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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문화/중국의 음식

항주(杭州)의 누외루(樓外樓)

by 중은우시 2006. 1. 27.

1. 누외루의 역사

 

항주의 서호변에는 유명한 음식점 누외루(러우와이러우)가 있다.

누외루가 언제 생겼는지에 대하여는 청나라 도광제시절, 동치제시절, 광서제시절의 여러가지 설이 있으나, 도광28면(1848년)에 지었다는 것이 비교적 믿을 만한 것으로 얘기되고 있다. 누외루의 주인은 당시 과거에 낙방한 문사인 홍서당(洪瑞堂)이라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는 처인 도수영(陶秀英)은 부친이 돌아가신 후 소흥동호에서 전당(현재의 항주)로 이사왔고, 서호의 서냉교옆에서 배를 몰고 고기를 잡으며 생활하고 있었다. 부부모두 물고기가 풍부하고 쌀이 풍부한 소흥에서 이사왔으므로 물고기와 새우를 요리하는데 재주가 좋았다. 먼저 잡은 물고기와 새우를 요리하여 팔기 시작하다가, 나중에 서냉교 일대에 요리점이 없는 것을 보고는 규모가 작은 요리점부터 시작하였다고 한다.

 

 

2. 누외루의 명칭유래

 

누외루라는 명칭에 대하여는 송나라 때 임승(林昇)이라는 사람이 지은 시를 따서 지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산외청산누외루(山外靑山樓外樓)

서호가무기시휴(西湖歌舞幾時休)

난풍훈득유인취(暖風熏得遊人醉)

직파항주작변주(直把杭州作汴州)

 

산 밖에는 또 청산이 있고, 누각 밖에는 또 누각이 있네

서호의 노래와 춤은 언제나 그칠 것인가?

따뜻한 바람에 취해버린 북쪽 나그네는

항주를 개봉인줄 알고 있나보구나.

 

이 시는 <<제임안저(題臨安邸)>>(임안의 여관벽에 붙여)라는 시이다.

1126년, 금나라의 공격에 북송의 변량(변주, 현재의 개봉)은 무너지고, 휘종과 흠종의 두 황제는 포로로 잡혀버리며, 중원의 땅은 거란족인 금나라에게 점령당한다.

 

조구(趙枸)는 강남으로 도망쳐와서 임안(현재의 항주)에서 황제에 등극하니, 후세에 남송이라 불리는 나라이다. 남송조정은 북송이 멸망한 교훈을 바탕으로 부국강병에 힘쓰지도 않았고, 정치하는 무리들은 북쪽에 빼앗긴 땅을 되찾기 위한 노력을 하지도 않았으며, 그저 남쪽에서 편안한 삶을 살아가는데 주력하고, 대외적으로는 투항하고 굴종하였으며, 대내적으로는 악비등 애국적인 장군들을 모함하고 살해하였다. 정치적으로 무능하였고, 고관대작들은 그저 즐길 뿐이었다. 이 시는 이런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것이다.

 

산외청산누외루, 서호가무기시휴는 당시의 임안에 도망쳐온 남송이 화려한 누각을 산처럼 이어서 지어놓고 노래와 춤으로 세상을 보내는 것을 풍자하는 글이다. 시인은 임안의 여관으로 와서 이런 화려한 생활을 보며 오히려 슬퍼지는 것이다. 금나라에 대항하여 힘을 키우고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한 노력은 전혀 할 생각이 없고, 그저 누각이나 산처럼 이어서 짓고, 서호에서는 노래와 춤으로 세월을 보내는 것을 보니 한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뒷쪽의 두 구는 시인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따뜻한 바람은 남쪽 항주의 날씨가 개봉보다 따뜻하므로 그렇게 말한 것일 것이고, 따뜻한 곳에서 편안하게 살다보니, 거기에 취해버린 당대의 정치인들을 빗대고 있다. 그저 항주가 개봉인줄 알고 있나보다고 한마디를 던지는 것은, 개봉땅을 되찾을 생각은 꿈도 꾸지 않고, 그저 여기가 개봉인줄 알고 희희낙락하며 살고있구나라는 의미라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