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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치/중국의 정치

현재의 국면은 "62년의 모택동"일까, "78년의 화국봉"일까?

by 중은우시 2024. 12. 18.

글: 대종사(大宗師)

시진핑시기가 이전의 덩장후(덩샤오핑, 장쩌민, 후진타오)시대와 구분되는 중요한 점은 바로 국내외에 각종 겉으로 드러난 변화와 소문, 유언비어들이 특별히 많다는 것이다. 특히 시진핑의 3기에 들어선 후, 더더욱 매일매일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이건 당연히 시진핑시기에 국내외, 당내외, 군내외에 각종문제, 갈등이 첨예화, 격화되고, 시진핑의 여러가지 조치가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대로된 안목을 가진 사람이라면 모두 알 수 있다. 당국이라는 이 난파선이 시진핑이라는 선장의 조종하에 아마도 침몰할 것이며, 단지 시간문제일 분이라는 것을. 다만 이 시간은 일반 사람들의 생각보다는 훨씬 길 수 있다. 그리고 겉으로 드러난 변화와 소문, 유언비어는 많은 경우, 떠보는 것이거나, 시탐(試探)하는 것이거나 혹은 고의로 오도하거나, 여론을 미혹시키거나 혹은 아직 좀더 시간이 지나야 진상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인내심을 좀더 가지고 관망하면 된다.

시진핑이 하야한다는 것은 인터넷에서 농담처럼 얘기하는 스스로 미친 듯이 차를 역주행하다가 절벽아래로 굴러떨어지는 식일까, 아니면 정치투쟁 혹은 '당내노선투쟁'에서 패배하는 것일까? 시진핑은 사람들에게 이런 이미지를 주었다. 그는 반부패작업을 통해 모든 당국의 고위직에 대한 부정부패증거를 쥐고 있다. 마치 전체국면을 완전히 장악하고, 당내의 유아독존이 되었으며, 다른 파벌은 모조리 소멸했다. 당내, 군내에 이미 그의 권위에 도전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는 아마도 이런 효과를 기대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효과에 근접하기도 했다. 다만, 그와 그의 지지자들의 실제 명망, 능력, 역량, 기초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크지도 않고, 강하지도 않다. 그리고 상당한 한계성을 지니고 있다. 기실 모택동같은 천종영재(天縱英才)이며, 중공당정군의 창시자이고, 절대적인 정신적지도자도 계속하여 정치적인 도전자가 있었다. 그도 완전히 국면을 장악하지는 못했고, 모든 방파, 세력을 제압할 수 없었다. 시진핑의 당정군에서의 명망, 능력, 역량, 기초는 모택동에 전혀 미치지 못한다. 설사 당국에 인재가 없고, 온 조정에 소인(小人), 노재(奴才), 견유(犬儒)만 남았다고 하더라도, 그는 완전히 국면을 장악할 수 없고, 모든 파벌, 세력을 제압할 수 없다. 그는 다른 사람의 약점을 잡았지만, 다른 사람도 그와 그의 심복들의 약점을 잡고 있다. 서로 깨끗하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면 반드시 정치적 도전자가 나오게 되어 있다. 이건 의문의 여지가 없다.

역사는 간단히 재연되지 않는다. 그러나 압운(押韵)은 있다. 시진핑의 하야과정은 대체로 이전의 '당내노선투쟁'의 여러 역사에서 그 단서를 엿볼 수 있을 것이다. 현재의 상황은 화국봉의 78년과도 유사하고, 모택동의 62년과도 유사하다. 화국봉은 76년 원로군인들의 지지하에 정변을 일으켜, '사인방을 분쇄'하고 즉시 '영명한 지도자'로 떠받들어졌으며, 일시에 풍광무한(風光無限)했다. 그러나 좋은 시절이 오래가지는 못했다. 78년에 이르러, "양개범시(兩個凡是)"의 화국봉과 문혁을 부정하기를 주장하는 원로파간에 갈등이 발생한다. 덩샤오핑, 후야오방이 주도하여 전국상하에 진리표준에 관한 대토론이 전개된다. 사상적으로 여론적으로 화국봉의 권위에 도전한 것이다. 그후 3중전회에서 원로파는 화국봉을 압박하여 퇴진하게 만들고, 화국봉의 '양개범시'를 부정하고, 문혁을 철저히 부정하며, 개혁개방노선을 걷는다. 다만 화국봉의 명목상 지위는 그대로 유지되었고, 1981년이 되어서 비로소 중공중앙주석, 중공중앙군사위주석의 직무를 내려놓고 정식 하야한다.

모택동은 58년부터 일으킨 소위 대약진운동이 62년의 대기근으로 전국에서 아사자가 속출하게 되어, 62년에 개최된 7천인대회에서 모택동은 당내의 유례없는 압박을 받아 할 수 없이 2선으로 물러나게 된다. 당정경(黨政經)의 권력은 류샤오치, 덩샤오핑집단에 넘어간다. 다만 모택동은 여전히 군권(軍權)을 장악하고 있었고, 여전히 당국의 정신적 최고지도자였다. 모택동은 그 후 몇년간 칩거하다가 결국 군대의 지지하에, 65년 문화대혁명을 일으켜, 일거에 류샤오치, 덩샤오핑집단을 무너뜨린다. 그리고 다시 대권을 잡는다. 그후 임표의 반란은 비록 모택동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주어, 부득이 다시 류샤오치, 덩샤오핑집단의 사람들을 재차 기용할 수 없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그의 권력을 빼앗지는 못했다. 그가 76년 사망할 때까지.

2024년에 들어, 특히 7월의 베이다이허회의이후, 국내경제의 압력은 사상유례없을 정도였다. 전당, 전군, 각급정부, 전사회에 혼란상이 속출하고, 위기가 끊이지 않았다. 시진핑은 분명 그런 압력을 느꼈을 것이고, 체제내에 거대한 변화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시진핑의 도전자는 이미 나타났다. 비록 중국공산당이 정치를 밀실에서 암중조작하므로 우리가 내부사정을 엿볼 수는 없지만, 외부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우리는 알 수 있고, 문제는 설명할 수 있다. 원래 시진핑에게 타도된 우귀사신(牛鬼蛇神)들이 최근 빈번하게 출동하고 있다: 런즈창(任志强)의 딸이 공개적으로 시진핑에게 런즈창의 병보석을 요구한다든지, 보과과(薄瓜瓜)는 부모가 억울하게 탄압받고 있다고 주장하고, 마윈(馬雲)은 알리바바로 돌아와서 기세등등하게 얘기하고 있다. 원래 모두 시진핑이 반부패 명목으로 그의 정적을 숙청했는데, 현재는 그의 심복들이 다른 정치세력에 의해 반부패라는 명목으로 제거당하고 있다. 특히 군보(軍報)는 12월 9일, 집체영도를 견지해야한다는 목소리를 냈다. 이건 청천벽력이다. 그 중요성은 78년 진리표준에 대한 대토론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하다.

만일 정말 그렇다면, 그후에 어떤 일이 발생할 것인가? 아마도 78년의 화국봉처럼 점차 주변으로 밀려나다가 결국 소리소문없이 사라질 것인가? 아니면 62년의 모택동과 같이 일단 2선으로 불러났다가 다시 권토중래를 시도할 그것인가? 그러나 시진핑은 화국봉이 아니다. 시진핑은 화국봉보다 국가기관을 더욱 장악하고 있다. 특히 군대와 경찰이 뒤를 받쳐준다. 시진핑은 또한 모택동이 아니다. 시진핑은 모택동의 웅재대략이 없다. 모택동처럼 당국내에 기반이 없고, 특히 군대에 대한 장악력이 없다. 더더구나 모택동같이 당국의 정신적 지도자라는 명망은 없다. 그래서 그는 이선으로 물러나지 않고, 반격을 시도할 것이다. 핵심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를 위해 나설 것이냐는 것이다. 이건 지금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 필자는 어떻게 보더라도 기회는 있다고 본다. 심지어 그가 위험을 무릎쓰고 타이완해협에서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본다. 우회적인 군사정변을 통해 그의 패배국면을 뒤집으려 할 것이라는 것이다. 화국봉과 모택동의 역사를 보면, 이 과정은 아마도 2,3년이 걸릴 것이다. 현재 사회변화의 발전속도는 예전보다 훨씬 빠르므로, 아마도 1년내에 결판이 날 수도 있을 것이다. 기껏해야 2년이면 우리는 시진핑의 대변국(大變局)를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