말을 다 들을 것이다.
한국인은 비록 대표자가 말을 하더라도, 그들은 각자 자기의 의견을 얘기한다. 비록 한 사람이 말하면 끝나는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그들은 각자 큰 소리로 자기의 주장을 강조한다. 그래서 종종 시끄럽게 서로 주장하는 상황이 연출된다. 일본인의 집단주의문화유형과는 완전히 상반되는 개인주의문화유형이다. 한국인은 종종 개인주장을 우선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중국인도 개인형 문화에 속하기는 한다. 그리고 자기주장을 강조한다는 점에서는 한국인에 비하여 손색이 없다. 다만, 한국인과 비교하면, 중국인은 자기 감정을 콘트롤할 수 있는 성숙함을 가지고 있다. 중국인은 고의로 모르는 척할 줄도 알고, 계속 자기의 위치를 체크하며, 자기의 개성은 억누른다. 이것이 바로 "명철보신"의 철학이다. 중국인은 한국인처럼 강력하게 자기의 주장을 내세우지는 않고, 때때로 모르는 것처럼 할 줄 아는 지혜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5,6명이 얘기하면 다른 사람은 한편으로 얘기에 참여하면서(혹은 참여하는 척하면서), 한편으로는 사방을 둘러보는 것이다.
문제는 사방을 둘러보는데 있다. 중국인은 어디를 가더라도, 모두 사방을 둘러보는 습관이 있는데,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데서 살아도 이 습관은 고쳐지지를 않는다.
일본의 지하철에서 우리는 이런 광경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일본인은 아무런 표정없이 졸고 있고, 한마디도 말하지 않는다. 만일 한 사람이 지하철을 타자마자 사방을 둘러보고, 시선이 한 곳에 머무르지 않는다면, 분명히 중국인이다. 사방을 둘러보는 동작은 호기심에서 그런 것도 아니고, 무엇을 찾는 것도 아니다. 내가 중국인을 구별하는 비결은 바로 이 동작에 있다. 동일한 차속에서라도 한국인이라면 그들은 일본인처럼 아무런 표정이 없지는 않고, 오히려 표정이 풍부하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중국인처럼 여기저기 둘러보지는 않는다.
일본에서 저술활동을 하는 중국작가 공건(孔健)은 중국사람이 사방을 둘러보는 습관은 기마민족의 습관에서 나왔다고 한다. 즉, 자주 위험에 맏닥뜨리는 환경에서는 사방을 둘러보며 경계해야하는 생활이 연속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인도 또한 기마민족의 후예이고, 일본인도 체질상으로 보면 역시 몽고민족의 후예이다. 이렇데 본다면 공건의 의견은 약간 억지스러운 면이 있다. 우리는 다른 특징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환경이 매우 열악한데서 빈곤하게 생활해온 중국인들은 일찌기 도적의 침입을 많이 받았다. 강도가 성행할 때는 다른 사람의 물건을 뺏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훔치는 자는 사방을 경계하며, 붙잡히지 않도록 하여야 했다. 도둑맞는 자는 역시 경계해서 화가 자기에게 떨어지지 않도록 하여야 했다. "다른 사람을 해치려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되지만, 다른 사람으로부터 방비하려는 마음을 가지지 않아서는 안된다"는 속담도 있다. 그래서 해가 가고, 세대가 바뀌면서 중국특색이 있는 습관이 형성된 것일 것이다.
일본에서 생활하며 가장 자주 듣는 말은 이런 말이다. "일본은 좁은 섬나라이어서..." 또는 "섬나라근성을 가진 일본인이므로..."
모두 알고 있는 바와 같이, 한 나라의 국민성과 민족기질의 형성은 그 나라의 지리환경과 관련역사와 밀접한 관견이 있다. 만일 우리가 일본인들에게 "섬나라근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면, 한국인에게는 "반도근성"이 있고, 중국인에게는 "대륙근성"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세가지 근성은 상징적으로 세개 국가의 국민성과 민족기질을 보여준다.
내가 일본에 유학온 후 항상 느끼는 것은 일본은 좁다는 것이다. 일봉인 자신들도 항상 입에는 좁다는 말을 달고 다닌다. 이것은 지리적인 의미뿐 아니라 심리적인 폐쇄성까지 포함한다. 역사에서 오랫동안 외부세계와 격리되어 있었고, 교류가 없던 환경이었다. 모두 동일한 민족, 동일한 기질을 가진 사람들이 동일한 성격의 문화를 보유하고 있었으므로, 다른 문화에 대하여는 일종의 경계심을 가지고 있고, 마음씀씀이가 개방적일 수가 없었다. 이런 배타성이 바로 "섬나라근성"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협소한 마음에서 정면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세밀하고 열심히 하며, 정밀하고 정확하다는 것 등이다. 일본인의 업무에 대한 책임감과 좋은 제품에 대한 책임감 그리고 신간센의 정확한 정차발차시간은 세계에서 첫 손꼽힐 것이다.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하고 한 점의 흐트러짐도 없고, 정확한 것을 추구하는 것은 바로 일본이 세계경제대국으로 성장하는 밑바탕이었다.
그러나, 일본인은 항상 긴장된 환경 속에서 생활하고, 마음의 끈은 항상 긴장되게 당겨져 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믿지 않는 것도 생래적인 성격상의 특징이다. "얼굴은 웃으나, 속으로는 우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내심을 보이지 않는 것도 "섬나라근성"의 하나의 특징이다. 외국유학생들은 일본인과 친구가 되기 어렵다고 하는데 그 근본적인 원인은 역시 "섬나라근성"이다.
일본의 또 하나의 현저한 특색은, 외로운 섬에서 생활함으로써 길러진 외국문화에 대한 강렬한 호기심이다. 바로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한 것처럼, 일본은 한번도 외국의 침략이나 정복을 당한 경험이 없으므로, 마음에 아무런 거리낌없이 외국문화를 받아들일 수 있다. 지연조건에서도 일본은 강력한 문명국가인 중국과 멀리 떨어져 있었으므로, 중국문명을 흡수하기가 더욱 쉬웠고, 나아가 독특한 일본문화를 창출할 수 있었다.
일본인은 왕성한 호기심에 의하여, 탐욕스럽게 외국문화의 좋은 것들을 받아들여서, 교묘하게 개량하여 본국문화로 만들었다. 고대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한반도를 통하여 중국문화를 받아들였고, 명치유신후에는 서구문화를 받아들였고, 현대에는 미국문화를 받아들였다. 일본의 문화발전사는 바로 외국문화를 성공적으로 받아들인 역사였다.
그래서, 일본문화는 역사상 계속하여 외국문화를 받아들이는 "받는 문화"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유감스러운 것은 일본이 세계에 공헌한 것은 그들이 받아들인 것에 비하여는 너무나 적다는 것이다.
중국의 "대륙근성"은 일본의 "섬나라근성"과 선명하게 대비된다. 대륙은 매우 넓고, 장강과 황하가 길게 흐르고, 높은 산이 둘러싸고 있어 천연적인 병풍과 같고, 장성은 거룡처럼 종횡으로 펼쳐져 있다.
중국의 광활한 영토에 부합하여 중국인은 대체로 대범하고, 유유자적하며, 한 때의 혹은 하나의 일에 구애받지 않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고대로부터 계속하여 반복적으로 이족들과 전투하고, 융합하였다. 지금도 56개의 민족이 같이 생활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인 경험에서 나오는 것은 열린 마음과 엄청난 참을성이다.
중국은 고대 사대문명국가의 하나이고, 중화문명이라고 불리었다. 동아시아에 뛰어난 화하문명세계를 건설했다. 그러므로 중앙문화의 근거지라는 자부심이 있고, 대국이라는 우월의식이 매우 강하다. 이러한 "대국의식"은 "대륙근성"의 중요한 내용이 된다고 할 수 있다. 강대했던 중화문명은 한반도와 일본에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었다. 이러한 문화수출국으로서의 우월감은 지금도 중국인의 마음 속에 남아있다. 만일 일본문화가 전문적으로 외국문화와 중국문화의 영향을 받아들인 "받는 문화"라면, 중국문화는 바로 "주는 문화"였다. 중국인은 지금도 일본을 "소일본"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이것은 바로 대륙의 우월감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한국은 대륙도 아니고 섬나라도 아니다. 그는 두 개의 중간에 있어, 교량의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계속 강력한 문명의 침입을 받았고, 이것은 숙명이었다.
이러한 숙명적인 관계속에서, 반도인들은 강대국의 눈치를 보면서 생활할 수 밖에 없었고, 따르기도 하고 거역하기도 하는 것이 반복되면서 "대륙근성"도 아니고, "섬나라근성"도 아닌 "반도근성"이 형성되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러한 반도근성은 마음의 폐쇄성도 있고, 자기를 주장하는 동시에 자기를 억제하는 심리도 있다. "눈물을 흘리면서 웃는 얼굴"이 함께 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대륙문화에 대하여는 자비감, 섬나라문화에 대하여는 우월감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대륙문화는 "주는 문화"이고, 섬나라문명은 "받는 문화"라면, 반도인 한국은 "받고, 주는 문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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