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사로(思蘆)
나의 블로그글 <독사감금: 외래문화와 황권의 팽창>이 발표된 후, 산화랑은 <사로의 신작을 읽고>라는 글을 썼다. 이 글은 작자의 일관된 일부를 공격하며 나머지는 언급하지 않는다, 무한상강(無限上綱)한다는 글스타일을 관철하고 있다. 산화랑은이렇게 말했다: 사로의 글은 "모조리 오류이고, 논리에 들어맞지 않는다" 나의 글은 십여개 단락, 9개 견해가 있는데, 작자는 전문에 대하여는 추상적으로 공격하고, 겨우 4곳에 대한 구체적인 비판을 실었다. 게다가 그 4가지마저도 잘못된 비판이다. 논리가 아주 혼란스럽다. 그리하여 취모구자(吹毛求疵, 남의 허물을 억지로 들추어내려 하다), 무한상강(無限上綱, 별 것이 아닌 일을 원칙문제로 끌어올려 다루다)하는 문혁때 장춘교(張春橋), 요문원(姚文元)같은 문비(文痞)의 작풍이다.
본문에서는 주로 그 글의 4곳 구체적인 비판에 대해 대답하고자 한다:
'진제(秦制)'에 관하여. 담욱빈(譚旭彬)의 <진제양천년(秦制兩千年)>과 진휘(秦暉)의 <주출제제(走出帝制)>는 이에 대하여 전면적으로 비판하고 있으니,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 진제(진나라제도)는 상앙지도(商鞅之道)와 한비지술(韓非之術)의 "세(勢)", "술(術)", "법(法)"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다. 목표는 통치이다. 핵심은 국가와 백성을 대립시켜, 국가의 부강은 반드시 백성의 우매와 빈곤위에 건립된다는 것을 강조했다. 백성이 약할수록, 우매할수록 국가는 더욱 강하고, 안정된다는 것이다. 황제는 민중을 부유하게 만들 의무가 없다; 오히려 반대로, '약민(弱民)"을 만들어야 한다. 중국의 진제는 이천년간 지속되었고, 실제로 민궁국빈(民窮國貧)을 초래했다. 중공이 계승한 것은 바로 진제이다. 그 실질은 바로 독재극권통치이다. 진제의 핵심은 최대한 인력과 물력의 흡강도와 총량을 제고하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반드시 일체의 민간조직을 없애야 하고, 모래알화 및 원자화된 편평한 사회구조를 추구하며, 사회활력의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다.
진제가 건립된 후, 특히 "파출백가(罷黜百家), 독존유술(獨尊儒術)"한 이후, 중국은 기본적으로 사상의 창조동력이 사라졌다.
'대의멸친'에 대하여, 필자는 원칙적으로 도덕적으로도 제창하지 않고 입법적으로도 금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공은 건정이래 대의멸친을 도덕적으로 장려했을 뿐아니라, 일관되게 입법원칙으로 삼았다. 대의멸친하는 사람에 대하여 대거 선전하고 표창했다. 형법에는 모든 사람에게 증인이 될 의무를 부과한다. 형사소송법 제60조는 "무릇 사건상황을 알고 있는 사람이면 모두 증인이 될 의무가 있다." 이 조에서 규정한 "증인"은 사건상황을 알고 있는 모든 살마을 가리키고, 친척도 예외는 아니다. 이 입법원칙은 중국형법에서 불변의 원칙이다. 2012년 사회적인 비판과 피드백을 받아, 형사소송법 제188조에 보충규정을 두었다. 다만 여전히 유포비파반차면(猶抱琵琶半遮面)이다. 이 조는 "인민법원의 통지를 받고, 증인이 정당한 이유없이 법정에 출석하여 증언하지 않으면, 인민법원은 강제로 법정으로 데려올 수 있다. 다만 피고인의 배우자, 부모, 자녀는 제외한다." 비록 피고인의 부모, 배우자, 자녀는 인민법원으로부터 강제출석을 당하지 않을 권리는 있지만, 입법에서 이상 3종류 사람의 증언의무는 면제하지 않았다. 즉 친족들에게 증언거부의 특권은 아직 부여되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설사 피고인의 부모, 배우자, 자녀라 하더라도 마찬가지로 증언의무가 있다. 법정외에서 공안이나 검찰관에게 서면증언을 제출하거나 혹은 법정심리시 자원하여 출석증언해야 한다. 이는 서방과 중국고대의 친족은 증언을 거부할 수 있는 특권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산화랑은 이 문제에 있어서, 확실히 사실을 혼동하여, 화중취총(嘩衆取寵)하려는 의도가 있다.
"차라리 3천을 잘못 죽일지언정, 1명의 범인도 풀어주지 않겠다"는 말에 대하여, 먼저 역사학자의 고증에 따르면, 이 말을 장개석이 가장 먼저 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리고 확실한 증거도 없다. 그저 와전된 것일 뿐이다. 산화랑은 내가 금메달의 댓가에서 "와전하며 그것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 것은 그저 화중취총의 무리라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 말은 청군입옹(請君入瓮)으로 그대로 돌려주어야겠다. 다음으로, 누가 발명했는지와 내가 글에서 서술한 것과는 전혀 관계없다. 내가 지적한 것은 중공이 숙반, 진반, 토지개혁, 반우등 운동을 무한히 확대하여 무겁게 그리고 빠르게 억울한 사건, 가짜사건, 잘못된 사건을 양산하고, 경죄를 중하게 처벌하였다는 것이다. 중공이 가장 먼저 발명했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산화랑은 bark the wrong tree, 개념을 바꾸고, 논리가 혼란된 오류를 범했다.
넷째, "금메달은 체육대국의 표지가 아니다. 인민의 체질이 그것이다." 의미는 한 나라가 마땅히 주로 돈을 인민의 체질을 제고하는데 쏟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무슨 잘못인가? 설마 금메달과 인도간에 선택을 반드시 해야한다는 것인가? 산화랑의 비판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여순불대마취(驢脣不對馬嘴). 그저 그의 논리가 혼란되고, 사고가 유치하다는 것을 설명할 뿐이다.
'중국과 문화 > 중국의 사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국이 개혁개방시대로 되돌아가서는 안된다 (4) | 2024.09.19 |
---|---|
반드시 등소평을 철저히 부정해야한다... (3) | 2024.09.05 |
"외래문화와 황권팽창" 비판: 사로의 신작을 읽고.... (2) | 2024.09.03 |
외래문화와 황권팽창 (3) | 2024.08.29 |
중국문제의 실질(3): 가국정회(家國情懷) 비판 (1) | 2024.08.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