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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문학/무협소설

한혈보마(汗血寶馬)에 관한 이야기

by 중은우시 2005. 8. 5.

[먼저 경화시보 2005년 5월 1일자 기사입니다]

 

신화사에 의하면 중국고대에 "천마(天馬)" "신마(神馬)"로 취급되던 한혈마(汗血馬) 학술연구회가 전날 우루무치시에서 거행되었다. 전문가들은 여러 각도에서 한혈마에 대한 여러가지 수수께끼를 토론하였고, 한혈마에 씌워진 신비로운 면사를 벗기고자 하엿다.

 

참가한 전문가들 동물의학전문가, 사학가, 문학가, 고고전문가등이었다. 동물전문가들은 "한혈"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대체로 의견일치를 보았다.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한혈마의 한혈은 일종의 기생충이라는 것으로, 이런 혈한증은 단지 병의 증세에 불과하고, 말의 종류나 속성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말의 병은 현재 중앙아시아지역의 각국, 러시아초원지대, 인도, 남아프리카, 동구, 중국신강, 운남 및 청장고원에 많이 퍼져있다. 이것은 일종의 계절성 질병으로 첫번째 병세는 4월경에 시작해서 7,8월경에는 최고조에 달하게 된다.

 

왜 한혈마인가. 한혈마는 고대의 세계적인 명마로서, 달릴 때 목,어깨부위에 흐르는 땀중에 붉은 물질이 있고, 붉기가 마치 피와 같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말역사 전문가들은 한혈마가 실제는 현재 아직도 투르크만스탄에서 뛰어다니는 아하마라는 것이다. 이 말은 높이가 1.5미터 정도, 평지에서 1000미터를 1분7초정도에 주파한다. 현제 세계에는 약 3000필이 있으며, 근대이래로 중국에서는 순종 한혈마가 없어졌다.

 

 

[북경청년보 2001년 6월 6일자 기사입니다] : 좀 오래되었군요.

 

한혈보마 또는 한혈마(汗血馬)에 대한 전설은 이미 천년이상 전해내려오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한혈마는 목에서 땀이 흐를 때, 핏빛이라는 것이다. 역사서의 기록에 따르면 한혈마는 "하루 낮에 천리를 달리고", "대완마(大宛馬)" 또는 "천마(天馬)"라고 불리웠으며, 일찌기 한무제는 한혈마를 얻기 위하여 두번씩이나 군대를 서역에 파병하기도 했었다.

 

최근, 한 일본인 전문가가 중국 신강 천산에서 한혈마의 종적을 발견했는데, 이 "땀이 붉은 피같은" 사진을 찍었고, 동경대학에서 거행된 마필연구회에서 정식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이 발견을 공포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중국의 전문가들도 일시에 술렁거렸다.

 

1. 중국에 아직도 한혈보마가 있는가?

 

2001년 4월 30일 일본마필연구인원인 시미즈씨(淸水準人)은 동경대학에서 거행된 마필연구회상에서 그가 중국신강의 천산부근에서 발견한 "한혈보마"의 증거를 제시하였다. 그가 찍은 사진에 나타난 바에 따르면 그 말의 어깨에는 핏빛의 액체가 흐르고 있었다. 그에 따르면 2000년 8월 천산 서부에서 한혈보마를 발견하였다는 것이다.

 

시미즈씨는 그 말이 고속으로 질주한 후, 어깨부분이 점점 부풀어 올랐으며, 피와 같은 땀이 흘렀다는 것이다. 이것은 중국 한나라 때 사마천이 지은 <<사기>>의 기록 즉, 한혈보마는 비단 하루에 천리를 달릴 뿐아니라 어깨부근 위치에서 피와 같은 액체가 흐른다는 것과 일치하였다.

 

일본인의 발견에 대하여, 현재 중국농업과학원 축목연구소 마필연구전문가 왕철권 연구원은 기자의 방문을 받고 "한혈보마는 사라지지 않았고, 계속하여 존재하고 있었다." 그는 "투르크만스탄과 러시아에는 현재 수천필의 한혈보마가 있다. 다만 현지에서는 한혈마를 아하마(阿哈馬)라고 부르고 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중국의 양마전문가인 사성협 교수는 한혈마에 대하여 전문적으로 고증하였다. 사선생의 제자인 남경농업대학 축목전문가 정역휘 교수는 사교수께서는 산지명칭, 체형등 특징에 대하여 한혈마가 바로 대완마, 즉 현재의 아하마라는 것을 고증하였다고 말했다. 1951년, 중국은 일찌기 소련에서 종마를 수입하였는데, 그 중에는 52필의 아하마가 포함되어 있다. 이 아하마는 내몽고 시린거러의 종마장에서 기르고 있다. 자연번식외에 부분적으로 다른 종과의 교배도 시키고 있다. 1958년, 왕철권이 고찰하였을 때 본 아하마는 체형이 가볍고 아름다우며 전신에 긴 털이 나 있고, 굽은 목부분을 가지고 있으며, 특유하게 길고 높게 뛰는 보법을 지니고 있어서 고귀하고 출중해 보였다고 한다.

 

일본인이 신강에서 발견한 한혈보마는 왕철권 연구원에 의하면, 순종 아하마는 모두 등기되는데, 투르크만스탄과 이란 일대에는 약간의 등기되지 않은 토종 아하마도 있다는 것이다. 신강마술대와 내몽고의 목장에도 역시 백여필의 아하마를 기르고 있는데, 이에 비추어보면 일본인이 발견한 한혈마는 아마도 중국에 유입된 토종 아하마나 잡종 아하마일 가능성이 많다.

 

2. "피처럼 흐르는 땀"은 상기?, 기생충? 혹은 시각오차?

 

전설에서 한혈마의 목에는 피같은 땀이 흐른다고 한다. 기자가 신강농업대학 누얼쟝 교수에게 이 일을 물었을 때, 그는 놀라며, "아하마는 제2차세계대전때의 기병마였고, 해방후에는 신강에서 여러 필을 도입하였다. 다만, 나는 아직도 피처럼 땀을 흘린다는 것은 들어본 적이 없고, 본 적도 없다"

 

말이 고속으로 달릴 때의 체내혈액온도는 45도에서 46도에 달한다. 다만 두부온도는 항상 평상시와 같이 40도를 유지한다. 이에 비추어 동물전문가들이 추측하기로는 한혈마는 털이 가늘고 밀집되어 있으므로 그의 모세혈관이 매우 발달해 있으며, 고속으로 달린 후에는 혈액이 5도정도 온도가 오르게 되므로 약간의 붉은 피가 가는 모공을 통하여 흐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왕철권 연구원은, 아하마가 피처럼 땀을 흘리는 것은 매우 특별한 현상이라는 것이다. 외국전문가들도 모두 한혈마의 "한혈"현상에 대하여 고찰해봤는데, "한혈"현상은 바로 기생충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것이다. 청나라때의 더샤오첸은 <<반고소수전한서>>라는 책에서 이미 이것은 말의 병에 다름아니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즉, 일종의 말피부내에 기생충이 침입하고, 이 기생충은 말의 엉덩이와 등부분에 기생하고 있으며,말 피부에서 2시간내에 바깥으로 피를 내보내는 작은 멍울을 만든다. 전설에 따르면 투르크만스탄에는 하나의 신비한 강이 있는데, 여기에서 강물을 마신 말들은 고속으로 달린 후에 모두 피처럼 땀을 흘린다는 것이다. 현재는 이 강이 어느 강인지는 확인할 수가 없다. 이런 "기생충"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 현재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이에 대하여 어떤 사람들은 다른 견해를 내세운다. 남경농업대학의 정역휘교수는 "기생충설"은 성립되기 어렵다고 본다. 만일 기생충이 한혈보마의 땀을 피처럼 보이게 한 것이라면, 왜 그는 아무때나 피를 흘리지 않고, 고속으로 달린 후에만 흘리는 것일까? 중국농업대학의 유소백 교수는 1950년대, 60년대, 90년대에 이미 여러차례 신강에서 중아시아말에 대하여 기르는 것, 훈련하는 것등 여러 측면의 연구를 해왔다. 그는 "말의 땀은 일반적으로 백색이다. 거품모습을 하고 있고, 피처럼 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정역휘 교수는 다른 추측을 내놨다. 피를 흘리는 것은 단지 문학상의 형용일 뿐이다. 말이 땀을 흘릴 때는 보통 먼저 흐르고 후에 젖게 되는데, 대추빛이나 밤색털을 가진 말의 경우에는 땀을 흘린 후에 국부적으로 색깔이 더 선명하게 되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어, 사람이 느끼기에는 피를 흘리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특히 어깨와 목은 땀샘이 매우 발달한 곳이므로, 왜 한혈보마가 빨리 달린 후에 어깨와 목에 피와 같이 붉은 색의 땀을 흘린다고 하는지가 설명되는 것이다.

 

3. 한혈마는 하루낮에 천리를 달리는가?

 

왜 한혈마가 세계의 명마의 일종이 되었는가? 왕철권은 투르크만스탄에서, 마필의 수량은 많지 않으나, 풍부한 목초와 양식이 있어, 기술수준이 높은 집약적인 양마방식을 택할 수 있고, 말에 대하여 자질에 따라 개별적으로 기승훌련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중앙아시아에서는 말에 대하여 개별적으로 세심하게 관리를 한다. 그러나 몽고에서는 일종의 반야생의 상태로 풀어서 기르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기록에따르면 한혈마는 하루 낮에 4천킬로미터를 달린다는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에 의문을 표시한다. 정역휘 교수는 말하기를 고대의 계량단위는 현재의 10분의 1로 계산하여야 하므로, 현재의 기준으로 하면 400킬로미터인데, 현재로 봐서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유소백교수는 "낮에 천리, 밤에 8백리"는 전설일 뿐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말은 낮에 150킬로미터 정도를 가고, 최대한 200킬로미터까지 갈 수 있다. 중국 고대에 빠른 말을 이용하여 군사소식을 전하는 역참에도 "오백리가급"이라는 말이 있듯이 가장 긴 역참도 250킬로미터는 되지 않았다.

 

현재 모두 인정하는 것은 속도가 가장 빠른 말은 더러브렛(순혈마)이고, 1분에 1킬로미터를 달린다. 다만 이런 속도는 단지 훈련장이나 경마장에서 일이분은 가능하지만, 시간이 길어지면 말은 피곤해서 쓰러질 것이다. 한혈마는 1000미터를 단지 1분 5초에 주파할 정도로 속도가 비교적 빠르고 말의 체형이 우아하고 아름답다.

 

현대인에게 있어서 한혈보마는 역사서의 전설일 뿐이다. 다만 세계각국의 연구자들은 모두 한혈보마를 다시 발굴하고 기르고자 노력하고 있다. 원래의 아하마종을 이용하여 속도가 빠르고, 체질이 뛰어난 다른 종과 교배시켜, 시로운 말품종으로 '한혈보마'를 키워내려고 한다. 그러나 과학연구경비가 모자라서, 이런 계획은 아직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4. 한무제는 왜 한혈보마를 위하여 두 번이나 원정을 보냈는가?

 

한혈보마를 얻기 위하여, 중국의 한나라 때 두번이나 피를 뿌리는 전쟁이 일어났다. 한무제는 100여명의 사절단을 보내면서 황금으로 만든 말모형을 가지고 대완국으로 가서, 대완마와 바꿔 오고자 하였다. 4000여리를 행군하여 대완국의 수도 이사성(貳師城, 현재의 아스하바트성)에 도달했다. 대완국왕은 말을 아끼는 마음이 너무 강하여, 대완마를 한나라에서 보낸 황금말과 바꿔주지 않았다. 한나라 사절은 귀국하는 길에 황금말도 강도당하고, 사절단은 피살되었다. 한무제는 대노하여, 무력으로 말을 뺏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기원전 104년 한무제는 이광리(李廣利)에게 명하여 기병 수만명을 보냈다.  대완국의 변경도시인 욱성(郁城)에 도달하였으나 무너뜨리지 못하고 돈황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이 때 돌아온 인마는 열에 한둘 뿐이었다. 한무제는 다시 이광리에게 명하여 원정군 6만명을 이끌고, 말 3만필, 소 10만마리, 그리고 2명의 말관상전문가를 딸려 대완국으로 보냈다. 이 때 대완국에는 정변이 일어나서 한나라 군대와 화의를 맺었는데, 한나라군이 스스로 말을 고르도록 해주고, 이후 매년 대완은 한나라에 2필의 좋은 말을 보내주기로 하였다. 한나라는 좋은 말 수십필과 중등이하 암수말 3000필을 골랐다. 먼 길을 오다보니 옥문관에 도착하였을 때는 1000여필이 남았다.

 

한나라로부터 해방전까지 감숙산 단현에는 계속하여 큰 군마장이 있었다. 한혈마, 오손마(烏孫馬), 대완마(大宛馬)등을 들여와서 번식시키는 업무를 하였다. 유소백교수는 중국은 자고로 말의 품종선택과 교배에 매우 신경을 썼다. 한혈마는 체형이 좋고, 말을 잘 들으며, 빠르고 장거리행군에 적합하였따. 일찌기 이런 역사기록이 있다. 한나라군대가 다른 나라군대와 작전중에 말의 기술을 보여주는 경우가 있었는데, 상대방이 사용한 것은 몽고말이었다. 한혈마가 크고, 깨끗하며, 활발한 것을 보자 기괴한 동물이라고 생각해서 싸우지도 않고 물러갔다는 말이 있다. 한혈마는 한나라때 들어온 이래로 원나라때까지 천년이상 흥성하였다. 그러나 후에는 사리지고 말았다. 이에 대하여 왕철권은 수입한 한혈마는 숫말과 암말이 있었으므로, 번식하는 것이 가능하였따. 한혈마를 도입한 한무제로부터 당나라 말년까지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중국의 지방말이 수량에서 워낙 우세를 점하다보니, 도입한 말을 결국 이하의 단계를 거쳐 없어졌다. : 도입 - 잡교(雜交) - 개량 - 회교(回交) - 소실.

 

정역휘교수는 한혈마는 비록 속도가 빨랐지만 다만 몸이 가늘어 고대의 병기시대에 대장들은 기마작전시에 더 큰 말을 타고자 하였으며 이것이 한혈마가 중국에서 소실된 원인의 하나일 것으로 본다. 동시에 고대의 작전중에서 말은 많이 거세하였는데, 우수한 전마가 후대를 번식할 능력을 잃어버리게 된 것도 원인의 하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