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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문학/무협소설

역사소설로 본 역대 창술 명장의 랭킹은...?

by 중은우시 2024. 2. 18.

글: 이치아(李治亞)

만일 역사상의 인물과 소설에 나오는 명장에 대하여 랭킹을 매긴다면 소설에 나오는 대단한 명장들에 어떤 사람들이 있을까? 예를 들어, 이존효(李存孝), 항우(項羽), 양육랑(楊六郞), 악비(岳飛), 나송(羅松), 조운(趙雲)과 같은 경우에 누가 앞서고 누가 뒤에 놓일까?

1위: 십삼태보(十三太保) 용남공(勇南公) 이존효(李存孝)

이존효는 당(唐)나라의 최고 사나이이다. 두 팔은 네 마리의 코끼리가 당해낼 수 없는 힘이 있었고, 손에 든 우왕삭(禹王槊)은 용맹무적이었다. 황소(黃巢)를 평정하는 전투에서, 이존효는 용맹하게 선봉에 서서 적장을 하나하나 참살했다. 대제(大齊)의 맹장 맹절해(孟絶海)는 전쟁터에서 수백전을 벌이면서 패배한 적이 없었는데, 이존효에게 생포되고, 돌아올 때 팔에 끼어서 죽는다. 대제의 원수 갈종주(葛宗周)는 팔마구우진(八馬九牛陣)을 펼쳤는데, 이존효는 팔마와 구우를 가볍게 휩쓸어 버린다. 그리고 일자로 장사진을 내래쳐서 48명을 참살한다. 그리고 등천왕(鄧天王), 장귀패(張歸覇)등 대제의 맹장들도 모조리 이존효에게 가볍게 격패당한다. 심지어 황소마저도 이존효에게 쫓겨서 소산(巢山)에서 죽는다. 소설에 나오는 인물 중에서는 오직 이원패(李元覇)만이 이존효과 어깨를 겨룰 수 있을 정도이다. 그래서 당초에는 이원패가 있고, 당말에는 이존효가 있다는 말이 나온 것이다.

2위: 서초패왕(西楚覇王) 항우(項羽)

항우는 역사상 제일맹장이다. <서한연의>에 천하무적의 장수로 나온다. 반란을 일으킨 초기에, 항우는 도산(塗山)의 우왕묘(禹王廟) 앞에서 오천근의 거정(巨鼎)을 들어올려, 환초(桓楚), 우영(于英)을 굴복시킨다. 이어지는 전투에서, 항우는 오추마(烏騅馬)를 타고, 손에는 화첨창(火尖槍)을 들고 천하를 종횡했다. 그렇게 한(漢)의 장수인 왕릉(王陵), 노관(盧綰), 조참(曹參), 영포(英布), 팽월(彭越), 주발(周勃), 장이(張耳), 장도(臧荼)가 힘을 합쳐도 그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마지막 구리산(九里山) 전투에서 항우는 더욱 전장을 종횡하며 적군을 죽인다. 하룻동안 항우는 한나라군대의 60명 장수를 죽였다. 그리고 대다수는 포위공격을 당하면서도 말을 뒤로 물리지 않고, 창을 땅바닥에 내려놓지 않았다. 당에는 패왕창(覇王槍)을 전수받은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철창 등천왕이다. 등천왕은 패왕창을 배운 후, 실력이 천하제2인자인 왕언장(王彦章)을 넘어섰다. 그러나 이존효에게는 여전히 상대가 되지 못했다.

3위: 조운(趙雲)

조운은 촉한의 오호장중 한명이다. 상승장군(常勝將軍)이라는 별명이 있다. 장판파(長坂坡) 전투에서, 조운은 크게 활약하여 연이어 조위의 장수 50여명을 참살한다. 그후 반하(磐河)전투에서, 조운은 수합만에 국의(鞠義)를 죽여버린다. 와우산(臥牛山) 아래에서는 순식간에 배원소(裴元紹)를 죽인다; 양산(穰山)전투에서는 기습을 통해 고람(高覽)을 죽여버린다. 그리고 한수(漢水)전투에서는 일찌기 서황(徐晃), 장합(張郃)으로 하여금 놀라서 도망치게 만들었다. 여기에서 모두 신출귀몰한 창법을 선보인다. 그러나, 당나라에 이르러 자룡창법(子龍槍法)을 전수받은 백포대장(白袍大將) 사경충(史敬忠)은 맹장으로 당나라때 9위의 사나이이다. 그러나 나씨(羅氏)집안의 후손들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4위: 나송(羅松)

나송은 북평왕(北平王) 나예(羅藝)의 장남이다. 그가 배운 것은 강가창(姜家槍)이다. 그의 신창(神槍)은 수당사절(隋唐四絶)중 으뜸이었다. 사평산(四平山) 전투에서 이원패(李元覇)와 나사신(羅士信)이 붙었는데, 오직 나송이 장창으로 그들 둘을 떼어 놓을 수 있었다. 당나라에 이르러, 나가창(羅家槍)의 후인 양위(揚威)가 있다. 은창노조(銀槍老祖) 담대예(澹臺譽), 북창왕(北槍王) 장처양(張處讓), 황소, 장귀패가 모두 나가창의 한 갈래인 헌파매화창(獻把梅花槍)이다. 위왕(魏王) 나홍신(羅弘信), 소보(少保) 나소위(羅紹威)가 배운 것은 모두 나가창이다. 이들은 모두 명성을 떨쳤으며, 나소위의 창법은 이존효의 삭법보다 못하지 않았다. 다만 힘이 모자라 그에게 패했을 뿐이다. 나송의 실력이 나소위보다 더욱 대단했다면, 그의 창법은 분명 조운에 비해 손색이 없었을 것이다.

5위: 양육랑(楊六郞)

양육랑은 양가장(楊家將)의 후인이다. 그가 배운 것은 천하에 이름을 떨친 양가창(楊家槍)이다. 그는 손에 창 한 자루를 쥐고 삼관(三關)에 위명을 떨쳤다. 양가창은 당, 오대시기 화산왕(火山王) 양곤(楊袞)이 만들었다. 나가창(羅家槍), 하가창(夏家槍), 패왕창(覇王槍)등의 정수를 모은 천하제일명창이다. 그러나, 후손들은 양가창의 정수를 모두 전수받지 못했다. 각자 일부분만을 전수받았다. 양칠랑(楊七郞)은 천성적으로 엄청난 괴력을 지녀 창법의 용맹함을 전수받아 가장 대단했다; 양육랑이 계승한 것은 교묘함이다. 전투중에 상대방의 헛점을 찾아내서 찔러갔고, 역시 대단했다.

6위: 악비(岳飛)

악비의 역천신창(瀝泉神槍)은 꼴찌로 밀려났다. 그러나 소설에서도 역시 그러하다. <설악(說岳)>을 보면, 악비는 양재흥(楊再興)과 싸워서 무승부를 이룬다. 양재흥은 바로 양육랑의 현손(玄孫)이고, 그가 사용한 것은 양가창이다. 바로 양육랑이 꿈에 악비에게 비법을 전수해 주었기 때문에, 악비는 양재흥에게 이길 수 있었다. 그래서 양육랑이 악비보다 강한 것이다.

여기의 랭킹은 소설에 따른 것이다. 만일 역사를 이야기한다면, 서초패왕 항우를 1위로 꼽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항우의 용맹은 천고에 제일이다(羽之神勇, 千古第一)"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2위는 십삼태보 이존효이다. '왕불과패(王不過覇), 장불과이(將不過李)' 3위는 용관삼군의 악비이다. 그는 삼백송근의 활을 당길 수 있었고, 좌우로 활을 쏠 수 있었으며, 자주 전투때 깃발을 들었다. 일찌기 왼손에 활을 들고 오른손에 창을 들고 적진으로 돌격했다. 4위는 양육랑이다. 그는 삭주성 아래에서 용맹하게 돌진한 바 있다. 날아온 화살이 어깨에 박혔지만, 더욱 용맹하게 싸웠다; 조운은 정사에 그의 무예가 어떠했는지에 대한 기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