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인문지광(人文之光)
- 고위선위(高瑋禪位)
위진남북조의 역사를 얘기하다보면, 어떤 때는 북제의 역사가 가장 황당무계하다고 깨닫게 된다. 그리고 북제역사상 이런 이슈가 있다: 그것은 바로 도대체 누가 북제의 마지막 황제인가라는 것이다.
이 일은 북제의 고위(高瑋)가 황제에 오른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한다.
기실 당시에 북제, 북주(北周), 남진(南陳)의 3방이 대치하는 역사국면이었고, 원래 북제가 가장 강력했다. 다만, 북제의 종실은 내분이 너무 심했다. 특히 고위가 황제에 오른 후, 북제의 내정은 계속 위험국면으로 치달았다. 예를 들어, 고위는 의심이 많아 곡률광(斛律光), 고장공(高長恭)등의 무장을 죽여버린다.
고위가 재위하는 동안, 북제의 서쪽에 있는 북주는 북제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따. 북주는 고위가 멍청한 짓을 여러번 벌인 후에 북제를 향해 진격하기로 결정한다.
북주의 군대는 공격하는 도중에 적지 않은 좌절을 겪는다. 만일 고위가 적극적으로 방어하였다면, 설사 대승을 거두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망국속도가 그렇게 빠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백족지충사이불강(百足之蟲死而不僵)이다. 동위시기에 고씨집안이 오랫동안 경영해왔기 때문에, 우문씨(宇文氏)가 며칠만에 소멸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다만, 고위는 북주의 대군이 기세등등한 것을 보고, 아예 황위를 8살짜리 아들 고항(高恒)에게 넘겨버리고, 자신은 태상황(太上皇)이 되어, 고항으로 하여금 국면을 주재하게 한다.
그러나, 8살짜리 어린아이가 어떻게 대국을 주재할 수 있을 것인가? 고위도 그건 말이 되지 않는다고 여겼다. 다만 그렇다고 고위가 책임을 지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황위를 외인에게 넘겨주고 싶지도 않았다. 그리하여, 그는 스스로를 속이고 남도 속이는 멍청한 수법을 생각해 낸다.
북제의 수도는 업성(鄴城)이었다. 업성은 동한 후기부터 남북조에 이르기까지 항상 중요한 도시였다. 업성은 일찌기 장안(長安), 낙양(洛陽)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도시였다.
북제가 업성을 도성으로 삼았을 때, 북주의 수도는 장안이었다.
북주의 병사들이 업성으로 공격해 들어오자, 고위는 고항을 데리고 도망친다. 그때 그는 그래도 능력있는 인물을 찾아서 위기국면을 수습하게 해야한다고 느낀다. 그래서 고위는 이리저리 생각한 후에 자신의 숙부를 떠올린다: 고개(高湝)
2. 무상황(無上皇)
고개는 북제의 개국황제 고양(高洋)의 동생이고(북제의 기초는 고환(高歡)이 닦았지만, 고환이 살아있을 때는 황제를 칭하지 않았었다), 고환의 열째아들이다. 비록 북제종실이 황위쟁탈전에 매우 치열했지만, 이 기간동안, 고개는 나이가 매우 어렸고, 서출(庶出)이어서, 황위쟁탈전에서 경쟁할 상황이 아니었다. 고개는 스스로 물러났고, 황위쟁탈전에 가담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전의 북제황제들도 모두 알고 있었다. 이 고개는 누가 황제가 되든 황제를 지지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북제조정내에서 고개는 능력도 뛰어나고, 명성도 좋은 인물이다. 그래서 고위는 황위를 고개에게 물려주기로 결정한다.
다만 문제가 있다. 만일 고개가 황제에 오르면, 그건 고항으로부터 선양을 받는 것이 된다. 그러면 고항이 태상황이 된다. 그런데, 만일 고항이 태상황이 되면, 고위 자신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그리하여, 고위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이리저리 생각한 후에 최종적으로 전무후무한 명칭을 생각해 낸다: 무상황(無上皇).
그리하여 고위는 고항의 명의로 조서를 반포하여, 고개에게 황위를 넘겨주고, 고개로 하여금 북제의 군민을 조직하여 북주의 침입에 항거하도록 한다.
그후 고위 부자는 남진으로 도망칠 준비를 한다. 고위의 계획에 따르면, 자신이 남진 경내로 들어갈 때 북제의 국면을 살펴볼 수 있다. 만일 고개가 북주의 병력을 잘 막아내서, 북제의 병사들이 잃은 영토를 되찾는다면, 고위 부자는 다시 돌아오면 된다. 만일 북주의 공세를 막아내지 못하면 남진에서 그냥 피해 있으면 된다.
고위의 계획은 완벽해 보였다. 다만 집행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그것은 바로 고위가 북주의 추격병을 따돌리지 못하고 따라잡혔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고위는 도망치다가 포로로 잡혀버린다.
3. 호도장(糊塗帳)
고위가 전위조서를 전달하도록 파견한 신하는 고개를 찾아내지 못했다. 당시 고개는 망명상태였기 때문에, 고개는 조정이 이미 자신을 북제의 신황제로 옹립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당연히 고개는 망명하면서 계속하여 저항역량을 조직했다. 그러나, 이때 북제는 이미 패망할 운명이었고, 그리하여 고개가 비록 저항하며 노력했지만, 전투중에 북주의 병사들에게 포로로 잡히고 만다.
그후 고개는 장안으로 압송된다. 그후 얼마 지나지 않아, 북주조정은 고개, 고위, 고항을 모반죄로 처결한다.
고개는 고위와 서로 만났고, 아마도 이때 고위가 고항으로 하여금 자신에게 황위를 넘겨주게 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다만, 이로 인하여 계산이 복잡해지게 생겼다: 그것은 바로, 북제의 마지막 황제는 도대체 누구일까?
고항이라고 하자니, 어쨌든 그는 이미 고개에게 황위를 선양했다.
고개라고 하자니, 고개는 포로로 잡히기 전에 자신이 황제가 되었다는 것을 알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계산이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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