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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세번(嚴世蕃): 사상최강의 "간신2세"

중은우시 2024. 11. 24. 16:56

글: 품명담사논세사(品茗談史論世事)

세상에 부호2세는 많다. 어떤 사람은 부모의 사업을 지켜내면서 발전시키고, 어떤 사람은 그저 남긴 것을 다 말아먹는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보기에, 전자는 총명하고 능력있는 사람이고, 후자는 멍청하며 나쁜 사람이다. 그러나 이런 사람이 있다. 전자와 후자의 정수를 모두 갖추고 있다. 그는 총명하면서도 사악하고, 수업(守業)하면서도 패가(敗家)하는 이미지이다. 그가 바로 엄세번(嚴世蕃)이다.

엄세번은 명나라 가정(嘉靖)연간의 권신(權臣) 엄숭(嚴嵩)의 외동아들이다. 가정연간이라는 이상하고 기묘한 시대에 살아가면서, 엄세번은 자연스럽게 그의 출신에 걸맞게 기이한 일들을 벌이게 된다.

부친 엄숭의 비호하에, 그는 천성적으로 총명한 자질을 타고 났지만, 교횡발호(驕橫跋扈)했다. 그는 또한 장수선무(長袖善舞, 긴 소매자락으로 춤을 잘 춘다. 좋은 여건을 활용하여 잘 해나간다는 뜻임)하고 정치수단이 고명하였다. 그러면서도 탐욕스러워 재물을 긁어모으고 호화사치스러운 생활을 한다. 심지어 소첩을 27명 두고, 시녀와 남총도 무수히 두었다.

이 대명이 자자한 간신이세는 어떤 재주를 가지고 또 다른 총명한 패가자(가정제를 가리킴)의 아래에서 잘 나갈 수 있었을까?

만일 고대에 엄세번에게 학위를 수여한다면, 그는 분명 심리학박사학위를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박사학위논문의 제목은 바로 "가정제의 심리문제에 관한 연구"가 되었을 것이다. 엄세번은 심리전에 정통했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잘 읽어냈다. 가장 잘하는 것은 바로 가정제의 심리를 읽어내는 것이었다.

그는 황제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잘 알았으며, 항상 관건적인 순간에 황제가 좋아하는 말을 해서 황제의 신임을 깊이 얻는다. 비록 엄세번은 용모가 뛰어나지 않았고, 심지어 약간은 추한 편이었지만, 그는 자신의 뛰어난 기지로 가정제의 총애를 얻어냈다. 엄세번은 도대체 얼마나 총명했을까?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그의 앞에서는 누구도 비밀을 유지할 수 없다고 했다. 그저 한 마디만 말하면 그는 바로 그 다음에 무슨 말을 할 지를 알았고, 단지 손을 한번 흔드면 그는 네가 다음에 무엇을 할 지를 알았다고 한다. 이런 독심술로 엄세번은 가정제의 마음을 완전히 휘어잡는다.

조정에서 엄세번은 항상 교묘하게 화제를 돌려서, 황제의 의사결정이 그가 바라는 방향으로 이루어지도록 유도했다. 그는 황제를 자신의 대변인으로 만드는 재주가 있었떤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통찰하는 외에 엄세번은 정무처리에 있어서 독보적인 견해가 있었따. 엄세번은 엄숭의 아들이고, 엄수번은 내각수보이다. 명나라의 제도는 이전의 몇몇 왕조때와 크게 달랐다.

명나라의 황제는 권력집중을 위해 승상의 직위를 철폐하고, 내각을 만든다. 이 내각은 현재의 비서실이다. 매일 대랑의 공문을 처리해야 해서, 보통사람이라면 이런 공문을 처리하는데만도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러나, 엄세번은 달랐다. 그는 기억력이 아주 좋았다. 명나라의 각종 규장제도를 모두 기억하고 있을 뿐아니라, 산더미처럼 쌓인 공문에서도 신속히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문제해결의 방법도 찾아낼 줄 알았다. 정무처리에서, 그의 능력은 그의 부친 엄숭보다 뛰어났다.

어떤 때는 엄숭이 난제에 부닥치면, 자신의 아들을 불러서 해결방법을 강구하게 한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엄세번은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다. 다만 그는 그 능력을 잘못된 곳에 사용했다. 자신의 총명과 재지, 그리고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으로 조정에서 완전히 자리를 잡으면서, 그와 부친 엄숭은 함께 다른 누구도 뛰어넘을 수 없는 명나라정치상의 큰 산이 된다.

능력도 있고, 재능도 있다. 그러나 뛰어난 집행력이 없다면 큰 사업을 이루어 낼 수가 없을 것이다. 엄세번의 뛰어난 점은 이 두가지 점 외에 가장 무시할 수 없는 점이 바로 그의 왕성한 정력이다. 세상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다. 주색은 사람을 가장 크게 해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세상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이 엄세번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엄세번은 밤새도록 술과 여자에 빠져 지낸다. 생활방식은 극히 호화사치스러웠따. 소문과 일부 사료에 따르면, 그는 27명의 소첩과 무수한 시녀를 거느렸다. 사생활이 극도로 혼란스러웠다. 당시 그는 신하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여 결당영사(結黨營私])하기 위해, 자주 대형연회를 열어 많은 손님들과 술을 마시면서 즐겼다.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깊은 밤까지 그치지 않았다.

만일 현대인이 이렇게 하다가는 다음 날 분명히 두 눈이 퉁퉁 붓고 기운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엄세번은 다음 날에도 말짱한 모습으로 조정에 모습을 나타내고 정무처리나 문제처리속도는 전혀 밤을 새운 사람같지 않았다.

이런 천부적인 재능을 누가 선망하지 않겠는가. 엄세번은 자신의 이런 세 가지 남다른 능력에다가 황제와 자신가문의 힘을 가지고 있어, 아무도 그를 거스르지 못했다. 다만 그의 성격은 당시 적지 않은 사람들을 괴롭게 만들었다.

엄세번은 어떤 죄들을 저질렀을까? 그는 소각로(小閣老)라고 불린다. 이 칭호는 겉으로 보기에는 환고자제(紈絝子弟)의 색채이지만, 엄세번 본인은 확실히 비전형적인 환고자제이다. 그가 조정에 들어가는 길은 과거의 길이 아니었고, 완전히 자신의 부친의 덕으로 관직을 얻는다. 그러나, 이런 점이 소각로의 관료로서의 승진의 길에 방해되지 않았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엄세번은 용모가 별로였다고 했는데, 도대체 어떤 모습이었을까?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엄세번은 아주 뚱뚱했다고 한다. 그리고 한쪽 눈이 멀었다고 한다.

비록 엄세번은 생긴 모습이 뚱뚱하고 못생겼지만 그의 도화운은 매우 좋았다. 그의 처첩은 수량이 많았을 뿐아니라 백리에서 한명 정도로 뽑은 미인들이었다. 이들은 용모가 뛰어났을 뿐아니라, 모두 재녀였다.

이들 처첩들 중에서 일부는 문단(文壇)에서 왔고, 일부는 상계(商界)에서 왔으며, 또한 관료집안의 아가씨도 있었다. 이들 중 어떤 여자는 다른 사람이 보내왔고, 어떤 여자는 스스로 찾아왔다. 기실 이런 모습이 그다지 이상할 것도 없다. 엄숭 부자는 가정제시절에 가장 잘나가던 사람들이다. 이들 두 사람에게 잘보일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엄숭 부자는 원래 자신의 세력범위를 확대하는데 열중했다. 그리하여 오는 사람은 막지 않았따. 이들 경국경성의 미녀들 외에 그들 부자의 일당은 각지에서 금은보화를 긁어모아서 두 사람에게 보냈다.

엄부(嚴府)내에서는 밤새도록 음악이 끊이지 않았고, 금은보화가 창고에 가득했다. 세계의 모든 기진이보는 엄부내에서 너무나 흔하게 볼 수 있는 물건이었다. 사치스러운 생활만으로는 엄세번의 날로 커지는 탐욕을 만족시켜주지 않고 오히려 욕망을 더욱 키운다. 엄세번은 재산을 긁어모으고 매관매직하는데 열중한다. 당시에 소각로에게 충분한 돈만 가져다 주면 관직을 얻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돈으로 관직을 얻은 사람들은 다시 엄숭 부자의 일당이 되어 엄세번의 수하가 된다.

엄세번과 어울리길 원치 않는 사람들은 크게 타격을 받는다. 모함받고, 탄압받고, 제거된다. 엄세번은 자신의 정적에게는 악독하게 대한다. 게다가 엄세번은 여러 해동안 세력을 키워왔다. 그런 상황에서 엄세번에게 잘못 보이는 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높이 올라가면 반드시 떨어지기 마련이다. 엄세번의 좋은 나날은 어쨌든 자신의 부친 엄숭의 기초 위에서 쌓은 것이다. 일단 엄숭이 타도되면 그도 따라서 끝나는 것이다. 엄숭은 자신의 지위가 영원불변하리라고 여겼다. 다만 그는 자신의 지위를 용상에 앉은 사람이 준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일단 용상에 앉은 사람의 마음이 바뀌면 그의 좋은 시절도 끝나게 되는 것이다.

가정41년, 즉 1562년, 권신 엄숭은 정치투쟁에서 패배하고, 그의 아들 엄세번도 연좌된다. 처음에 엄세번은 광동(廣東) 뇌주(雷州)로 유배보내어진다. 아마도 이때까지는 황제가 엄세번의 목숨을 빼앗을 생각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소각로는 평생 자기마음대로 살아왔던 사람이다. 일시적으로 이런 신분변화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판결에 따라 뇌주로 가지 않고, 자신의 고향으로 가버린다. 그리고 고향에 집을 짓는다. 이뿐 아니라 엄세번은 또 한 가지 큰 일을 꾸민다.

명나라는 아주 특별한 시대이고, 이 시기에는 한 무리의 왜구가 활약했다. 이들 왜구는 원래 일본의 낭인이고, 고용되어 밀수사업을 벌인 것이다. 그리고 이들 일본낭인은 잔인무도했고, 여러번 연해를 침범하여 주민들을 해친다. 명나라황제는 왜구에 대해서 심악통절했다. 왜구가 한 일은 밀수사업이고, 그것은 명나라황제의 주머니를 터는 일이었다.

엄세번은 고향으로 돌아간 후, 분수를 지켜 조용히 지내지 않고 이들 왜구와 연락한다. 이는 황제의 엄세번에 대한불만을 직접적으로 분노로 승화시킨다. 그리하여 직접 엄세번을 체포하여 하옥하라고 명하게 된다.

엄세번은 감옥에 갇힌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음 해에 심문이 끝나고 가정44년(1565년) 삼월 이십사일, 참수의 극형을 받는다. 그의 일당인 나용문(羅龍文)등도 함께 처형당한다.

엄세번이 사망할 때 나이는 52세이다. 그는 죽기 전에 나용문과 끌어안고 통곡한다. 아주 처참했다. 이들 두 사람이 후회로 눈물을 흘리는 것인지 아니면 두려움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면 둘 다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엄세번의 몰락은 명나라조정 내지 봉건왕조 권신의 축소판이다. 이들 권신들은 어느 정도 이런 모습이었다. 다만 최후는 모두 일치한다. 고인들은 역사를 읽기 좋아했는데, 왜 역사에서 이런 경험은 얻어내지 못한 것일까? 오히려 전부후계(前赴後繼)로 같은 길로 뛰어들어, 자신만은 예외가 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결과는 전혀 예외가 없었다.

아마도 인과가 반대되므로, 탐욕스럽지 않은 사람이 그 자리에 앉지 않으면, 어떤 사람이 그 위치를 탐욕스러운 사람에게 넘겨준다. 명청시대 조당에서의 부정부패는 끊이지 않는다. 원인이 무엇인지를 따져보면 그저 역대왕조에서 용상에 앉은 사람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엄세번은 의문의 여지없이 총명한 사람이다. 이렇게 총명한 사람이 자신의 총명함을 올바른 일에 쓰지 않았으니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간신이세, 부호이세, 관료이세, 그는 이세이면서 아주 능력있는 이세였다. 그는 자신의 천부적인 재능을 이용하여, 부친의 정치적 영향력이 확대되도록 도왔다. 엄숭이 보기에, 이런 아들이야말로 효자였다.

다만 부자 둘 가운데 부친의 방향이 원래부터 잘못되어 있었다. 아들의 방향도 따라서 잘못된다. 두 개의 착오가 겹치면서 엄세번의 인생은 철저히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간다. 재능이 있고 일하는 것을 좋아했지만, 덕행이 따르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재능이 있더라도 쓸모가 없다.

올바르지 못한 사람이 고위직을 차지하면 그 위해가 얼마나 클지는 깊이 생각해야할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