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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치/중국의 군사

중국군대의 이상조짐

by 중은우시 2025. 3. 30.

글: 왕혁(王赫)

시진핑(習近平)의 심복이자 중공중앙군사위 부주석 허웨이둥(何衛東)이 3월 11일 "전국인민대표대회" 폐막식에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낸 후,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3월 13일, 전 중국매체종사자인 자오란젠(趙蘭健)은 허웨이둥이 체포되었다고 폭로했다. 이는 각계의 높은 관심과 열띤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3월 25일, 미국의 워싱턴타임즈는 두 명의 미국 국방부관리의 말을 인용해, 미국정보기관은 중공군대의 3인자인 허웨이둥이 이미 파면되고 낙마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는 미국의 당국이 처음으로 사실확인해준 것이다.

황당한 점은 3월 27일 중국 국방부대변인이 정례기자회계에서 이에 대하여 질문을 받자 이렇게 대답한 것이다: "그 방면의 소식도 없고, 그 방면의 상황을 알지도 못한다." 정말 이는 여기에 은자삼백냥을 묻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나 같다.(비교해서 말하자면, 2024년 11월 28일, 역시 같은 대변인이 대외매체에서 중국 국방부장 동쥔이 조사받는다는 소식에 대해 질문했을 때, "순전히 날조이고, 날조한 사람은 악의적인 의도를 가졌다. 중국측은 이런 모멸적 행태에 강력한 불만을 표시한다"고 말한 바 있다."

허위에둥이 "실종된" 사실에 따라, 관련폭로, 미국매체보도와 중공의 반응을 종합해보면, 필자의 중국정치국면에 대한 이해로는 허웨이둥에게 문제가 생긴 것은 틀림없다고 판단한다.

지금 핵심문제는 허웨이둥이 시진핑이 그의 충성심을 의심하여 손을 쓴 것이냐, 아니면 반시진핑세력이 시진핑의 권력을 박탈한 것이냐에 있다.

본문은 후자로 본다. 아래의 세 가지 현상이 이를 방증한다.

첫째, 종샤오쥔(鍾紹軍)의 보직이동, 먀오화(苗華)의 조사에서 허웨이둥사건까지, 시진핑의 군대내 심복들이 제거되고 있다.

군대인사를 보면, 시진핑이 군대를 10년간 장악해왔다. 현재 재직중인 고위장군들은 그가 직접 발탁한 인물들이다. 그러나 신핑의 신임도는 상당히 낮다. 어쨌든 시진핑이 군인출신도 아니고, 군대내에 기반도 없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말하자면, 제19기 중앙위원 명단 중에서, 군대와 무경부대출신이 41명인데, 제20기에는 겨우 11명만 남고, 30명이 교체되었다. 이는 중앙정치국의 교체비율보다 훨씬 높다(정치국은 25명 중에서 13명이 교체되어, 약 절반이 남았다). 72세의 장여우샤(張又俠)가 군사위부주석에 유임된 것은 그로 하여금 '진정'시키게 하려는 것이었다. 새로 발탁된 소장파장군들이 딴 마음을 먹을까봐 우려하여.

다만, 2023년 3월, "양회"부터, 많은 군대와 군수기업의 고위층이 숙청당했다. 이들은 대부분 장여우샤의 부하여서, 장여우샤는 괴롭고 침체된 모습이었으며, 자기 몸조차도 지키기 힘들어 보였다. 장여우샤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반격했고, 군대의 형세는 급변하게 된다. 시진핑의 심복은 하나하나 제거되었다. 여기에서는 세 명의 대표적인 인물을 살펴보기로 한다.

하나, 종샤오쥔. 2002년 시진핑은 푸젠에서 저장으로 옮겨가고, 종샤오쥔은 시진핑의 대비(大秘, 비서실장)가 된다. 시진핑이 총서기에 오른 후, 종샤오쥔은 중앙군사위 판공청에 낙하산으로 내려가 시진핑을 대신하여 군대를 감독한다. 2017년 종샤오쥔은 중앙군사위 판공청 주임이 되고, 2019년에는 중장으로 승진한다. 다만, 2024년 4월 23일, 시진핑이 충칭의 육군군의대학을 시찰할 때, 종샤오쥔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고, 그를 대체한 사람은 퇴역군인사부 부부장인 팡용샹(方永祥) 중장이었다. 화면에 따르면 배석한 사람은 중앙군사위 부주석 허웨이둥을 제외하고 팡용샹이 있었다. 통상적으로 시진핑의 군대기관시찰에 배석하던 중앙군사위판공청주임, 중장 종샤오쥔이 불참한다. 이전에 현재 나이 55세인 종샤오쥔은 이미 4월 3일 국방대학 정위로 전보되었다는 뉴스가 있었다. 핵심지위에서 한직으로 이동된 것은 단순히 종샤오윈의 관료로서의 종말뿐아니라, 시진핑이 군대를 장악하는 팔 하나를 잃어버린 것이라 할 수 있다.

둘, 먀오화. 시진핑이 푸젠에 있을 때, 주둔군인 제31군과 관계가 밀접했다. 시진핑보다 2살이 어린 먀오화는 오랫동안 31군에서 정치공작에 종사했다. 시진핑이 총서기에 오른 후, 먀오화는 승진가도를 달린다. 2014년 12월에는 해군 정위가 되고, 2017년 8월에는 중앙군사위 정치공작부 주임이 된다. 그후에 제19기, 20기에 연이어 중앙군사위 위원이 되어, 시진핑을 대신해 군대내 인사대권을 장악한다. 먀오화는 31군과 해군에 있을 때 대량의 장교를 발탁했다. 다만, 2024년 11월 28일, 중국국방부대변인은 정례기자회견에서 먀오화가 엄중한 기율위반으로 '정직검사'받고 있다고 공표한다.

셋, 허웨이둥. 시진핑보다 2살이 어린 허웨이둥도 31군 출신이다. 시진핑이 취임한 후, 남경군구 부참모장, 강소성군구사령원, 상해경비구사령원, 서부전구 부사령원 겸 육군사령원, 동부전구 사령원등등의 직위를 지낸다. "20대"때 일약 중공중앙정치국 위원과 중공중앙군사위 부주석에 오른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시진핑이 없었더라면, 허웨이둥은 이런 높은 직위에 올라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허웨이둥의 충성을 의심할만한 조짐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상의 세 사람중 만일 한명에게만 사건이 터졌다면 아마도 개인원인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 사람 모두에게 이상현상이 나타난다면, 그것은 우연으로 볼 수가 없다. 이는 정교하게 설계된 시진핑의 군대내세력을 제거하는 흐름을 보여준다고 할 것이다.

둘째, 중앙군사위 기율검사위의 대조정, 두 명의 부서기중 1명은 이동되고, 1명은 전국정협위원자격을 박탈당한다.

시진핑을 위해 직접 군대내 숙청임무를 집행하는 사람은 중앙군사위 기율검사위원회(중앙군사위감찰위원회)이다. 시진핑이 총서기에 취임한 후, 기율검사위서기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었다. 먼저 두진차이(杜金才) 상장(2012년 11월 - 2017년 1월)이고, 지금은 장셩민(張昇民) 상장(2017년 1월부터 지금까지)이다. 시진핑이 군사위기율검사위의 지위를 제고시켰고, 장셩민은 중앙군사위 위원에 발탁된다(두진차이는 아니었다). 군사위기율검사위에는 서기가 1인자이고(중앙기율검사위 부서기를 겸직한다), 2인자는 전직부서기로(중앙기율검사위 상위를 겸직한다), 구체적인 사건을 처리한다.

"20대"이후, 두 명의 국방부장, 3명의 로켓군사령원등을 처리한 것은 바로 2021년 8월 중앙군사위 기율검사위 전직부서기로 이동한 천궈창(陳國强)이었다. 천궈창은 1963년생으로, 공군중장이며 시진핑을 위해 큰 공을 세웠따. 그러나 돌연 2024년 9월, 국방과기대학 정치위원으로 전보된다. 이는 한직으로 밀려난 것이다. 거기에는 분명 심상치 않은 일이 있었을 것이다.

그뿐아니라, 2023년 12월 무경부대 부정위에서 중앙군사위 기율검사위원회 부서기로 옮겨온 탕용(唐勇)이 돌연 2025년 3월 26일 전국정협위원자격을 박탈당한다. 중공의 관례에 따르면, 전국정협위원자격을 박탈당했다는 것은 그에게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을 말한다. 공개된 자료를 보면, 탕용은 허웨이둥, 먀오화가 남경군구에 있을 때 함께 근무했다. 먀오화가 군사위위원, 정치공작부 주임으로 있는 동안 탕용은 여러 차례 발탁되어 요직을 맡은 바 있다.

군대숙청을 주도한 군사위기율검사위에 연이어 사건이 터지고, 숙청목표가 되었다; 이와 동시에, 군대내 숙청목표가 장여우샤세력에서 시진핑심복으로 바뀌게 된다. 양자간에는 확실히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군대내의 반시진핑세력이 이미 군대형세를 장악한 것으로 보인다.

셋째, 일련의 비정상현상

3월 20일, 윈난(雲南)을 시찰하던 시진핑은 쿤밍부대 상교(上校, 대령에 상당함)이상의 간부와 기층선진모범, 문직인원대표를 접견했다. 그런데 의외로 두 명의 군사위부주석 장여우샤, 허웨이둥이 둘 다 불참한다. CCTV화면을 보면, 남부전구사령원 우야난(吳亞男)이 접견에 참석했고, 시진핑의 배석인원은 단지 종샤오쥔을 대체하여 중앙군사위판공청주임을 맡았다고 하는 팡용샹 중장뿐이었다. 이전의 중공관방보도를 살펴보면, 시진핑이 군영을 시찰할 때는 최소한 1명의 군사위부주석이 배석했었다.

더욱 기이한 일은 3월 11일, 중공의 "전국인대"가 폐막되고, 시진핑이 자리를 떠날 때의 화면을 보면, 여러 명의 정치국위원들이 몸을 돌려 의자 옆에 서서 시진핑이 떠나는 것을 보고 있었다. 오직 장여우샤만이 여전히 앞쪽을 향하고 시진핑이 등뒤로 걸어가는데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외에 3월 14일, 국방부장 동쥔은 국무원전체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공개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3월 7일 오후, 시진핑은 제14기 전국인대 3차회의 군대와 무경부대대표단전체회의에 출석하여 발언을 했는데, 해군정위 위안화즈(袁華智)와 무경사령원 왕춘닝(王春寧)이 불참했다. 그리고 로켓군사령원 왕허우빈(王厚斌), 동부전구사령원 린샹양(林向陽), 전육군정위 친슈퉁(秦樹桐)등 '시자쥔(習家軍)'이 모두 조사받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동시에 시진핑과 관련된 군대측보도에도 변화가 발생한다. 시진핑의 대표적인 구호인 "군사위주석책임제"가 언급되지 않을 뿐아니라, 시진핑에 대한 보도도 감소되었다.

결론

중공은 "총부리에서 정권이 나온다"고 외쳐왔다. 군권을 장악해야만, 시진핑은 자리에 안정적으로 앉아 있을 수 있다. 일련의 비정상적인 조짐을 보면, 시진핑은 군권을 상실한 것같다. 그가 현재 무대에 등장하고 있는 것은 아마도 중공각파세력이 아직 시진핑의 후계자에 대한 컨센서스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누가 올라오든간에, 현재의 대세를 분명히 보고 있을 것이고, 하늘과 사람의 뜻에 따라 중국의 평화롭게 전환시켜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다시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