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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분석/중국역사의 분석

역사의 3대 거짓말

by 중은우시 2024. 1. 30.

글: 심도지국(深度知局)

 

어떤 사람은 이런 말을 했다. 역사는 바로 중국의 종교라고. 인류역사상, 그 어느 국가나 민족도 중국처럼 자신의 과거에 대한 방대한 기록을 가진 경우가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를 가장 중시하지만, 또한 역사에 의해 가장 심하게 눈이 가려져 있다.

 

진실과 거짓이 섞여 있는 역사는 사람을 오리무중에 빠지게 만들고, 진상을 파악하기 어렵게 만든다; 일부 인구에 회자되는 역사격언은 더더구나 미혹성이 있어,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잘못된 가치관념을 갖게 만든다.

 

그러므로, 역사의 3대 거짓말을 분명히 아는 것의 의미가 날이갈수록 커지고 있다.

 

거짓말 하나: 민심을 얻는 자가 천하를 얻는다.

 

고대제왕이 천하를 얻을 때 항상 위로는 천명을 받고, 아래로는 인심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런 격언도 있다. "민심을 얻는 자가 천하를 얻는다(得民心者得天下)" 아주 감동적인 말이고, 믿는 사람도 아주 많지만, 그러나 이 말은 거짓말이다.

 

가장 전형적인 사례는 이러하다: 원나라말기, 반란군은 주원장을 제외하고도 많았다. 예를 들어, 소주일대의 장사성이 있다. 그는 사람됨이 관용적이고 후덕했으며, 주원장보다 훨씬 민심을 얻었다. 그러나 천하를 얻은 것은 그가 아니었다. 주원장은 반란을 일으킨 후, 가장 먼저 원나라에 항거하지 않고, 다른 반란군을 공격했다. 거기에는 장사성도 포함되어 있다. 군량미를 얻기 위해서, 주원장은 "채량(寨糧)", "검괄(檢刮)", "증조(增租)", "차량(借糧)"했다. 이는 강탈이나 다름없었지만 그는 결국 천하를 얻는다.

 

주원장은 천하를 얻은 후, 군인과 무력 그리고 문인의 필력에 의존하여 "인심"을 얻었고, 괜찮은 명성을 얻는다. 지금까지도 그를 숭배하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중국역사의 잔혹한 진상은 "천하를 얻은 자가 민심을 얻는다"는 것이다.

 

거짓말 둘: 낙후되면 얻어맞는다.

 

근대중국은 아주 낙후되어 있었다. 동시에 열강으로부터 수탈을 당한다. "낙후되면 얻어맞는다(落後就要挨打)" 이 말이 널리 퍼졌고, 영향은 아주 컸으며 많은 사람들이 진리로 떠받들고 있다. 이와 유사한 말로는 "약소국에 외교는 없다(弱國無外交)", "진리는 단지 대포의 사정거리내에 있다(眞理只在大砲的射程之內)"라는 논조도 있다. 이런 논조들은 모두 "암흑밀림법칙"식의 상상에 부합한다. 그러나 사실은 아니다.

 

가장 전형적인 사례는 다음과 같다: 1900년, 팔국연합군이 북경성으로 쳐들어왔다. 우리들의 인상 속에서 청군은 모두 큰칼과 긴창을 갖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청군의 당시 군사장비는 이미 세계선진수준이었다. 모젤총, 기관총, 현대대포, 맥심기관총, 노르덴펠트기관총등 모두 가지고 있었다. 아쉽게도 청군은 이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무기는 창고 안에 잠겨 있었다. 훈련을 제대로 받은 팔국연합군을 만나자, 청군과 의화단은 여전히 마구잡이로 돌진했다. 어떤 결과가 나타났을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무기는 결정적인 요소가 아니었다. 사람과 제도가 관건이었다.

 

더욱 관건적인 것은 바로 사상관념이었다. 낙후된다고 얻어맞지 않는다. 정치가 야만적이어야 얻어맞는다. 이 세상은 무엇이든지 실력에 의존하는게 아니다.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 공정과 정의

 

거짓말 셋: 천하대세는 흩어진지 오래되면 반드시 합치고, 합친지 오래되면 반드시 흩어진다는 것이다.

 

이 말은 <삼국연의>의 역사명제로 삼척동자도 알고 있다. 이는 어느 정도 고대중국왕조교체의 역사 주기율을 반영한다. 또한 확실히 어떤 시기의 중국역사현실에도 들어맞는다. 다만 이를 전체 중국역사라는 긴 강으로 보면 성립되지 않는다. 세계역사를 놓고 보면 더더욱 들어맞지 않는다.

 

가장 전형적인 사례는 이러하다: 476년 서로마가 멸망한 이래, 서구는 1500여년에 이르는 '분리'상태를 겪는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마찬가지이다. 중국은 1279년 원나라가 송나라를 멸망시킨 이래 안정적인 '대일통'의 시기로 접어든다. 그후 비록 몇번의 왕조교체와 군벌혼전은 있었지만, 모두 장기적인 분열은 아니었다. 700여년의 시간동안 중국은 기본적으로 '통일' 상태였다.

 

이런 장기간의 통일국면이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는 <캠브리지중국사>의 편집자중 한명인 로데릭 레몬데 맥파르쿠르(Roderick Lemonde MacFarquhar, 1930. 12. 2 - 2019. 2. 10)가 잘 설명해주었다. 춘추전국시기의 제자백가는 이미 "평화와 질서를 최고의 이상으로 삼았고, 통일은 모든 정치적 목표를 압도했다." 다만 "통일이라는 개념은 스스로를 나누었다." 맥파르쿠르는 "통일을 유지하려면 다원화를 실행하는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이런 말은 <캠브리지중국사>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이고, <캠브리지중국사>만이 감히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천하대세는 흩어진지 오래되면 반드시 합치고, 합친지 오래되면 반드시 흩어지는 것이 아니다. 흩어지고 합치는 것의 관건은 인심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람의 관념이다. 어떤 관념을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 최종적으로 어떤 역사와 운명을 가질지가 결정되는 것이다.

 

위의 세 가지 이외에도 역사의 거짓말을 아주 많다. 역사는 그 속에 있는 사람을 잘 모르게 된다. 역사를 제대로 보려면 거짓말을 회피하려면, 안목을 바꿔야 한다. 주유쟁(朱維錚)이 한 말처럼:

 

"중국이 하나의 창문만을 가진 방이라고 생각해보자. 외국학자는 단지 창문을 통하여 안을 들여다본다. 그러나 중국의 역사학자들은 방안에 있어서 마치 모든 것을 통찰하는 것처럼 보인다. 다만 유독 이 방의 좌표가 어떻게 되는지는 알지 못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