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마비명(馬悲鳴)
최근 런즈창(任志强)의 딸이 시진핑에게 부친의 병보석을 간청하는 글을 올렸다. 거기에 그녀는 자신의 오빠를 언급했고, 9년형을 받았다고 했다. 이건 아주 기이한 일이다. 런즈창이 자식을 낳은 때는 중국에서 엄격하게 한자녀정책을 시행하고 있을 때였기 때문이다. 그는 도대체 어떻게 두 자식을 둘 수 있었을까?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원래 두 명의 부인이 낳은 것이었다. 전부인과 이혼한 것이다. 즉, 이혼하고 재혼한 것이다. 큰 도도 벌고, 마누라도 바꾼 것이다. 기실 개혁개방후에 이런 사람은 아주 많았다. 예를 들면 그와 같은 런(任)씨집안의 화웨이 런정페이(任正非)도 그러한 경우이다. 그러나, 런즈창처럼 입바른 소리 잘하는 유명인사들에게는 보기 드문 일이긴 하다.
런즈창의 트위터글을 읿어보다보니 거기에 룽잉타이(龍應台)와 장경국(蔣經國)을 언급한 내용이 있다. 여기에서 한 마디 덧붙이자면 유명기자 루웨강(盧躍剛)도 룽잉타이를 인정했고, 콩단(孔丹), 친샤오(秦曉)는 난화이진(南懷瑾)을 인정했다. 둘 다 타이완사람들이다.
현재 타이완이 민주화할 수 있었떤 것은 장경국의 덕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장경국은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자신이 독재자라는 것을 알고 있다. 다만 나는 마지막 독재자이다." 또 다른 버전에 따르면, "나는 자신이 독재자라는 것을 알고 있따. 다만 나는 독재수단으로 독재를 끝낼 수 있다."
장경국은 러시아부인 장방량(蔣方良)외에 두 명의 나중에 받아들인 장(章)씨성의 사생아가 있다. 장효엄(章孝嚴), 장효자(章孝慈), 엄부자모(嚴父慈母)에서 따왔다.
장경국이 독재수단으로 독재를 끝낼 수 있었던 것은 그 자신의 지위를 아무도 건드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장개석의 적장자(嫡長子)이다. 비록 생긴 것은 그다지 닮지 않았지만.
만일 장개석의 아들이 아니었더라면, 그의 여하한 개혁조치도 모두 장개석 옛부하들의 반대에 부닥쳤을 것이다. 장개석의 전부하들은 큰 권한들을 쥐고 있었고 ,건드릴 수도 없었다. 장개석의 부하들은 비록 장경국의 개혁조치에 불만이 없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는 노선생의 아들이다. 누가 반기를 들 수 있고, 누가 감히 반기를 들겠는가
대륙을 살펴보면, 모택동(毛澤東)의 아들이 조선에서 죽었다. 현재 어떤 사람은 각박하게 이런 말도 한다: 모택동이 일생동안 두 가지 좋은 일을 했다. 하나는 아들을 조선에 보낸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이 죽은 것이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모안영(毛岸英)이 후계자가 되어, 중국도 조선의 김씨왕국처럼 되지 않았겠는가?
당연히 그럴 가능성도 있다. 다만 또 다른 가능성도 있다. 모안영은 대륙에서 장경국식으로 승계받을 유일한 후보였다. 그리고 두 사람은 상황이 비슷했따. 모두 소련유학을 했고, 러시아어가 유창했다. 모두 소련식 현대화와 소련식 관리제도를 경험했다. 만일 정말 모안영이 후계자가 되었더라면,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장경국과 러시아어로 대화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모택동은 장개석보다 1년을 더 살았다. 만일 모안영의 승계도 장개석보다 1년이 늦었더라면, 국제형세와 해협양안의 상황을 볼 때, 모안영이 장경국을 따라했을까, 김정일을 따라했을까? 1994년 사망한 김일성은 모택동보다 18년이나 더 살았다. 모안영이 살아있었더라면, 김정일이 승계할 때 이미 19년간 통치해온 소련공산당원 장경국동지와 18년간 통치해온 모안영동지의 사례를 본받아, 그도 따라했을 수 있지 않았을까?
중국대륙에는 또 한번의 기회가 있었다. 즉 중공제2대핵심 등소평(鄧小平)이 큰 결심을 하고 개혁개방을 추진했다. 만일 그의 적장자가 문화대혁명때 장애인이 되지 않았더라면, 등소평의 뒤를 이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도 해협건너편의 장경국을 배우지 않으리난 법이 있는가? 당연히, 문혁때문에, 등박방(鄧樸方)은 학업을 완성할 수 없었고, 더더구나 모안영처럼 유학경력도 없다. 그래서 장경국만 못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모원신(毛遠新)은 그의 당형(모안영)처럼 유학경력이 없었따. 다만 이건 어쨌든 하나의 기회였고, 하나의 가능성이다.
많은 사람들은 역사에 '가설'은 없다고 말한다. 그게 왜 안되는가? 과학은 모두 가설에서 시작하지 않는가. 그후 검증을 통하여 가설이 성립하는지를 판단한다. 성립되면 과학법칙이나 공식이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다시 새로운 가설을 찾아서 검증해보면 된다. 역사도 과학에 속한다면 당연히 가설을 제시할 수 있다.
역사는 중복되기 어려울 뿐이다. 왜냐하면 일단 중복하면, 모두 다음에 어떻게 진행될지 알게 되기 때문에 그 방향으로 매복을 설치해서 너를 기다리고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역사상 많은 사례가 있다. 예를 들어 진헌공(晋獻公)의 세자 신생(申生)은 부친이 여희(驪姬)를 총애하고, 여희는 자신의 아들을 세자로 세우고자 했다. 그리하여 진헌공은 신생을 사사시킨다. 나중에 여희의 아들이 승계받지만 나이가 너무 어려서 기반을 제대로 닦지 못한다; 진나라는 큰 혼란에 빠지고, 나중에 결국 진헌종의 또 다른 해외에 19년간 망명해있던 아들 중이(重耳)가 되돌아와 국면을 수습한다.
진시황같이 폭력적인 황제도 만일 막내아들 호해(胡亥)가 조서를 위조하여 장자 부소(扶蘇)를 죽이지 않았더라면, 어찌 진나라가 그렇게 빨리 멸망했겠는가? 만일 폭력적인 항우가 진왕 자영(子嬰)을 죽이지 않았떠라면, 진나라가 일개 제후국의 지뤼를 유지할 수 있지 않았을까?
만일 주원장의 태자 주표(朱標)가 일찌감치 요절하지 않았떠라면, 정난지역(靖難之役)은 일어나지 않지 않았을까?
만일 모안영이 부소처럼 되었다고 보면, 모원신은 자영처럼 되었을 것이다. 모안영이 죽은 후, 만일 모택동이 정말 모원신에게 자리를 물려주었더라면, 그는 초패왕이 자영을 죽였던 것처럼 제거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조카는 아들과 어쨌든 한단계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하늘은 왜 공근을 낳으시고 다시 공명을 내리셨나요"역사는 중복되기 어렵다. 하늘이 이미 경국을 낳으셨으면, 세상에 왜 다시 안영이 필요헸겠는가.
'중국의 정치 > 대륙과 대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타이완 핵무기개발의 역사 (4) | 2024.10.28 |
---|---|
대만의 어제와 오늘 (2) | 2024.10.24 |
누가 중국(中國)인가: 중화민국(中華民國)은 이미 죽었는가? (0) | 2024.10.11 |
라이칭더(賴淸德)의 "조국론(祖國論)": 대륙의 급소를 찌르다. (1) | 2024.10.09 |
타이페이(台北) 원산대반점(圆山大饭店) (1) | 2024.05.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