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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문화/중국의 사상

누가 극단민족주의자의 주인인가?

by 중은우시 2024. 9. 24.

글: 비호(飛狐)

우리가 이 문제를 제기할 때 먼저 되돌아보아야 한다: 이 문제가 성립하는가? '극단민족주의자'는 독립적이고 자각적인(명확한 이념을 가진) 조직인가, 아니면 의식적으로 길러낸 하나의 악수(惡獸)인가?

먼저, 극단민족주의자는 하나의 명확한 개념, 조직을 가진 사회단체(예를 들어 우파정당)가 아니다. 도히려 분산된 사회집단이고, 그들이 마찬가지로 '구일(仇日)' '반미(反美)', 심지어 일본인 여자나 아니도 죽여야 속시원하겠다고 소리치는 이유는 바로 사회에서 묵인된 '구일반미'선전을 받았기 때문이다. 매체에는 항일드라마가 넘쳐나고, 일본이 핵오염수를 배출하는데 대한 과도한 보도가 있고, 인터넷에는 모든 일본인들을 죽여야 한다고 소리치는 등으로 인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어서 물어볼 수밖에 없다. 누가 이런 '구일반미'의 정서로 이끌게 했는가? 왜 이렇게 극단적인 '비이성'으로 민중의 정서를 이끌었는가? 이렇게 하면 그들이 기대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가? 이렇게 하면 최종결과는 무엇일까?

누가 민중의 정서를 이끄는가. 여기에는 많은 말이 필요없다. 정부가 외교층면에서 '전랑(戰狼)'의 색채를 두드러지게 드러내야 하며, 민간에서는 대외적으로 일치된 분위기를 조성해야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하나의 정권이 안정된 사회건설없이, 민중의 만족도를 끌어올리려면, '구외(仇外) - 애국(愛國)'선전을 통하여, 민중의 단결과 응집을 실현하고, 이를 통해 정권을 공고히 하고, 사회를 통제할 수 있는 것이다.

왜 이렇게 극단적인 '비이성'으로 이끄는가? 민중의 애국정서를 극단으로 이끌수록, 이런 '비이성'의 역량은 더욱 커진다. 사람들은 사회, 정부, 현실에 대한 여러 불만은 타인, 타국에 대한 폭력으로 풀게 된다. 이 과정에서 여러 사회문제는 가려지게 되고, 정부는 민중의 자신에 대한 불만의 시선을 돌리고, 분열된 사회를 다시 응집시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이런 역량은 정당이 다른 나라와 대항하는 일종의 수단이다. 민중이 이런 '비이성'적인 폭력을 자행함으로써 직접 전쟁위협하는 또 다른 폭력수단을 보조하는 것이다.

다만, 이런 민중의 애국폭력은 장강에서 밀려오는 물결처럼 파고가 높으면 높을수록 역량도 더욱 커진다. 비록 정부는 이런 역량이 건강한 '수력발전'으로 이끌기를 기대하지만, 일단 통제를 상실하면 제방이 무너지고 도시가 수몰될 위험이 있는 것이다. 간체중국어계에서 자조적으로 얘기하는 "양고자서(養蠱自噬, 독물을 길러서 자신이 잡아먹히다)"이다. 이런 역량은 일단 통제를 상실했을 때, 마찬가지로 정부의 거대한 위기를 조성하게 된다.

예를 들어, 2주전 지린에서 미국교사가 공격당하고, 최근 쑤저우의 일본인 모자가 공격당할 때, 민중은 일본인은 청산해야 하며, 여자건 아이건 가리지 말고 다 죽여야 한다고 소리쳤다. 당국이 긴급하게 이를 제지하자, 많은 '극단민족주의자'들은 불만을 나타냈다. 심지어, '매채도 모두 외국세력에 매수되었다'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따. 이건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다. 당국이 스스로가 스스로가 날린 부메랑에 당한 것이다. 극단민족주의분자는 바로 당국에서 지금까지 세심하게 배양해온 것이기 때문이다.

민중은 왜 항상 기꺼이 극단적인 애국분자로 이끌리게 되는가?

중국의 민중은 지금까지 독립된 공민의 신분이나 의식을 자각한 적이 없다. 그러므로 사회문제, 국제정치에 대한 이성적인 인식, 그리고 여기에서 파생되는 독립적인 공민행위(정부에 대한 비판, 사회문제에 대한 분석, 개인과 타인의 정당한 권리에 대한 요구등)가 부족하다. 동시에, 정부의 정보통제 및 우민정책으로 사회 자체가 진실되고 종합된 소식을 얻지 못한다. 그리하여 민중의 행위는 실질적으로 정부가 이끌고 통제하는 것이다. 심지어 민중이 자신의 독립적인 사고를 통해 판단하고 하는 행위라고 생각하지만, 무형중에 정부의 인도와 통제를 받은 것이다. 그래서 중국의 민중은 항상 두 극단의 사이에 처해 있다: 정치에 전혀 관심이 없어, 정부가 시키는대로 하는 '초민(草民)' 그리고 일단 인도되면 즉시 단순하고 우매한 '애국심'을 가지고 극단애국의 폭민(暴民)이 된다. 민중은 단순하고 우매하다. 자연히 쉽게 정부의 '비이성애국'에 이끌리게 된다.

예를 들어, 중국정부는 작년 매체플랫폼에서 미국멤피스동물원에서 판다를 학대한다는 사건을 대거 보도했다. 이로 인해 중국내에서는 반미분위기가 형성되고. 일치하여 미국을 토벌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다만 금년에 정부는 다시 한쌍의 새로운 판다를 미국 샌디에고동물원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작년에 판다로 인하여 미국을 공격했던 중국인들은 정부의 행위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들은 총리를 감히 욕하지는 못하고, 중국판다연구보호센터로 뛰어들어 전문가들을 따라다니면서 욕해댔다. 이어서 이들은 '규정위반라이스방송'이며, 해외에 부정확한 소식을 산포했다고 성격규정되었다. 이들 애국민중은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자신의 애국심이 왜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는지.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2019년말의 우한신종코로나때, 작가 팡팡(方方)은 중문인터넷으로부터 줄곧 비난받는다. 그녀가 미국에서 <우한일기>를 출판한 것은 매국행위라는 것이다. 당시 거의 모든 민중은 팡팡이 고의로 정부를 추악하게 묘사하고, 중국의 신종코로나위기를 고의로 과장했다고 생각했다. 당시 심지어 어떤 사람은 팡팡을 죽여버리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당시의 이들 민중은 반드시 '애국심'을 가졌을 것이고, 팡팡을 비난하고 공격했을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자, 그들은 펜데믹시대의 피해자가 되었다. 그들은 자신의 그런 애국심을 반성해보았을까? 자신이 팡팡을 아무런 근거없이 모욕하고 상처준 것에 대하여 진정으로 후회했을까? 독재제도하에서 길러진 중국민중은 하나의 애국정서에서 또 다른 애국정서로 향하지만, 깊이있게 반성하지는 않는다. 진정으로 이성적으로 역사문제를 되돌아보고 이를 통해 전철을 밟지 않으려고 하지 않는다. 독재제도하의 중국민중은 반드시 망각을 잘 해야 한다. 그들이 직면한 역사위기는 항상 효과좋은 영단묘약이 있기 때문이다: '애국'

왜 "비이성"의 애국은 반드시 폭력으로 넘어간다고 말하는가? 소위 "비이성"의 애국에 대하여 우리는 이렇게 결론내릴 수 있다. 무릇 반성을 허용하지 않는 애국은 바로 비이성의 애국이다. 아래와 같은 특징이 있다: 1. 자기 나라를 사랑하는 동시에 다른 나라를 미워한다. 2. '자기 나라를 사랑하는 행위'의 정당성에 대한 반성을 허용하지 않는다(예를 들어, 사회비판, 정부정책비판, 정부의 불공정한 대우에 대한 이의등), 3. '다른 나라를 미워하는 행위'의 정당성에 대한 반성을 허용하지 않는다(예를 들어 일본인을 마음대로 살해한 행위가 정당한지 여부에 대한 반성). 다음으로 왜 사회폭력으로 향하는지를 보자. '비이성'에 인도된 애국은 통상 외교수단의 일종의 보조도구이다. 다만, 그것은 전쟁이 발생하는 충분조건이 되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이렇게 계속하여 선전되는 '비이성'의 애국폭력은 통상 그저 사회내부의 보편적인 폭력이고 통상적으로 해치는 것은 그저 본국의 인민이다. 그리고 비이성이국의 정의중 '반성하지 않는다'는 본질은 이런 애국이 반드시 극단화, 마귀화 및 폭력화되도록 만든다. 심지어 열광적인 '종교'전쟁으로까지 바뀐다(항일드라마처럼 일종의 절대적으로 정확한 애국이라는 점에 대하여 반성이 절대로 허용되지 않는경우에는 반드시 바지에 폭탄을 숨긴다든지, 손으로 일본인을 찢어죽인다든지 하는 놀라운 장면을 집어넣게 된다). 예를 들어, 12년전의 서안"U형자물쇠(자전거용 자물쇠로 U자형)"사건의 경우 차량을 부순 차이양(蔡洋)은 애국이라는 명목을 빌어 U형자물쇠로 일본 토요타차량을 몰던 차량소유주 리젠리(李建利)를 때렸다. 그리고, 이번 쑤저우에서 일본인모자를 때린 사건에서 최종적으로 일본인모자를 보호하던 중국인 후여우핑(胡友平)이 흉수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비이성의 애국이 가져오는 최종결과는 사회내부에 일본의 본국동포에 대한 폭력이 가득차게 만드는 것이다.

비이성애국, 극단민족주의의 결과는 무엇일까?

비이성애국과 극단민족주의는 통상적으로 3가지 종류의 결과를 가져온다: 첫번째 종류, 가벼운 경우, 사회내부에서 상호 해치는 폭력을 조성한다. 민중은 이를 기화로 사회에 대한 불만을 배출한다. 그리고 폭력사건이 만연하게 된다. 두번째 종류, 중급인 경우, 가득찬 사회폭력이 내부사회동란을 가져온다. 혹은 대외적인 중대외교사건이 벌어지게 만든다. 이 단계에 아마 극우조직이 나타나지만 결국은 진압된다. 세번째 종류. 심한 경우, 통상적으로 본국정부를 타격하고 심지어 정권붕괴를 가져온다. 대외적으로는 군국주의전쟁을 불러온다.

그렇다면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의화단(義和團)같은 규모가 큰 비이성애국단체가 나타날 것인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상황은 낙관적이지 않다. 의화단의 탄생배경은 혼란에 빠진 청나라말기사회에 사람들은 애국, 구국이라는 명목으로 하층민중을 단결시켜, 서양인을 죽이고 만청을 보호하려는 사회운동이 벌어진다. 의화단의 이런 응집역량은 바로 비이성의 애국정서이다. 현재 중국사회의 경제문제, 부동산문제, 사회통제문제, 제도문제가 점점 두드러지고 있고, 정부는 있는 힘껏 안정유지, 시장구제를 행하고 있다. 다만 동시에 사회하층은 상황은 갈수록 혼란스러워지고, 실업율은 높고, 민중은 보편적으로 주택대출금에 시달리며, 심지어 많은 공사중단건물의 문제가 있다. 이는 직접적으로 민중의 생활, 생존에 영향을 끼친다. 그리고 이들 문제는 거의 제대로 해결되지 않고 있다. 금년 연초부터 빈발하는 자살사건, 폭력사건, 외국인살해사건은 이미 사회가 혼란으로 빠지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의화단' 비이성애국자드이 자생할 수 있는 온상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비이성애국 및 극단민족주의를 상대하거나 회피해야 하는가?

샤회가 혼란한 시기에, 통상적으로 이런 비이성애국정서, 심지어 극단민족주의 정서가 나타난다. 모종층면에서 보면, 이건 피하기 어려운 일이다. 정부가 사회를 통제하는 수단은 통상적으로 이성적인 건의로 즉시 적절히 조정할 수 없다. 정부가 통치위기에 빠지면, 통상적으로 비이성적인 애국정서로 음짐지갈(飮鴆止渴)하게 된다. 이건 더욱 그들의 '폭력'을 키우게 된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비이성애국의 본질은 '반성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사회에 가득찬 비이성애국의 목소리 및 그로 인해 조성된 폭력사건에 대하여 우리는 용감하게 들고 일어나서 목소리를 내고, 분석을 하고, 민중을 반성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이를 통해 열광적인 극단민족주의의 열기를 낮추어야 한다. 다만 만일 시대조류가 한두명의 힘으로 물길을 바꿀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스스로를 지키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