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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분석/중국역사의 분석

문명퇴보의 7가지 징조

by 중은우시 2024. 4. 11.

글: 북유독서(北游读书)

광세의 거작 <문명이야기>의 작가인 윌 듀란트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만일 문명전파과정이 1세기이상 중단된다면, 문명은 사망하고, 우리는 다시 야만인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천리지제, 궤어의혈(千里之堤,溃于蚁穴), 천리나 되는 제방도 개미구멍때문에 무너지는 법이다. 역사는 항상 진보하는 것이 아니고, 자주 역행하기도 한다. 역사상 많은 문명의 붕괴도 하룻밤만에 완성되지 않았다. 건물이 무너질 때는 반드시 여러가지 징조가 나타나는 법이다.

징조 하나: 집단적인 과대망상과 열광

하늘이 그것을 멸망시키고자 할 때는 반드시 먼저 그것을 미쳐버리게 만든다. 역사상 너무나 많은 사례가 이를 증명해준다. 1차대전전의 제정러시아이건, 11개국에 선전포고를 날린 대청국이건, 아니면 2차대전중의 도조 히데키이건, 과대망상과 열광은 그들의 공통된 특징이다. 붕괴와 멸망도 그들의 공통된 운명이었다.

이것은 또한 왜 "일곱가지 죄"중에서 오만의 죄가 가장 심각한 죄행인지를 말해준다. 왜냐하면 오만은 인류가 타락하는 시작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듀란트는 이렇게 말했다. 인류역사는 단지 우주에서의 일순간이고, 우리가 먼저 배워야할 것은 겸손이라고.

징조 둘: 경쟁과 선택이 점차 사라진다.

듀란트는 말했다: "생명은 경쟁이고, 생명은 선택이다." 우리는 진화과정의 지배를 받고, 또한 생물계의 약육강식, 적자생존법칙의 적용을 받는다. 경쟁과 선택은 인류문명발전의 전체 과정을 함께 했고, 문명이 낡은 것을 버리고 새로은 것을 취하도록 하는 큰 동력의 하나였다.

그러나, 어떤 지역에서는 사람들이 체제의 질서로 경쟁을 대체하고, 어떤 사람이 학교에 들어갈지, 어떤 사람이 학교에 가지 못할지, 어떤 사람은 사업을 할지, 어떤 사람은 그저 소비만할지를 정한다. 이는 사람들에게 선택의 자유를 빼앗는 것이고, 전체사회는 활력을 잃게 된다. 문명은 정체에 빠지고, 심지어 도퇴된다.

징조 셋: 투쟁과 봉쇄가 합작을 대체한다.

듀란트는 말한다: "문명은 합작의 산물이다. 거의 모든 민족은 이에 대해 모두 공헌이 있다." 차이는 단지 공헌이 크냐 작냐는 것뿐이다. 어떤 지역사회는 항상 아주 개방적이고 합작이 아주 보편적이다. 그들 사회는 진보가 비교적 빠르고, 문명에 대한 공헌도 자연히 더욱 많아진다.

어떤 지역사회는 정반대이다. 사회는 항상 폐쇄적이고, 피차간에 합작은 하지 않는다. 이를 대체한 것은 항상 어디서나 존재하는 투쟁과 몸부림이다. 외부세계에서 배우는 것을 거절하고, 외래적인 것들을 모두 거부한다. 이렇게 "폐문조차(闭门造车)하는 곳의 문명은 "수토불복(水土不服)"할 수밖에 없다. 만일 토양 자체가 바뀌지 않는다면, 어떤 실질적인 발전도 기대할 수가 없다.

징조 넷: 정신과 도덕수준이 집단적으로 쇠퇴한다.

역사 자체가 대체적으로 계속 반복되는 하나의 중요한 원인은 바로 사람의 천성이 지질이 변경되는 것처럼 완만하여, 한세대 또 한세대가 지나더라도 국민의 성격은 그다지 크게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왕조교체이든 지난번 왕조가 붕괴한 인성요소가 왕왕 다시 다음 왕조의 붕괴를 불러오는 요소가 된다.

듀란트는 말한다: "사회의 기초는 사람의 이상에 있지 않고, 사람의 인성에 있다. 인성의 구성은 국가의 구성을 고쳐쓰게 할 수 있다." 만일 하나의 국가의 국민전체의 정신과 도덕수준이 지속적으로 쇠퇴하는 중이라면 그 국가의 문명정도도 반드시 퇴보하게 되는 것이다.

징조 다섯: 급진주의가 성행한다.

듀란트는 말했다: "사회진화는 습관과 혁신의 상호작용과정이다. 변화를 거부하는 보수파는 변화를 주장하는 급진파와 동등한 가치를 지니거나 심지어 더욱 가치가 있다. 왜냐하면 뿌리와 줄기가 깊고 두터운 것이, 가지와 잎이 무성한 것보다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인류역사는 계속하여 열광적인 급진주의에 빠지곤 했다. "프랑스대혁명"은 바로 선명한 사례이다. 소위 "박애, 평등과 자유"를 추구하기 위하여, 프랑스인들은 모든 전통을 무너뜨렸고, 결국 얻어낸 것은 장기간의 동란과 불안이었다. 이런 사조는 전세계에 퍼져갔고, 그 여독은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징조 여섯: 폭력적인 수단으로 부를 나눈다.

듀란트는 말했다: "부의 집중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피할 수 없는 것이다. 폭력 혹은 평화적인 수단으로 일부 재분배함으로써 주기적으로 완화될 수 있다." 다만 우리가 반드시 의식해야 하는 것은 서로 다른 부의 재분배방식이 문명에 서로 다른 정도의 해를 끼치게 된다는 것이다.

법률에 의존한 평화적인 부의 재분배방식은 문명에 끼치는 해가 유한하다. 그러나 폭력적인 수단으로 "살부제빈(杀富济贫)", "평균재부(平均财富)"하는 행위도 역사상 드물지 않다. 어떤 지역에서는 반복적으로 일어난다. 다만 부를 추구하는 모든 행위가 일종의 범죄로 되면 사람들은 집단빈곤의 함정에 빠지게 되고, 노예식의 평등을 실현하게 될 뿐이다.

징조 일곱: 유토피아주의를 강제로 추진한다.

유토피아주의는 통상적으로 사람들에게 가장 아름다운 미래를 약속하는 것이다: 전지전능한 정부, 충분한 복지, 평등한 사회....

후세의 사람들은 자주 이렇게 믿는다. 유토피아주의는 그저 특정시대의 산물이라고. '자본주의의 결험으로 인해 나타난 필연적인 결과"라고. 그러나 듀란트는 역사적사실을 가지고 증명했다: 유토피아의 충동은 예로부터 사람의 인성 속에 깊이 심어져 있다. 그래서 영원히 인류사회와 함께할 것이다.

'인간천국'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강제로 유토피아를 추진하는 행위는 그저 모든 사람을 사회실험의 모르모트로 삼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로 인해 조성되는 것은 결핍, 혼란, 부패와 대도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