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산교룡(山蛟龍)
중공을 욕하는 것도 지쳤고, 욕해도 의미가 없다. 오늘은 중국 극권통치의 고분을 파헤쳐보기로 한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중국의 극권통치는 전통이 있는 것이라고. 이미 2천여여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중공의 '황러시아'통치는 단지 이런 극권통치의 집대성일 뿐이다. 마치 몽골인 혹은 만주인이 한족에 대해 잔혹하게 통치한 것과 마찬가지로.
중국의 극권통치의 근원은 유가사상에 있다(당연히 법가의 일부 사상도 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유가사상은 중국인에 대하여 철저한 유전자개조를 진행했고, 중국인은 보편적으로 유가의 유전자조작인류가 되었다. 아무리 '반동'의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 유가의 쓰레기가 머리 속에 들어 있다.
우리는 역사책을 보고 <사기>에서 말한 모든 것을 믿는다. 과거의 사회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예를 들어, 요, 순, 우간의 권력교체는 선양제였고, <장자>에서 말하는 것처럼 상고시대의 통치자들은 권력을 우수한 사람에게 양보했었다. 예를 들어, 요(堯)는 직위를 허유(許由)에게 양보했는데, 허유가 받지 않았다든지 하는 것이다.
기실, 이런 일들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왜 나는 그렇게 말할 수 있는가?
왜냐하면, <사기>는 서한의 사마천이 쓴 것이고, 그때는 한편으로 전체 통치사상이 이미 '독존유술(獨尊儒術)'로 통제될 때여서 그저 유가의 소위 조화롭고 아름다운 광경을 선양할 수 있을 뿐, 현실의 어두움이나 추악한 것들은 얘기할 수 없기 때문이었으며, 다른 한편으로 상고로부터 심지어 춘추시대의 역사로부터 이미 너무나 많은 시간이 흘렀기 때문이다. 사마천이 쓴 것은 반드시 정확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서한이전의 많은 역사 및 역사를 아는 사람들은 이미 모두 진시황에게 소멸당했기 때문이다. 참고할 사료도 없고, 검증할 방법도 없어진 것이다.
필자의 이런 생각은 실제로 서진(西晋)이후에 도굴자들에게서 얻은 <죽서기년(竹書紀年)>에서도 일부 증거를 얻어낼 수 있다. 당연히 <한비자> 및 <산해경>드으이 서적에서도 단편적인 증거를 얻어낼 수 있다.
<죽서기년>도 단지 일방적인 글이기는 하지만, 참고는 할 수 있다. 거기에 기록된 상고시대의 이야기는 <사기>와 완전히 다르다. 즉, 요순우간의 권력교체는 근본적으로 무슨 소위 '선양'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잔혹한 궁중정변을 통해서 차지한 것이다. 요는 실제로 권력을 자신의 아들인 단주(丹朱)에게 넘겼다. 다만 단주는 순(舜)에 의해 구금되고 나중에 죽임을 당한다. 여기서 알아야 할 점은 단주는 순의 처오빠라는 점이다. 단주의 두 여동생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은 모두 순의 부인이다. 이건 정말 삼관(인생관, 세계관, 가치관을 가리킴)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일이다.
그 뒤에 일어나는 상주, 하걸, 무왕, 문왕, 서주, 동주는 모조리 잔혹한 전쟁 혹은 궁정살륙으로 권력을 획득한다. 권력에 소위 선양은 없었따. 조조의 아들이 한헌제의 황위를 빼앗는 것처럼, 겉으로 보기에는 무슨 선양이지만, 누가 그것은 개소리라는 것을 모르겠는가. 권력탈취는 바로 정변이다. 송나라때 조광윤의 소위 황포가신을 포함하여 모조리 기녀가 열녀비를 세우려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닌가. 모두가 무슨 '선양'이 아니었던 것이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역사와 정치는 유가사상이 묘사하는 것처럼 그렇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역사, 정치의 역사는 항상 살륙과 암흑이었다. 우리가 역사와 정치를 볼 때 영원히 인간본성에서 출발해야지 아름다운 바램에서 출발해서는 안된다. 더더구나 세뇌된 유가쓰레기가 우리를 이끄는대로 역사와 정치를 보아서는 안된다.
유가세뇌의 목적은 통치자의 통치편의를 위해서이다. 윗사람을 거스르지 않고, 모반하지 않고, 황위를 찬탈하지 않고, 궁중정변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다. 확실히 알아야할 점은 인간본성은 이기적이고, 사악하다. 현실사회에는 소위 권력선양제도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서방민주사회의 정치제도는 최소한 드러내놓고 싸운다고 생각한다. 칼이나 권총을 들고 결투를 하는 것처럼 이긴 자가 가지는 것이다. 미녀 혹은 권력을. 이것이 완벽하게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최소한 드러내놓고 한다. 매체와 민중들은 두 눈 뜨고 보고 있다. 그리고 민중들이 재판관이 된다(투표).
기독교는 사람의 본성이 악하다고 본다. 원죄가 있다고 본다. 중국의 <삼자경>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인지초 성본선(人之初 性本善)"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은 계속하여 속죄해야 한다. 사람은 원죄가 있을 뿐아니라, 현실에서도 계속하여 범죄를 저지르기 때문에, 예배할 때 신에게 용서를 빌어야 한다. 사람은 좋은 일을 해서 속죄를 받아야 한다. 예를 들면 다른 사람은 도우는 것등이다. 이건 현실에 보다 근접한다. 인간본성의 현실에.
중국이 극권통치에서 빠져나오려면, 반드시 중국인의 두뇌 속에 들어 있는 유가쓰레기를 깨끗이 씻어내야 한다. 최소한 부분적으로 깨끗이 씻어버려야 한다. 그럼 어떻게 씻어내는가. 다원문화의 세례를 받아야 한다. 식민 혹은 분열로 여러 나라로 나뉘어보아야 한다. 그래야 더욱 쉽게 유가사상의 쓰레기를 씻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대통일은 중국이 민주화의 길로 나아가는 것을 저해하는 물리적인 장애이다. 유가사상은 중국이 민주화로 가는 것을 저해하는 정신적 장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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