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때 당송팔대가의 한명인 유종원(柳宗元)은 "적계"라는 짧은 글을 지었는데, 그 글에서 생각한 사고방식은 통상적인 사람들의 것과는 완전히 달랐고, 철학적인 도리를 담고 있었다. 개략적인 내용은 아래와 같다.
"모두 적에 대한 원한은 알고 있지만, 적으로 인해서 얻는 득이 많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모두 적으로부터 입은 해는 알고 있지만, 적으로 인해서 얻은 이익이 크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진나라는 여섯 나라가 있음으로서, 열심히 노력하여 강국이 되었고, 여섯 나라를 멸망시키고 나자, 더 이상 노력하지 않아 나라가 망하였다....적이 있으면 두려움을 갖게 되고, 적이 없어지면 춤추고 놀았으며....적이 있으면 화를 없앨 수 있으나, 적이 없어지면 잘못을 저지른다. 이러한 도리를 알 수 있다면, 그 도가 크고, 이름은 떨치게 될 것이다. 병을 다스리면 오래 살 수 있으나, 건강함을 자신하게 되면 급사하게 된다..."
사람들은 유사이래로 적(敵)은 화(禍)의 근원으로 보았으며, 힘이 없으면 피해야 하고, 힘이 있으면 뿌리뽑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유종원만은 적이 있는 것이 좋은 일이라고 한 것이다.
중국이라는 천년의 거목은 속이 완전히 비었다. 중국이라는 늙은 제국은 수천년을 거치면서 이미 완전히 썩어버린 것이다. 중국의 역사와 서방의 역사를 비교하면 큰 차이를 알 수 있다. 유럽대륙은 로마제국이후에 여러 열강이 다투었는데,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와 같았다. 국가와 국가간에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하나의 국가가 이러한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전력을 다하여 통치를 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서방문화의 핵심은 경쟁이었다. 서방의 정치, 철학, 시장경제는 모두 경쟁을 강조했고, 그들의 영화, 게임에서도 격렬한 전투장면으로 충만하다.
중국의 역사는 유럽과는 전혀 달랐다. 진이 통일한 이후 이천년견, 거의 계속하여 하나의 큰 나라가 유아독존하는 국면이었고, 주변의 어느 국가도 인구나 경제력의 면에서 중앙제국, 중국과 비교할 수 없었다.
강력한 적국이 없고, 외부의 압력이 없으면 내부는 자연스럽게 부패한다. 변경에 전쟁의 호각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내부에서는 노래부르고 춤추는 소리가 높아진다. 진나라 이후 황조의 역사는 생기는 황조마다 전 황조만 못했고, 모든 사회가 정신이 퇴화하는 과정에 있었다. 이런 역사환경에서 오랫동안 생활하다보니 중국인들은 안락이라는 독약에 취해있고, 진취적으로 사고하지 않으며, 겁이 많고, 몸이 마비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중국인이 화약을 발명했지만 그것으로 축포를 만들어 불꽃놀이하는데나 썼고, 서양사람들은 그것으로 무기를 만들어 인류의 전쟁을 냉(冷)무기시대에서 열(熱)무기시대로 변경시켰다. 경쟁이라는 압력이 없으면, 계속하여 혁신하고 진보하려는 원동력을 잃게 된다.
결론적으로, 적이 있고, 경쟁이 있는 사회는 발전하지만, 적이 없고, 경쟁이 없는 사회는 발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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