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시화(施化)
항간에 몇 사람이나 기본적인 식별능력을 가지고 정확하게 중국이 현재 도대체 어떤 정치제도를 가졌는지 얘기해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여기에서 강조하건데, 문건이나 책이나 교과서 혹은 인터넷의 평가를 그대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현상을 뚫고 본질을 보면서, 과장하지도 않고, 축소하지도 않으면서, 독립적이고 적절하게 정확한 정의를 내리는 것을 말한다. 나는 확신한다. 백명이 있으면 백가지 답변이 나올 것이라고. 그리고 그중 99개는 틀렸을 것이다.
다행히 최근에 뉴스를 하나 보았는데, 그 내용을 보고 문득 깨달은 바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미국 스탠포드대학 중국경제및제도센터의 쉬청강(許成鋼) 교수가 11월 29일 타이페이에서 개최된 "2024당대중국연구국제세미나"에서 강연한 내용이다. 쉬교수의 제목은 "제도유전자: 중국극권주의제도의 기원"이었다. 그는 문혁이래, 정확하게 중국의 맥박을 파악하고, 적절하게 진단을 내린 최초의 인물이다. 그와 비교하면, 나머지 사람들은 그저 돌팔이에 불과하다.
그가 관찰한 후에 내린 결론은 이러하다. 중국현행정치제도는 문화상 극권독재의 전통을 승계한 것을 제외하면, 제도구조상 완전히 전소련모델을 그대로 옮겨왔다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현중국은 전소련이다. 만일 이 사실을 분명하게 깨닫지 못한다면, 몇년후, 중국의 최후는 소련의 전철을 밟는 것이 될 것이다. 심지어 그것보다 못할 수 있다. 왜냐하면 1인당 GDP곡선을 보면 중국의 예전 최고점은 아직 소련을 초과하지 못했다. 누구도 최저점일 때 사람들이 굶어죽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없다. 아마도, 중국은 위기하에서 극단민족주의를 내세우고 있는데, 이는 1차대전이후의 독일과 같아서, 전쟁에서 멀지 않았다. 설사 어떤 사람은 전쟁을 벌이면 망국이라고 믿고 있는데, 그것도 죽음이지 삶은 아니다.
아래에서는 내가 쉬청강 교수의 의견에 동의하는 이유를 얘기해보겠다.
가장 먼저, 손중산(孫中山)부터 시작해야 한다. 중화민국이 처음 건립되었을 때, 제도적으로는 원래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소련 혹은 미국. 어떤 사람은 물을 것이다. 중국인은 왜 자신의 제도를 창조하지 못하고, 다른 나라의 것을 베껴야 했을까? 가볍게 말하자면, 당신이라면 새로 만들어서 시험해볼 수 있겠느냐? 후발신생국가는 항상 다른 사람들이 걸어갔던 길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세계에 가장 영향력이 큰 나라나 창조해볼 수 있지, 소국은 하나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
당시, 완전히 다른 정치제도로서 소련과 미국이 가장 전형적이었다. 소련은 일당독재의 사회주의국가이고, 미국은 양당이 교체하는 자본주의국가이다. 어디로 갈 것인지는 중국인의 지혜를 시험하는 것이다. 결과는 모두 알고 있다. 중국은 어디를 선택했는지. 그러나 동시에 소련을 배운 다른 일부 나라들도 있었다. 예를 들어, 남미의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유럽의 스페인. 단지 나중에 그들은 모두 일찌감치 소련모델을 버렸다.
그러나 단순히 지능만에 의지하는 것은 아니고, 각종 요소가 섞여 있다. 예를 들면, 민족주의. 레닌이 소련은 제정러시아의 중국에서의 모든 이익을 포기한다고 말했을 때, 중국은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기실 그것은 거짓말이었다. 큰 것은 하나도 돌려주지 않았다. 그외에 황권사상도 있다. 여러 사람들이 간섭하는 미국의 의회민주주의보다 소련의 일당독재가 손중산의 마음에 더욱 들었다. 그리하여, 연아연공(聯俄聯共)이 나온 것이다. 만일 국민당에 기생하지 않았더라면, 중국공산당은 1949년에도 그저 주변의 소당(小黨)에 불과했을 것이다. 소련의 눈에 처음에는 국민당만 있었다. 장개석이 나중에 소련과 결렬하였지만, 건당, 건국방침은 모두 소련을 모방했다. 중국은 그저 국민당을 그대로 따라했을 뿐이다. 중국은 초기에 소비에트구라는 것을 만들었다. 여기서 소비에트는 소련을 가리키는 말이다. 모두 소련이 길러준 덕분에 오늘날의 중국공산당이 존재하는 것이다.
중공건정후, 당연스럽게 소련의 제도를 답습한다. 중국은 당시 소련의 동생이었다. 정치제도뿐아니라, 상업체계, 공업건설, 문화교육등등. 모조리 소련을 베꼈다. 필자가 소학교에서 들은 제1외국어는 바로 러시아어였다. 당시 유행하던 외국노래는 소련가곡이었고, 외국소설은 소련소설이었다. 시진핑이 소련에 가서 자랑스럽게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를 꺼내든 것도 이해가 된다. <전쟁과 평화>가 아니라. 장쩌민(江澤民)은 당시 예비간부로 소련유학을 갔고, 그래서 소련의 스파이여서 블라디보스톡을 팔아먹었다고 의심받았다.
당연히 나중에 중소분쟁이 일어나면서 소련과 거리를 두게 된다. 그리고 미국의 이간책으로, 미국측에 크게 기울어지게 된다. 등소평(鄧小平)은 베트남전쟁으로 미국에 잘 보이고, 미국인들에게 인정을 받는다. 그리하여, 통크게 중국에 30년의 발전기회를 주었던 것이다.
다시 소련궤도로 돌아간 것은 시진핑부터이다. 신중국의 소년으로서, 시진핑은 어려서부터 머리 속에는 모두 소련큰형님만 있었다. 이는 그가 2013년 선전에서 한 말로도 입증이 된다. 그는 그 유명한 말을 한다. "사내가 하나도 없다" 그리하여 그 본인은 스스로 소련체제부흥의 중임을 떠맡은 것이다. 그렇게 "사내"가 되기로 한 것이다.
사내가 된 유일한 결과는 바로 중국12년의 대도퇴(大倒退)이다. 구체적인 것은 언급하지 않겠다. 단지 류위안(劉源)이 최근 공개적으로 발표한 <다여적화(多餘的話)>의 한구절로 설명하겠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중국의 현재 경제가 엄청난 곤경에 빠지게된 근본원인은 바로 18대이래 실행한 소위 극좌의 경제노선때문이다. 거기에는 국진민퇴, 민영기업과 외자기업내에 공산당지부를 설립하는 것등등 시장경제에 배치되는 정책이 포함된다. 바로 이런 정책들로 인하여 경제는 크게 쇠퇴한다. 한 시기에 중국사회의 절망한 사람들이 자살을 선택하고, 자동차와 흉기를 이용하여 미치 듯이 무차별적으로 사회에 보복한다. 그리고 나서 관리를 약탈, 살해하는 사건이 날로 증가하고 있다. 이것들은 모두 사회위기가 축적되어 폭발하는 것이 이미 현실적이 위험으로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소련의 정치체제는 도대체 무슨 치명적인 결함을 지니고 있는 것일까? 예전의 소련은 거국체제에 의존하여, 신속히 공업화를 실현하고, 군사강국으로 발전하지 않았던가?
이 문제에 대하여, 오스트리아경제학자는 가장 좋은 답안을 내놓았다. 일찌기 2차대전전인 1937년, 하이에크는 이미 소련이 얼마 후 실패할 것이라는 것을 예언한 바 있다. 원리는 아주 간단하다. 중앙통제때문이다. 모든 사회활동은 경제, 문화, 사상, 습속을 포함하여 단지 느슨한 조건하에서만 활력과 생기를 가진다. 그렇지 않으면 질식하여 죽는다. 그 고고재상(高高在上)의 중앙은 근본적으로 모든 사람의 생각과 활동을 통제할 능력이 없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구체적인 개인에 대하여 어떻게 해야 좋고, 어떻게 하면 나쁜지를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세계에는 똑같은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하물며 그것이 수십억에 달함에야.
그러나 권력은 허황한 생각을 품는다. 소련체제는 권력을 한 사람에게 부여하기만 하면, 순조롭게 이상적인 통제를 완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저 행동이 일치하면, 전세계적인 범위내에서 백전백승할 것이라고 믿었다. 이것이 바로 소련사회주의의 기본논리이다. 손중산도 일찌기 중국이 '일반산사(一盤散沙, 흩어진 모래알)'같다고 여긴다. 이런 생각은 그가 사람과 사회에 대하여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왜냐하면 '일반산사'이기 때문에 사람들을 각자에게 맞는 일에 배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야 그것이 뛰어난 지도자이다. 그저 모든 사람은 단단한 돌맹이처럼 만들려고 생각하면 그것이 바로 폭군이다.
권력은 바로 통제이다. 권력욕이 강할수록 통제욕도 강해진다. 중공건정후, 모든 지도자들의 권력욕은 서로 달랐다. 그리하여 중국의 소련특색사회주의색채에서 강약이 서로 다른 것이다.
모택동은 권력욕이 가장 강했다. 그리하여, 생명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전체 중국사회와 경제는 썩어고인 물에 불과했다. 등소평은 권력욕이 약간 덜했다. 농민과 개체공상업이 활력을 받게 된다. 장쩌민, 후진타오시대의 권력욕이 고 느슨한 정도는 역사기록을 타파한다. 그리하여 중국노동자들이 가장 활력을 가지게 되고, 사상유례없는 고속성장을 이루었다. 그러나 좋은 시절이 오래가지는 못했다. 민간의 활력과 번영은 공산당으로 하여금 통제상실에 대한 우려를 자아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색깔혁명'이 폭발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하게 된다. 그리하여 죽어도 권력을 놓지 않으려 하게 된다. 오늘날 중공의 통제력은 중국수십년역사상 등봉조극(登峰造極, 최고조)으로 여전히 공포스럽다.
그래서, 18대에 이르러 중국은 방향을 돌려, 과거의 모든 것을 통제하는 국면으로 되돌아가고자 했다. 아쉽게도 통제를 시작하자마자, 경제는 하락한다. 부양한다고 살아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그럴 일은 없다. 통제가 느슨해지지 않는 한, 경제는 절대로 되살아나지 않는다. 그리고, 소련유전자는 이미 중국사회주의에 심어졌다.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생기지 않는 한, 통제는 느슨해지지 않을 것이다. 통제가 느슨해지지 않으면, 쇠퇴는 불가피하다. 지금 성상은 양해상권취기경(兩害相權取其輕). 두 가지 해악을 비교해보고 그중에 좀더 가벼운 것을 선택했다. 설사 경제쇠퇴가 엄중하더라도 절대 색깔혁명은 안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건 노선의 좌 혹은 우의 문제가 아니다. 시정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도 아니다. 오히려 생명 속의 유전자가 결정한 것이기 때문에, 인력으로는 되돌릴 수 없다.
중국에 이미 소련유전자가 심어져 있다면, 어쩔 수 없이 유전자가 가리키는 길로 끝까지 가야 한다. 장래 어떻게 될지는 나중에 다시 보자. 희망이 없으면 실망도 없다. 그러나, 한 가지는 믿는다. 지력이 정상적인 보통사람이라면, 일단 눈앞에 펼쳐진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보고나면, 마땅히 판단할 것이고,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할지를 알 것이다. 전혀 보지 못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2024 1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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