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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명)

만귀비(萬貴妃): 전반생은 천사, 후반생은 악마

by 중은우시 2025. 3. 7.

글: 최애역사(最愛歷史)

자금성에서 주태후(周太后)는 마음 속의 의혹을 도저히 참지 못하고 아들에게 묻는다:

"그녀의 도대체 어디가 예쁘길레 네가 오직 그녀만 총애하느냐?"

주태후의 말에서 가리키는 그녀는 바로 명헌종(明憲宗)의 총비 만정아(萬貞兒)이다.

사료기재와 추산에 따르면, 주태후와 만정아는 모두 선덕5년(1430년)을 전후하여 태어났다. 나이로 따지면, 이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나이로 보면 자매와 같다.

아들이 다른 후궁은 내버려두고 자신과 나이가 비슷한 '나이든 여자'에게 빠져 있다니, 주태후로서는 도저히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모친의 힐문에, 평소에 말솜씨가 별로 없던 명헌종은 오랫동안 마음 속에 감춰두었던 비밀을 털어놓는다:

"제가 그녀를 총애하는 이유는 그녀가 생긴 것이 예쁘서가 아니고, 그녀가 쓰다듬고 위로해주면 마음이 안정되고 몸이 편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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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인물의 슬픈 점이라면 역사의 변화에 끌려다니고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다.

4살 되던 해, 만정아의 일생에서 운명의 분수령이다. 이 해에 그녀의 부친은 변방으로 귀양가고 아직 철도 들지 않은 만정아는 '연좌'라는게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자금성으로 들어가 궁녀가 된다. 황궁의 거의 모든 잡일을 하면서 운명이 기구한 그녀는 힘들게 나날을 보냈고, 서서히 성장한다.

명나라의 법도에 따르면, 궁녀의 출로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죽는 것이다. 노황제가 붕어할 때 배장되는 것으로 선택되면 죽은 후에도 노비로 지내게 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사는 것이다. 일정한 나이가 되었을 때(25-30세), 궁을 나가 시집을 가거나, 계속하여 일을 하면서 자금성의 궁안에서 늙어죽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입궁하여 노비가 된 만정아의 운명과 출로도 대체로 그러했다. 다만 정통14년(1449년) 팔월, 대명의 조야를 깜짝 놀라게 만드는 돌발사건이 벌어지면서 간접적으로 만정아의 운명에서 새로운 길을 개척하게 된다.

이 해에 몽골 오이라트부의 태사(太師) 예센(也先)이 돈을 뜯어내려다가 성공하지 못하자 전쟁을 벌인다. 대명이 변방은 위기에 처했다. 어가친정을 종용한 대태감 왕진(王振)이건, 젊은 나이에 기운이 넘치던 명영종(明英宗) 주기진(朱祁鎭)은 이번 전쟁을 통해 명성과 위엄을 떨치고 싶어했다. 다만, 준비가 미흡했던 군사모험은 결국 참통한 댓가를 치르게 된다. 수십만의 명군은 전멸하고, 황제를 따라 어가친정했던 많은 문무대신들도 전장에서 목숨을 잃는다. 대명의 군정에는 단층이 발생한다. 더욱 심각한 일은 공을 세우고자 했던 명영종 본인이 포로로 전락한 것이다. 처참하고 희망없는 검은 먹구름이 북경성의 상공을 감싸고 있었다.

예센은 명영종을 생포한 것은 아주 좋은 카드를 가진 셈이 된다. 그리하여 때를 놓치지 않고 그를 이용하여 협박하고 돈을 뜯어낸다. 명나라에 게속하여 재물을 요구했다. 손태후(孫太后)와 전황후(錢皇后)가 보내준 거액의 재물을 받은 후에도 그를 풀어주지 않았다. 오이라트의 끝없는 욕심과 요구에 명나라의 관리들은 새로운 파국의 법을 생각하게 된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인질'의 가치를 해결해버리자. 토목보의 변이 발생한지 20일후에 명영종의 이모동생이자 당시 감국이던 성왕(郕王) 주기옥(朱祁鈺)이 우겸(于謙)등의 옹립하에 새로운 황제에 오른다. 예센이 가진 '카드'는 순식간에 가치를 잃고 계륵이 되어버린다.

주기옥이 등극한 것은 원래 비상시의 미봉책이었다. 그와 손태후간의 합의에 따르면, 나중에 명영종이 돌아오든 말든 대명의 황제자리는 여전히 명영종의 일맥으로 되돌려주는 것이었다. 즉, 명영종의 장남 주견심(朱見深)을 황태자로 삼는 것이었다.

처음에, 주기옥은 약속을 지켜 조카 주견심을 황태자로 삼는다. 그러나 권력은 마약과 같다. 거기에 맛을 들이면 사심이 생기게 되고, 약속을 어기고 싶은 마음이 새 황제의 머리 속에 생겨나게 된다. 내가 황태자를 폐위시키고 아들에게 황위를 물려줘도 되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나의 후손이 세계를 건립하게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성왕의 세자인 주견제(朱見濟)가 황태자 주견심의 잠재적인 경쟁자로 떠오르게 된다.

가족을 이끌고 황궁으로 들어가면서 주기옥은 일찌감치 아들을 위한 조치를 취한다. 동궁의 관사태감을 자신의 심복으로 교체한 것이다. 명나라의 후궁법도에 따르면, 어린 태자는 통상 생모와 함께 생활하며, 공부를 시작할 때 동궁으로 옮겨서 거주하게 된다. 궁중투쟁계의 선배이며, 정치적인 후각이 예민한 손태후는 자연스럽게 주기옥이 동궁의 인사를 교체한 의도를 알아차린다. 그녀는 주비(周妃) 모자가 서로 떨어져 살아야 하는 인륜의 아픔을 무시하고, 후발제인으로 나이어린 황태자를 미리 동궁으로 옮겨버린다.

그러나, 부친의 비호가 없는 아이가 어떻게 어린 몸으로 궁중내의 잔혹한 구심투각(勾心鬪角)을 견뎌낼 수 있을 것인가?

설사 미리 조치를 취하기는 했지만, 손태후도 동궁이 안전한 장소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서로 떨어져 살게 되므로, 그녀와 주비가 항상 동궁태자의 곁에 있어줄 수는 없었다. 그녀는 심복으로 하여금 자신을 대신하여 이미 혼자 살아야 하는 손자 주견심을 돌봐주게 할 필요가 있었다.

궁녀들도 모두 잘 알고 있었다. 방대한 자금성은 이미 주인이 바뀌었다. 뒷배경을 잃은 어린 태자 주견심과 가까이 지내게 되면, 앞으로 자신에게 골치거리와 리스크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잘 알았다. 바람부는대로 키를 꺽든, 아니면 명철보신이건, 궁안에 사는 궁녀들이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것은 모두 이해할 만하다. 그녀들은 그저 시대의 소인물이고, 역사는 그녀들에게 많은 것을 요구해서는 안된다.

그렇다면, 손태후는 누구를 점찍었을까? 궁녀 만정아가 그녀의 시야에 들어왔다.

이 해(1449년)에 만정아는 20살이었다. 비록 나이가 많지는 않지만, 이미 15년간 궁중에서의 생존경험이 있다. 만정아가 입궁했을 때는 철이 없던 천진한 어린 여자애였고, 손태후는 그녀를 가련하게 여겨서 자신의 곁에 남겨두었다. 십여년간의 주종관계로 만정아는 손태후의 사랑과 신임을 받는다. 그리하여 그녀는 황태자를 지켜내는 중임을 감당할 수 있다고 여겨진다.

미래의 소주인에 대하여 만정아는 겨우 몇번 얼굴을 본 인연밖에 없다. 명영종의 재위기간, 그녀는 주비가 아들을 데리고 손태후에게 인사하러 왔을 때, 여전히 말을 배우고 있는 어린 사내아이를 몇번 본 것이 전부였다. 만정아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자신의 운명이 이 사내아이와 긴밀하게 엮이게 될 줄은.

명나라의 암조용동(暗潮湧動)의 권력투쟁과정에서, 주변인이었던 만정아도 불가피하게 거기에 말려들어간다. 그것은 시(時)이고, 명(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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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명에 하늘이 놀랄 변고가 일어난 그 해(1449년)에 주견심의 나이는 허령(虛齡)으로 3살이었다. 나이차이가 17살인 주종은 겉으로 보기에는 모자와 같았다. 어느 정도 만정아는 확실히 '모친'의 역할을 한다.

한번은, 태감 김영(金英)과 한담을 나누다가, 명대종(明代宗) 주기옥이 돌연 묻는다: "태자의 생일이 칠월 초이틀이지. 맞지?" 김영은 그 말을 들은 후 바로 대답한다: "폐하 잘못 기억하고 계십니다. 태자의 생일은 십일월 초이틀입니다."

주기옥은 당연히 태자 주견심의 생일을 알고 있었다. 그저 그가 말한 것은 자신의 아들 주견제의 생일이었을 뿐이다. 그의 마음 속에 주견제가 이상적인 후계자였다. 이 일은 외부에 신호를 보내는 것이었다. 주견심의 존재는 주기옥이 황태자를 삼는 계획에서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이런 잔혹한 정치적 배경하에서, 주견심은 어린 나이에 견디기 어려운 고독을 겪는다.

손태후의 부탁을 받아, 만정아는 동궁에서 이 고귀한 출신이나 가련한 어린 사내아이를 세심하게 돌본다. 아마도 태자의 생모인 주비와 나이가 비슷했기 때문에, 잠재적인 모성본능이 점차 살아났는지도 모른다. 만정아는 이 사내아이를 자신의 아이로 여기기 시작한다.

궁중에는 위기가 사방에 도사리고 있다. 만정아는 주견심의 생활기거를 보살펴야 할 뿐아니라, 모친과 마찬가지로, 소시로 그가 어떤 암전(暗箭)에 상해를 입지 않도록 보호해야 했다.

경태원년(1450년), 만정아는 '임무를 사임'할 기회를 한차례 갖게 된다.

주기옥이 즉위한 후, 명영종 주기진은 태상황으로 된다. 인질로서, 주기진의 이용가치는 예센의 입장에서 크게 저하되었다. 게다가 오이라트는 내부가 분열하여, 예센은 평화협상을 할 생각을 품게 된다. 성의를 표시하기 위하여, 예센은 명영종을 대명에 돌려보내겠다고 표시한다. 당연히 여기에는 명영종을 조정으로 돌려보냄으로써 명나라의 내분을 조장하려는 계획이 있었다.

소식이 북경에 전해지자, 사람들의 반응은 서로 달랐다. 조정신하들은 환호작약하면서, 속속 상소를 올려 태상황을 모셔올 것을 청한다. 이에 명대종 주기옥은 난감한 처지에 놓고 분노한다: "당초 짐은 황제가 되길 원치 않았는데, 완전히 너희들이 짐으로 하여금 대통을 잇게 강요하지 않았던가?" 분위기가 이상하게 흐르자 우겸이 나서서 원만하게 수습한다: "황위는 이미 결정되었습니다. 황상께서는 안심하십시오. 다만 이치대로라면 마땅히 태상황을 모셔와야 합니다." 우겸은 이전에 북경보위전으로 명성이 크게 올라간 상태이고, 다른 신하들도 그의 의견에 찬동한다. 여러 신하들의 보증을 받은 후, 주기옥은 걱정을 내려놓고, 경태원년(1450년) 중추절에 명영종을 북경으로 모셔온다.

남자들이 권력을 노리는 것과 달리, 만정아가 더욱 신경쓰고 있는 것은 자신의 어깨에 지워진 부담이었다. 왜냐함녀 그녀는 동궁의 궁녀에 불과했고, 정치는 그녀와 거리가 멀면서도, 가까웠다. 그녀가 보기에, 명영종이 귀환하는 것은 모든 것이 호전된다는 것을 의미했고, 그때가 되면 자신의 부담도 줄어들 터였다. 아마도 이 긴장된 생활을 하루빨리 끝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동궁에서의 임무를 내려놓고 손태후의 곁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의 흐름은 그녀의 바램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명영종이 포로로 잡혀 있는 동안, 명나라의 사신 양선(楊善)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돌아갈 수 있다면, 보통사람으로 살겠다. 가서 조상의 묘를 지키겠다. 다른 욕심은 없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명대종은 그래도 그를 존중하는 표시를 한다. 명영종은 태상황으로 받들고, 그를 남궁(南宮)에 안치시킨다. 그리고 명영종의 여러 후궁들도 남궁으로 가서 같이 살 수 있도록 조치해준다.

그러나, 전임황제의 존재는 현임황제에 있어서 불안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명영종이 복벽의 희망을 포기하게 만들기 위해 명대종은 군대를 보내 남궁의 수비를 책임지게 할 뿐아니라, 사람을 시켜 남궁의 자물쇠에 납을 붓는다. 이는 그를 높은 담장 안에 가두어두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명영종은 대세가 이미 기운 것을 보고, 그저 조용히 살아간다.

만정아의 생각은 깨져버렸다. 그녀는 할 수 없이 손태후가 부여한 사명을 계속 수행하면서, 동궁에 남아 태자의 곁을 지켜야 했다.

남궁에서 자유를 잃은 명영종은 아무런 생기가 없었다. 명대종은 황태자교체의 발걸음을 재촉한다. 경태3년(1452년), 명대종의 뜻을 알아챈 광서(廣西)의 토관(土官) 황굉(黃竤)이 상소를 올려, 황태자를 교체할 것을 건의한다. "비록 태자가 페하의 친조카여서 폐출시키는 것이 차마 마음 속으로 하기 힘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천명은 어길 수 없습니다." 황굉이 앞장서자, 일부 대신들도 분위기를 따라 움직인다. 그렇게 분위기가 형성되고, 주견심은 결국 황태자에서 폐위되어 기왕(沂王)으로 격하되고, 생명중 가장 어두운 시기로 접어든다.

기왕부(沂王府)로 옮겨가서 사는 동안, 주견심의 인생은 이미 분명하게 정해져 있었다. 성년이 되면 북경을 떠나 지방으로 가서 할일없는 번왕으로 지내야 한다. 변고를 방지하기 위해 명대종은 남궁과 기왕부의 왕래를 엄격히 제한한다.

명사(明史) 전문가 모패기(毛佩琦)는 이렇게 말한다: "한 어린 아이(주견심)이 정치의 저울 위에서 마음대로 배치된다. 그는 아마도 그에 대해서 전혀 몰랐을 것이다. 다만 사람들이 그를 대하는 태도는 그의 마음 속에 깊은 인상을 남겼을 것이다." 오랫동안 억압되어 거의 죄수같은 생활을 한 것은 주견심의 성격조성에 불가피하게 영향을 끼친다. 역사기록에 따르면, 주견심은 "나이가 비록 어렸지만, 이미 재능은 성인과 같았다. 시야가 남달랐고, 가볍게 말하거나 웃지 않았다." 이 어린 사내아이가 사람들 앞에서 보인 모습은 멍하거나 겁먹은 표정이었다. 여러 해가 지난 후에도 그는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 사람들과 가까이 하지 않았다.

그러나, 주견심의 앞에서 만정아는 유일한 예외였다.

비록 큰 변고가 있었지만, 만정아는 시종 폐태자 주견심의 곁을 조그만치도 떠나지 않았다. 그녀는 성년여성의 특유한 온유함을 감시 속에서 부모와 떨어져서 지내야 하는 어린 사내아이를 세심하게 돌봐주었다. 아마도 기왕부의 그 수많은 밤에 나이어린 주견심은 자주 악몽에서 깼을 것이고, 만정아가 안아주고 다독여주면 안심하고 다시 잠들었을 것이다

프로이트의 심리분석학에 따르면, 어린아이가 3-6살떄 오이디푸스컴플렉스가 쉽게 형성된다고 말한다. 주견심의 고독한 동년시절에 만정아는 바로 생모의 빈 자리를 채워준 것이고, 이로 인해 그녀는 그의 생명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 된다.

3

명대종이 아들 주견제를 황태자로 세웠지만, 아쉽게도 '천명'은 그에게 있지 않았다. 주견제는 1년간 태자로 지내다가 요절해 버린다. 어떤 대신은 적시에 황질 주견심을 다시 황태자로 세우자고 주장했지만, 명대종은 바로 거절한다. 사람들의 입을 막고, 자신의 혈맥으로 황위를 잇기 위하여, 명대종은 후궁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여러 해가 지나도록 아무런 수확이 없었고, 그저 자신의 몸만 상할 뿐이었다.

역사상 정치투기꾼들은 항상 존재한다. 이들은 새로운 권력교체를 꿈꾼다. 경태8년(1457년), 석형(石亨), 서유정(徐有貞)이 조길상(曹吉祥)을 우두머리로 하는 환관들과 함께 정월 십육일 밤에 명영종을 구해내서, 복위정변을 일으킨다. 역사에서 "탈문지변(奪門之變)"이라 부르는 사건이다.

명영종이 다시 황제에 오르고, 만정아는 드디어 빛을 보게 된다. 마침내 손태후가 처음 그녀에게 부여한 사명을 완수한 것이다. 주견심은 부친의 비호하에 다시 황태자에 오르고, 더 이상 두려움으로 떨어야 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이 해에 만정아는 28살이다. 이때의 그녀는 자신의 장래를 생각한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명나라때의 궁녀는 25살이 된 후에 황궁을 떠나 혼인할 수도 있고, 혹은 궁안에 남아서 평생 일할 수도 있다. 두 가지 선택이 놓여 있는데, 만정아는 후자를 선택한다.

만정아의 선택은 도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녀는 직감적으로 이렇게 하는 것이 훨씬 큰 수확을 얻을 것이라고 알고 있었다.

20여년의 궁중생활에서, 만정아는 토목보의 변, 탈문지변등 정치적인 대사건을 목격했고, 거기에서 예민하게 뒷배경의 중요성을 느끼게 된다. 큰 나무 아래에 있으면 시원한 법이다. 황태자 주견심은 의문의 여지없이 그녀의 가장 큰 뒷배경이다. 비록 이 작은 나무가 아직은 줄기와 잎을 가득 펴지 못했지만, '태자'라는 명분은 어쨌든 나중에 이 제국의 참천대수(參天大樹, 하늘을 찌르는 거목)로 성장할 것이다.

여러 해동안 함께 지내면서, 만정아는 주견심이 난관을 넘기도록 보살펴 준 외에 자신의 생활에서의 공허함과 적막함과 미래를 모조리 이 사내아이에게 기탁했다. 그녀는 언젠가, 자신이 이 사내아이에게 투입한 사랑으로 그녀의 하반생의 희망을 얻어낼 수 있기를 기대했다.

운좋게도, 그런 감정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만정아는 아주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한다. 수염이 점점 자라나는 소년이 점차 어린아이의 유치한 느낌을 벗고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그녀에게 친근하게 다가왔다. 직감은 만정아에게 말했다. 태자는 더 이상 그녀를 모친같은 역할을 해주기를 원치 않는구나. 그리하여 그녀는 한줄기 빛을 보게 된다.

만정아는 그녀의 손에서 자란 소년을 다시 살펴본다. 비록 이제 십여세이지만, 이미 성년남자의 기질이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남녀의 정이 살아났다. 만정아에 있어서, 이미 감정적인 것인지 이익을 생각한 것인지는 따질 필요가 없었다. 주견심은 만정아에게 깊은 애정을 느꼈고, 또 다른 극단으로 향한다.

4

천순8년(1464년), 주견심이 즉위하고, 연호를 성화(成化)로 하니 그가 명헌종이다.

이때 폐출당해 불안한 나날을 보내던 태자에서 일약 국가최고권력을 장악한 황제가 되었다. 그는 더 이상 만정아가 보호해줄 필요는 없었다. 이제는 오히려, 그가 자신을 도와주었던 만정아에게 보상해야할 때가 된 것이다.

이는 두 사람의 명분문제와 관련된다. 혼인은 원래 사사로운 일이지만, 황제에게 그것은 공적인 일이다.

일찌기 명영종 천순연간, 태자 주견심의 혼사는 이미 일정이 정해졌다. 단지 그가 사랑하는 만정아는 당연히 후보에서 제외되어 있다.

명영종이 복벽한 후, 명대종과 조길상등 세력에 대한 청산에 바빴고, 아들에게 관심을 쏟을 시간이 부족했다. 그가 주의력을 아들에게 돌렸을 때 비로소 발견한다. 아들 주견심은 이미 혼인할 나이가 되었다는 것을 그리고 노궁녀 만정아와 너무 가깝게 지낸다는 것을. 두 사람의 사이는 애매하다는 것을.

다만 만정아가 주견심을 돌봐준 공로가 있어, 명영종은 그들의 사이에 간섭하기 힘들었다. 그리하여 한가지 해결방법을 강구한다: 주견심에게 젊고 아름다운 여자를 골라주어, 나이들고 용모가 쇠한 만정아를 대체하도록 하여 아들이 올바른 궤도에 접어들게 하는 것이다.

천순7년(1463년), 명영종은 태자비를 고른다. 오씨(吳氏), 왕씨(王氏)와 백씨(柏氏)등 3명의 후보자를 궁안에 남겨 예의를 가르친다. 그러나, 아들의 혼인을 마무리하기 전에 명영조은 다음 해(1464년) 붕어한다. 다행히 후보범위는 이미 결정되었으므로, 양궁태후는 명영종의 유언에 따라, 오씨를 새로운 황제의 중궁황후로 책봉한다. 왕, 백 두 사람은 측비가 된다. 그리고 길일을 정해 주견심의 혼인을 거행한다.

이 혼인에 만정아에게는 자신의 역할과 위치가 없었다. 그리하여 상당히 실망한다. 다만 애정의 역량은 그녀를 근심에서 점점 벗어나게 해준다. 3명의 후비가 젊고 아름답지만, 명헌종에게는 흡인력을 발생시키지 못했다. 신혼이지만 명헌종은 상징적으로 상대할 뿐, 바로 이어서 만정아를 찾아간다.

한 사람이 총애를 독점한다는 것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쓸쓸하게 지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명헌종의 정처(正妻)로서 오황후는 화를 참지 못하고 '육궁지주(六宮之主)'의 위세를 보인다. 태감들을 시켜 곤봉으로 노궁여 만정아를 두들겨 팬 것이다. 명목은 후궁을 정돈한다는 것이었다.

등급이 삼엄한 후궁에서 황후가 궁녀를 때리는 일은 별 일도 아니다. 그러나 만정아는 명헌종이 아끼는 여인이다. 일찌기 황제를 보살펴 자라게 해준 보호신이다. 그리고 명헌종이 성에 눈뜰 때 처음 상대한 여인이다. 오황후는 자신이 행동이 명헌종의 역린을 건드렸다. 금방 그녀는 명헌종에 의해 '냉궁'으로 쫓겨난다. 이때는 그녀가 황후에 오른지 겨우 1개월여가 지났을 때이다.

명헌종은 만정아에게 애정이 아주 깊었다. 다만 만정아는 그 사랑에 안전감이 없었다. 후궁에서 여러 해동안 생활하면서, 그녀는 "모이자귀(母以子貴)" 어미는 아들이 귀해져야 귀해진다는 이치를 잘 알았다. 비록 명영종이 임종전에 이미 '자식을 낳지 않은 후궁은 순장시킨다'는 궁중누습은 폐지시켰기 때문에 목숨을 잃을 우려는 없었찌만, 인륜관념이건 아니면 총애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 아들을 낳을 필요가 있었다. 이미 출산에 좋은 나이를 넘긴 그녀는 다시 한번 도박을 건다.

비록 나이에서 열세였지만, 명헌종의 편애는 만정아가 모친이 되는 꿈을 이루어준다. 성화2년(1466년), 37살의 고령임산부는 마침내 명헌종을 위해 첫번째 아들을 낳는다. 이전에 양궁태후는 모두 만정아의 출신과 연령을 이유로 하여 명헌종이 그녀를 비로 들이는 것에 반대했었다. 그러나 이번에 황장자가 태어나자, 마침내 만정아는 귀비(貴妃)에 봉해질 수 있게 된다.

명헌종은 더욱 기뻐해 마지 않았다. 성지를 내려 장인 만귀성(萬貴成)을 "정오품금의위오천호(正五品錦衣衛五千戶)"에 임명한다. 선덕제때부터 금의위의 관직은 점차 특수한 상사(賞賜)로 된다. 아무 일도 할 필요없이 그저 관직만 걸고 녹봉을 받으면 된다. 성화7년(1471년)에 이르러, 이 국장(國丈)은 계속 승진을 거듭하여, 정삼품의 금의위지휘사에 오른다.

모든 일이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을 때, 하늘은 만정아를 놀리는 일이 발생한다.

한살도 되기 전에, 만정아와 명헌종의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 불행히 요절한다. 사랑하는 아들을 잃자, 명헌종이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만정아가 우울할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여, 누군가 그녀와 함께 있어주면서 아들을 잃은 아픔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어야한다는 것이었다. 그후 만정아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명헌종의 총애를 독점한다.

이에 대하여 명나라의 문인 심덕부(沈德符)는 이렇게 탄식했다: "지고이래 비빈이 승은을 가장 늦게까지 받고, 가장 독점적이고 가장 오래 받은 것이 그녀이다."

5

천사와 악마의 차이는 왕왕 마음 씀씀이 하나 차이이다.

사람이 중년에 들어 아들을 잃었으며, 출산능력은 날로 쇠퇴하여 다시 임신하지 못하게 된다. 이런 처참한 사건을 직접 겪은 사람으로서 만정아는 이런 침중한 타격을 견뎌내지 못한다. 그녀는 무서운 투부(妬婦)로 변신하고, 심리마저도 왜곡되기 시작한다.

<명사>기록에 따르면, 매번 다른 비빈이 임신했다는 말을 들으면, 만정아는 후궁을 돌아다니는 사신이 되어 '약을 먹여 낙태시킨 경우가 무수히 많았다."

이처럼 악랄한 사건이 계속 발생하는데, 명헌종이 그것을 몰랐을 리 없다. 그러나 그의 '냉담'은 불가사의할 정도였다. 심리분석가인 프로이트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사람의 잠재의식에서 어떤 유일무이, 대체불가능한 것에 대한 애정이 있으면 영원히 추구하는 활동으로 나타난다. 일찌감치 '둘 중 하나"의 선택을 하기 어렵게 만든다.

황장자가 요절한 후, 후궁에서 여러 해동안 황자가 태어나지 않았다. 국본이 아직 확정되지 않다보니, 마음이 조급해진 조정대신들은 속속 글을 올려 명헌종이 "널리 은혜를 베풀어 후사를 많이 잇게"할 것을 청한다. 평소에 별다른 할 일이 없으면 자식이나 많이 낳으라는 것이다. 그러나 건의가 많이 올라오자, 명헌종은 귀찮아 진다: "이건 짐의 집안 일이다. 짐이 알아서 처리하겠다."

사실상 명헌종은 그가 총애한 만정아가 다시 자식을 낳아줄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시종 아무런 성과도 나오지 않는다. 명헌종은 다른 비빈과 잠시 관계를 갖지 않는다. 이런 일이 일반 백성의 집안에서 일어났다면, 이해할 수 있지만, 문제는 그가 명나라의 황제라는 것이다. 황제의 일은 사적인 일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는 것이다.

명헌종은 결국 압력을 버티지 못하고, 측비 백씨를 가까이 하여 그녀로 하여금 성화5년(1469년) 아들 주우극(朱祐極)을 낳게 한다. 다만 이 아이도 3살때 요절한다. 그의 죽음에 관하여 <명사>는 확실하게 지적한다: "당시 만귀비가 총애를 받으면서 질투하여....백현비가 낳은 도공태자를 해쳤다."

성화11년(1475년)의 어느 날, 명헌종은 거울을 보다가 자신에게 백발이 몇 가닥 생긴 것을 보게 된다. 그리하여 탄식하며 말한다: "나도 나이가 들었구나. 그런데도 아들이 없다." 황제의 머리를 빗겨주던 태감 장민(張敏)이 돌연 바닥에 엎드리면서 말한다: "황상에게는 기실 아들이 하나 있습니다."

원래 명헌종은 내장고(內藏庫)에서 기(紀)씨성의 궁녀와 잠자리를 한 바 있는데, 그후 이 일을 잊고 있었다. 기씨는 이때 임신한다. 소식이 금방 만귀비의 귀에 들어갔고, 그녀는 사람을 시켜 낙태약을 먹인다. 그러나 약을 가지고 간 궁녀는 양심상 아이를 죽일 수 없어, 기씨의 배가 부른 것은 병때문이라고 보고한다. 그렇게 기씨는 위기를 넘기고 서원에서 아이를 낳는다. 나중에 만정아는 아들을 낳았다는 말을 듣고, 사람을 보내 영아를 익사시키게 한다. 그러나 명령을 집행하러 간 태감 장민은 차마 아이를 죽일 수 없어 임무를 완성했다고 보고하고, 아이를 몰래 안락당(安樂堂)에서 기른다. 아마도 만정아에 대한 불만때문인지 많은 태감, 궁녀들이 그를 엄호했고, 황후 오씨까지 가담한다. 이렇게 하여 이 아이는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서 성장했다.

명헌종은 6살짜리 아들을 보고 기뻐서 눈물을 흘린다. "이게 내 아들이구나. 나와 꼭 닮았다." 그후 그에게 주우탱(朱祐樘)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황태자로 세운다.

만정아는 그 소식을 듣고 분노하여 욕을 한다: "너희들이 감히 나를 속이다니!" 그러나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그녀도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그녀는 "의복을 갖춰 입고 들어가 축하해주고, 기씨모자에게 후한 하사품을 내리며, 길일을 택해 입궁하도록 조치했다." 이들 모자에 큰 선의를 표시한 것이다.

주태후는 손자가 있다는 말을 듣자, 아들 명헌종의 어렸을 때의 비참했던 경력이 떠오른다. 그리하여 그녀는 황태후의 명의로 명헌종에게 명령한다: "내가 이 아이를 곁에 두고 키우겠다." 어쨌든 만정아에 관한 소문을 그녀도 일찌감치 들어서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한번은 만정아가 태자를 그녀의 침궁으로 불러서 놀자고 했다. 주우탱으로서는 사양하기 힘들었다. 떠나기 전에, 주태후는 걱정을 하며 태자에게 당부한다. "그곳에 가면 아무 것도 먹지 말아라." 만정아는 아주 열정적이었고, 음식을 많이 준비했었다. 그러나 주우탱은 이미 배가 부르다고 말한다. 이때, 만정아는 다시 그에게 탕을 떠준다. 주우탱은 한참 고민하다가 한 마디 내뱉는다: "저는 독이 들어있을까 겁납니다." 그 말이 떨어지자 장면은 아주 난감해진다.

주우탱이 떠난 후, 만정아는 화를 참지 못한다: "어린 나이에 감히 저렇게 말하다니, 나중에 어른이 되면 나를 죽이지 않겠는가?"

태자 주우탱의 실언은 만정아로 하여금 나중에 신황제가 등극하면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공포감을 심어주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한 가지 생각을 품게 된다: 태자를 교체하자.

그녀는 이전까지의 태도를 바꾸어 황제에게 여러 후궁들과 잠자리를 할 것을 권한다. 그렇게 하여, 명헌종의 후궁들은 11명의 황자를 연이어 낳게 된다.

명헌종의 후사가 많아지자, 만정아는 태자를 교체할 생각을 품는다. 그러나 그녀가 말을 하자, 태자를 상징하는 동악 태산에 지진이 연이어 발생한다. 그러자 여러 신하들이 이는 하늘의 경고라고 말하고, 명헌종은 놀라서 더 이상 태자교체의 일은 꺼내지 못하게 된다.

기실, 만정아의 우려는 쓸데없는 것이었다. 나이에서 보더라도, 주태후와 같은 나이인 '조모급'의 인물인데, 만정아가 특히 장수하지 않고서는, 다음 황제가 등극할 때까지 살아있을 가능성이 크지 않았다.

6

만정아는 성화23년(1487년) 정월에 사망한다.

이 해에 만정아는 58세였다. 이치대로라면, 나이 근 육순에 이른 할머니로 온갖 풍파를 겪어본 사람이라면 이제는 많은 일들을 담담하게 보고 담담하게 행동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명헌종의 그녀에 대한 무제한의 포용은 그녀로 하여금 교만하게 만들었고, 나이가 들면서 성격이 개선되지 않고 오히려 더욱 나빠졌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만정아는 화가나서 죽었다는 것이다. 당시 한 궁녀가 실수를 했다가, 만정아에게 곤장을 맞았다. 그래도 그녀는 화가 풀리지 않았고, 오히려 그녀의 심장을 자극하여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만정아가 죽었다.

교묘하게도, 명헌종도 그녀가 죽은지 7개월만에 붕어하게 된다. 나이 겨우 41살이었다.

만정아같은 인물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이건 확실히 어려운 문제이다.

그녀는 가련한 인물이다. 또한 발호한 인물이다. 그녀는 불행을 겪은 바 있고, 행복도 얻은 바 있다. 그녀는 자신의 선량함도 보여주었고, 악독한 일면도 감추지 않았다.

한번의 국난, 한번의 탁고(托孤), 한번의 정변, 이런 우연의 수레바퀴가 맞아 돌아갔고, 그녀를 운명의 미지의 영역으로 몰아넣었다. 그리고 그녀를 권력의 정점으로 데려간다. 그녀는 일찌기 난세에 어린 태자의 바람막이가 되어 보호해주었지만, 권력에 물들면서 스스로의 목숨을 갉아먹는 그림자가 된다. 그녀가 악마화된 것은 겉으로 보면 인간본성의 침륜이지만, 본질적으로는 황권시스템이 운용된 필연이다. 깊은 궁궐 내에서 아무도 이질화되고 잡아먹힐 숙명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녀의 비극은 위로 소급해가야 한다. 어려서 집안이 몰락하고, 궁중에 들어가 노비가 된 하층여자는 처음부터 황권제도하의 희생양이다. 주견심이 모든 열정을 그녀에게 쏟을 때, 그런 의존은 그녀에게 유일한 구명띠가 된다. 그녀는 반드시 그것을 잡아야 했다. 설사 그것이 자신의 목을 조르고 자신을 왜곡시키더라도.

그녀는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이다. 역사에 의해 만들어졌으면서도, 직접 역사책에 혈흔을 남겼다. 역사는 아마도 그녀의 악독함에 대하여 가혹하게 책망할 것이다.그러나 자금성에서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다.

문제는 역사상 얼마나 많은 만정아가 시대에 끼어서 오래된 숙명을 반복했느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