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화계는 강소 상숙(常熟)지방의 유명한 요리이다. 제조방법은 상숙삼황계를 가지고, 털을 벗기고 깨끗이 씻은 후, 간뻬이, 새우, 소시지, 죽순, 버섯등의 보조재료를 닭의 뱃속에 넣고, 다시 파, 생각, 술, 설탕등을 넣은 후에 바깥은 연잎으로 싸고, 다시 그 바깥에 진흙을 바른 후, 불로 구워서 만드는 것이다. 제작과정에서 불의 힘을 조절하는 것이 가장 관건이 된다.
규화계의 특징은 누렇게 될 뿐 타지 않으며, 뼈와 살이 분리되고, 향이 좋고 느끼하지 않으며, 부드럽다는 것이다. 흑히 부드러움과 향이 가장 뛰어나며, 다른 요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이다. 요리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요리는 거지(叫化子는 당시 거지라는 뜻임).
전해지는 바로는 명나라 숭정년간에 상숙에 거지가 하나 있었는데, 구걸을 못하여 거의 먹지를 못했고, 겨우 뱃속에 풀칠을 하며 살아갔다. 어느날 이 거지는 하루종일 아무 것도 먹지를 못하였고, 하늘에는 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춥기도 하고 배도 고파 거지는 풀더미속으로 도망쳐 추위를 피하고 있었다. 풀더미에 숨으려는데, 바로 아래에 닭 한마리가 아래 깔려있었다. 하루종일 아무 것도 먹지 못한 거지로서는 이 늙은 닭 한마리는 어둠속에서 찾은 광명과도 같았고, 매우 기뻤다. 그러나, 이 닭은 주인이 있는 닭일 것이고, 그가 닭을 잡아먹는다면 그것은 도둑질에 해당되었다. 그러나, 배가고파 죽을지경이었던 거지에게는 도둑질인지 여부는 따질 계제가 아니었다.
이 거지가 고민한 것은 어떻게 이 살아있는 닭을 요리하여 뱃속에 넣을 수 있도록 만들 것인가에 있었다. 주변에는 솥도 없고, 냄비도 없으며, 아무런 취사도구가 없었다. 뿐만아니라 소금이나 조미료도 없었다. 급한 와중에 아이디어를 내어 결국 방법하나를 찾아내었다. 그는 어미닭을 죽인 후에 진흙을 겉에 발라 진흙덩어리처럼 만들었다. 그리고는, 건처의 풀과 나뭇가지를 끌어모았고, 눈이 내리는 것도 상관하지 않고, 묘앞에서 불을 붙였다. 바깥을 진흙으로 둘러싼 닭도 불 속에 집어넣어 같이 익혔다. 그리고는 불곁에 앉아서 고기가 익기만을 기다렸다. 진흙이 불에 익어 노란 색으로 바뀌었을 때, 낡고기 냄새도 구수하게 났다. 거지는 드디어 진흙덩어리를 꺼내려고 하는 순간, 갑자기 뒤에서 사람이 나타났고, 거지는 깜짝 놀랐다.
원래, 이런 계절에는 거지만 힘든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은 모두 힘든 법이다. 상숙의 북문밖에 있는 흥복가에서 술가게를 열고 있는 왕사(王四)도 그런 사람중의 한 사람이었다. 왕사의 술집은 주로 고기를 구워서 술과 함게 팔았다. 좋지 않은 술을 사람들에게 조금씩 팔아서 근근히 먹고사는 정도였다. 비록 술집이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흥복사의 근처에 있기는 했지만 장사가 잘되지는 않았다. 이날도 왕사는 가게를 연 후에 손님이 없었고, 아침에 닭한마리를 잡아서 솥에넣고 끓여두었지만 손님이 없어 솥뚜껑을 열지조차 못했다. 왕사는 울적하여 밥도 넘어가지 않았고, 바깥에 눈이 오는지 안오는지도 신경쓰지 않았다. 그저 걸어나와서 숲속을 걸어가고 있는데, 닭고기냄새가 멀리서 났다. 황혼녘이어서 왕사는 도대체 무슨 일인지 알아보려고 냄새나는 곳으로 다가갔다. 보니 원래 흥복사 일대에서 구걸을 하던 거지가 있었다.
거지는 비록 왕사를 알았지만, 닭은 자기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를 보자 놀랄 수밖에 없었고, 그저 한번만 용서해달라고 빌 수밖에 없었다. 왕사는 원래 착한 사람이었고, 거지를 혼내줄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닭고기 냄새가 매우 좋은데.."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듣자 거지는 얼른 닭을 불 속에서 꺼내서 바깥의 진흙을 벗겼다. 진흙을 벗기니 닭껍질과 닭털도 함게 떨어져 나갔다. 거지는 닭다리 하나를 떼어서 공손하게 왕사에게 먼저 맛보라고 건넸다. 왕사도 뱃속에 든 것이 없었고, 이렇게 향기좋은 닭고기를 보니 급히 받아들고 먹었다. 왕사는 가난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가게를 가지고 있었다. 각종 방법으로 구운 닭고기는 다 먹어보았다. 그러나 이렇게 맛있고, 향기나고 부드러운 닭고기는 먹어보지 못하였다. 그는 만일 자신의 가게에서 이런 맛을 내는 닭고기를 판다면 장사가 잘될 거라고 생각했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왕사는 거지에게 만드는 법을 알려달라고 사정했다. 거지는 자기가 어떻게 닭을 얻었고,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하나하나 왕사에게 설명했다. 그리고, 이건 다른 방법이 없어서 억지로 생각해낸 것이지 별로 희한할 것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왕사는 한 마디도 빠뜨리지 않고 다 기억해두고 있다가 집에 돌아와서 거지가 말한 것을 기초로 가공하고 개선했다. 원래 닭의 뱃속에는 단지 파와 생강만 넣었으나 개선하여 깐뻬이, 새우를 넣었더니 고기의 맛이 더욱더 좋아졌다.
여름이 되자, 왕사는 소주의 유명한 요리인 하엽분증육의 맑은 맛이 생각나서, 닭의 바깥에 연잎을 둘렀다. 연잎의 맑은 향이 구울 때 닭에 스며들도록 하였다. 이로부터 왕사의 술집에서 만드는 닭요리는 많은 손님을 끌었고, 자그마한 가게는 큰 왕사주가로 바뀌었다. 거지로부터 배운 닭요리법을 기초로 하였으므로,왕사는 요리를 "규화계(거지닭)"이라고 이름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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