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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문학/송사

육유(陸遊)와 당완(唐琬)에 얽힌 이야기(I)

by 중은우시 2005. 5. 23.

육유는 남송시대의 유명한 문인으로, 당대에 이백과 두보가 있다면, 송대에는 소식과 육유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특히, 육유의 사는 최고봉으로 일컬어지고 있는데, 그의 사 중에서도 전처 당완과의 사이에 얽힌 슬픈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당완은 육유의 사촌여동생으로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랐으며, 둘은 결혼까지 했다. 중국은 4촌(친사촌이 아닌 고종사촌)간의 결혼을 가장 이상적인 것으로 보았었다. 육유도 문재가 뛰어난 문인이지만 당완 또한 재주있는 여자였다. 그러나, 이렇게 재주있는 여자를 육유의 어머니가 싫어하여 결국 두 사람은 헤어지고 말았다. 육유는 왕씨와 재혼하고 당완은 조사정(趙士程)에게 개가하였다.

 

두 사람이 헤어진 지 10년이 경과한 어느 날, 육유는 산음(山陰 : 현재의 紹興)성의 남쪽에 있는 우적사(禹迹寺) 부근의 심원(沈園)에서 우연히 새남편 조사정과 함께 놀러온 당완과 마주치게 된다. 당완은 조사정의 허락을 받아 육유에게 육유가 좋아하던 술(黃藤酒)을 한잔 보내고, 육유는 그 술을 마신 후, 울적한 심정으로 글을 지어 심원의 벽에 남겨두었다. 이것이 유명한 차두봉(釵頭鳳)이다.

 

紅酥手,

黃藤酒,

滿城春色宮墻柳.

東風惡,

歡情薄,

一杯愁緖,

幾年離索.

錯!錯!錯!

 

春如舊,

人空瘦,

淚痕紅悒鮫綃透.

桃花落,

閑池閣,

山盟雖在,

錦書難托.

莫!莫!莫!

 

발그랗고 고운 손으로

따라준 황등주

온 성은 봄빛이 완연한데, 성벽의 버드나무도 푸르구나.

동녘바람은 못되기도 하여라.

즐거운 날은 왜 이리 짧은지.

한잔 술에 슬픔이 밀려오네.

몇년간 못만났던가

잘못이야. 잘못이야. 잘못이야.

 

봄은 예전과 같은데,

사람은 괜스레 말라버렸네.

눈물로 손수건은 연지자국이 붉게 배어있구나.

복숭아꽃도 떨어지고,

못가의 누각에는 사람도 없네.

예전의 맹세는 그대로 남아있는데,

편지조차 부칠 수가 없구나.

관둬라. 관둬라. 관둬라.

 

첫번째 세 줄은 육유가 당완을 만났던 때를 말하고 있다. 붉고 고운 손으로 예전에 즐겨마시던 황등주를 따르는 정경. 온 성이 봄빛으로 즐거워하고, 버드나무는 궁성벽에 있다. 여기서는 색깔로도 붉은 색, 노란색, 푸른 색이 어우러져 있고, 궁성벽에 있는 버드나무는 이미 주인있는 나무라는 의미로 이해가 된다. 길가의 버드나무라면 주인 없는 버드나무이겠으나, 성벽에 있는 버드나무라면 이미 주인있는 나무라는 암시로 이해된다. 밝고 고운 손이라는 세글자로 당완의 아름다운 마음씨와 고운 모습을 연상시키고, 온성이 봄빛이라고 즐거운 듯한 장면에서도 버드나무가 성벽에 있다고 하여 이미 자기의 여자가 아님을 애탄하고 있다.

 

네번째줄의 동풍악 이 세글자는 여기의 주제이다. 물론 여기의 동녘바람은 당완을 내쫓은 어머니도 포함되고, 서로 좋아하는 사람이 같이 살 수 없는 현실도 포함될 것이다. 사랑하는 전처가 건네준 한 잔의 술에서...작자는 몇년간의 이별에 가슴아파 한다. 잘못이라고 소리치는데...누구의 잘못인지는 말하지 않는다. 자신의 잘못이기도, 어머니의 잘못이기도, 현실제도의 잘못이기도 할 것이다.

 

봄은 옛날 그대로인데, 사람은 괜스레 말라버렸다. 여기의 인공수의 공(空)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다. 그냥 수척해졌어도 되는데 왜 하필 괜스레(공) 말라버렸다고 한 것일까? 이미 이혼하여 헤어지고 다시 그리워해서도 안되지만, 다시 그리워하느라고 말라버렸다는 것을 표현 한 것이 아닐까. 수척한 전처의 모습에서 더욱 안타까움이 느껴지고, 수건을 보니 붉게 물들어 있는데, 분명 흘린 눈물을 닦느라고 연지가 묻어서 그렇게 된 것이리라. 이제 봄이 지나가고, 봄꽃은 떨어지고, 봄놀이하던 정자에는 사람도 없어졌다. 예전에 변치말자고 약속했던 맹세는 그대로 이건만, 이제는 편지조차 마음대로 부칠 수가 없다. 어쩔 수 없는 심정에 이런 글이라도 심원의 벽에 써놓게 된다

 

(다음 번에는 이 글을 읽고 쓴 당완의 차두봉을 소개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