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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문학/무협소설

무협(武俠)은 죽었다!!!

by 중은우시 2025. 2. 11.

글: 최애역사(最愛歷史)

요 며칠 내가 DeepSeek와 가장 많이 얘기한 이슈는 '무협(武俠)'이었다.

알고리즘시대의 산물로서, DeepSeek는 현대이전의 인류가 정신을 의탁하던 것에 대하여, 항상 차가운 눈길을 보냈다.

그것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해준다:

"소위 강호(江湖)라는 것은 현대인의 핸드폰 내의 전자애완동물에 불과하다. 매일 클릭을 해주어야 자신에게 아직 기운이 남아 있는 것처럼 가장한다. 이 이치를 나는 40살에 비로소 깨달았다. 자신이 영원히 영호충(令狐冲)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보다 10년이 늦었다."

그러나, 40년전에는 이렇지 않았다.

1985년, 홍콩의 TVB가 제작한 83년판 <사조영웅전(射雕英雄傳)>을 내지에 방영했을 때는 길거리가 텅빌 정도의 열광적인 붐이 일어난 바 있다. 내지의 TV에는 이때부터 유일무이한 김용무협의 강호가 되었다. 그리고 한번 시작되자 기세가 엄청났다.

83년판 <사조영웅전>

그때는, <녹정기(鹿鼎記)>를 쓰고난 후 김용이 절필한 때로부터 이미 13년이 흘렀다. 그러나, 김용 무협드라마의 강호는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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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년판 <사조영웅전>은 내지의 관중들이 가장 먼저 접촉한 김용드라마였다. 지금와서 다시 83년판 <사조영웅전>을 보면, 제작수준이 형편없지만, 당시에는 부끄럽지 않은 대작이었다.

이 드라마에는 당시 TVB의 유명배우를 모두 출연시켰다.

왕정(王晶, 왕징, Wong Jing)의 부친 왕천림(王天林, 왕텐린, Wong Tin Lam)이 총감독을 맡고, 왕천림의 제자이자 나중에 대감독이 되는 두기봉(杜琪峰, 두치펑, Johnie To Kei-Fung), 임영동(林嶺東, 린잉, Ringo Lam Ling-tung)이 촬영현장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무술동작지도는 나이 겨우 30살의 정소동(程小東, 청샤오둥, Tony Ching)이 맡았다. 기술적인 한계로 딱딱한 동작설계는 더욱 멋있다.

아직 유명해지지 않은 주성치(周星馳, 저우싱치, Stephen Chow), 오맹달(吳孟達, 우멍다, Ng Man-lat), 유가령(劉嘉玲, 류자링, Carina Lau Ka Ling), 오진우(吳鎭宇, 우쩐위, Francis Ng), , 구양진화(歐陽震華, 어우양쩐화, Bobby Au-yeung Chun Wah)등이 모두 극중에 소소한 배역을 맡았다.

반드시 언급해야 할 점은 황점(黃霑, 황잔, James Wong), 고가휘(顧嘉輝, 구자후이, Joseph Koo)와 등위웅(鄧偉雄, 덩웨이슝, Tang Wai Hung)이 창작한 몇 곡의 주제곡들이다. <철혈단심(鐵血丹心)>, <세간시종니호(世間始終你好)> 및 <일생유의의(一生有意義)>.

"의희왕몽사증견(依稀往夢似曾見), 심내파란현(心內波瀾現). 포개세사단구원(抛開世事斷仇怨), 상반도천변(相伴到天邊)...."

오늘날까지도 나문(羅文, 뤄원, Roman Tam Pak Sin)과 견니(甄妮, 쩐니, Jenny Tseng)의 노랫소리가 들리면, 관중들은 항상 최초의 김용무협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고, 그 젊었던 시절을 회상한다.

드라마에서, 황일화(黃日華, 황르화, Wong Yat Wah)가 연기한 충후하고 협의로운 곽정(郭靖)을 연기했고, 옹미령(翁美玲, 웡메이링, Barbara Yung Mei Ling)이 빙설총명의 황용(黃蓉)을 연기했다. 이는 내지의 관중들이 가장 먼저 익숙해진 드라마의 협려(俠侶)였다. 옹미령이 젊은 나이에 자살하면서, "예쁜 황용(俏黃蓉)"은 그녀의 연기생애에서 영원한 레테르가 되었다.

그러나, 옹미령이 처음 황용을 연기할 떄, 압박이 적지 않았다.

83년판 <사조영웅전>이젼에 이미 한번 드라마로 찍은 바 있다. 그것은 홍콩 CTV(佳視)에서 찍은 76년판 <사조영웅전>이다. 이 드라마는 백표(白彪, 바이뱌오, Jason Lau)가 곽정을 연기하고, 미설(米雪, 미쉐, Michele Yim Wai-ling)이 황용을 연기했다. 이는 관중들의 인기를 끈 최초의 김용무협드라마였다.

76년판 <사조영웅전>

이 판본의 주제가는 황점(黃霑)이 작사한 <신조와사조(神雕與射雕)>였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에게 낯설겠지만, 장학우(張學友, 장쉐여우, Jacky Cheung Hok Yau)의 영화 <동성서취(東成西就)>에서 이 곡을 리메이크한 곡이 바로 <누가 대영웅인가(誰是大英雄)>이다.

백표는 나중에 95년판 <신조협려(神雕俠侶)>에서 중년의 곽정역할을 맡는다. 그리고, "예쁜 황용(俏黃蓉)"이라는 칭호를 가장 먼저 얻은 것은 미설이였다. 이를 보면 이 판본의 홍콩관중들 마음 속의 무게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옹미령은 원래 TVB의 MC였다. 그저 한번 도전해보자는 심정으로 황용의 오디션에 참가했다가 최종적으로 3,000명의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배역을 따낸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오디션때 희복(戱服)으로 갈아입고 김용에게 포권(抱拳)하면서 "도화도 도주의 딸 황용이 김용대협을 뵙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김용은 깜짝 놀랐고, 그 자리에서 그녀를 주연으로 점찍었다고 한다.

83년판 <사조영웅전>에서 고문을 맡았던 예광(倪匡, 니쾅, Ni Cong)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만일 황용이 없었더라면, 이 소설은 영혼이 없다. 옹미령의 "예쁜 황용"은 시간이 흘러도 사람들에게서 잊혀지지 않고 있다. 시간은 김용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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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B가 83년판 <사조영웅전>을 찍는 것과 같은 시기에, 김용의 다른 작품들도 차례대로 TV화면에 오른다.

1978년, CTV(佳視)가 도산한다. 처음에 무협드라마를 좋게 생각지 않았던 TVB의 오너 소일부(邵逸夫, Run Run Shaw)는 관중들이 김용소설을 아주 좋아하고, 김용이 만든 '성인동화'에 푹 빠져 있는 것을 보자, 그는 김용의 모든 소설의 영화드라마 개편권(改編權)을 모조리 매입해버린다.

TVB는 먼저 정소추(鄭少秋, 정샤오츄, Adam Cheng)를 주인공으로 하여, <서검은구록(書劍恩仇錄)>과 <의천도룡기(倚天屠龍記)>를 찍는다.

<서검은구록>에서 정소추 혼자서 진가락(陳家洛), 건륭(乾隆), 복강안(福康安)을 다 연기했다. 그리고 같은 이름의 주제가도 불렀다. 당시 "전체 홍콩에서 밤새도록 정소추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추관(秋官, 정소추의 아칭)은 바로 TVB의 시청률담당이었다.

78년판 <의천도룡기>에서 정소추가 연기한 장무기(張无忌)는 더더구나 왕명전(汪明荃, 왕밍췐, Liza Wang Ming Chuen)이 연기한 조민(趙敏), 조아지(趙雅芝, 자오야즈, Angie Chiu)가 연기 주지악(周芷若)과의 사랑이여기를 보여준다.

드라마에서 장무기는 멸절사태(滅絶師太)로부터 삼장(三掌)을 맞는 장면에서, 감독은 특수효과를 이용하여 수십척을 날아가게 하는 외에 음향효과도 넣어서, 처음으로 김용소설에서 신기로운 무술을 이미지화하여 묘사하는 사례가 되었다.

김용은 정소추의 연기에 아주 만족했고, 직접 그에게 "형병협사(熒屛俠士), 삽삽영풍(颯颯英風), 가락무기(家洛无忌), 입인몽중(入人夢中)"이라는 글을 썼고, 드라마에서 조민을 죽는 것으로 묘사한 것에 대하여도 전혀 화를 내지 않았다.

이와 반대로 내지에서 엄청난 인기를 끈 83년판 <사조영웅전>은 김용을 크게 실망시킨다. 심지어 한때는 자신의 저작판권을 TVB에서 회수할 생각까지 품을 정도였다.

중천에 뜬 해와 같이 잘나가던 TVB에게 그건 아무 일도 아니었다. 그들은 확실하게 자리를 잡고, 같은 해에 감용이 가장 만족한 버전의 <신조협려>를 내놓는다.

이 드라마에서, 양과(楊過)를 연기한 유덕화(劉德華, 류더화, Andy Lau Tak Wah)는 크게 인기를 끌고, 청냉담아(淸冷淡雅)하며 흰옷을 입은 진옥련(陳玉蓮, 천위롄, Idy Chan Yuk Lin)도 관중들이 속세의 때가 묻지 않은 소룡녀(小龍女)로 기억하게 만들었다.

진옥련은 일찌기 주윤발(周潤發, 저우룬파, Chou Yun-fat)와 유덕화의 마음을 움직인 바 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젊었던 유덕화는 그녀와 연기하는 것을 매우 부끄러워했고, 얼굴이 발개졌다고 한다. 그녀는 처음으로 왕어언(王語嫣), 소룡녀를 모두 연기한 여배우이고, 이후의 이약동(李若彤, 리뤄퉁, Carman Lee Yeuk Tung)과 유역비(劉亦菲, 류이페이, Crystal Liu)도 모두 그녀를 선배라고 불렀다.

1980년대, TVB는 김용무협드라마로 성공을 한다. 모두 8부의 김용소설을 개편해서 드라마로 말들었다. 무선TV배우훈련반을 가진 TVB는 사상유례없는 호화로운 진용을 갖추게 된다.

지금 다시 이 시기의 김용드라마를 보면, 83년판 <사조영웅전>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그냥 한번 보고 지나가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거기의 배우들중 어떤 사람은 대형스타가 되었고, 어떤 사람은 일찌감치 은퇴했고, 또 어떤 사람은 세상을 떠났다.

82년판 <천룡팔부(天龍八部)>에서도 "휘황(輝黃, 고가휘, 황점)"조합은 손을 잡고 주제가 <양망연수리(倆忘煙水裏)>, <만수천산종횡(萬水千山縱橫)>을 창작했고, 그 인기는 83년판 <사조영웅전>의 주제가와 난형난제이다. 황점 작사, 고가휘 작곡의 곡은 김용의 강호와 불가분의 관계이다.

<양망연수리>는 협골유정(俠骨柔情)을 잘 표현해서, 고가휘가 평생 가장 자랑스러워한 작품이다.

84년판 <녹정기>에서 양조위(梁朝偉, 량차오웨이, Tony Leung)와 유덕화가 처음 합작했고, 각각 위소보(韋小寶)와 강희(康熙)를 연기했다. 그외에 모순균(毛舜筠, 마오순쥔, Teresa Mo Shun Kwan)이 연기한 목검병(沐劍屛), 유가령이 연기한 방이(方怡), 오군여(吳君如, 우쥔루, Sandra Ng)가 연기한 증유(曾柔)등 진용이 막강했다.

18년이 지난 후, "위소보"와 "강희"는 <무간도(無間道)>의 무대에서 다시 만나고, 유덕화가 양조위에게 한 "나는 그저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는 대사는 홍콩영화 황금시기의 마지막 방점이 된다.

84년판 <소오강호(笑傲江湖)>는 <상해탄(上海灘)>으로 중국전역에서 크게 인기를 끈 주윤발이 남자주인공 영호충을 맡는다. 호방하고 시원스러운 역할은 마치 발가(發哥, 주윤발)을 위해 쓰여진 것같았다. 그러나 이 84년판 <소오강호>는 확실히 그의 대표작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89년판 <협객행(俠客行)>은 양조위가 TVB에서 마지막으로 찍은 TV드라마이다. 그리고 80년대 김용드라마의 최후작품이기도 하다.

세월은 강물처럼 흐르고, 최초의 김용드라마가 김용무협강호의 대문을 열었지만, 지금은 혹은 잊혀지거나 혹은 관중들의 마음 속에 깊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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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에서 김용드라마의 시청률이 치솟으면서, 유행을 따라야 하는 타이완의 연예계에서도 김용무협강호를 만들기 시작한다.

1980년대부터, 경요드라마(瓊瑤)드라마로 인기를 끌기 시작한 타이완의 TV드라마는 기세가 대단했다. 본토시장을 지켜내기 위하여, 그들은 TVB판을 가져오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드라마를 찍게 된다.

타이완의 CTV(中視)는 소설 <설산비호(雪山飛狐)>와 <비호외전(飛狐外傳)>을 각색한 91년판 <설산비호>를 출품한다. 이는 83년판 <사조영웅전>이후 다시 한번 내지에서 환영받은 김용드라마이다. 또한 많은 관중들이 지금까지도 가장 대표적이라고 생각하는 판본의 <설산비호>이다.

당시는 해협양안의 관계가 해빙기였고, 이 <설산비호>는 양안삼지에서 최초로 합작한 TV드라마여서, 역사의 증인이라고 할 수 있다. 드라마에서, 주인공인 호비(胡斐)를 연기한 것은 대만에서 활약하던 맹페이(孟飛)가 맡고, 정령소(程靈素)를 연기한 것은 TVB의 여자배우 공자은(龔慈恩, 꿍츠은, Mimi Kung Che Yan)이며, 원자의(袁紫衣)와 묘약란(苗若蘭)을 연기한 것은 각각 내지의 배우인 우위줸(伍宇娟)과 왕루야오(王璐瑤)였다.

세트장에서 배경을 만들어 찍는 TVB와 달리 이 드라마는 기본적으로 장백산에서 현지촬영을 했고, 실내장면은 창춘영화제작창에서 찍었다.

한풍소소(寒風蕭蕭), 비설표령(飛雪飄零), 장로만만(長路漫漫), 답가이행(踏歌而行).....온 하늘이 눈으로 뒤덮이면서 오프닝주제가 <설중정(雪中情)>의 호기(豪氣)와 엔딩주제가 <추몽인(追夢人)의 유정(柔情)은 해협양안의 관중들을 강호의 꿈 속으로 데려갔다.

91년판 <설산비호>이후, 타이완의 TV드라마제작자들은 조금은 들떴다. 제작자 양페이페이(楊佩佩)는 김용소설에 대해 대거 "악마의 개작(魔改)"을 진행한다. 그때 타이완의 김용드라마는 모두 극본을 쓰면서 촬영을 진행했다. 관중의 요구에 맞추기 위해 심지어 마구잡이로 고쳐버렸고, 뭐가뭔지 모르는 수준으로 면모를 잃어버리게 되기도 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김용은 양페이페이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내 작품을 TV화면으로 옮겨가면서, 가장 잘 만든 것도 네가 찍은 것이고, 가장 나쁜 것도 네가 찍은 것이다.

김용이 말한 가장 잘 만든 것은 바로 TTV(臺視)의 94년판 <의천도룡기(倚天屠龍記)>이다.

이번 버전의 <의천도룡기>를 다시 보면, 아마도 스토리에 약간의 마성(魔性)이 있는 것을 발견할 것이고, 배역선정도 아주 재미있었다.

당시 예퉁(葉童)은 원래 은소소(殷素素)만을 연기하려고 했고, 조민(趙敏) 역할은 위안제잉(袁潔瑩)이었다. 다만 위안제잉은 당시 가수로 변신하여 레코드판을 내려고 생각하고 있어서, 이 배역을 사양했다. 예퉁은 할 수 없이 제작진의 요청에 따라 계속하여 조민을 연기하게 된다.

그녀가 같은 시기 <신백낭자전기(新白娘子傳奇)>에서 연기한 허선(許仙)이 사람들의 마음 속에 깊이 새겨져 있었기 때문에 많은 젊은이들은 지금까지도 장무기가 왜 조민과 평생을 함께 하기로 결정했는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포효교주(咆哮敎主)" 마징타오(馬景濤)는 경요드라마의 가슴을 찢는 연기를 장무기에게 가져왔다. 소소(小昭)를 연기한 천샤오쉔(陳孝萱)은 나중에 <강희래료(康熙來了)>에서 이렇게 털어놓았다. 당시 그의 과장된 연기에 놀라서 집으로 돌아온 후 며칠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당연히 94년판의 가장 대표적인 것은 쑨싱(孫興)이 연기한 양소(楊逍)와 저우하이메이(周海媚)가 연기한 주지약(周芷若)이었다. 저우하이메이가 연기한 주지약은 진정으로 이 배역에 영혼을 불어넣어주었다. 김용이 그녀를 만났을 때 이렇게 감탄했다고 한다: "일찌감치 네가 주지약을 연기하는 줄 알았더라면, 나는 결론을 장무기와 주지약이 함께 하는 것으로 바꿨을 것이다."

94년판 <의천도룡기>는 더더욱 멋진 주제가들이 있다. 드라마에 나오는 <도검여몽(刀劍如夢)>, <애강산경애미인(愛江山更愛美人)>, <양양상망(倆倆相忘)>등의 노래는 지금까지도 불려지고 있다.

TVB도 이번 타이완버전의 개편을 인정했고, 이 드라마가 타이완에서 방영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TVB는 판권을 사서 홍콩에서 방영했다. 그리고 사인 임석(林夕, 린시, Albert Leung)으로 하여금 주화건(周華健, 저우화젠, Wakin "Emil" Chau Wah-Kin)의 <도검여몽>에 새로 가사를 넣었다. 그후 몇년간, 주화건과 린시의 조합은 김용의 강호에 여러 대표적인 노래들을 만들게 된다.

그러나, 타이완판의 김용드라마는 안정적이지 못했다. 스토리를 "악마의 개작"으로 관중들은 울지도 웃지도 못하게 만들기도 했고, 새로 만든 많은 스토리로 무협드라마가 애정드라마로 바뀌어버리기도 했다. 배우들의 용모가 아무리 뛰어나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특히 98년판 <신조협려>에서 우칭롄(吳倩蓮)이 흑의소룡녀(黑衣小龍女)로 나타난 후, 원작자 김용마저도 도저히 볼 수 없다고 분노하여 타이완 김용드라마에 대하여, "원작의 정신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제작자와 감독이 나중에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지만, 나는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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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 김용드라마가 관중들에게 욕을 먹고 있을 때, 다시 하나의 시대가 조용히 서막을 열고 있었다.

1990년대, 유명제작자 이첨승(李添勝, 리톈셩, Lee Tim-sing)의 추진하에 TVB판 김용무협드라마가 정식으로 다시 시작된다. 10년만에 TVG는 다시 한번 김용드라마를 제작한다. 원인은 약간 어이없다. 이첨승의 회고에 따르면, "당시 TVB는 김용의 판권을 매입했는데, 부당 60만홍콩달러였고, 5년기한이었는데, 그때까지 찍지 않고 있었다. 기한이 끝나갈 때가 되었기 때문에 회사에서는 반드시 찍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판권료만 날리는 셈이 되니까."

그후 몇년간, TVB는 1년에 1부의 김용드라마를 찍는다. 94년판 <사조영웅전>, 95년판 <신조협려>, 96년판 <소오강호>, 97년판 <천룡팔부>, 98년판 <녹정기>, 99년판 <설산비호>, 00년판 <벽혈검>, 01년판 <의천도룡기>.

그 시기에 TVB는 거의 매년 반드시 수작을 내놓는 수준이었다. 그때가 김용드라마의 황금시대이다. 자본과 특수효과가 부족한 상황하에서, 진심을 담아 장인정신이 깃든 작품을 내놓았다. 지금의 상황을 살펴보면, 자금이 충분하고, 특수효과가 발전하였지만, 많은 드라마는 마구잡이로 만들어져서 겉만 화려하지 내실이 없다.

1994년, 장지림(張智林, 장즈린, Julian Cheung), 주인(朱茵, 주인, Athena Chu Yan)이 주연한 <사조영웅전>이 방영을 시작했다. 83년판 <사조영웅전>의 광환하에서 94년판 <사조영웅전>은 특별한 격조를 갖추고 있어 전혀 손색이 없었다.

관중들은 1985년 사망한 옹미령을 그리워했지만, 이때부터 주인 버전의 황용의 찬란한 웃는 모습을 기억하게 된다. 황점 작사, 고가휘 작곡의 주제가 <절세절초(絶世絶招)>도 인기를 얻는다. 인간호한(人間好漢), 호정장지(豪情壯志), 진재회미중(盡在回味中).

95년판 <신조협려>에서 고천락(古天樂, 구텐러, Louis Koo Tin Lok)이 연기한 양과(楊過)를 보면, "한번 양과를 만나면 평생을 그르친다(一見楊過誤終身)"이라는 말을 이해하게 된다. 눈같은 백의를 입은 소룡녀 이약동(李若彤)은 더욱 아름다웠다. 그들은 지금까지도 김용드라마에서 잊혀지지 않은 커플이다. 아무렇게나 인터넷에서 뒤지면, 두 사람이 같이 찍은 사진을 찾아볼 수 있고, 많은 네티즌들을 감탄하게 만든다.

문세간정위하물(問世間情爲何物), 직교인생사상허(直敎人生死相許). <신화정화(神話情話)>라는 주제가 <신조협려>에 대한 가장 뛰어난 설명이 될 것이다.

<천룡팔부>는 많은 사람들에게 김용의 최고봉이라고 인식된다. 소설은 4년간 연재되었고, 그후 수십년동안 계속하여 수정되었다. 그리고 97년판 <천룡팔부>도 이 시기 김용드라마의 기록을 세운다. 당시 아시아에서 시청률이 가장 높은 TV드라마였다.

주화건이 부른 월어(粤語) 8급도 제대로 부르기 힘든 고난도의 유행가 <난념적경(難念的經)>은 한 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운 강호의 중생상을 보여준다.

찬란한 속세에서 황일화가 연기한 영웅 소봉(蕭峰)은 국난과 집안원한의 사이에 빠져있으나, 결국 협의 대의를 따른다. 아마도 인생은 바로 대답을 알 수 없는 난제일 것이다.

이 시기의 김용드라마는 스토리개편이나 주제가나 혹은 배역선정이 모두 적절하게 이루어져셔 일절(一絶)이라 부를 만하다. 많은 관중들도 자연스럽게 모든 배우를 그들이 연기한 배역에 대입시켰다.

95년판 <신조협려>에서 이기홍(李綺紅, 리치홍, Theresa Lee)이 연기한 곽양(郭襄)은 사람들로 하여금 사랑을 찾아 온 천하를 돌아다니는 소녀에게 탄식을 금할 수 없다.

96년판 <소오강호>는 이미 고인이된 배우 왕위(王偉, 왕웨이, Wong Wing Wai)가 연기한 악불군(岳不群)은 엄숙한 가운데 유머감이 있어서, 지금까지도 빌리빌리에 짤로 많이 올라오고 있다.

97년판 <천룡팔부>에서 이국린(李國麟, 리궈린, Jeseph Lee Kwok Lun)이 구마지(鳩摩智)을 연기했는데, 인터넷스타가 된 최근에도 관중들이 이국린을 언급하면 가장 먼저 구마지를 떠올릴 정도이다.

98년판 <녹정기>에서 진소춘(陳小春, 천샤오춘, Jordan Chan Siu Chun)이 총명하고 매끄러운 위소보를 적절하게 연기했고, 드라마의 7명 부인은 모두 개성이 있는 미녀들이어서, 요즘 보는 인터넷인플루언서같은 얼굴은 하나도 없다.

00년판 <벽혈검>에서 장화(江華, 장화, Kwong Wa)는 금사낭군(金蛇郎君) 하설의(夏雪宜)라는 원작에서 그저 기억속에만 살아있는 영혼인물을 아주 멋지게 그려냈다.

이 시기, 홍콩영화드라마는 김용의 무협문화를 극치로 운용했고, <구음진경(九陰眞經)>, <중신통왕중양(中神通王重陽)>등 김용소설에서 파생한 드라마들까지 내놓았다. 이는 홍콩무협드라마의 마지막 불꽃이었다.

"답천산천고해활중(踏千山天高海闊中), 정간풍전동(靜看風轉動), 운기암용(雲起暗湧)...."

2001년, TVB는 세번째로 <의천도룡기>를 찍는다. 관중들은 아마도 우계화(吳啓華, 우치화, Lawrence Ng Kai Wah)의 장무기 연기가 너무 노숙하다고 욕을 하면서, 여자(黎姿, 리쯔, Gigi Lai )의 조민 연기는 너무나 눈부셨고, 사시만(佘詩曼, Chamaine Sheh Sze Man)은 주지약을 가장 잘 연기했다고 칭찬하지만, 부지불식간에 TVB의 김용드라마는 이제 막을 내리게 되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밀레니엄이 지난 후, 홍콩에서 김용드라마를 찍는 것은 끝이 난다. 이때 내지의 TV드라마는 묵계라고 있었던 것처럼 김용드라마를 찍는 바통을 이어받는다. 그리고 TVB가 독점하던 국면을 깨버리고, 여러 독특한 풍격의 신세기 김용드라마를 만들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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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TV드라마 <손중산(孫中山)>을 준비하던 감독이자 제작자인 장지중(張紀中)은 항저우(杭州)에서 우연히 그와 마찬가지로 김용소설의 팬인 마윈(馬雲)을 만나게 된다.

그때 마윈은 아직 알리바바의 일로 바쁠 때였다. TV드라마 얘기가 나오자, 그는 장지중에게 물어봤다. 김용무협드라마를 찍어볼 생각은 없느냐고.

장지중은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당연히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홍콩에서 먼저 찍어버렸다."

마윈은 그러나 이렇게 말한다. 지금 다시 찍고, 더 잘 찍으면 분명히 다시 붐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고.

그와 장지중의 생각은 일치했고, 만일 다시 찍는다면, 첫번째 드라마는 반드시 <소오강호>가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생각지도 못하게 1년후, 장지중은 김용드라마를 찍기 시작한다. 최초의 드라마는 과연 <소오강호>였다. 그후에 <사조영웅전>, <천룡팔부>, <신조협려>, <녹정기>와 <벽혈검>등 김용소설을 다시 한번 TV화면으로 데려왔다.

당시 김용은 상징적으로 1위안을 받고 <소오강호>의 판권을 CCTV에 판매한다. 그의 요구조건은 간단했다. "존중원저(尊重原著)". 원작을 존중해달라는 것이었다.

수염쟁이(장지중)는 확실히 김용 선생의 말을 마음 속에 새기지 않은 것같다. 다만 그가 새로 찍은 김용드라마는 김용소설의 거대한 서사모델에 의존하여, 모두 현지촬영방식을 채택한다. 그리하여 TVB버전의 무협사시와는 전혀 다른 대기방박(大氣磅礴), 탕기회장(蕩氣回腸)의 대작을 찍을 수있었다.

01년판 <소오강호>가 방영을 시작하자, 많은 관중들은 선입견을 가지고 드라마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TVB의 무협강호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리야펑(李亞鵬)의 영호충은 멍청하고, 무술격투장면도 허황되며, 장지중 버전의 김용드라마는 협기가 전혀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몇년이 지나서 다시 보면, 이 <소오강호>는 명산대천을 배경으로 찍어서 성공적으로 김용소설의 검을 들고 천하를 주유하는 강호의 본색을 보여주었다. TVB가 셋트장에서 찍은 것과 달리 김용의 소설에 나오는 장대하고 광활한 강호를 사막의 황사, 관산의 죽림, 강남의 시정, 호수의 물색깔 사이에서 가감없이 보여주었다.

몇년 전까지, 01판 <소오강호>는 더우반(豆瓣)에서 6.7점에 불과했지만, 지금 점수가 많이 올라가서 8.5점이 되었다.

아마도 당시 드라마를 보았던 사람들이 나이가 들어서 다시 이 옛날 드라마를 보기 시작한 것일 것이다. 시간은 쉽게 사람을 나이들게 하고, 김용드라마에 대한 그리움이 쌓이게 만들었다.

우연히 생각해보니 엔딩주제가중에서 류환(劉歡)의 그 "전일곡천황지로(傳一曲天荒地老), 공일생수원산고(共一生水遠山高)"는 이미 24년전의 목소리이다.

2003년, 두 부의 평가가 괜찮고 스타일이 다른 김용드라마 장지중 버전의 <천룡팔부>와 라이쉐이칭(賴水淸) 버전의 <의천도룡기>가 나온다.

장지중은 여전히 김용드라마를 정극(正劇)이 틀 내에서 찍으려 했다. 그러나 라이쉐이칭은 이를 고전아이돌드라마로 만들었다. 이는 이후 십여년간 김용드라마를 다시 찍을 때의 두 가지 주요방향이 된다.

그러나, 이 두 부의 김용드라마에 최대의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미녀가 많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그런 진용을 다시 보기 힘들다. 많은 관중들도 전혀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순식간에 22년이 지나갔을 줄은.

밀레니엄이 지난 후, 김용소설의 개편권은 여기저기 흩어져버리고, 업계인사들이 무협드라마를 얘기할 때 "김용드라마를 개편하는 것이 심사통과하는데 가장 안정적인 방법이다."라는 말이 나왔다. 그리하여 영화드라마시장에 엄청나게 많은 김용드라마가 나온다. 이게 행운인지 불행인지 알 수는 없지만.

십여년간 저예산으로 만든 <협객행(俠客行)>, <연성결(連城訣)>도 있고, 위정(于正)공작실에서 완전히 개편으로 뒤집어버린 13년판 <소오강호>, 14년판 <신조협려>도 있고, 그리고 08년판 <사조영웅전>이라는 청춘드라마도 있다.

08년판 <사조영웅전>을 찍을 때, 곽정을 연기한 후거(胡歌)는 심각한 교통사고를 당해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고, 얼굴만 20바늘을 꿰맸다. 제작진은 촬영중단기간동안에도 배우를 교체하지 않겠다고 고집하면서 그가 회복될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큰 곤란을 겪고나면, 반드시 크게 성취를 거둘 것이다. 계속하여 노력하면 결국은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08년판 <사조영웅전>은 가장 뛰어난 버전은 아니다. 후거도 자신이 가장 뛰어난 곽정은 아니라고 인정한다. 그러나 이 버전의 곽정의 운명은 김용 어르신이 이어쓴 것이다.

40년동안의 재판을 거듭하면서, 김용드라마의 개편은 이미 병목현상이 왔다. 마구잡이로 수정해버리면 관중들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원래의 내용을 따르면 그저 옛날 것을 답습한다는 평을 듣게 된다.

17년판 <사조영웅전>은 홍콩감독 장가준(蔣家駿, 장자쥔, Jeff Chiang)이 새로운 방식을 취하여, 신인을 주연으로 기용하고, 노련한 배우들을 조연으로 해서, 원작의 극본상에서 이 익숙한 강호이야기를 다시 한번 TV화면에 올렸고, 최근 들어 관중들로부터 가장 긍정적인 평을 받는 김용드라마가 된다.

지금까지, 김용소설을 개편한 영화드라마는 백부가 넘는다. 그러나, 영향력은 예전만 못하다. 자금력도 충분하고, 기술도 있지만, 퍽 하는 소리와 함께 특수효과를 추가한다고 하여 관중을 만족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오락이 죽어가는 시대에, 김용드라마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협의정신도 사라지고 있다.

김용은 계속하여 말해왔다. 자신이 소설을 쓸 때 청년을 교육할 목적이 아니었다고. 그러나 소설의 허구세계에서, 적지 않은 현실생활이 반영되어 있다. 민족대의, 인정냉난(人情冷暖), 아녀정장(兒女情長) 이 모든 것들이 강호 속에 있다.

협의정신은 "안되는 것을 알면서도 하는 것"이고, "정의가 있는 곳에 생사를 건다"는 것이다. 일종의 세상을 살아가는 정신이다. 중국인의 낭만영웅주의이다. 만일 협의정신이 없다면, 눈앞에 그저 금전과 이익만 있을 것이고, 아무리 좋은 소설이라고 하더라도 좋은 드라마로 만들 수 없을 것이다.

혼자 힘으로 90년대 TVB의 김용드라마를 만들어낸 "첨가(添哥)" 이첨승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는 1948년에 태어났고, 50년대의 홍콩은 환경이 아주 좋지 못했다....가난을 벗어나는 과정에서 많은 일을 보고, 겪었으며, 많은 억울한 일을 당했고, 많은 불공정한 일들을 목격했다. 많은 것을 겪고 있을 때, 사회는 발달하기 시작했고, 다시 많은 불공정한 일들이 주위에 있는 것을 발견한다. 이에 대하여 어떤 사람은 함께 불공정에 휩쓸리면서 본체만체 하고, 어떤 사람은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자신의 입장을 지켜간다. 나는 내가 후자에 속하고 싶다."

가국천하, 인심선악에 대한 사고를 빌어 세부적인 내용을 잘 다듬는 장인정신이 있어야만 사람들의 마음 속에 깊이 새겨지는 무협드라마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에 대하여 DeepSeek는 이렇게 말해준다. 무협의 쇠망은 불가피하다고. 토양이 사라지고, 문명이 충돌하고, 정신이 해소된 것들이 힘을 합친 결과일 뿐이라고.

"무협의 죽음은 어떤 유형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문명에 대한 헌제(獻祭)이다. 우리가 전자목탁을 치면서 공덕을 빌 때, 허구무림세계에서 666(삭제되는 것을 가리킴)이 나올 때, 진정한 협객은 그들을 등지고 묵묵히 떠나는 것이다. 자본 혹은 기술에 패배한 것이 아니라, 현대성이라는 무형의 화산(華山)이 마지막으로 몸을 날릴 절벽마저 눌러서 부숴버린 것이다. 일찌기 우리가 뜨꺼운 마음으로 듣던 강호의 전설은 그저 현대사회이전에 우리에게 남긴 아날로그문명의 절필신(絶筆信)이다. 잉크가 마르지도 않았는데, 부칠 길은 이미 끊겨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