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국의 역사분석/중국역사의 분석

중국의 "백년민운(百年民運)"은 왜 항상 실패했는가?

by 중은우시 2025. 1. 5.

글: 시화(施化)

'백년민운'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백년이 넘는다. 중국민운(민주화운동)의 비조는 손중산이다. 1925년 3월 12일 사망했고, 2025년까지 꼬박 100년이 된다. 그리고 거의 모든 그의 뒤를 잇는 민운인사들은 모두 손중산선생의 의발을 이었다. 비교적 대표적인 사람으로는 왕빙장(王炳章) 박사가 있다. 그는 평생 감옥에 갇혀 있었고, 이미 수감된지 22년이 되었다. 비록 작년 세계인권조직 Freedom House에서 연도자유상을 수여했지만, 그의 사업은 지속되기 어렵게 되었다. 그래서 제목으로 "백년민운은 실패했다"고 말하더라도 별다른 이견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이런 의문을 가진다. 손중산 선생의 신해혁명은 성공하지 않았느냐고? 그것을 성공한 한차례의 민운으로 볼 수있지 않겠느냐고?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소위 성공한 운동은 단순히 한차례의 정권교체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생명력으로 나타나야 한다. 생명력이 지속되지 못하면, 최종적으로 사상, 정신, 문화에서 경제까지 주변세계의 현실존재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못하기 때문이다. 확실히 신해혁명은 오늘날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작용력은 제로에 가깝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독재적인 국가중 하나이고, 완전히 손중산 선생의 의도에서 완전히 배치되기 때문이다.

역사상 생명력있는 정치운동은 손가락으로 꼽을 만하다. 예를 들어, 영국의 대헌장운동은 거기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고, 미국의 조기이민 메이플라워호운동도 또 다른 사례라 할 수 있다. 앞에서 정의한 바에 따르면 프랑스대혁명은 성공하지 못했다. 오늘날의 프랑스에 거의 파리공사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중국의 민주혁명도 실패했다. 현재 중국공산당에게서 초기의 평등, 자유의 그림자는 찾아볼 수가 없다. 6.4민주운동도 마찬가지로 실패했다. 30여년이 지난 오늘날 그 목적중 얼마나 남아 있는가. 사람들이 매년 6.4를 기념하지만 주로 죽은 원혼을 기념하고 있다. 가치관에서 비교적 공동(空洞)인 민주외에 나머지는 별로 남은게 없다.

여기까지 쓰다보니, 여러분들은 중국의 민주운동이 이미 100년간이나 시도해왔지만, 동시에 모든 시도가 실패했다는 것에 동의할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단계로 넘어가서 물어보자. 왜, 도대체 무엇때문일까?

가장 간단한 대답은 독재가 너무 강대하다는 것이다. 만일 이 대답이 일반 백성의 입에서 나온다면 그건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여기에서 묻는 대상은 그들이 아니다. 중국의 구면모를 변화시키는 것은 스스로의 사명이라고 여기는 인인지사(仁人志士)들에게 묻는 것이다. 사명을 지고 있다면, 손일선(孫逸仙, 손문, 손중산)을 모범으로 삼아 회피하는 말은 하지 않아야할 것이 아닌가. 청왕조는 강대하지 않았는가? 그래도 결국은 무너뜨리지 않았는가.

아쉽게도 무너져도 소용이 없었다. 청왕조가 무너진 것은 중국인들이 민주사상을 실현하는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 같은 이치로 장개석정권이 무너진 것도 민주실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이러한 점은 나에게 이런 추리를 말해준다. 또 다른 어떤 것이 정권보다 훨씬 강대하고, 독재통치자의 배후에 숨어 있어, 민운인사들이 자신의 민주사상을 실현하는 걸 방해하고 있지 않은가? 이것은 독재가 강대하냐 아니갸, 무너지냐 아니냐와 아무런 논리적 관계가 없다.

사실을 분명하게 하기 위하여 여기에서 한가지를 먼저 물어보자. 역대이래 민주운동에서 원하던 것이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가지고 있는 자료는 유한하지만, 다행히 왕빙장 선생은 민주운동의 지침서라고 할 수있는 책 <중국민주혁명의 길> 일명 <민운지침서>를 냈다. 지금까지도 중국의 국내외민주운동인사들이라면 모두 이 책의 가르침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 다만 반복적으로 시도해도 시종 광명을 볼 수가 없다. 이 책에서는 민주의 여러가지 개념을 얘기하고, 민주운동에 대한 질책을 반박하고, 민주운동의 구체적인 단계를 설정하였지만, 유독 한 가지만은 대답하지 않았다: 민주운동의 목적은 도대체 무엇인가?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건 분명하지 않느냐고. 독재의 구제도를 무너뜨리고, 민주자유의 신사회를 건립하는 것이라고. 그렇다. 그 이치를 백년동안 사람들마다 얘기했다. 다만 거의 아무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점은 그 모든 것이 수단 혹은 단기목표이지 최종목적은 아니라는 것이다.

수단을 목적으로 설정하고, 진정한 목적을 찾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백년민운이 실패한 근본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민운의 성패에 신경쓰지 않고, 이 주제를 회피하려고만 할 것이다. 혹은 몇몇 민운지도자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려 할 것이다. 그렇다면 필자가 여기에서 중국의 다른 모든 사회운동을 임의로 열거하면서 마찬가지로 그저 수단에만 주의하였고, 목적을 인식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실패한 경우를 열거해보겠다. 민주운동의 실패는 개별적인 사례가 아니다.

너무 오래된 것은 그만두고, 중국에서 이미 발생했고, 역가시록이 비교적 완전한 사실을 말하기로 한다. 예를 들어, 양무운동(洋務運動). 양무운동은 당연히 실패했다. 그것은 중국을 부강하게 만들지도 못했고, 정권을 공고히 하지도 못하여, 결국 소동과 전란이 일어나게 된다. 수단을 목적으로 취급했고, 그리고 다른 모든 것을 돌보지 않고 추구했기 때문이다. 여기의 수단이 가리키는 것은 서양인의 돈과 기술을 가지고 중국의 경제모델을 개조하여, 단순히 경제를 발전시키려 한 것이다. "중학위체, 서학위용" 사용한 것은 그저 수단이었다.

중공의 민주주의혁명도 마찬가지의 실수를 저질렀다. 그러나 여기에서 중시한 것은 경제수단이 아니라, 정치수단이었다. 즉 폭력혁명으로 정권을 무너뜨리고 재건하는 것이었다. 이는 쵝에 보기에는 성공한 것처럼 보였다. 어쨌든 장개석을 작은 섬으로 쫓아버리고, 대륙의 수십개성과 지구의 정권을 통일하였으니까. 아쉽게도 수단의 성공이 목적의 성공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정권이 기본적으로 건립된 후, 목표를 잃어버렸다. 바꾸어 말하면, 자신이 도대체 무엇을 원하는지를 몰랐다. 모두 무엇을 원하는지는 몰랐고, 그저 위대한 지도자 자신이 결정해서 그가 원하는 것을 했다. 현재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이미 잘 알고 있다. 그가 원한 것은 권력이었고, 권력세습이었다. 비록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현재까지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지만.

포스트마오시대에 총명하고 능력있는 등소평은 다시 또 다른 수단을 중시하고, 목표는 불분명한 운동을 시작한다. 개혁개방. 마찬가지로, 개혁은 그저 수단을 추구했지, 목적을 추구하지 않았다. 개혁은 일부 사람이 먼저 부유해지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것이 무슨 목적인가. 부유해진 이후에는 다시 빈부를 균등하게 만들 것인가?

목적이 없는 운동은 맹목적인 운동일 뿐아니라, 실패가 정해진 운동이다. 중공이 발동한 개혁개방은 일시적으로 꽃을 피웠지만, 중공 자신에 의해 말살되고 있다. 그 원인은 단순히 지도자를 잘못 선택했기 때문이 아니다. 근본은 무엇이 맞는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돌맹이를 두드리며 강을 건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들은 중국문화의 본질적인 현상을 드러낸다. 심층적인 추리를 잘 하지 못하고, 표면적인 답안에 만족하는 것이다. 급공근리(急功近利)하고, 호대희공(好大喜功)하는 것이다.

역대이래로 중국지도자들은 문화가 있든 문화가 없든, 모두 거시적인 서사를 좋아했고, 그것을 자랑하기를 즐겼다. 신룡은 그 꼬리가 보이지 않는 것과 같은 빈말이나 상투적인 말을 떠벌렸다. 사물의 본질에 대한 정곡을 찌르는 말은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 빈말이나 상투적인 말이 민중의 심리를 붙잡는데는 효과적일지 모르겠지만, 실제문제는 전혀 해결할 수가 없다.

민주운동의 지도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어, 그들이 백성의 고통을 얘기할 수 있고, 관료들의 부정부패를 얘기할 수 있다. 매년 그런 얘기만 한다. 그러나 해결방법은 무엇인가? 오직 하나이다. 중공정권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시진핑도 반부패로 부정부패와 싸우지 않는가. 그것도 백성들에게 복이 아닌가. 그럼 여러분들의 말과 무엇이 다른가? 하필이면 정권을 무너뜨려야한다고 말하는가. 필자의 생각에 아마도 이것이 민주운동이 광범위한 민중의 지지를 얻어내지 못하고 있는 가장 주요한 원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들어 진정 깊이있게 본질을 살펴본 중국문화인은 딱 한명이 있는 것같다: 이중톈(易中天)

여러분들도 이중톈이 몇년전에 한 강연을 한번 들어보라. 유튜브에 그 강연영상이 남아 있다. 제목은 "이중톈이 담대하게 민주를 이야기한다(易中天膽大包天談民主)"이다. 이 강연에서, 이중톈선생은 아주 생생하게, 그리고 간결하게 민주운동의 목적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를 설명했다. 그것은 바로, 모든 개인의 사유재산권이 신성불가침하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이중톈 교수는 법제(法制)와 법치(法治)의 차이점을 설명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법제(法制)는 칼(刀)이다. 다스리는 것은 사람(人)이다. 법치는 물(水)이다. 다스리는 것은 법(法)이다. 왜 중국문화, 중화문명은 법치를 얘기하지 않을까? 왜냐하면 중국은 시장경제기초위에 건립되지 않았고, 농촌경제의 소농경제의 기초 위에 건립되었기 때문이다.

시장경제와 소농경제의 구별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재산권의 명확함을 요구하고, 그 다음은 공매공매(公買公賣)를 요구한다. 중국사회의 가장 큰 특징은 재산권이 불명확하다는 것이다. 중국은 하상주(夏商周)부터 오늘날까지, 재산권을 분명하게 한 적이 없었다. 예를 들어, 토지를 보자. 서주이래 아무도 토지가 누구의 것인지를 명확히 하지 않았다. 비록 토지를 매매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매매가 신성하거나 혹은 합법이라는 것은 아니었다. 황제이건 관료군벌이든 모두 언제든지 매매에 간여할 수 있었고, 강매할 수 있었고, 몰수병합할 수 있었다.

재산권이 없는 사람은 인격이 없다. 그들은 매번 끼니를 먹을 때마다 어르신에게 감사해야 한다. 당과 정부에 감사해야 한다. 독립인격이 없이 어떻게 독립적인 사상, 독립적인 입장, 독립적인 언론을 가질 수 있겠는가? 그래서 오로지 독립적인 재산권이 신성하게 보호를 받아야 비로소 진정한 자유가 보호되는 것이다. 자유의지가 압제되거나 파괴되지 않는 것이야말로 민주와 문명의 전제인 것이다.

필자는 이중톈 선생의 뜻을 이렇게 본다. 재산권구조를 보면 중국의 소위 '신시기중국특색사회주의'는 그저 하상주의 복제판이다. 이 본질을 인식하지 못하면, 자신이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해야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러니 백년간이나 분투노력하였지만, 어떻게 소매를 떨치고, 가슴을 펴고 큰 일을 벌이더라도, 치란(治亂)이 순환하는 악순환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아무리 구미국가에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더라도 그들은 괴물로 볼 것이다. 이 현실을 기초로 보면 미중관계는 호전될 가능성이 없다. 개혁 심지어 혁명이 일어나더라도 성공할 가능성은 없다.

금방 들었는데, 러시아와 3년간이나 교전하고 있는 우크라이나가 계속하여 천연가스파이프수송계약을 파기하지 않고 계속하여 2024년 12월 계약기간이 만료될 때까지 러시아의 천연가스를 유럽에 공급해주었었다고 한다. 이것이 계약정신이다. 최소한 중국인은 위로부터 아래까지 이런 계약정신이 없다.

2025년이 시작되었다. 새로운 출발점에서, 누군가 필자가 오늘 제기한 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하고, 심도있게 중국사회의 본질, 재산권구조를 연구해주길 기대한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여 세계문명을 따라잡아야 한다.

2025. 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