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참사오대(饞師五代)
1
고추는 남방요리에서 가장 중요한 조미료이다. 중요한 것중 하나가 아니라. 사천요리(川菜), 호남요리(湘菜), 호북, 중경, 운남, 귀주 거의 모두 고추를 넣지 않으면 요리가 되지 않는다.
남방사람들은 왜 이렇게 고추를 즐겨 먹을까?
모두가 알고 있는 설명은 이러하다. 고추는 습기를 제거한다. 남방은 북방보다 습하기 때문에 고추를 많이 먹어야 한다. 그래야 체내의 습기를 제거할 수 있다. 중의(中醫)가 사람들의 마음 속에 깊이 뿌리박은 중국대지에서 이런 해석은 일종의 상식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논리적인 분석이 없는 상식은 대부분 오류이다.
고추가 습기를 제거한다는 것은 논리적인 추리를 통과할 수 없는 오류이다.
못믿겠다면 필자의 설명을 들어보라.
2
만일 고추에 습기를 제거하는 효과가 있다면, 왜 동남연해의 강소, 절강, 복건과 광동에서는 고추를 먹지 않을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고추가 외래품이라는 것이다. 먼저 동남사성(강소,절강,복건,광동)에 상륙한 후,내지로 전해진 것이다. 특히 명,청 두 왕조때 쇄국정책을 취하여 광주일대에서만 정부는 무역을 하도록 허용했다. 그러므로, 가장 먼저 고추를 접촉한 것은 분명 광동인과 광동요리(粤菜)의 요리사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광동요리에는 실고추하나 들어가지 않는다.
광동이 습하지 않은가? 광동인들은 습기를 제거할 필요가 없단 말인가?
강소, 절강이 습하지 않은가? 장강삼각주지역은 충적평원이고, 수로가 그물처럼 뻗어 있다. 노신 선생의 고향인 소흥은 집의 앞뒤로 각각 작은 내가 흐른다. 나가고 들어올 때의 교통도구도 오봉선(烏蓬船)이었따.
소흥, 호주, 항주, 소주가 습하지 않은가? 해발1천미터이상의 운남,귀주고원보다 더 습한가?
그러나, 회양요리(淮楊菜), 소주, 무석, 항주,상해사람은 고추를 먹지 않는다.
습기제거론에 따르면, 체내에 습기가 모이면 병이 걸리게 된다. 그러나, 장강삼국주의 사람들은 잘 살고 있다. 무탈하게 잘 지낸다.
이를 보면 습기제거라는 말은 오류라고 봐야 한다.
3
구름낀 산이나 안개속같은 해석의 아래에는 간단하기 그지없는 사실이 숨어 있다. 가난한 사람, 가난한 지방에서 고추를 즐겨 먹는다는 것이다. 고추는 가난한 사람의 소금이다. 경제적으로 싸고, 맛은 좋은 요리의 조미료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관찰해볼 수 있는 사실은 힘들게 사는 사람일수록 강한 맛을 좋아한다. 부귀한 사람일수록 담백한 맛을 좋아한다. 예를 들어보자. <수호전>의 이규(李逵)는 항상 "담출개조래(淡出個鳥來, 아무 맛도 나지 않는다는 의미임)"라고 말한다. 항상 식당에서 내놓는 요리가 너무 담백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원인은 바로 이규는 매일 두 개의 대판부(大板斧)를 들고 다른 사람과 싸우는데, 단순히 등에 지고 다니는 것만 하더라도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땀을 흘리게 되고, 더 많은 염분을 보충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대중국에서 소금은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주요 원인은 소금을 정부가 독점했다는 것이다. 사인의 경영을 허용하지 않았다. 사염(私鹽)을 판매하는 것은 중죄였고, 목이 잘릴 수 있는 범죄였다. 관방독점으로 인한 결과는 바로 소금가격이 너무 높아 일반 백성들이 사기 어려워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소금을 쉽게 얻을 수 있는지와 소금가격이 고추를 즐겨먹는지 아닌지의 분수령이 된 것이다.
동남연해는 소금이 생산되고, 소금값이 싸다. 그리고 비교적 부유하다. 고추로 요리의 맛을 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내륙지구에서는 소금값이 비싸고, 경제도 비교적 낙후되어 있다. 그리하여 소금을 살 수도, 먹을 수도 없는 것이다. 할 수 없이 현지에서 대체품을 구해야 했고, 고추를 쓰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남방"에서 고추를 즐겨먹게 된 올바른 해답이다. 무슨 습기제거같은 것이 아니라.
이 "남방"에는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강남, 화남은 포함되지 않는다. 부인할 수 없는 점은 당나라이래, 강남, 화남은 중국에서 경제가 가장 발달한 지역이었다는 것이다. 호남, 호북, 사천, 강서, 운남, 귀주, 중경의 경제는 동남연해보다 낙후되었다. 다만 고추를 즐겨먹는 것은 강남이나 화남보다 훨씬 강했다.
이를 보면, 고추와 습기제거는 무관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금가격과 부유한지 여부가 관련이 있는 것이다.
소위 고추가 습기를 제거한다는 말은 순전한 헛소리이다. 그리고 수백년간 전해지면서 전국으로 퍼져가게 되었다.
이런 헛소리는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
4
이상은 추리이다. 아래에서는 두 가지 고추로 소금을 대신한 물증을 들어보기로 한다.
운남의 여러 지방에서 요리를 내놓을 때, 필수불가결한 접시가 있다. 잠수(蘸水)라고 부르는 소스인데, 무엇을 먹든지간에 접시로 요리를 집은 다음 잠수에 적신 후 입으로 집어넣게 된다. 잠수는 고추가 위주이다. 오늘날에는 고추외에 각종 조료(調料), 예를 들어, 장유(醬油), 향유(香油), 미원같은 것들을 넣는다. 그러나 쉽게 추정이 가능하다 처음에는 고추에 물을 추가한 것으로 식염의 부족을 대체했던 것이다.
이것이 그 첫번째이다.
사천 서창지구의 이족(彛族)은 잠수를 내놓지 않고, 마른고추가루를 한접시 내놓는다. 잠수와 마찬가지로, 어떤 것을 먹든지 간에 젓가락으로 집거나 손으로 집은 다음 고추가루를 묻혀서 직접 먹는다. 예를 들어, 구운감자, 구운고구마, 옥수수, 돼지고기등을 모두 그렇게 먹는다. 2015년 겨울, 필자는 서창시 사합향의 이족집에서 이족친구와 함께 새끼돼지구이(烤乳猪)를 먹었다. 새끼돼지를 잘 구운다음 그의 부인이 구운 고기를 한접시 내놓으며, 두 접시에 고추가루를 같이 내놓았다. 나는 한 손으로 고기를 집은 다음 고추가루를 묻혀서 먹었다. 그때의 고추가루는 식염에 해당한다.
이것이 두번째이다.
5
오늘날 소금은 공급이 거의 무궁무진하고, 가장 가치없는 물건이 되었다.
그러나, 소금이 희귀하고, 소금가격이 비싸던 시절은 오늘날로부터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도 않았다.
운남대학의 저명한 문화학자 방국유(方國瑜) 선생은 민국시기에 일찌기 운남과 버마접경지역을 현지조사한 바 있다. 그후 <전서변구고찰기(滇西邊區考察記)>라는 책을 썼고, 책에서는 두 차례에 걸쳐 운남,버마접경지역의 식염부족을 언급하고 있다.
"반홍풍토기(班洪風土記)"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지역에서 소금이 생산되지 않아서, 맹정, 경마의 시장에서 바꾸어 온다. 또한 모흑, 석고등의 소금우물에서 운반해오기도 한다. 가격이 비싸고, 현지인들은 가난해서 소금을 얻기 쉽지 않다. 그래서 많은 경우 소금없이 먹는다(淡食)"
또 다른 글 "카와산문견기(卡瓦山聞見記)"에서 다시 한번 써놓았다: 카와지역은 소금이 나지 않는다. 내지의 상인들이 파이 시장에서 판다. 길이 멀어 운송비가 많이 들어 가격이 특히 비싸다. 야카에는 질낮은 소금이 시장에 들어오지만 수량이 적어, 소금을 구하기 쉽지 않다. 그리하여 많은 경우 소금없이 먹는다(淡食). 현지인들의 말을 들으니, 야카의 요리나 탕에는 소금이 들어가지 않는다. 불아궁이(火塘) 주변에 둘러앉아 먹는데, 소금덩이를 솥 옆에 놓아두고, 집어서 핥는다. 그리고 순서대로 돌려서 핥는다. 이빨로 깨무는 자가 있으면 모두 일어나서 그의 등을 두드려 혼을 낸다. 나는 맹동에 있었는데, 시장에는 먼 길을 와서 파는 자가 있었다. 배가 고프면 거칠고 검은 만두를 꺼내서 소금을 핥아서 반찬삼았다.
나는 특별히 여기에 시간을 써놓지 않았다.
여러분은 어느 해에 일어난 일인지 알겠는가? 바로 민국24년이다.즉 1935년의 일인 것이다.
유사한 사료는 민국시기 저명한 지질학자 정문강(丁文江)이 <만유산기(漫遊散記)>에 기록된 것이 있다. 1911년, 영국유학을 마치고 배를 타고 귀국했는데, 월남에서 하선하여 운남, 귀주, 사천, 중경와 장강을 타고 상해로 돌아온다.
운남도중에 정문강은 한 무리의 민공(民工)을 만나게 된다. 6.7명이 한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한 접시 안에는 소금덩이가 하나 놓여 있었다. 사람들은 밥은 한 입 먹으면 소금을 집어서 입으로 핥았다. 이 광경을 보고 정문강은 놀라마지 않았다.
6
고대그리스의 저명한 사상가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했다: 반성하지 않은 삶은 가치가 없다(The unexamined life is not worth living). 소크라테스의 명언에 따라 나도 한 마디 지어보자면: 반성하지 않은 상식은 믿을만하지 않다.
문제는 어떻게 반성해야 하느냐이다.
왕양명(王陽明)의 방식으로? 심학(心學)으로? 돈오(頓悟)로? 내부성찰(內省)로? 비교분석(類比)으로? 천인합일(天人合一)로? 변증법적으로 문제를 볼 것인가? 아니면 음양오행으로 볼 것인가? 실천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시간으로 볼 것인가?
모두 안된다.
만일 된다면, 소위 고추를 먹으면 습기를 제거할 수 있다는 오류는 이렇게 오랫동안 전해지지 않았을 테니까. 왜냐하면, 더 많은 사람은 나보다 더 멀리 걸어갔고, 더 높이 날아갔고, 더 많이 보았기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중국인들이 SUV를 몰고 조국의 강산을 주유했던가. 그들이 다닌 길은 내가 걸은 길보다 길고, 그들이 먹은 소금은 내가 먹은 밥보다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본 것은 우물입구정도의 크기였다.
왜 그랬을까?
왜냐하면 그들은 논리라는 발견의 신지식, 오류제거의 가장 유효한 도구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논리는 사상의 만화경이다. 사고 속에 숨어 있는 각종 요마귀괴(姚魔鬼怪)를 발견할 수 있다. 반대로, 논리가 없으면, 햇볕이 비치지 않는 곳과 같이, 진흙탕이고, 더러운 물이 흐른다고 하더라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래서, 시비를 구분하고, 우열을 따질 수 있는 아는 사람이 되고, 날로 치열해지는 경쟁 속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불패의 땅이 발을 딛고 서려면 필자를 따라 논리를 배워야 한다.
논리는 사람을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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