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역래현실(歷來現實)
서언
고대에 "탄금(呑金)"이라는 형벌이 있었다. 금(金)은 고대에 부귀를 상징했다. 그리고, 탄금이라는 형벌의 집행방법은 직접적으로 이런 부귀가 치명적인 고통으로 다가오게 만드는 것이다.
황금을 먹는다고 직접 사망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왜 결국 비명에 죽게 되는 것일까?
1
고대사회의 형벌은 상징성이 충만했다. 많은 형벌은 범인에 대한 징벌이며 사회질서에 대한 일종의 경시(警示)였다. "탄금"이라는 방식은 신비감이 충만하고, 복잡한 문화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그건 간단한 사형이 아니라, 금을 매개로 하여, 상징적인 의미가 충만한 사형의식이다.
"탄금" 혈벌은 주로 사회적인 지위가 비교적 높고, 배경이 복잡한 귀족과 관료를 징벌하는데 썼다.
이들은 고대사회에 지위가 극히 중요했고, 간단하게 그들의 생명을 소멸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상징적'인 의식을 통하여 전체 사회에 경고를 하려는 것이다.
전국시기, 황금은 이미 신분과 권력의 상징이고, 금기(金器)는 귀족의 전용물품이다. 금의 광휘는 지고무상의 지위를 상징한다.
만일, "황금"의 의미가 당시에 거의 현대의 "권력" 혹은 "재부(財富)"와 동일시되었다. 그렇다면, '탄금'이라는 징벌방식은 바로 "황금"과 "사망"을 긴밀하게 결합시켜, 한 사람의 존귀한 신분을 박탈하는 것이다.
당시의 통치자는 다른 귀족계층을 겁먹게 하기 위하여, '탄금'을 상징적인 의미를 지진 사형방식으로 선택했다.
이런 징벌은 "치욕감"이 충만하다. 귀족의 존엄과 상징지위가 한꺼번에 무너지는 것이고, 귀족계층에게는 "궁극적인 치욕"이 된다.
고대사회에 황금은 단순히 부의 상징만이 아니고, 깊은 문화적인 의미가 있다. 신성, 지고무상의 지위를 대표한다.
보통의 금속과는 달리, 황금은 거의 모든 문명에서 신성한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특히 동방문화에서 황금은 가장 순수하고, 가장 귀중한 물질로 인식된다.
종교제사에서근 궁중의 장식에서건 황금은 권력과 부의 상징으로서 빠지지 않는다.
그래서, '탄금'이 일종의 형별이 될 때, 단순히 '금' 자체의 징벌이 아니라, 금의 상징적인 의미를 통하여 통치자의 범인에 대한 극도의 멸시를 표현하는 것이다.
고대사회에 금기는 존귀와 권세를 상징한다. 금조각이 체내로 들어간다는 것은 그 개인이 귀족의 신분과 상징을 잃고, 사회 최하층의 버려진 사람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탄금'은 단순한 사망방식이 아니다. 일종의 "역향존경'이다. 이런 사망방식은 직접적인 사형보다 더욱 고통스럽고, 더욱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귀족에 있어서, 죽는 방식은 그의 목숨의 종결을 의미할 뿐아니라, 역사상의 신분과 지위도 결정한다. 만일 직접 도검아래 죽는다면 비록 같은 죽음이지만, 왕왕 그의 사회적 신분에 더 많은 영향은 조성하지 않는다.
"탄금"은 직접적으로 금이라는 부호를 통하여 개인의 모든 존엄과 영예를 망가뜨리고, 최종적으로 금조각에 죽는다는 것은 더 이상 그 계층의 영예와 존귀를 누리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부 사료에서 "탄금"은 극히 강한 사회에 대한 경고의 성격을 지닌다.
목적은 단순히 개인의 죄악에 대한 징벌이 아니라, 이런 극단적인 방식을 통하여, 권력경쟁을 하는 귀족과 관리들에게 일깨워주는 것이다: "금도 결국 너를 구할 수 없다. 부와 권력의 영예는 최종적으로 너의 목숨을 지켜줄 수 없다."
2
황금은 독이 없다. 그런데 왜 금을 먹으면 죽을까? 실제로는 두 가지 원인이 있다. 비록 황금 자체가 독성은 없지만, '탄금'은 일련의 엄중한 생리반응을 불러온다: 과정 자체는 금조각의 중량, 형상등의 요소로 인하여, 생리적인 상해를 조성하여 최종적으로 사망에 이르게 된다.
그것은 아주 불안정한 금속원소이다. 다른 물질과 쉽게 반응하지 않는다. 역사상 많은 의서(醫書)들 <본초강목>에서도 언급하고 있듯이, 황금 자체는 독소를 포함하지 않는다.
설사 인체에 들어가더라도, 다른 유독 금속(예를 들어, 납, 수은등)처럼 직접적으로 인체에 위해를 조성하지 않는다.
고대에, 많은 황금은 엄격한 제련을 거치지 않았고, 불순물이 남은 "생금(生今)"이 존재했다. 이들 제련을 거치지 않은 황금 속에는 아마도 대량의 유독한 중금속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납, 수은, 비소등
이들 중금속의 독성은 "탄금치사(呑金致死)"의 중요원인이다. 유독성분이 인체에 들어간 후, 소화계통, 간장, 신장등 내장기관에 심각한 해를 끼치게 된다.
고대의 제련기술은 현대처럼 정밀하지 않았다. 많은 황금가운데에는 여전히 많은 잡질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수은, 납등의 금속성분이 남아 있었다.
"생금" 속의 납과 수은은 모두 공인된 극독물질이다. 금속제련과정에서 무의식중에 황금에 포함되지만, 인체에 들어간 후에는 인체에 심각한 해독을 조성한다.
역사상 "생금" 혹은 "제련을 거치지 않은 황금"이라는 묘사는 잠재적인 위험을 표시한다.
일단 유독물질이 인체에 유입되면, 단기간내에 신체에 독성반응을 불러일으킨다.
수은중독은 신경계통을 파괴시키고, 신체에 격렬한 수축, 과호흡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그리고 결국은 사망한다; 납중독은 심각한 위장문제, 구토, 두통을 불러오고 시간이 흐르면 내장기관의 기능이 고갈하여 결국은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다.
비록 황금 자체에는 독성이 없지만, "생금" 혹은 여러 차례의 제련을 거치지 않은 황금은 유독성분을 포함하고 있어서,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다.
고대의 문헌에서 왕왕 이들 유독성분을 언급하지는 않는다. 다만 역사의 실제상황을 보면, 황금은 "무해"한 물질이 아니다. 오히려 위험한 금속을 함유하고 있다.
금속 자체의 독성을 놔두고, "탄금치사"의 또 다른 원인은 소화계통에 대한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상해이다. 금조각은 통상적으로 면적이 비교적 크고, 형상이 불규칙하다.
만일 지나치게 큰 금조가글 삼키거나, 혹은 날카로운 변을 가지고 있으면 식도, 위, 장등의 부위를 쉽게 손상시킨다.
만일 식도나 위에 걸려있으면 격렬한 통증을 불러온다. 금조각이 식도를 막고나면 호흡이 제한을 받아 질식하여 죽는다. 그리고 위에 오랫동안 머물면 아마도 위와 장에 기계적 손상을 가하게 되어 파열되면 내출혈등 일련의 합병증이 발생한다.
만일 적시에 처리하지 않으면, 금조각이 막아서 내장에 가한 손상은 감염이 발생하여 결국은 사망에 이르게 될 것이다.
설사 금조각이 식도를 지나 위에 도착하더라도, 위벽은 소화과정에서 압박을 받거나 갈라진다. 이는 출혈을 불러오고, 결국은 복강내 감염을 불러온다.
일단 감염이 만연하면, 환자의 신체는 스스로 치유할 수 없고, 결국은 여러 장기가 손상되어 사망에 이르는 것이 불가피한 최후가 될 것이다.
탄금의 과정에서 금조각의 중량은 소화계통에 큰 압력을 가하게 된다. 만일 지나치게 무거우면, 쉽게 위의 압력을 받아 위천공이 발생한다. 위천공이후의 급성복막염은 왕왕 치명적이다.
3
역사적으로 "탄금"은 자살수단 혹은 형벌형식으로 여러 시기에 나타났다. 징벌방식만이 아니라, 어떤 사람은 절망적인 상황하에서 '체면을 지키면서 사망하는' 방식이 되기도 했다.
가장 저명한 사례는 명나라때 발생한다. 당시 만귀비(萬貴妃)는 황제를 위해 자식을 낳지 못하여, 총애를 잃음을 느끼고 마음이 우울해진다. 결국은 정치투쟁에서 패배한 후 "탄금자살"한다.
그녀의 탄금사건은 널리 주목을 받았고, 귀족의 자살방식의 상징이 되었다.
만귀비의 사망은 즉시 탄금으로 사망하지 않았다. 금조각이 일으킨 내부상해와 장기중독으로 결국 복강감염과 내장파열로 사망한다. 이런 사망방식은 비록 비직접적이지만, 극도의 고통을 수반한다.
청나라때, 명장 나영광(羅榮光)이 패전과 정권의 압박으로 '탄금자살'을 선택한다. 비록 즉시 죽지는 않았지만, 금조각이 체내에서 조성한 내상으로 결국은 사망에 이르게 된다.
고대 궁정과 귀족 가운데 '탄금'은 왕왕 특수한 자살방식으로 활용되었다. 이런 '체면을 살리는' 자살방식은 왕왕 불공정을 당했을 때, 혹은 총애를 잃었을 때의 존엄을 지키는 사망방식이 되었다.
자신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서일 뿐아니라, 자신이 절망 속에서 한 선택이라는 것을 표명하기 위함이다.
현대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은 영화, 드라마에서 '탄금후 즉시 사망'하는 장면을 본다. 이런 묘사는 실제에 부합하지 않는다. 탄금후 즉시 사망에 이르지 않고, 사실상 탄금후에 사람은 왕왕 오랜 시간동안 고통을 겪게 된다.
많은 영화드라마작품에서 탄금사망에 대한 묘사는 아주 극적으로 그린다. 왕왕 탄금후 신속히 바닥에 쓰러져 사망한다. 사실상 그런 묘사는 비과학적이다.
비록 탄금이 사망을 불러오기는 하지만, 통상적으로 점진적이고, 왕왕 내장손상, 감염 혹은 금속이 일으키는 기타 건강문제를 불러오며, 그 과정은 비교적 느리다.
현대의학은 이에 대하여 더욱 분명한 해석을 내놓는다. 비록 즉시 사망에 이르지는 않지만, 인체에 대한 위해는 거대하다. 황금의 중량과 소화되기 어려운 특성은 탄금후 신체에 일련의 치명적인 반응을 불러오게 만든다.
금조각의 중력과 예리한 표면은 소화기관에 거댛나 압력과 상해를 불러 일으켜, 적시에 치료하지 않으면 위장천공, 출혈 심지어 감염이 일어나고, 이들은 모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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