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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지방/북경의 오늘

천안문(天安門)에 화상(畵像)이 걸려있던 12명은 누구일까?

by 중은우시 2025. 2. 17.

글: 천지(天地)

천안문은 베이징시 중축선(中軸線)과 장안가(長安街)가 교차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고, 명청 황성(皇城)의 정남문(正南門)이다.

명나라 영락15년(1417년), 천안문은 건축되기 시작했고, 높이는 34.7미터, 부지면적은 4,800만평방미터이다. 천안문 성루의 기세는 거대하여, 중국전통건축예술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천안문의 정중문동(正中門洞)의 위에는 모택동(毛澤東)의 화상이 걸려 있다. 양측에는 각각 "중화인민공화국만세"와 "세계인민대단결만세"라는 표어가 걸려 있다.

민국시기에 천안문광장을 만들었고, 천안문광장은 남북으로 길이가 880미터, 동서로 너비가 550미터이며, 면적은 44만평방미터에 달하는 대형광장이고, 세계최대의 도시광장이다.

천안문의 성루에는 모두 12명의 화상이 걸려있었다.

  1. 원세개(袁世凱)

신해혁명후 원세개는 중화민국 대총통이 된다. 1913년 10월 6일, 그는 서방지도자들이 대형 화상을 세우는 형식을 본받아, 자신의 화상을 그리게 한 후, 천안문 성루에 걸어놓았다.

원세개의 화상은 15년동안 걸려 있었고, 1928년이 되어서야 뗴어진다. 이 기간은 북양군벌의 통치기간이다.

2. 손중산(孫中山)

1928년, 북벌군이 북평으로 진입하고, 원세개의 화상은 손중산 선생의 화상으로 교체된다.

손중산의 화상 양측에는 표어가 걸려 있었다: "혁명상미성공(革命尙未成功), 동지잉수노력(同志仍需努力)"

1937년 일본이 북평성을 점령하면서, 손중산의 화상은 일본의 표어로 대체된다.

3. 장개석(蔣介石)

1945년 항전승리후, 장개석의 화상이 걸린다.

4. 8명의 화상

1949년 2월 11일, 북평평화해방활동을 축하하기 위하여, 모택동, 주덕(朱德), 주은래(周恩來), 유소기(劉少奇), 임필시(任弼時), 섭영진(聶榮臻), 섭검영(葉劍英), 임표(林彪) 8명의 화상이 천안문성루에 걸린다.

5. 모택동과 주덕의 화상

1949년 7월 7일 전면항전12주년을 경축하는 기념활동때 천안문성루의 화상이다.

6. 건국초기

평상시에는 화상을 내걸지 않았고, 5월1일, 10월1일등 중대한 명절때만 모주석의 화상을 내걸었다.

7. 스탈린

1953년, 소련지도자 스탈린이 사망한다. 중국에서는 3일간 반기를 걸어 애도를 표했고, 천안문광장에서는 그를 위해 애도회(哀悼會)를 거행했다. 그때 모주석의 화상을 내리고, 스탈린의 화상을 천안문성루의 정중앙에 건다.

8. 현재

1966년 8월 군중들의 정서가 고양되면서, 모주석의 대형화상은 천안문의 성루에 상시 내걸리게 되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