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시화(施化)
최근 베이징의 고위층내부투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국방부 대변인은 중앙군사위 위원, 해방군총정공부 주임인 먀오화(苗華)가 당중앙의 결정으로 정직검사(停職檢査)받고 있다고 정식 공표했다. 이로 인하여 국내외는 깜짝 놀랐다. "도대체 당중앙이 몇 개나 있단 말인가?" 왜냐하면 누구든 알고 있기 때문이다. 먀오화는 당금 중공최고지도자 시진핑이 직접 발탁하여, 중임을 맡긴 부국급의 고위관료이며, 시진핑의 심복간장(干將)에 해당한다는 것을. 만일 계속 정권을 쥐고 싶으면, 마땅히 자신의 우익(羽翼)을 잘라내서는 안된다. 현재 자신의 당조차 믿지 못하면, 권위는 어디로 가고, 위신은 또 어디로 간단 말인가? 여러 의견이 분분한데, 누가 먀오화를 끌고갔던간에, 오직 한가지 해석이 나올 수 있을 뿐이다. 중공고위층의 내부에 이미 거대한 열흔(裂痕)이 나타났다. 그리고 쌍방은 이미 서로 안면을 까고, 최후의 결전을 벌이고자 한다. 당연히 표면적으로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또 다른 견해에 따르면, 시진핑이 여전히 대국을 통제하고 있고, 계속 군대를 숙청함으로써, 자신의 군대내에서의 독존지위를 수립하고 있으며, 원로와 흔들리고 있는 고관들을 다잡고 있다는 것이다. 먀오화의 실세는 주로 그가 군대내에서 개인세력을 키웠기 때문에, 당금 성상의 금기를 건드렸다는 것이다. 듣기에는 그럴 듯한 분석이지만, 헛점이 너무나 많다. 외부에서 관찰한 바로는 군대내에서 가장 많이 낙마한 것은 푸젠방, 해군방, 그리고 시진핑이 최근 들어 발탁한 인물들이다. 그외에, 매체의 제목에 더 이상 시진핑이 중심으로 나오지 않고, 서점에서도 시진핑의 저작들이 서가에서 내려지고 있다. 사람들은 반신반의하면서, 놀라워하며 보고 있다.
필자의 생각에 현재 너무나 많은 매체종사자들이 자신의 주요 정력과 시간을 포풍착영(捕風捉影)의 수수께끼풀이에 골몰하고 있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고 본다. 당연히 그들도 클릭수가 중요하고, 그것도 가치가 있다.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개인미디어가 마땅히 해야할 것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며, 민심과 민의를 주목하지 않고 있어,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공산당이라는 백년대당에 있어서 중앙층면의 분열과 대항은 늘상 있던 일이다. 별로 이상할 것도 없다. 야사에 그런 이야기는 소털처럼 많고, 지금까지 끊이지 않았다.
가장 먼저 꼽아야할 것이라면 모택동과 장국도의 분열이다. 당시 홍군이 장정할 때, 원래는 그저 도망치는 것이고, 그렇게 멀리 돌아갈 필요는 없었다. 괜히 쓸데없이 돌아간 것이니까. 그것은 모택동의 심모원려이다. 당시 세력이 가장 컸던 4방면군의 장국도를 제거하고 자신이 당수에 오르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고의로 그를 멀리 떨어드린 다음 별도로 중앙을 세우려 했다는 죄를 뒤집어 씌운 것이다.
멀리까지 갈 필요도 없이, 여러분의 기억에 새로운 것을 얘기해보자면, 문혁은 원리 당사에서 가장 심각했던 분열이다. 그러나 문혁이 끝나고 다시 새로운 분열이 시작된다. 이번에는 등진(鄧陳, 등소평과 진운)의 분열이다. 원로들간에 진영이 분명했고, 결국은 학생운동을 이용하여 압박하는 국면에까지 이른다. 그리하여 등소평은 할 수 없이 자신의 우익(羽翼)을 잘라낼 수밖에 없었다. 아끼던 후야오방과 자오쯔양을 낙마시킬 수밖에 없었고, 결국은 6.4참극으로 이어졌다.
여러분들도 관찰해보았는지 모르겠지만, 18대에 시진핑이 취임한 것은 그저 고위층내부투쟁의 부산물이었다. 현재 많은 사람들은 한숨을 쉬고 있을 것이다. 그때 눈이 삐었다고. 어떻게 이런 말도 안되는 자를 최고지도자의 자리에 올려놓았는지, 후회하지 않겠는가? 그렇지 않다. 시진핑을 추대한 것은 내부투쟁을 벌이던 쌍방의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당이 유지되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도 서로 총기를 겨누어야 했을 것이다. 대립하던 양파는 공청단파(團派)와 장쩌민파(江派)이다. 장쩌민파은 십년동안 광범위한 인맥을 형성해 놓았으나, 격대지정으로 한번 최고지도자의 자리를 빼앗겼으므로 당연히 기분이 좋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후진타오의 십년동안 단파는 여러가지로 견제를 받고, 장애에 부닥친다. 후진타오의 십년이 끝났지만, 자신의 후계자를 키울 힘이 없었다. 부시라이, 저우용캉은 바로 이 권력투쟁의 희생양들이다. 결국 서로 양보하지 않자, 할 수 없이 절충방안을 찾게 된다. 그리하여 양파 모두에 속하지 않으면서 인간관계가 비교적 괜찮은 시진핑을 추대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하면서 장쩌민파의 색채가 강한 왕치산으로 하여금 보좌하고 견제하도록 했다. 만의 하나를 대비하기 위해서. 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시진핑은 자신의 우익이 튼튼해지자, 아무도 막을 수 없게 되었다.
나중의 결과는 지금 여러분들이 보고 있는 바와 같다. 중공의 현행체제하에서 조금이라도 선량한 사람은 모두 쫓겨난다. 그저 가장 악독한 사람만이 남는다. 쥐똥 하나가 한 솥의 탕을 모두 망치게 된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고 보니, 중공으로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국면에 처하게 되었다. 문혁때의 "죽음으로 모주석을 지키자(誓死捍衛毛主席)"처럼 사람을 잘 골라야 하고, 줄을 잘 서야 한다. 1970년이전에 중국대륙에서 출생한 사람이라면, 이 구호를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을 것이다. 특히 당시 혈기방장한 젊은이들은 누구든 모주석에 반대하는 말을 하면, 즉시 분노하여 돌진해 그와 죽기 살기로 싸웠을 것이다. 지금 들으면 웃기는 일이지만. 그러나, 당시에는 너무나 정상적이었다. 이건 시대의 진보이다. 현재의 중국백성들도 똑같은 곤경에 처해 있다. 도대체 누구를 지지해야 한단 말인가? 그러나 결과는 결국 적절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확실히 10여년의 시용기(試用期)를 거친 결과 당금 성상은 큰 일을 감당하기에 부족하다. 제대로 한 일은 없고, 망친 일만 많다. 그러나, 조야상하를 둘러보아도 기대할 만한 사람이 보이는가? 한명도 없다. 리창(李强)은 어떤가? 최근 그의 10조위안 경기부양조치는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듣기로 배후에서 이를 추진한 사람은 원자바오(溫家寶)였다고 한다. 가장 젊은 기존 후계자 후춘화(胡春華)는 실천이 증명한다. 기장파(騎墻派, 담장에 걸터앉은 중간파)로 중임을 맡기기에 부족하다.
지금 사람들이 둘러싸고 구경하고 있는 시장투(習張鬪, 시진피오가 장여우샤간의 투쟁)는 누가 누구를 이기든간에, 직접 이익을 얻는 것은 그들 주변의 사람들이지, 하층백성들과는 한푼도 관계가 없다. 장여우샤는 원래 20대에 시진핑을 옹립한 공이 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토사구팽 당할 처지가 되자, 두 사람이 반목하게 된 것이다. 듣기로 이는 20대 정치국상위인선에서 장난을 치고, 후진타오를 회의장에서 끌고나간 것과 관련이 있다고도 말한다. 금년 여름 3중전회이전에 시진핑은 장여우샤를 낙마시키려 했다. 군대내에서 장여우샤의 부하들을 숙청하면서, 교묘하게 밑바탕을 깔아두었고, 그를 잡았다고 여겼다. 그러나 사람의 계산은 하늘의 계산을 이길 수 없다. 자신이 중풍으로 쓰러지면서 대사를 그르쳤다. 회복하는 며칠동안 장여우샤가 반전을 일으켜, 원로들과 동맹을 맺고 시진핑을 압박하여 양보를 받아낸다.
그러나 이 동맹의 기초는 튼튼하지 못하다. 노인들은 이미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고, 대사를 도모할 생각도 없다. 그저 조금만 양보해주고, 이익을 제공하면 쉽게 타협할 수 있다. 어쨌든 노인들에 있어서, 말년을 평안하게 보내는 것이 유일한 바램이니까.
해외의 시사평론가 탕징위안(唐靖遠)은 얼마전에 이렇게 분석한 바 있다. 이번에는 중앙기율검사위나 당매체가 직접 발표한 것이 아니라, 국방부 대변인이 먀오화가 정직검사받는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먀오화의 관료로서의 생애는 이로써 끝났다는 것이다. 이것이 설명하는 것은 시진핑의 전체 군대계통내에서의 위신에 크게 금이 가게 되었다는 것이고, 권력이 대폭 약화되었다는 것이다. 당내의 권력판도가 재편되고 있다. 시진핑의 군대계통의 심복들은 모조리 숙청당할 것이다. 중공 자신의 용어로 말하자면, "유독(流毒)을 숙청(肅淸)하는 것"이다. 일본의 언론인 야이타 아키오(矢板明夫)도 이렇게 본다. 먀오화가 낙마한 것의 중대한 의미는 해방군내부의 권력투쟁이 이미 공개화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군대내의 반시진핑파가 '절지반벽(絶地反擊)'한 것이다. 이어서 허웨이둥과 동쥔 두 사람의 거취는 시진핑과 반시진핑파의 권력투쟁에서 중요한 풍향표가 될 것이다. 군내에 장여우샤를 대표로 하는 태자당과 장셩민(張昇民)을 대표로 하는 샨시방(陝西幇)이 손을 잡고, 푸젠방세력을 제거할 것이다. 이후 국제세력과 손을 잡아 정변으로까지 발전할 것인지는 좀더 관찰해보아야 한다.
이번 내부투쟁을 계기로 누구를 하야시키고 다시 개혁을 시도할 것을 기대할 수 있을까? 그런 환상은 버리기 바란다. 아마도 시장투는 한동안 최후의 카드를 꺼내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아, 여러 해동안의 죽기살기식의 당내투쟁을 거쳐, 정계요인과 고위관료들은 이미 말을 잘 듣는 사람들이 되었다. 그들은 이익에 대한 정교한 계산을 거쳐 타협이 최선의 선택방안이라고 여길 것이다. 아마도 그들이 타협을 이루는 날, 오랫동안 눈에 불을 켜고 보도 있던 인터넷의 대협들은 아마도 크게 실망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중국의 민주사업의 전망은 암담한가? 그렇지는 않다. 희망은 있다.
희망은 수억명의 사농공상들은 그동안 온갖 방법으로 얻어터지면서 점차 중공의 본래면목을 깨달았다. 역사는 이미 명확하고 오류없이 증명했다. 중공은 권력의 교육기(絞肉機)이다. 어떤 사람이건 이 교육기에서 향기나는 꽃을 내뿐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바보이다. 하물며 이는 역사의 유산이고, 너무나 커서, 일시에 옮기거나 새로 만드는 것도 불가능할 정도이다.
하자 못해도 걱정할 것은 없다. 한 걸음 물러나서,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기만 해도 된다. 그러면 그것은 무해해진다. 벼락이 사람을 다치게 한다는 것을 알면, 멀리 떨어져 있으면 되고, 잘 쓰면 인류에게 복이 될 수 있다. 모든 국내외의 매체종사자들은 사물의 원래모습과 진상을 환원시키는 것을 추구하면 좋겠다.
국내에 있는 부로향친들은 한 가지를 믿는다. 그것은 바로 자신 이외에, 자신을 구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어떤 당파이건, 어떤 세력이건 자신을 구해줄 수 없다. 그래서 환상을 버리고, 줄서는 것을 버리고, 자신의 부변의 자그마한 일부터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과 가족의 권익을 보호하는 것이다. 급히 자신의 뒷배경을 찾으려 할 필요가 없다. 그저 자신은 당연히 해야할 일을 하고, 그것을 꾸준히 하며 되는 것이다. 하늘은 분명히 도와줄 것이다. 그것을 믿는다. 2024년 12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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