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아시역사기실정유취(我是歷史其實挺有趣)
주상락(朱常洛)의 몸은 약간 좋지 않았다.
약간 좋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아주 좋지 않았다.
황제의 심정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왜냐하면 그가 황제로 즉위한지 겨우 10일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십일전에, 황제는 등극대전때 힘찬 걸음걸이로, 당당한 모습이었는데, 지금은 병석에 누워있으면서, 온 몸이 견디기 힘들 정도로 아프면서 기력이 전혀 없었다. 심지어 일상생활조차 스스로 해낼 수가 없을 정도가 되었다.
황제는 이렇게 생각했다. 아마도 요 며칠간 너무 피로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그의 부친 만력제(萬曆帝) 주익균(朱翊鈞)은 일년내내 일을 하지 않았고, 정무를 처리하지 않았으며, 대신을 만나지않았고, 조회를 주재하지도 않았다. 심지어 많은 경우 환관이나 궁녀들 조차도 황제가 어디에 숨어 있는지 모를 정도였다.
만력제는 하고싶은대로 다하면서 돈을 썼다. 궁전을 짓고 수리하는데도 돈을 썼고, 자신의 부인인 정귀비(鄭貴妃)의 화장품을 구매하는데도 돈을 아끼지 않았다. 국고의 돈이 부족하면, 그는 환관을 보내 전국에서 각종 세을 거두게 했다. 백성들은 고통이 심했고, 폭정이라고 생각했다. 주상락은 즉위하자마자 그런 잡세는 모조리 취소시킨다.
만력제가 아무 일도 하지 않다보니, 인사문제도 전혀 처리하지 않았다. 경사(京師)의 인사시스템은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고, 많은 관직이 비어있었고, 많은 직무는 처리할 사람이 없었다. 주상락은 등극하자마자 즉시 시원시원하게 능력있고, 학식과 재능이 있으며 국가를 위해 일하고자 하는 대신들을 기용했다.
만력제는 또한 아주 인색했었다. 자신은 돈을 물처럼 쓰면서, 구변(九邊, 명나라의 변방)에는 자금을 제공하지 않았다. 특히 요향(遼餉, 요동으로 보내야할 군수자금)이 문제였다. 요동은 춥고 힘든 곳이면서 전투가 많았다. 요동장병들의 급여는 오랫동안 지급되지 못했고, 심한 경우에는 식사조차 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주상락은 등극후, 즉시 내탕(內帑, 황제의 사금고)에서 2백만냥은자를 장병들에게 지급했고, 장병들은 환호성을 울렸다.
태창제가 즉위하자, 만력제의 총비인 정귀비는 태창제에게 8명의 미녀를 보내준다. 이 8명의 미녀는 정말 예뻤다. 그리고 그녀들은 오랫동안 훈련받은 것처럼 남자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고, 어떻게 해야 남자가 좋아하는지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한가지 분명히 인정해야할 점은 주상락은 정귀비가 보내준 이들 미녀들을 아주 좋아했다는 것이다.
그렇다. 주상락은 1582년생이고, 1620년에 비로소 황위에 오른다. 그는 꼬박 38년간 황자(皇子)로 지냈다. 그 기간동안 행동거지는 항상 조심해야 했고, 동생들에게도 잘 대해주고, 스스로를 자제하고 근검해야 했다. 모든 면에서 우량한 품성을 보여야 했다. 부친이 싫어해서 그를 버리지 않도록. 하물며 부친 만력제는 자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주상락은 등극하기 전까지는 여색을 기본적으로 멀리했다. 그러나, 등극한 후, 그에게 무슨 호색하는 천성이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오랫동안 성적으로 억압을 받아오다보니, 보복적으로 여자에 탐닉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등극후 10일동안, 주상락은 아주 힘들었다. 그는 업무로 정력을 소모했을 뿐아니라, 여색에도 체력을 소모해야 했다.
그런 점들이 그를 병으로 쓰러지게 한 원인인지 여부는 확인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주상락 자신도 기이하게 생각했다. 그는 자신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몰랐다. 다만, 병이 들었으면 치료를 해야 한다. 황제는 돈이 부족하지도 않다. 의료자원도 부족하지 않다. 나라에서 가장 뛰어난의원들은 거의 모두 황실전속의 어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상락은 그들을 믿지 않았다.
그는 황제에 오른 후, 신하들에 대한 불신감을 깊이 가지고 있었다.
문관들은 그를 제약하려 했고, 무장들은 발호했으며, 외척들은 권력을 차지하려고 하고, 비빈들은 총애를 다투었고, 황자들은 황제가 일찌감치 죽기만 바라고 있었다. 모두 마음 속으로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고,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려 들었다.
그리하여, 주상락이 가장 믿는 것은 항상 자신의 곁을 지키주고 모시는 환관들이었다.
환관은 황권과 더불어 생겨났고, 제왕의 가노(家奴)이다. 그들은 관리가 될 수도 없고, 궁을 떠날 수도 없다. 그들의 몸은 장애가 있었고, 그저 전심전력으로 황제를 위해 봉사하는 수밖에 없었다.
황제가 가장 신임하는 환관은 사례병필태감(司禮秉筆太監) 최문승(崔文昇)이었다.
최문승은 자금성의 태감들 중에서 1인자일 뿐이니라, 이전에 어약방(御藥房)에서 근무한 적도 있었다. 주상락은 최문승은 믿을만하다고 여기고, 최문승에게 말한다. 짐이 병이 들었는데, 네가 먹을 약을 만들어달라.
이 최문승은 대단한 인물이었다. 그는 병세를 묻지도 않고, 진맥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직접 황제에게 '통리약(通利藥)'을 제조해서 준다.
소위 '통리약'은 그냥 설사약이다.
이건 황제를 더욱 힘들게 만든다. 황제는 원래 몸이 약한데, 통리약을 먹으니 밤새도록 잠을 잘 수 없었다. 잠을 자지 않고 무엇을 했는가? 바로 설사이다.
황제는 하루종일 배를 만지면서 십분에 한번, 십분에 한번 이렇게 날이 밝을 때까지 설사를 하다보니 뱃속에 남아있는 것이 없게 된다. 그제서야 지칠대로 지쳐서 용상에 누워 깊이 잠들어버린다.
주상락은 확실히 최문승의 배경을 조사했고, 최문승이 어약방에서 일한 적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에게 약을 지으라고 한 것이고, 그가 지은 약을 먹은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이런 조사는 설렁설렁한 것이고, 그가 조사해내지 못한 것이 있었다. 최문승은 예전에 정귀비의 궁에서 일을 했었고, 심지어 정귀비가 가장 가까운 심복중 하나라는 것이다.
오전내내 자고나서, 정오가 되어 깨어났을 때, 주상락은 더욱 견디기 힘들었다. 배가 아주 고팠지만, 또한 피로해서 기운이 없었다. 심지어 배는 고프지만 먹을 힘조차 없었다. 그는 머리가 어질어질했으며, 물건은 겹쳐보였고, 눈앞이 까매지곤 했다.
심지어, 황제는 자신의 목숨이 얼마남지 않았다고 여긴다. 그리하여 문무대신들을 불러서 유언을 남길 준비를 한다.
대신들은 당연히 주상락이 멀쩡히 죽어가는 것을 보고 있지만은 않았다. 그리하여 즉시 건의한다. 황제는 즉시 어의를 불러서 진맥을 받고 치료받아야 한다고.
주상락의 반응은 아주 기이했다.
그는 말했다. 나는 어의를 믿지 않는다. 그들을 불러서 병을 치료하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떄 이가작(李可灼)이라는 신하가 나선다.
그는 사람들에ㅐ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예전에 민간에서 명산대천을 찾아다닐 때, 한 선인(仙人)을 만났는데, 선인이 나에게 선단(仙丹)을 여러 개 주었다. 한 알을 먹으면 정신이 들고, 두 알을 먹으면 영원히 피로하지 않고, 세 알을 먹으면 장생불로할 수 있다. 어쨌든 약효가 아주 강하니 황제께서 드시기만 하면 병을 완전히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
대신들은 이가작을 혼내준다. 사기꾼 아니냐. 무슨 그런 헛소리를 하느냐고.
모두가 이가작을 끌어내려고 할 때, 주상락이 말한다. 너희는 말다툼하지 말라. 그 약을 내가 한번 먹어보겠다.
이가작은 아주 기뻤다. 그는 홍로시승(鴻艫寺丞)으로 예의를 주관한다. 그다지 중요한 업무를 하는 것이 아닌데, 만일 황제에게 약을 바친다면, 황제에게 중용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선단을 하나 꺼내서 황제에게 바쳤다. 황제가 먹은 후에 정말로 효과가 나타났다.
황제는 앉을 수가 있게 되었고, 용상에서 내려와 걸어다닐 수도 있게 된다. 그리고 식사도 할 수 있게 되고, 궁전을 한바퀴 돌 수도 있게 된다.
그 모습은 황제가 건강을 완전히 회복한 것같았다. 이는 의학의 기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정오에 한 알을 먹고, 주상락은 자신이 귀문관(鬼門關)에서 살아돌아온 것같았다. 그는 크게 흥분했고, 약효를 더욱 확실하게 하기 위하여 저녁에 한 알을 더 먹었다. 심지어 약을 먹을 때 이가작의 어깨를 두드려주면서 그를 대충신이라고 칭하며 향후 크게 중용하겠다고 말한다.
황제는 약을 먹은 후 온 몸이 편안해져서 저녁도 먹고, 곧 잠이 든다....
밤은 깊었고, 마지막 잔별이 사라질 때, 오경을 알리는 소리가 자금성의 정적을 깨웠다.
태창원년의 가을, 이슬은 유달리 차가웠다. 태화전(太和殿)의 석물을 따라 이슬이 흘러내렸고, 유리기와의 아래에서 구슬처럼 매달려 있었으며, 바닥에 떨어질 때는 구슬이 깨지는 것같은 맑은 소리를 냈다.
오경때, 주상락은 조용히 숨을 거둔다. 황제에 오른지 1달도 되지 않았고, 당시 나이는 겨우 39살이었다.
기실, 주상락은 이가작이 제공한 선약을 먹지 말았어야 한다. 현재의 시각에서 보자면, 그건 삼무제품(三無製品, 생산일자, 생산자, 제조허가증이 없는 제품)이다. 소위 선약은 민간의 방사가 만든 단약이다. 단약을 제조한 목적은 모두 최정장양(催情壯陽)을 위한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고대의 황제들이 왜 그렇게 단약을 즐겨 먹었겠는가?
다시 생각해보면, 주상락이 병들었을 때 원인은 몸이 허해서이다. 그는 몸의 기운을 다 써버린 것이다.
몸이 허할 때는 마땅히 몸을 보해주어야 한다.
그러나, 최문승이 지은 약은 주상락의 몸을 보해주지 못했을 뿐아니라 오히려 온몸의 기운을 빠지게 만들고 하루종일 설사하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황제의 몸은 더욱 허해졌다. 이때 그의 몸은 그저 종이 한장처럼 가볍게 지르기만 해도 끝장날 상황이었다.
그러한 때 주상락을 구해줄 수 있는 것은 몸을 보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때 그의 몸상태는 허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때 몸을 보하려면 아무렇게나 해서는 안된다. 마땅히 세수장류(細水長流, 가느다란 물이 오래 흐르는 것)식으로 온윤자보(溫潤滋補)해야 하는 것이다. 일거에 너무 강하게 보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모두 이런 상식을 알고 있다. 일거에 너무 많은 보약을 먹으면 예를 들어 한꺼번에 인삼을 너무 많이 먹거나 하게 되면 쉽게 코피가 난다. 주상락이 바로 그런 상태이다.
이가작의 단약은 보약이지만 문제가 있다. 그의 보약은 약성이 너무 강렬하다. 정상적인 몸이라면 그런 것을 버틸 수 있고, 약간 허약해진 정도라고 하더라도 그렇게 보할 수 있겠지만, 특별히 취약해진 몸이라면 그걸 버텨낼 수가 없다. 즉, 주상락은 너무 강하게 보하려다가 죽은 것이다.
이건 마치 주상락이 실외에서 이미 몸이 꽁꽁 얼었다면, 원래 그를 따뜻한 실내에 넣어, 따뜻한 물과 난로불로 서서히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해동시켜주는 것이 맞다. 누가 생각했겠는가. 이가작의 방식은 얼어있는 주상락을 바로 마그마에 넣어 해동시키려 한 것이라는 것을.
예의를 주관하던 이가작은 원래 주상락과 아무런 은원이 없다. 그는 아마도 노황제 만력제가 살아 있을 때, 자신이 가장 좋아한 정귀비에게 수시로 하사품을 내렸을텐데, 그때마다 의식을 행했을 것이다. 황제가 상을 내릴 때, 의식을 행할 때 그 업무는 의식을 맡은 홍로시에서 처리했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이가작은 아마도 정귀비와 접촉이 있었을 것이다.
정귀비도 주상락과 원한은 없다. 비록 주상락이 자신의 친아들이 아니고, 비록 주상락이 황위경쟁과정에서 정귀비의 친아들인 주상순(朱常洵)을 이기고 황위를 차지했지만, 정귀비가 그렇게 악독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정교하게 계획을 짜서 황제를 모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주상순은 정귀비의 친아들이고, 만력제의 셋째아들이다. 그는 만력제와 정귀비가 가장 사랑한 아들이고, 부부는 한때 폐장입유로 주상락을 폐위시키고 주상순을 황태자로 앉히려고도 생각했었다.
대신들이 반대했고 목숨을 걸고 만력제의 장남인 주상락의 황태자지위를 지켜주었다.
주상순을 황태자에 앉히려고 만력제는 온갖 방법을 다 썼다. 그는 유화책도 써보고, 강경책도 써보았다. 대신들을 위협하기도 하고, 탄압하기도 하고, 간청하기도 했다. 온갖 방법을 다 써보아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십오년동안, 4명의 내각수보가 물러났고, 상서급의 관리도 수십명 물러났다. 중앙과 지방의 고관들 중 강등당하고, 좌천당하고, 면직당하고, 처벌받고 연루된 사람이 백여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렇게 해도, 만력제는 황태자를 바꿀 수가 없었다.
만력제가 가장 멸시하고 싫어하는 아들인 주상락이 대명의 황제에 오른 것이다.
그리고 명광종 태창제 주상락은 만력제가 만든 잡세를 폐지시키고, 요향을 지급하고, 인사문제를 처리했다. 이는 대명이라는 고목나무에 꽃이 피는 것같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 황제가 이제 죽은 것이다.
주상락이 죽은지 24년만에, 대명은 멸망한다.
만력제와 정귀비가 총애해 마지않던 주상순은 이미 가마솥에 끓여져서 요리감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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