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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민국 초기)

"중화민국(中華民國)"의 국호는 누가 만들었는가?

by 중은우시 2024. 10. 10.

글: 상보(上報)

타이완총통 라이칭더(賴淸德)가 국경절 리셉션에 출석하여 치사를 하면서 '조국론'을 내놓아 사람들을 웃게 만들었다. 그의 원화는 이러하다:

"우리의 이웃 중화인민공화국은 10월 1일 막 75세 생일을 지냈습니다. 다시 며칠이 지나면, 중화민국은 113세 생일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나이로 따져서 중화인민공화국은 절대로 대만인민의 조국이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대만이 중화인민공화국 75세이상민중의 조국일 것입니다. 그러나, 중화민국은 대팽금마(대만, 팽호, 금문, 마조)에 뿌리내린지 이미 75년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관계를 더 이상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우군가 중화인민공화국의 생일축하를 해주려면 특히 축하인사말은 정확해야 할 것입니다. 절대 '조국'이라는 두 글자를 쓰면 안됩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해협 건너편의 샤오펀홍과 황러시아정권의 반응은 확실히 웃음을 참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오늘날 '중화민국' 국호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면, 서불동문(書不同文), 행불동궤(行不同軌)의 이웃국가를 '한가족'으로 보아 비애를 금할 수 없다. 중화민국의 존재는 하나의 사실이다. 백여년이 지났고, 상전벽해가 일어나면서, 사람들의 '중화민국'에 대한 생각은 일찌감치 옛날 혁명가들의 생각과는 많이 달라졌다.

일반적으로 "중화민국"이라는 명칭은 손중산(孫中山)이 확립했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노신(魯迅)은 이러한 주장에 반대하면서, <태염선생에 관하나 두 세가지 일>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중화민국(中華民國)'이라는 명칭이 선생의 <중화민국해(中華民國解)>에서 유래했고, 거대하게 기념하는 것인데,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이미 많지 않다" 노신은 '중화민국' 네 글자의 유래가 장태염(章太炎)의 <중화민국해>라고 보았는데, 그건 어느 정도 이치에 맞는 말이다.

<중화민국해>는 1907년 <민보(民報)>에 발표되었다. 학문이 박식했던 장태염선생은 당시 혁명파지식분자의 이론적 지도자였다. 그의 글에는 '중화'라는 명칭에 대한 자세한 고찰이 있다. 그리고 극력 군주입헌을 주장하는 '금철주의자'를 반박했다. '중화민국'이라는 명칭을 널리 알리는데 그의 공이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문제는 다른 문헌기록을 보면, 이 글이 발표되기 전에 "중화민국"이라는 말이 이미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중화민국"이라는 명칭의 원시적 형태는 1903년 손중산이 동경군사학교 학생들을 위해 제정한 서사(誓詞)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중 두 구절이 "회복중화(恢復中華), 창립민국(創立民國)"이다. 당연히 이건 국호라고 할 수 없다.

1904년에 이르러, 손중산은 뉴욕에서 영문으로 "The True Solution of the Chinese Qustion"이라는 글을 발표한다. 이때 처음으로 "Republic of China"라는 말이 나온다. 다만 재미있는 점이라면, 손중산은 중문으로 어떻게 부를지는 생각지 않았던 것같다. 그래서 초기 번역에서는 "지나공화지정체(支那共和之政體)"라고 하였다. 그리고 손중산이 1905년 도쿄에서 강연할 때도 여전히 "대공화국(大共和國)"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1906년 가을에서 겨울, 손중산은 황흥, 장태염등과 일본에서 <동맹회혁명방략>을 초안한다. 그거에는 <군정부선언>, <대외선언>등 문건이 포함되어 있다. <군정부선언>의 "건립민국"항을 보면, 마침내 정식으로 "중화민국"이라는 명칭이 나온다. "오늘날 평민혁명으로 국민정부를 건설하면 무릇 국민이 모두 평등하게 참정권을 가진다. 대총통은 국민이 선거하고, 의회는 국민이 선거한 의원으로 구성되며, 중화민국헌법(中華民國憲法)을 제정하여, 사람들이 모두 지켜야 한다. 감히 황제체제가 맞다고 생각하는 자는 천하가 함께 공격해야 한다."

그러나, <동맹회혁명방략>은 1908년에 정식발표된다. 그렇다면 1906년 초안을 만들 때 이미 "중화민국"이 포함되어 있는지 여부는 우리가 알 수 없다. 장태염이 <중화민국해>를 발표하기 이전에, 분명 "중화민국"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손중산도 처음에는 이 네 글자를 생각해내지 못했다. 혹은 최소한 이 네 글자를 쓰기로 확정하지 못했다. 만일 노신이 한 말이 사실이라면, 손중산은 아마도 <중화민국해>의 영향력이 아주 크서, 그 네글자가 사람들의 마음 속에 깊이 박혀 있기 때문에 "중화민국"을 국호로 정하게 된 것일 것이다.

장태염의 학문과 지위를 보면 그는 국호를 지을 자격이 있다. 그러나 그거 해석한 "중화민국"은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하고, 아마도 놀라서 눈이 뻔쩍 뜨일 정도일 것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화(華)"는 원래 국명(國名)이다. 화산(華山)에서 유래했다. 그는 중국고대의 성인 복희씨, 신농씨, 황제, 고양씨, 고신씨, 순, 우등이 모두 양주(梁州), 옹주(雍州)를 근거지로 했는데, 옹주의 동남쪽에는 화음(華陰, 화산의 북쪽)을 경계로 하고, 양주의 동북은 화양(華陽, 화산의 남쪽)을 경계로 한다. 그래서 "화산을 경계로 하여 그 국토를 '화'라고 불렀다."

이 이론이 맞는지 아닌지는 아는 사람이 없다. 그저 그런 말이 있다는 정도만 알면 될 것이다. 그러나 그의 중화민국에 대한 큰 그림은 오늘날 아무도 인정하지 않을 것이고, 심지어 대륙의 전랑도 감히 부르짖지 못할 것이다. 장태염은 <중화민국해>에서 이렇게 말했다: 중국인은 반드시 삼황(蒙, 回, 藏)을 "순화"시켜 복속시켜야 하고, 그 후에 "이군일사(二郡一司)"를 수복해야 한다". 먼저 "한의 강역을 확보한 후에 비로소 중화민국이 진정으로 성립될 것이다"라고 했다.

이게 무슨 뜻인가? 소위 "이군일사"는 한반도, 베트남과 미얀마를 가리킨다. 그는 이 3개국가가 모두 중화의 옛영토라고 보았다. 중화민국은 반드시 이 세 곳을 '광복'시켜야 비로소 '진정으로 성립된다'는 말이다.

장태염은 덕망이 높았지만, 그는 또한 "장풍자(章瘋子, 풍자는 미치광이)"라는 별명도 있었다. 그의 이런 주장을 보면 그를 미치광이라고 부르는 것도 역시 명불허전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