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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지방/북경의 어제

경산(景山) : 숭정제가 자살한 장소

by 중은우시 2006. 3. 1.

 

1930년대

 

 

1990년대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숭정제(崇禎帝)가 경산에서 목을 매어 자살하였다는데 대하여는 특별한 이견이 없다. 그러나, 그가 구체적으로 목을 맨 장소에 대하여는 의견이 일치하지 않고, 사서마다 서로 다르게 얘기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소나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수황정, 또 어떤 사람은 건모국, 홍각, 영수정, 수녕궁, 수황전등 구체적인 위치를 서로 다르게 얘기하고 있다.

 

<<명사, 이자성전>>, <<명사, 제기>>, <<명사, 왕승은전>>등 정사에서는 모두 "...내성이 함락되고, 숭정황제는 경산의 수황정(壽皇亭)에서 스스로 목을 매었다"고 기재하고 있다. 즉, 숭정제는 수황정에서 죽었다는데, 명나라의 정사는 거의 통일되어 기재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달리 기재된 사료도 있다 예를 들어 <<삼원필기>>에서는 "(숭정제는) 왕승은과 함께 매산(煤山, 경산을 말함)의 오래된 나무아래에서 목을 매었다"고 기재하고 있다.

 

이런 기록들은 모두 단편적인 기록만 존재하므로, 이런 기록만을 가지고, 구체적인 위치를 확정하기는 쉽지가 않다. 그래서 청나라때의 <<연도잡영>>이라는 시에서 어떤 시인은

 

외외만세산 (巍巍萬歲山)

밀밀접연수 (密密接烟樹)

중유망제혼 (中有望帝魂)

비제부지처 (悲啼不知處)

 

높고 높은 황제의 산에

빽빽한 나무들이 연이어 있구나

그 중에 황제의 혼을 보고싶으나,

어디 곳인지 알지 못해서 슬피 운다.

 

현재 경산공원내에 있는 숭정황제의 자살나무는 청정부가 인심을 다독거리기 위하여 인위적으로 설치한 역사적인 유적지이다. 나무에 쇠밧줄을 묶어두고 칼을 채워서 나무에게 죄를 묻는 형식을 취하여 "죄괴"라고 하였다.

 

비록 많은 명청사학전문가들이 숭정황제가 자살한 정확한 지점을 찾아내지는 못하고 있지만, 경산의 동쪽 산자락에 숭정황제 자살처에는 바로 이 괴수(槐樹)가 있으며, 이미 유명한 나무가 되어 버렸다. 청나라 초년에 죄괴(罪槐, 죄지은 괴수)로 정한 후에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것이다. 비록 몇번에 걸쳐 옮겨심어지기는 했지만....

 

1930년에 찍은 <<명사종순국처>>라는 사진을 보면, 당시의 죄괴는 벽돌담에 둘러싸여있는 뿌리를 드러낸 늙은 나무였다. 1644년부터 1930년이면 286년의 시간이 지났고, 숭정황제가 목을 맨 나무라면 지금은 훨씬 두꺼워야 할 것인데, 사진속의 죄괴는 그저 가냘픈 나무일 뿐이다. 외관상으로 보면 이 나무는 절대 숭정제가 목을 맨 나무가 될 수는 없다. 유일하게 설명이 가능한 것은 원래의 나무는 죽고, 그 뿌리에서 자란 새로운 나무라는 것밖에 없다.

 

1960년대에는 이 죄괴는 1930년에 찍은 사진의 죄괴와는 사뭇 다르다. 괴수의 직경은 1척이 되지 못하고 나무줄기의 서쪽에는 길게 찢겨진 흔적이 있고, 수심에까지 닿아 있어서 나무가 매우 위험스러워 보였다. 보기에는 1930년대의 죄괴가 그 동안 굵어진 것으로 볼 수는 있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나무는 60년대중반에 죽고 만다. 당시 북경시 원림국은 상황을 북경시혁명위원회에 보고하고, 혁명위원회 주임인 오덕은 강청에게 다시 오리고, 1971년 주은래 총리의 동의를 거쳐, 북경시혁명위원회의 비준을 받아 시원림국은 이 "죄괴"를 잘라버린다.

 

문화대혁명기간동안에는 경산공원이 7년간 닫겨 있었다. 1978년 경산공원이 다시 열린 후에 숭정황제자살처를 찾는 관광객들을 위하여 1981년 공원관리처는 경산 남쪽언덕에서 한 그루의 어린 괴수를 찾아 옮겨심는다.

 

1996년에는 경산 동쪽언덕의 물과 흙을 보호하기 위하여, 공원관리처는 숭정황제자살처의 나무 위쪽에 풀을 심고, 동성구 건국문내 북순성가 7호의 문앞에서 현재 심어져 있는 괴수를 옮겨심는다. 이 괴수는 150여년이 된 나무로서, 비록 300여년과는 차이가 많지만, 외관상으로는 조그마한 나무를 보는 것보다는 훨씬 보기좋은 점이 있다.

 

1950년대에 어떤 사람은 하나의 대련을 남겨놓았는데,

 

군왕유죄무인문 (君王有罪無人問)

고괴무과수쇄가 (古槐無過受鎖枷)

 

임금은 죄가 있는데도 아무도 책임을 물으려하지 않고,

홰나무는 아무 잘못이 없는데도, 밧줄과 칼을 채워두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