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풍성도(風聲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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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의 어느 추운 겨울날, 차가운 북풍이 눈발을 일으켜 한 나무로 만든 집에 부딛쳐 소리를 내고 있었다.
방안에는 한 노인이 떨리는 손으로 칼을 잡고, 조심스럽게 약알 하나를 8조각으로 나누고 있었다.
침대옆에서 물이 든 사발을 들고 있던 중년인은 그 모습을 보고 놀라서 조심스럽게 말한다: "이렇게 약을 드시면, 소용이 없을텐데...."
노인의 대답은 아주 나지막했고, 마음이 아팠다: "약값이 또 올랐어. 하루라도 더 버티면 하루 더 사는 거지..."
이는 2021년에 인터넷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단편 <나는 인민(我是人民)>의 일막이고, 극 안의 중년인은 바로 루난제약의 창업자인 자오즈췐(趙志全)이다.
<나는 인민>은 기몽정신(沂蒙精神, 산둥성 기몽지구의 혁명정신)을 홍양하는 것이 주제였고, 각각 시대모범(時代楷模) 자오즈췐, 당대우공(當代愚公) 류자쿤(劉嘉坤), 홍수정신(紅嫂精神, 기몽지역 부녀들의 혁명정신을 가리킴)의 계승자 위아이메이(于愛梅), 고아빈곤아동지원복무단등 전형적인 인물들의 사적을 소개하는 것이다.
단편이 발표된 후, 해외의 SNS에서도 널리 회자되었고, 본 사람이 천만을 넘었다.
주인공 자오즈췐의 이야기는 감동적이었다: 가난한 집안 출신인 그는 27년의 시간을 들여, 도산에 직면한 작은 제약공장을 순자산이 60억위안이 넘는 루난제약으로 키워냈다.
말기암을 앓으면서도 계속 업무를 보았고, 사망하기 직전에도 그는 전체 직원들의 급여를 한번 더 인상하라고 당부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 자신은 겨우 40평방미터의 구옥에 살면서, 4천여채의 복지주택을 건설하여 모든 직원들이 편안한 집에서 살 수 있도록 해주었다.
루난제약의 직원들이 보기에 그는 대가족의 가장이었다. 직원들에게 부족한 것이 있으면, 그는 직원들을 위하여 그것을 마련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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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자오즈췐이 사망한 후, 수만의 직원들은 자발적으로 장례식에 참석했고, 그 장면은 눈물겹게 감동적이었다.
자오즈췐의 생전 공헌으로 중공중앙선전부는 그에게 "제로시대모범(齊魯時代楷模)라는 칭호를 수여했다.
단편이 방영될 때, 멀리 대서양의 동부카리브대법원(Eastern Caribbean Supreme Court, 동부카리브대법원은 앤티카 바부다, 도미니카영연방, 그레나다, 세인트 키츠 네비스, 세인트 루시아, 세인트 빈센트 그레나딘 및 3개의 독립주를 포함한 동부카리브해국가들의 최고법원이며, 영국의 해외영토, 각 회원국에 대하여 관할권이 있음)에서는 시간이 오래 걸린 주식분쟁사건이 심리중이었다.
최종판결은 루난제약의 극히 중요한 25.7%의 주식이 누구에게 귀속될 것인지를 정하게 될 터였다.
이미 세상을 떠난 자오즈췐은 아마 생각지도 못했을 걳이다. 자신이 당초 세수혜택을 위해서 머리를 굴려 만들어 둔 것이, 자신의 가족에게 화근이 되어, 하마터면 수십년간 고생하여 키운 가업이 남의 손에 넘어갈 수도 있었다는 것을.
2021년 7월 22일, 자오즈췐의 외동딸 자오룽(趙龍)은 웨이보에 이렇게 글을 올린다. 자신이 부친이 임종때 "탁고(托孤, 어린 자식을 부탁함)"한 변호사가 가족의 재산을 집어삼킨 사건에서 최종적으로 승소하였다고.
이 가족신탁소송의 쌍방은 원고가 세력도 없고 힘도 없는 자오즈췐의 외동딸이고, 피고가 구점작소(鳩占雀巢)한 직업변호사였다. 소송은 전후로 4년여간 계속된다.
이 사건과 관련된 이야기는 기이하고, 주식구조는 복잡했다. 그리하여 이 사건은 비지니스스쿨의 연구사례로도 들어가 있다.
이 판결은 루난제약 내부의 은밀한 '궁투(내부투쟁)'을 드러내고 있을 뿐아니라, 더더구나 중국민영기업이 BVI회사(offshore회사)의 가족신탁모델로 회사주식을 소유하는 것이 상당한 리스크를 안고 있다는 것도 드러냈다.
자오즈췐은 생전에 아마 전혀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자신의 가족이 엄청난 주식쟁탈전에 휘말리게 될 줄은. 그리고 전체 사건은 바로 그가 생전 가장 신임했던 사람에게 등뒤에서 칼을 맞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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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전국에서 기업도급붐이 일어난다. 그리고 31살의 자오즈췐은 전체 공장직원들의 추천하에 탄난제약창(郯南製藥廠, 루난제약의 전신)을 도급받는다.
자오즈췐은 산둥성 페이현(費縣) 사람이다. 산동화공학원을 졸업한 후, 탄난제약창에 분배받아 기술자로 있었다. 그는 설비동력과장에서 기술과장으로 승진을 거듭했다.
자오즈췐에 대핸 사람들의 평가는 "후덕하고 능력이 있다"는 것이었다.
취임식에서 자오즈췐은 자신만만하게 선언한다: "우리가 약을 잘 만들어서, 함께 좋은 날을 맞이하자."
그는 또한 계획을 크게 세운다: 4년내에 연간생산 1000만위안, 이윤 120만위안을 실현하겠다.
전체 공장의 235명 직원들은 열렬히 박수를 쳤다. 그러나 마음 속으로는 그게 되겠는지를 확신하지 못했다.
그때의 탄난제약창은 장부상 순자산이 19만위안에 불과했고, 재고원료는 겨우 3일을 버틸 수 있을 정도였으며, 이윤은 거의 제로였기 때문이다.
누구든 잘 살고 싶지만, 기업이 위기에 처한 현상에서 그들은 신임공장장의 약속을 믿기 쉽지 않았다.
자오즈췐은 취임하자마자 개혁을 실시한다. 인사개혁, 노동개혁에서 분배개혁까지. 대대적으로 정비한다. 그리하여 직원들의 적극성을 불러일으키고, 사람들에게 그의 결심을 확인하게 했다.
도급받은 첫 해에, 새로 연구개발한 "은황구복액(銀黃口服液)"으로 공장은 흑자전환을 한다.
그후 2년간, "은황구복액"과 또 다른 신약인 "심통구복액(心痛口服液)"은 공장의 대표제품이 되고, 총생산액은 1700만위안에 이르고 이윤은 120만위안을 넘어섰다.
자오즈췐은 취임시의 약속을 1년 앞당겨 달성한 것이다.
그러나, 시장경제가 활발해지면서 루난제약이 생산하는 이런 경증감기약은 가격이 더욱 저렴한 동일유형의 제품들과의 사이에 전혀 경쟁력이 없었다.
동시에 초기에 투자를 너무 많이 하다보니, 제약공장의 판매정체, 대금미회수등의 문제가 나타난다.
자오즈췐은 대출을 받고자 했지만, 은행은 공장현황을 보고 돈줄을 더욱 죄었다. 아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자금문제를 해결해보려고 했지만, 말을 마치기도 전에 상대방은 전화를 끊는다.
1996년 겨울, 자오즈췐은 전체공장간부회의를 소집해서 다같이 출로를 모색한다.
판매과는 시장에서 수요가 큰 중증감기약의 외국약 복제품을 만들자고 건의했고, 기술과에서는 난색을 표했다. 돈 도 없고 설비도 없다는 것이다.
그때 누군가가 제안한다: "그럼 감원합시다. 절반을 자르면 반년은 더 버틸 수 있지 않겠습니까."
자오즈췐은 화를 낸다. 제안한 사람에게 이렇게 반문한다: "어느 절반을 자르자는 거냐. 너는 자를까 말까?"
회의실에는 정적이 흘렀다. 아무리 뛰어난 며느리도 쌀이 없으면 밥을 짓지 못한다. 돈이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자오즈췐은 탄식하며 말했다: "사람을 자르면, 어떻게 살아가란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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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오즈췐은 결정한다. 전화를 받지 않으면, 얼굴 두껍게 하고 직접 찾아가서 만나겠다.
그리하여 그는 보급형산타나를 몰고 9일동안 동북3성의 18개 도시를 찾아다닌다. 원료공장부터 병원, 은행까지 곳곳을 찾아다니면서 도움을 청했다.
도중에 배가 고프면 집에서 가져간 전병, 절인채소를 먹었다; 피곤하면 차 속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
여러번 '문전박대'를 당한 후, 자오즈췐은 내몽골의 한 노간부가 아직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떠올리고 연락을 해본다. 상대방이 만나주겠다고 하여 약속을 잡는다.
내몽골로 차를 몰고 가면서 폭설을 만나, 자오즈췐은 엄청난 눈더미 속에 갇혀 버린다. 그는 할 수 없이 차에서 나와 눈을 맞으면서 몇 킬로미터를 걸어갔다. 하마터면 황원에서 동사할 뻔했다.
다행히 배고픔과 추위에 지친 그는 눈으로 뒤덥힌 천지에서 한채의 나무집을 발견한다.
나무집의 노인이 그를 구해주었다. 그를 집안으로 데려고 들어가서 따뜻한 국수를 먹도록 해준다.
자오즈췐이 육수를 들이킬 때, 노인은 약을 먹으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여러 해동안 심장병을 앓고 있어서, 먹는 약은 모두 비싼 수입약이었다. 노인은 의사가 한번에 한알씩 먹으라고 당부했지만, 그것을 8조각으로 나누어 먹고 있었다.
자오즈췐이 그러지 말라고 하자, 노인은 쓴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그래도 안먹는 것보다는 낫잖아.
자오즈췐은 마음이 아팠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노간부를 찾아가서 자오즈췐은 마침내 구명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노인이 약을 먹던 광경은 그의 가슴을 찢어지게 했다.
그는 그런 노인이 전국에 아주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은 제약공장을 하는 이유는 바로 백성들에게 도움이 되고, 환자들이 약을 제대로 먹게 하기 위함이 아니던가.
자오즈췐은 이때 결정한다. 미래 제약공장의 약품가격은 모두 싸게 하겠다. 그리고 반드시 온갖 방법을 가구해서 비싼 수입약을 대체할 수 있도록 하겠다. 이것은 제약공장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수천수만의 수입약을 구매할 수 없는 일반백성을 위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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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의 연구개발하는데 노간부에게서 받은 돈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자오즈췐은 전체 직원을 모아서, 직원들의 자금을 모아 저가대체약을 만들고자 시도한다.
자오즈췐은 말했다: 하늘아래 모든 백성들이 건강하게 하자. 그들이 좋은 약,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약을 먹게 하는 것이 우리의 본분이다. 나는 이것이 큰 도박이라는 것을 안다. 그래도 해볼 가치는 있다!"
결국 전체 직원들이 자오즈췐의 정신이 감동하여, 모두 대체약품을 만드는 생산자금을 내놓기로 한다.
여기서 당시의 의약배경을 잠깐 소개할 필요가 있겠다.
1990년대초, 국내의 심장혈관 및 암같은 중증분야의 약품은 거의 모두 수입약이었다. 보통 심장병을 치료하는 약의 가격이 400위안/병이었고, 치료과정을 마치려면 최소한 3000위안이 필요했다.
그때 전국 도시직공의 평균월급여는 500위안이 되지 않았고, 시골이나 농촌지역의 수입은 더욱 낮았다.
그러므로, 자오즈췐과 모든 직원들은 잘 알고 있었다. 그 노인이 기실 수입약을 사지 못하지만, 그래도 살고 싶은 환자들의 한 단면이라는 것을.
그리하여, 자오즈췐은 도박을 한다.
단편에서 노인이 먹은 약은 독일에서 심뇌혈관병을 치료하는 특효약인 이소비드(Isosorbide Mononitrate)였다. 거의 80%의 시장을 가지고 있었으며, 판매가격은 병당 200여위안이었다.
심혈관질병은 약을 장기간 복용해야 하므로, 의료보험을 받을 수 없었고, 많은 환자들은 그저 '망약흥탄(望藥興嘆)'해야 했다.
자오즈췐은 전력을 기울여 '이소비드'를 대체할 수 있는 약을 연구개발인원을 이끌고 연구했다. 마침내 중국자신의 특효약인 "루난신캉(魯南欣康)"을 개발하는데 성공한다. 한박스에 50위안이었다. 수많은 심혈관질병환자들이 사먹을 수 있는 가격이고, 성공적으로 이소비드를 중국시장에서 몰아낼 수 있었다.
많은 제약회사들이 성공한 제품을 만들어내고나서는 연구개발경비를 줄이는 것과 달리, 2001년이래, 루난제약은 매년 연구개발경비로 판매액의 7%이상을 쏟아붓는다. 많은 경우에는 18%에 이르기도 했다. 이는 다른 제약공장들보다 훨씬 높은 비율이다.
구입하는 설비도 가장 선진적인 것이었다. 자오즈췐의 생각은 "시대의 흐름에 맞춰가는 것"이었다.
1994년 9월, 자오즈췐은 기업구조조정을 통하여, 탄난제약창을 루난제약주식유한공사로 고친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지만, 루난제약의 생산공장에는 장꾸이민(張貴民)이라는 대학생이 있었다.
그때, 자오즈췐의 생각은 어떻게 하면 세금우대혜택을 받느냐에 집중되어 있었다.
2000만주의 국가소유주식중 1600만주를 옌타이발전(煙臺發展)의 산하에 있는 미국투자기업 루신회사(魯信公司)에 양도한 후, 루난제약은 마침내 세수혜택을 누릴 수 있는 중외합자기업이 된다.
그후, 루신은 증자를 통해, 보유한 외자지분을 2100주로 늘이고, 이는 루난제약 총주식의 25.7%에 이른다.
2000년, 루난제약과 옌타이발전간에 경영방침을 놓고 이견이 생겨 쌍방은 우호적으로 헤어지기로 한다.
그러나, 루난제약이 계속하여 외자신분을 유지하기 위하여, 자오즈췐은 그 자회사가 가진 지분을 인수한다. 그리고 루신회사가 보유한 루난제약지분을 카이룬실업(凱倫實業)에 명의신탁한다.
바꾸어 말하면, 주식을 되산 돈은 모두 자오즈췐의 주머니에서 나왔다. 주식은 그가 여러 해동안 고생해서 모은 가족의 재산인 것이다.
아쉽게도 자오즈췐은 사람을 잘 만나지 못했고, 결국 화근이 심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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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오즈췐은 당시 일개 소형제약공장의 공장장에서 이미 직원이 십여만에 이르고, 자산은 수십억위안을 초과하는 부호가 되어 있었다.
주식 25.7%를 매입하기 위하여 자오즈췐은 7,560만위안의 현금을 지급했다. 이는 20년전에 절대 적은 숫자가 아니다.
신분이 이미 남달랐기 때문에 그가 찾은 변호사도 남달랐다.
그리하여 왕젠핑(王建平) 변호사가 등장하게 된다. 그는 자오즈췐이 가장 신임하는 가족변호사였다.
왕젠핑은 북경대학과 하버드대학에서 공부하고, 국내 8대 "Red Circle"로펌중 하나인 진두(金杜, King & Wood)로펌에서 일했다.
소위 "Red Circle"은 중국에서 가장 뛰어난 8개의 로펌을 가리킨다. 이들이 맡는 일은 모두 수천만위안급의 비지니스법률문제였다
자오즈췐이 왕젠핑에게 일을 맡긴 것은 자연스럽게 왕변호사의 빛나는 이력과 업무수준때문에 그의 사람됨을 믿었기 때문이다.
카이룬실업의 막후에 있는 인물은 웨이신민(魏新民)인데 바로 왕젠핑의 부인이다.
단지 왕젠핑은 재능은 있으나 덕은 없는 사람이다. 자오즈췐이 매년 지급하는 8만위안의 변호사비를 받으면서, 그가 노린 것은 자신의 이름으로 명이신탁되어 있는 루난제약의 1/4에 이르는 주식이었다.
루난제약은 상장을 하지 않았지만, 수익이 아주 좋았고, 매년 근 100억위안의 매출액을 유지했다. 주식의 가치를 보자면 천문학적 숫자가 된다.
왕젠핑이 언제부터 나쁜 마음을 품었는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오랫동안 계획한 것만은 분명하다.
서로 함께 일한 시간이 오래되면서, 자오즈췐은 왕젠핑을 더욱 신임하고 자신의 심복으로 여긴다.
2001년 3월, 루난제약이 채권을 발행하게 되는데, 왕젠핑은 법률자문프로젝트를 맡아서 한다. 그때 기회를 잡아 자오즈췐을 '세뇌'시킨다.
왕젠핑은 단기채권은 주식배후의 자오즈췐의 신분이 드러나지 않게 된다는 것을 이유로 자오즈췐에게 주식을 신탁재산으로 전환하여 자기 부부에게 관리를 맡길 것을 건의한다.
자오즈췐은 해외신탁으로 가족재산을 상속시키는 것이 통상적인 방법이라고 들었었다. 그래서 마음이 움직이고, 왕젠핑의 건의에 동의한다. 그리하여, 루난제약의 25.7% 주식을 '조씨신탁"이라는 명의로 웨이신민이 설립한 카이룬실업에 넣게 된 것이다.
1개월후, 카이룬실업과 루신회사는 <주식양도계약>을 체결하고, 후자의 25.7% 주식을 매입하기로 한다. 다만 실제자금을 지급한 것은 자오즈췐이었다.
이와 동시에, 왕젠핑과 웨이신민은 BVI(영령버진아일랜드)에 회사를 하나 설립하는데 앤더슨회사(安德森)이다.
2005년, 카이룬실업은 BVI신회사, 신탁등의 방식으로 주식을 몰래 앤더슨회사로 이전한다. 이때 카이룬BVI는 앤더슨회사의 100%지분을 보유하고 있었고, 자오즈췐은 카이룬BVI는 자오즈췐이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들으면, 주식이 아직 자오즈췐의 수중에 있다고 여길 것이다. 즉, 국내부호들이 교묘하게 자산을 해외로 이전하는 통상적인 수법이다.
그러나 상황은 2011년 7월에 완전히 바뀐다. 자오즈췐이 왕젠핑부부의 말을 빋고 설립한 '조씨신탁'플랜은 앤더슨회사가 보유한 주식을 모두 웨이신민에게 양도하는데 동의한다.
자오즈췐은 아마도 자신이야말로 진정한 주주이고, 기업의 권한을 쥐고 있다고 생각했고, 또한 왕젠핑 부부를 완전히 신뢰하였기 때문에, 그들이 자신의 가족들의 미래를 위해 구상한 것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자신이 계속하여 지켜온 비밀을 이 음모를 꾸미는 부부에게 들킨 후, 상황은 신속하게 역전되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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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자오즈췐은 말기암판정을 받는다.
기업의 정상적인 운영을 위하여, 자오즈췐과 부인은 이를 비밀로 한다.
당시 자오즈췐의 주변에 그가 완전히 신임하는 몇 사람은 알고 있었지만, 그는 확실하게 명령을 내린다: "말하지 말라. 누구에게든 말하지 말라!"
심지어 구체적인 치료내용을 자오즈췐은 딸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수술을 마친 후 화학치료를 하고, 머리카락이 모두 빠지자, 자오즈췐은 가발을 쓰고 계속 회사에 나갔다.
이 일을 자오즈췐은 처음에 왕젠핑에게 알리지 않았다.
그러나 2011년이 되어, 자오즈췐의 병세가 점점 악화되자, 그는 부득이 후사를 생각해야 했고, 변호사를 통해 모든 일을 안배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것이 아마도 얼마 후, '조씨신탁'에 돌연 변화가 발생한 중요요소일 것이다.
이때 자오즈췐은 자신의 후계자를 골라 놓았다. 그는 바로 자신처럼 기술자에서 한걸음 한걸음 관리직으로 올라온 장꾸이민이었다.
2014년 11월 14일 밤, 자오즈췐은 회사에서 야근중이었는데, 주변 사람들에게는 먼저 돌아가 쉬라고 한다.
다음 날 아침 일찍 회사직원들이 문을 밀고 들어갔을 때 57세의 자오즈췐은 이미 사망한 뒤였다.
그의 책상위에는 금방 그가 서명한 전체 직원의 인상급여문건이 있었다.
자오즈췐의 생전유언에 따라, 장꾸이민이 루난제약의 동사장에 오른다. 25.7%의 지분은 법률을 배우는 딸 자오룽에게 남긴다.
자신이 직접 설립한 기업을 외인에게 넘기고 자신의 딸에게 넘기지 않은 것은 자오즈췐이 분명 회사발전이라는 각도에서 생각한 것이고, 전문적인 일은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서일 것이다.
그는 아마도 딸은 주식을 받으면 평생 돈걱정 없이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이런 일들은 자신이 신임하는 왕젠핑 부부에게 맡기면 분명 아무런 문제도 없을 것이라고 여긴 것이다.
아쉽게도, 자오즈췐은 자신의 안목을 너무 과신했다. 그리고 사람의 거액재산에 대한 탐욕과 후안무치를 너무 간과했다.
실제로, 그가 죽기 전에 자오즈췐은 두번이나 왕젠민에게 요구했다. 주식과 재산을 딸 자오룽에게 넘기라고. 그러나 왕젠민은 여러가지 이유를 대면서 미뤘다.
더욱 공교로운 일은 그때의 자오룽이 왕젠민이 일하는 진두로펌에서 인턴으로 근무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보면, 자오룽은 왕젠민을 '스승님'이라고 불러야 한다.
자오즈췐이 죽은 후, 왕젠핑은 여러번 자오룽에게 가족신탁을 설립하자고 건의한다. 그러나 자오룽은 부적절하다고 여겨 동의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스승님'은 너무나 후안무치했다. 자오즈췐의 유언을 미루면서 처리하지 않았을 뿐아니라, 자오룽이 전혀 모르는 상황하에서 몰래 자신의 명의로 된 주식을 새로 설립한 헝더(恒德)회사에 넘겨, 새로운 '보리수신탁'을 설립했다.
이뿐아니라, 루난제약측을 다독이기 위하여, 왕젠핑 부부는 앤더슨회사의 10% 지분을 왕부창(王步强)과 장꾸이민에게 넘겨준다. 그렇게 하여 자오룽을 철저히 고립시키고, 주식은 자신들이 나눠가지려 한 것이다.
2017년 3월, 자오룽은 회사지분구조등의 건을 명확히 하기 위하여, 주주총회를 소집하고자 한다.
이 계획은 웨이신민에 의해 저지된다. 앤더슨회사와 자신이 루난제약의 합법적으로 등기된 외자주주이자 동사라는 이유를 들어서 막은 것이다.
그때까지 아무 것도 모르고 있던 자오룽은 왕젠핑 부부가 안면을 바꾼 것을 알아차렸고, 정식으로 린이(臨沂)중급법원에 소송을 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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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을 제기하기 전에 자오룽은 자신이 인턴으로 있는 진두의 체면을 생각하여 간절한 내용으로 서신을 쓴다.
그러나, 서신을 보낸 후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법정에서 왕젠핑은 교묘한 말로 조씨집안의 주식을 차지한 것이 자오즈췐의 임종유언이라고 하면서, 자신은 자오룽을 딸처럼 생각하고 있다고 말한다.
왕젠핑의 언변은 확실히 뛰어났다. 결국 자오룽은 패소하게 되고, 자오룽은 더 이상 중국내 법원이 아닌 동부카리브대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게 된다.
왜 해외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는지에 관하여는 앤더슨회사의 등록지가 BVI이고, 동카리브대법원의 관할을 받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오룽과 왕젠민이 소송을 진행하는 동안에 루난제약 내부에서도 '내분'이 발생한다.
루난제약의 동사회중 4명의 동사는 임시동사회 회의를 개최하여, 장꾸이민의 동사장직위를 파면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중 1명의 동사가 배신을 하고, 장꾸이민의 진영에 가담한다. 그리고 나머지 3명의 동사는 회사내로 들어가는 것을 강제로 저지당한다. 이렇게 대치가 지속되고 있었다.
2018년, 루난제약의 내부투쟁이 심각해져서 다른 주주의 이익에까지 영향을 끼치게 되고, 정상적인 생산까지 영향을 받는다. 그러자, 린이시정부는 공작조를 기업에 파견하여 관련업무를 처리하게 된다.
그 후에 발생한 일들은 더욱 극적이다. 2019년 자오룽과 모친은 장꾸이민이 '상속인' 신분을 거짓으로 썼다고 지적하며 동사회의 인원을 교체해줄 것을 요청한다.
그리고 장꾸이민은 자오즈췐의 사무실을 뒤져서 <명의신탁계약>을 찾아내고, 자오룽의 주식상속자라는 신분을 부정한다.
이때 자오룽과 왕젠핑의 소송에서 또 다른 사건이 발생한다.
법원이 찾아낸 "보리수신탁"의 수익자 명단에 신탁관리인은 헝더사인신탁관리공사로 왕젠핑이 이 회사의 유일한 주주이자 동사였고, 수익인은 왕자오밍(王鷦明, 왕젠밍의 딸)과 자오룽이었다.
돌연 왕젠밍의 딸이 등장하자, 외부에서는 왕젠밍이 변호사로서의 직업윤리에 문제가 있다고 느끼게 되고, 더러운 욕심을 부린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어서 분위기가 일변한다. 2019년 5월, 루난제약은 린이중급법원에 앤더슨회사를 제고하고, 앤드슨회사가 명의수탁한 지분을 루난제약에 돌려줄 것을 요구한다.
2020년 4월 3일, 린이중급법원은 앤더슨회사와의 명의신탁계약이 해제되었다고 판결한다.
2021년 7월 21일, 동카리브대법원은 판결을 내려, 왕젠핑은 주식을 빼앗기 위해 국내법원을 오도하고, 핵심증거를 숨겼다고 판단하면서, 자오룽이 루난제약 25%주식의 합법적인 상속인이라고 확인한다.
이렇게 하여 4년간 끌던 루난제약지분분쟁은 마침내 막을 내렸다.
명성이 바닥에 떨어진 왕젠핑은 진두로펌에서 제명당하고, 부부는 현재 숨어지내며 더 이상 아무런 소식도 들려오지 않는다.
이 판결은 이런 장면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창업자가 임종시 나이어린 딸을 남긴다; 마음씨 나쁜 변호사가 몰래 수법을 써서 회사경영진과 결탁하여, 딸로부터 주식을 탈취하고자 한다. 딸은 그대로 당하지 않고 소송을 진행하여 결국 승리를 거둔다.
이 일은 신탁의 방식으로 가족의 재산을 후대에 전하려는 부호들에게 경종을 울렸다. 가족신탁은 듣기에 좋아 보이지만 수탁자를 잘못 고르면 엉망진창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자오즈췐은 루난제약을 창업하여 백성들에게 이익을 가져다주고자 했고, 시골의 작은 제약공장을 백역제약기업으로 키워냈다.
그러나 약은 사람의 병은 치료할 수 있지만, 인성의 탐욕만은 어쩔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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