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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분석/중국역사의 철칙

역사의 철칙 - 토사구팽(兎死狗烹)의 철칙

by 중은우시 2005. 8. 29.

월왕 구천(句踐)은 복수를 위하여 와신상담을 할 정도로 비범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의 인품은 별로였다. 아주 곤란할 때 그를 도와 주었던 두명의 공신은 일이 성사된 후 하나는 피살당하고 하나는 도망쳤다. 피살당한 사람은 문종(文種)이고, 도망친 사람은 범려(范려)였다.

 

문종을 죽일 때 구천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네가 나에게 오나라를 멸망시키는 7가지 방법을 알려주었는데, 나는 그 중에 3가지 방법만 써서 오나라를 멸망시켰다. 너에게는 아직 4가지 방법이 남아 있으니, 그걸 가지고 선왕있는 곳에나 가라"

 

일찌기 범려는 문종에게 권하기를 "비조진, 양궁장, 교토사, 주구팽, 월왕위인장경조연, 가여공환난, 불가여공락(蜚鳥盡, 良弓藏, 狡兎死, 走狗烹, 越王爲人長頸鳥연, 可與共患難, 不可與共樂)" , "새를 다 잡으면 좋은 활은 창고에 쳐박아두고, 토끼를 다 잡으면, 사냥개는 삶아 먹는 법이다. 월왕의 사람됨은 목이 길고 새의 입이어서, 어려운 시기를 같이 보낼 수는 있지만, 좋은 시절을 함께 즐길 수는 없는 사람이다"

 

토사구팽의 이러한 일은 역사에서 계속하여 반복되었다.

 

한고조 유방의 경우에도 한신의 군사적인 재능에 의지하여 천하를 얻었으면서 말로는 한신과 천하를 나눠갖겠다고 하였지만, 나중에는 나눠가진 게 아니라, 한신의 목숨을 빼았았다. 오히려 장량은 총명하여 벽곡(僻穀, 곡식을 먹지않는 수련법)의 핑계를 대고 산속에 숨었다. 물론, 유방이 죽자 벽곡은 더이상 수련하지 않는다.

 

공신을 죽인 것으로 따지만, 주원장보다 더 악독한 경우는 없었다. 그를 도와 천하를 얻을 때의 장수는 매우 많았지만, 후에 북경에 있던 연왕 주예가 남하하였을 때, 남경에는 이미 이에 대항할 장수가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다행히 북쪽의 몽고가 쳐내려오지 않아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주씨의 명나라는 2대에서 끝장났을 것이다.

 

송나라의 조광윤도 나는 일찌기 편하게 잠을 자본적이 없다고 말했다. 천하를 얻고나서도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고 밤에 잠들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천하는 흉흉하고 스스로 황제가 되고 싶어하는 야심가들이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그런 야심가였지 않은가. 그러다보니, 항상 의심하게 되고, 잠을 제대로 못자며, 신경쇠약에 걸려, 진짜 이리가 온 것으로 생각하고 살심이 동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사고의 진전이다. 세상 사람들 누구나 이 자리에 앉고 싶어하는데, 자신도 그렇게 해서 이 자리에 앉은 것이다. 원래 남에게 뺏은 물건은 잘 지키지 못하면 또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는 법이다. 그러므로, 역사상 토사구팽의 일이 계속 반복되는 것은 논리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람은 왜 어려울 때 같이하기는 쉽지만, 부귀를 같이 나누기는 어려운 것일까? 사업의 경우에도 몇 사람이 동업으로 공동창업을 하는 경우에 시작할 때는 열심히 같이 힘든 것을 견디며 노력하고 서로 협력하지만, 일단 사업이 커지고 이윤이 풍부해지면 다른 생각이 드는 것이다. 서로 의심하고 저어하고 결국은 서로 갈라지게 된다. 사람의 천성이 그런 것일까.

 

후세 사람은 범려의 이 철칙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교활한 토끼가 죽고나면, 사냥개는 삶겨지고, 날으는 새들을 다 잡고 나면, 좋은 활은 창고에 쳐박힌다. 적국을 멸망시키고 나면, 계책을 내던 신하는 죽임을 당한다. 자고로 어려움을 같이 하기는 쉬워도, 부귀를 같이 누리기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