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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한국/한중관계

춘향전(春香傳)의 한시에 관하여

by 중은우시 2005. 8. 7.

춘향전에 나오는 유명한 한시가 있다.

 

金樽美酒千人血    금술단지의 아름다운 술은 천 사람의 피요

玉盤佳肴萬姓膏    옥쟁반에 좋은안주는 만 사람의 기름이로다.

燭淚落時民淚落    촛농이 흐를 때 백성의 눈물도 흐르고

歌聲高處怨聲高    노래소리 높아질 때 원망의 소리도 높아지도다.

 

그런데, 중국의 가경제(嘉慶帝)가 가경7년(1802년)에 지은 한시중에 비슷한 내용이 있다.

 

內外諸臣盡紫袍    내외의 모든 신하는 붉은 관복을 차려입고 있는데,

何人肯與朕分勞    누가 있어 짐의 근심을 덜어줄 수 있을 것인가.

玉杯飮盡千人血    옥술잔에 마시는 건 천 사람의 피요.

銀燭燒殘百姓膏    은촛대에서 타는 것은 백성의 기름이다.

人淚落時天淚落    사람눈물 떨어질 때 하늘의 눈물도 떨어지고

歌聲高處哭聲高    노래소리 높은 곳에 곡소리도 높아진다.

平時漫說君恩重    평소에 황제의 은혜가 무겁다고 말하더니

辜負君恩是爾曹    황은을 저버린 건 그대 신하들 아니던가.

 

명나라때의 희극작가인 풍몽룡(馮夢龍, 1574-1646)은 일찌기 이런 시를 그의 <<廣笑府>>라는 웃음거리를 모아놓은 책에서 <<학정요(虐政謠)>>라는 이름으로 옛날에 형주태수가 아주 악독하게 굴어 다음과 같은 시가 유행했다고 하면서 다음의 시를 싣고 있다.

 

食祿乘軒着錦袍    국가에서 녹을 받고, 가마를 타고 비단 옷을 입고 있으니

豈知民莫半分毫    백성이 얼마나 힘든지 반푼이라도 알리가 있겠는가

滿酌美酒千家血    가득 채운 아름다운 술은 천 사람의 피요

細切肥羊萬姓膏    잘게 자른 양고기는 만 백성의 기름이다

燭淚淋離寃淚滴    촛물이 흐르는 곳이 원한의 눈물도 흐르고

歌聲撓亮怨聲高    노래소리 울려퍼지면 원망의 소리도 높아간다.

群羊付與豺狼牧    양떼를 승냥이와 이리에게 주어서 기르라고 한 꼴이니

辜負朝廷用爾曹    조정이 너희 관리들을 쓴 뜻을 저버린 것이다.

 

춘향전에 나오는 시는 성이성(成以性, 1595-1664)이 지은 시집에 수록된 것과 동일한 것이라는 설성경교수의 연구결과도 있는데, 두 시의 유사성으로 보아서는 한쪽이 영향을 받아 지은 것일 가능성이 많아 보인다. 성이성의 4대손인 성섭(1718-1788)은 <<필원산어>>에서 "우리 고조할아버지가 암행어사로 호남에 갔을 때 암행하여 한 곳에 이르니 호남 열두 읍의 수령들이 크게 잔치를 베풀고 있었다...한낮에 암행어사가 걸인 모양으로 음식을 처하니...관리들이 말하기를 '객이 능히 시를 지을 줄 안다면 이 자리에 종일 있으면서 술과 음식을 마음껏 먹어도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속히 돌아감만 못하리라'...곧 한장의 종이를 청하여 시를 써주었는데..그 내용은 춘향전의 시와 동일하다. 쓴 시를 보고 관리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때쯤 서리들이 암행어사를 마치며 달려왔다. 여러 관리들이 모두 흩어졌는데, 그날 파직당한 자가 여섯이었다."라고 쓰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