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오사(吳思)
일찌기 이런 말을 한 사람이 있다: 무협소설은 어른의 동화이다.
최근 몇년간 김용(金庸)이 만든 어른동화가 한어세계를 풍미하고 있다. 그는 우리에게 어떤 꿈을 보여주는가? 우리는 어떻게 김용에게 빠져들고 있으며, 우리의 내심과 우리의 사회에서 어떤 것을 드러내는가?
김용의 무협에 대한 상상력은 다채롭다. 그러나 가장 핵심적인 사항은 바로 아주 뛰어난 무공을 가진다는 것이다. 자신이 폭력에 침범당하거나 상처받지 않을 수 있도록 보호할 수 있고, 반대로 자신은 마음대로 남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남을 상처입힐 수 있는 무공을 지녔다고 하여, 반드시 그런 능력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무협, 협(俠)이라고 칭할 수 있는 사람은 반드시 무덕(武德)을 지녀야 하고, 천도(天道)를 지켜야 한다. 뛰어난 폭력으로 남을 상처입히지 말아야 하며,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 길가다가 불공평한 일을 보면 칼을 뽑아들고 도와주어야 한다. 무협은 혼자의 힘으로 정의를 세우는 사람이고, 체천행도(替天行道)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가? 만일 계산해보고 나서 대답해야겠다면, 좋다. 다음의 몇 가지 조건을 주목해주기 바란다:
첫째,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한 조건의 문턱은 아주 낮다. 특별한 가정배경이나 초인적인 자질이 필요하지는 않다. 우리같은 보통사람도 될 수가 있다. 되고나면, 특별히 많은 고생을 할 필요도 없다. 그저 어리버리하다가 몇번의 기연을 만나면 다른 사람이 수십년 수백년 닦아야할 내공을 가지게 된다. 그런 내공을 가지면 술과 고기를 끊을 필요도 없고, 여색을 멀리할 필요도 없다.
둘째, 일단 그런 사람이 되고나면, 미녀를 갖게 된다. 통상적으로는 한명에 그치지 않는다. 미녀들이 너에게 마음을 허락하고 너의 생활은 월영화향(月影花香)이 충만하고 정취가 넘치게 될 것이다.
셋째, 너의 대명이 강호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고, 공경하지 않는 사람이 없게 된다. 너의 이름만으로 어디를 가든지 공짜로 먹을 수 있고, 좋은 옷과 집을 구할 수 있으며, 걸핏하면 수백냥의 은자를 바치는 사람이 생긴다(보통사람의 1년수입은 그저 이십냥정도이다), 굳이 힘들게 농사일을 해서 쌀과 곡식을 얻으려할 필요도 없고, 영원히 시미유염(柴米油鹽)같은 류의 자잘한 일에 신경쓸 필요도 없다.
넷째, 법률이 너를 처벌하지 못한다. 설사 사람을 마구잡이로 죽이더라도, 대협들은 지명수배를 당하는 일이 없다. 한밤중에 검문검색을 당하지도 않고, 신분증이나 임시거주증도 필요없고, 호텔에 들어가더라도 이름을 등기할 필요도 없다.
기실, 이것이 다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중 한두개만 하더라도 너는 이미 만족할 것이다. 김용이 쓴 대협은 부유하면서 고귀하고, 또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정의로운 일을 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감사인사를 받는다. 이런 십전십미(十全十美)의 일들을 누가 바라지 않겠는가?
우리는 당연히 알고 있다. 정의를 보호하는 것은 골치아픈 일이라는 것을. 현대사회에서 그건 검찰, 변호사, 법관들이 거대한 인력물력을 소모하면서 무수한 심혈과 골치를 썩이면서, 겨우겨우 유지해가고 그렇다고 반드시 제대로 해낸다는 보장은 없다는 것을. 한명의 무술고수에 의지하여 단기간내에 시비를 판별하고, 폭력으로 공정과 정의를 세우는 것은 그저 신화일 뿐이다. 그러나 신화는 바로 시간도 적게 들고 신경도 덜쓰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골치아픈 것을 두려워하고, 신경써야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협력해야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복잡한 인간관계를 처리하는 것을 두려워하며, 복잡한 조직절차를 두려워하며, 복잡한 법률조문을 외워야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우리는 이런 모든 골치아픈 것을 버리고, 아무런 댓가도 치르지 않고, 신령을 부르는 것처럼 정의를 공중에서 소환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원래, 우리의 백일몽은 정의감이 풍부한 게으름뱅이의 부귀환상이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 초인적인 폭력을 가져서, 폭력의 위협도 받지 않으면서, 폭력으로 자신의 의도를 관철할 수 있을까? 도대체 어떤 사람이 먹고입고자는 것을 걱정하지 않으면서 부유하고 고귀하며, 주변에 미녀가 넘쳐날까? 이런 '정의를 세우는' 지위는 폭력으로 입법과 집법의 사회역할을 획득하는 것인데, 중국역사에서 오직 한 사람, 황제가 할 수 있는 일이다. 황제의 생활은 바로 중국인들이 상상할 수 있는 인간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생활이다. 그러나 김용은 우리를 대신하여 황제보다도 행복한 사람을 만들어보여주였다. 바로 대협(大俠)이다.
황제는 많은 점이 부자유스럽다. 그리고 아침마다 조회에 참석해야 하는 의무도 있고, 공무도 처리해야 한다. 하고싶은대로 게으름을 피울 수도 없고, 자유롭게 민간을 돌아다닐 수도 없으며, 어쩔 수 없이 여러가지 구속을 견뎌야 한다. 무협은 그런 골치아픈 일이 없다. 이건 골치아픈 의무는 벗어나지만, 생활의 자유와 권리를 모두 누리는 역할이다. 내심을 제외하고 그를 구속할 수 있는 역량은 아무 것도 없다.
한 마디로 말해서, 무협몽은 중국남자들의 개량된 황제몽이다.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김용은 황제제도에 반감이 컸다. 그의 소설에서, 천하통일의 야심을 가진 사람은 거의 모두 악인이다. 다만, 황제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자신의 침대 옆에서 단잠을 자는 사람을 어찌 그냥 놔둘 수 있겠는가? 천하통일은 바로 사직의 안전을 위한 논리에 부합하는 행위이다. 대협은 독보천하의 무공으로 아무런 위협을 받지 않지만, 황상은 반대자를 제거해야만 아무런 위협을 받지 않을 수 있다. 절대안전을 도모하는 의미에서, 절정무공을 추구하는 사람이나 천하통일을 추구하는 사람이나 실은 일구지학(一丘之貉)이다.
기실, 개량된 황제몽도 뭐 나쁠 것은 없다. 나도 좋아한다. 황제몽의 많은 것들은 인류의 보편적인 환상이자 갈망이다. 예를 들어, 공정, 강대, 존경받는 것, 의식에 걱정이 없는 것, 미녀들이 많이 따르는 것, 안전한 것, 성취하는 것, 구속을 받지 않는 것. 아무런 의미없는 힘든 일은 하지 않는 것등등. 우리는 당연히 알아볼 수 있다. 이런 환상은 간단하고 유치할 뿐아니라, 모순된다는 것을. 다만 우리가 원하는 꿈은 바로 이렇게 간단하고 유치하면서도 서로 모순되는 것이다.
수백년전의 <수호전>과 <삼협오의(三俠五義)>와 비교하면, 김용이 쓴 소설에서는 충효(忠孝)나 의기(義氣)같은 설교가 사라졌다. 마구잡이로 사람을 죽이는 만행도 감소했다. 서방의 일부일처제도의 애정방식, 인도주의와 자유주의색채가 들어갔다. 이런 조정을 거쳐, 김용이 만든 꿈의 세계는 현대인들의 입맛에 맞게 되었고, 더욱 쉽게 현대적인 상식 혹은 자아의 심사를 통과할 수 있게 된다.
왜 무협이라는 환상이 중국에서 특히 유행하는 것일까? 우리의 꿈에 들어맞는 것 이외에, 사회분위기와 토양에 아주 적합하기 때문이다. 무협에 대한 환상은 기실 강대한 가해능력에 대한 환상이다. 중국고전문학에서 유사한 선례가 적지 않다. 손오공, 양산호한, 모두 강력한 폭력을 지닌 자들이다. 그들은 모두 사람들 마음 속의 대영웅이다. 설사 대마두라 하더라도 무공이 고강하면 사람들이 선망하고 존경하는 대상이 된다. 오직 평민만이 아무런 언급할 가치가 없는 것이다. 무림고수의 눈에 평민은 그저 서비스하는 점소이(店小二)에 불과하다. 혹은 화풀이대상인 점소이, 혹은 자신이 구원해주는 중생이다. 이건 바로 황제의 눈에 비치는 백성의 모습이다.
우리는 비교해볼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사회와 시대를 바꾸어서 생각한다면, 환상의 대상은 더 이상 무협이 아닐 것이다. 억만장자가 서방남자들의 로망일 것이다. 이런 환상을 체현한 작품으로는 <백만파운드지폐> <몬테크리스토백작>이 있고, 베스트셀러인 부호에 관한 전기가 있다. 서방남자들의 환상은 거대한 부에 집중되어 있다. 다만 중국의 부는 자위(自衛)능력이 부족하다. 그래서 그다지 환상으로 삼을 만하지 못하다. 재산의 안전과 질서가 없는 사회에서 이익추구능력에 대한 환상은 가해능력에 대한 환상처럼 근본성을 갖기 어렵다.
김용의 소설에서, 남자주인공은 마지막에 항상 승리한다. 자신과 강호에 대한 중대한 위협을 모두 제거하고, 아름다운 여자들을 데리고 홀연히 떠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이로 인하여 더욱 심각한 문제가 나타나게 된다: 대협은 승리한 후에 무엇을 할 것인가? 대협이 추살을 피하고, 미인의 마음을 얻고, 각종 위협을 제거한 후, 마침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마치 우리 대다수의 사람들이 매일 직면하는 문제와 마찬가지로. 그때 그는 어떻게 지낼 것인가? 어쩧게 식구를 먹여살리고 집을 구할 것인가? 보디가드라도 할 것인가? 무술교사라도 할 것인가? 그런 건 재미없다고 여기지 않을까? 만일 이런 문제를 제가하지 않고,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건 우리가 아직 동년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말해주지 않을까? 혹은 우리가 너무 늙고, 너무 지치고, 너무 무능하여 그저 모른 척하면서 약간의 재미를 느끼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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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사의 <잠규칙(潛規則)>이라는 책이 세상에 나오면서 일시를 풍미했고, 지금까지도 베스트셀러이다.
지금 '잠규칙'이라는 단어는 이미 사람들에게 깊이 뿌리박혔다. 중국어의 일상용어가 되었다. 이것만으로 본다면 오사의 역사에 대한 해석은 황인우(黃仁宇)보다 뛰어나고, 사람들의 마음에 닿았다: '잠규칙'은 이미 중국인들이 매일 쓰지만 어디가 출처인지는 모르는 단어가 되어버렸다.
'잠규칙'이라는 단어는 오사가 만들어낸 것이다. 이 용어는 명나라때 비슷한 용어가 있었는데, '누규(陋規)'이다. 암중으로 공개적으로 얘기할 수는 없지만,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규칙을 말한다. 전체 책은 대체로 3개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관리와 백성의 관계, 관리와 상사(황제포함)의 관계, 관료사회내부의 관계
1. 관리와 백성의 관계
어느 왕조이건 통치계급에 있어서, 백성은 그저 마음대로 수탈할 수 있는 양이었다. 관리들은 너도 한입, 나도 한입, 모두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먹었다. 그는 '먹는' 속도가 백성들이 부를 축적하는 속도만큼 빠르지 않으면 '인정(仁政)'이라고 불렸다. 만일 관료들이 너무 많이 너무 심하게 먹어버리면 악정(惡政)이 된다. 백성들은 살아나갈 수가 없게 되고, 노예가 되고 싶어도 될 수가 없으면, 반란을 일으켜, 왕조를 뒤집어엎고 새로운 왕조를 세운다. 이렇게 다시 윤회하게 된다.
2. 관리와 상사(황제포함)의 관계
중국의 선비들중 학식이 뛰어나면 관료로 나선다(學而優則仕). 처음에 관리가 될 때는 아마도 국가와 백성을 위해서 좋은 일을 하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관료가 되고나면 상사는 너를 못살게 굴고, 동료는 너를 구렁텅이로 끌어들이며, 호족들은 당의포탄(糖衣砲彈)이고, 봉록은 너무나 적다. 오직 백성들만이 괴롭히기 좋다. 청백리가 되려고 하면 처자식이 제대로 먹질 못한다. 좋은 관리가 되려고 하면 온갖 모함을 받아서 스스로 깨끗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는 악리가 되는 것은 차마 하질 못한다. 황제는 좌우의 심복들 말만 듣지, 충신인지 간신인지는 따지지 않고, 중벌 엄형을 가한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모두 겁을 먹게 만든다. 그래서 인치의 상황하에서는 청백리나 좋은 관리가 되기는 힘들다. 그런 사람은 대부분 관료사회에서 도태되어 버린다.
황상도 억울하다. 권력에서 그는 지고무상이지만, 정보에서 그는 극단적으로 폐쇄되어 있다. 그가 아는 것이라고는 좌우의 심복들이 그에게 알려주는 것뿐이다. 그가 하고 싶은 일은 모두 심복들이 이끌어주어야 할 수 있다.
3. 관료사회내부의 관계
관료들 사이에서도 여러 방식이 있다. 모두 잠규칙에 따라 일처리를 하면서 너도 좋고 나도 좋고 모두 좋다. 일단 누군가 그런 규칙을 깨버리면 반드시 이익집단으로부터 미친듯이 보복을 받게 된다. 뒷문으로 들어오고, 쪽지를 건네주는 사람이 너무 많다. '경력과 배분으로 자리를 나누고' '추첨방식으로 자리를 배치하는' 겉으로 보기에 황당한 선발방식이 어쩔 수 없는 절충적인 선택이 된다. 한 왕조도 각 대고관리들의 부단한 노력하에 붕괴와해된다. 처음에는 소수인들이 놀고먹지만, 나중에는 놀고먹는 사람이 많아지고 일하는 사람은 적어진다. 나중에는 관리선발도 추첨으로 하게 된다. 관료사회는 기본적으로 윗사람에 아부하고 아랫사람을 괴롭히는 구조가 된다. 그런 때 천재지변이라도 일어나면, 백성이 강도로 얻는 수익이 농사지어서 얻는 수익보다 많아지게 되고, 그러면 반란이 일어나고, 왕조는 멸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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