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장문명(蔣聞銘)
대만(臺灣)은 바다에 홀로 떠 있어, 역대왕조에서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네덜란드인이 대서양의 동해안을 따라 남하하여, 희망봉을 넘어 인도양을 지나 태평양으로 들어와서 대만섬을 만나고, 상륙했는데 아무도 따지지 않았다. 청나라에서 산해관을 넘어 북경으로 들어온 후, 정성공(鄭成功)이 패배하여 도망칠 곳에 없게 되자 그제서야 대만을 떠올렸고, 네덜란드인을 쫓아냈다. 그러나 그도 결국 강희제에게 멸망당한다. 이렇게 하여 대만은 두 차례에 걸쳐 "수복(收復)"되었다. 한번은 정성공에 의해서, 또 한번은 강희제에 의해서.
"수복"이라고 하는데, "수(收)"는 거둔 것이니 맞는 것이지만, "복(復)"은 도대체 무슨 말인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중국인들이 현재는 기고만장하여 대만은 중국영토의 신성불가분의 일부분이라고 말하는데, 그건 시랑(施琅)의 덕이다. 대만을 점령한 후, 사람들은 골치가 아팠다. 모든 사람, 강희제를 포함하여 대만주민을 집단으로 대륙에 이주시키고자 했다. 그런 섬은 필요없다는 것이다. 시랑이 그런 의견을 물리치고, 겨우 강제를 설득하는데 성공하여, 마침내 대만섬을 대청국의 판도에 넣을 수 있었다.
근대에 이르러, 청일전쟁후, 대만은 일본이 빼앗아간다. 일본인은 대만을 본토로 여기고 통치했으며, 원주민에 대한 차별도 심하지 않았다. 과학교육, 경제민생은 영국인통치하의 홍콩과 겨룰만했다. 수십년동안 대만과 대륙은 정치, 경제, 문화에서 비교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2차대전이 끝난 후, 중화민국이 대만을 수복한다. 이번의 수복은 정말 수복이다. 그러나 야만적이고 낙후한 체제가 문명적이고 선진적인 사회를 수복한 것이었다.
국민당이 대만으로 오면서, 부정부패에 터무니없는 짓들을 벌이면서, 대만의 정치는 일본통치시기의 상대적으로 청렴하고 공정했던 것에서 일거에 암흑으로 바뀌고 만다. 겨우 1년여만에, 전체 대만인들이 반발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1947년의 2.28혁명이다. 장개석의 국민당은 이것이 한간(漢奸)의 조반(造反)이라고 여겼고, 모조리 죽여버린다. 국민당과 공산당은 형제이다. 왕정위의 부하들도 국민당의 옛동지들이다. 1927년 장개석이 공산당을 죽일 때, 기실 나중처럼 그렇게 심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진갱(陳賡)같은 경우 장개석이 체포했지만, 죽이지 않았다; 왕정위에 대하여도 어느 정도 사정을 바주었다. 왕정위의 부인 진벽군(陳璧君)은 왕정위의 매국노이론을 선전하면서, 왕정위선생은 충성심뿐이며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매국노가 되었다고 말했다. 죄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이라는 것마저 인정하지 않았지만, 죽이지 않았다. 다만 장개석은 일본인은 뼛속까지 미워했다. 이건 역사적인 연원이 없다. 자신이 일본인인지 아니면 중국인인지도 불분명한 대만인들에 대하여 정말 심했다. 대만의 일본통치시기의 사회엘리트는 모조리 죽여버린다.
그러나 이 사건은 대만독립의 뿌리가 되고, 대만독립의 씨가 뿌려진 셈이 된다. 나중에 장개석이 대륙에서 실패하고, 대만으로 쫓겨났을 때, 대만인들을 불요불굴의 의지로 수십년간 싸워왔고, 자유와 독립을 쟁취하려 했다. 1970년 황문웅(黃文雄)이 미국에서 장경국을 암살하려다 실패하면서, 바닥에 눌리면서 소리쳤다: "Let me stand up like a Taiwanese!(나를 대만인처럼 일어서게 해달라)" 그를 도우러 간 정자재(鄭自才)도 제압당한다. 두 사람은 경찰차에 압송되면서도 계속하여 대만독립만세를 외쳤다. 어떤 주장에 따르면, 장경국이 나중에 당금(黨禁)을 해제하고, 대만에서 민주화를 이룬 것은 이번 암살사건으로 그의 사상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도 한다.
대만인이 독립을 쟁취하려 노력하고, 자유민주를 쟁취했다. 현재 민주사회에 살아가는 대만인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명목상의 독립 비독립은 기실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얼마전 대륙이 서서히 자유민주의 길로 나가고, 갈수록 부유해질 때, 양안은 더욱 가까워졌다. 왕샤오페이(汪小菲)가 대S와 결혼했으며 모두 동문동종(同文同種, 글도 같고, 인종도 같다)이니, 자연스럽게 한 가족이 될 수 있었다. 다만 독재체체로 대만을 통일하려 하면, 대만인들은 다시 한번 2.28을 겪게 될 것이다.
대만선거로 양안관계는 더욱 긴장되고, 민진당에 더욱 유리해진다. 중국정부는 대만선거의 관건적인 순간이 되면 미사일발사로 긴장국면을 조성하여 민진당을 도와주고 있다. 장쩌민은 천수이벤을 도왔고, 시진핑은 차이잉원을 도왔다. 이건 기이한 일이다. 차이잉원이 연임에 도전했다가 거의 질 뻔했는데, 시진핑이 홍콩의 일국양제를 취소하면서 그녀는 기사회생할 수 있었다. 기실 민주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선거이다. 민진당정부가 만일 대만독립을 선포하면, 얼마나 많은 선거인들이 지지할까? 독립을 선언하면, 대륙이 승인하지 않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승인한다고 하더라도, 무슨 의미가 있는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주권독립국가로 승인하지 않았던가? 그래놓고도 치자고 하니 치는 것이다. 공산당이 만일 무력통일할 실력만 있다면, 독립을 선포하든 말든 바로 치지 않겠는가?
중국과 대만은 형제이다. 미국과 캐나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모두 동문동종의 형제이다. 형제간에는 좋을 땐 서로 합치고, 좋지 않을 땐 갈라서면 된다. 굳이 러시아,우크라이나처럼 골육상잔을 벌이면서 머리가 깨지고 피를 흘릴 필요는 없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국가의 영토가 크면 클수록 좋은 것이라면, 미국, 캐나다는 동문동종이고, 두 국가는 이웃하고 있으며, 사회제도도 같은데, 왜 합쳐서 하나의 나라로 되지 않는가? 왜 그런가? 왜냐하면 그 어느 미국인도 머리가 이상해져서 미국이 만일 캐나다를 합병하면 그 자신이 사는 것이 지금보다 더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가와 개인이 모두 태평하면 되고, 잘 먹고 잘 살면 된다. 하루하루 잘 사는 것이 옳은 것이고 다른 것은 모두 헛소리이다. 홍콩에 일국양제가 없어지고, 지금은 철저히 시진핑의 공산당에 귀속되었다. 중국의 백성들에게 도대체 얼마나 좋은 일이 생겼는가? 대만을 무력통일하여 통일했다고 치자. 중국의 백성들이 통일전보다 나아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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