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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경제/중국의 기업

푸리(富力): 중국부동산업계 "화남수호(華南首虎)"의 몰락...

by 중은우시 2021. 10. 8.

글: 진경(秦耕)

 

개인미디어계정인 차이샹(財熵)은 이런 글을 썼다: 15년간 피라미드의 꼭대기에서 미끄러져 내려오는 푸리는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가? 이 거두는 도대체 어떤 난제를 해결해야 하는가?

 

광저우에는 이런 말이 있다: "주장신도시(珠江新城)로 출근하면 이리 뛰고 저리 뛰어도 푸리의 오피스빌딩을 벗어날 수 없다"

 

이 말은 거짓이 아니다. 어떤 통계에 따르면, 방원6.44평방킬로미터에 이르는 광저우의 주장신도시에 "푸리"라는 이름이 붙은 빌딩, 아파트 및 호텔은 크고 작은 것이 16곳이나 된다. 심지어 택시기사마저도 헷갈릴 정도라고 한다.

 

15년전, 푸리지산(富力地産)은 광저우 주장신도시에 토지를 확보해서 일약 최대의 지주가 된다. 중국의 부동산을 보려면 화남을 보고, 화남의 부동산을 보려면 '월계(粤係, 월은 광둥을 가리킴)'를 보라는 말이 있다. 일찌기 푸리는 월계 부동산기업의 우두머리였고, 한때 잘나가던 기업이었다. 푸리가 홍콩에 상장했을 때, 국내에서 자금규모가 가장 큰 민영기업이 된다. 규모, 영업수익, 이윤창출능력의 모든 면에서 뒤를 따라오던 비꾸이위안(碧桂園)과 헝다(恒大)를 압도하고 랭킹이 국유기업 4위를 넘어섰다.

 

지금 월계 부동산기업은 여전히 중국내 부동산업계의 절반을 떠받치고 있다. 단지 선두주자는 계속 바뀌었다. 최근 5년동안 비꾸이위안, 완커(萬科), 헝다가 차례로 선두기업이 된다. 옛날 "화남오호(華南五虎)"중 첫째였던 푸리는 점점 뒤쳐지고 그의 이름은 이제 20대부동산기업에도 들어가지 못한다.

 

이와 동시에 소실된 것은 푸리의 두 오너의 이름이다: 장리(張力)와 리쓰롄(李思廉)

 

이들은 가장 궁합이 잘 맞는 "쌍둥이별"이다.

 

주장신도시에 위치한 푸리지산의 본사건물에는 이런 글이 걸려 있다: "부이사진(富而思進), 역발산하(力拔山河)"라는 여덟글자이다. 회사의 이름을 포함하고 있을 뿐아니라, 두 창업자의 이름도 들어가 있다.

 

푸리를 막 창업했을 때, 장리와 리쓰롄 두 오너는 각각 50%의 지분을 가지고 있었다. 여러 해가 지났지만 푸리는 여전히 "2인오너제"를 유지하고 있고, 기관투자자는 없다. 이런 경우는 부동산업계에서는 보기 드문 경우이다.

 

2007년 장리의 이름은 후룬부호랭킹에서 10위내에 들었다. 그러나 2020년에는 아예 명단에서 이름이 빠져 버렸다.

 

일반적으로 동업으로 창업한 기업은 단기간내에 고속성장을 이루지만, 시간이 흐르면 여러 문제가 나타나게 된다: 서로 다른 오너간에 적건 많건 회사의사결정에 이견이 나타나고, 이윤분배에서도 의견차이가 나타난다. 결구 회사가 갈수록 보수적이 되거나 아니면 회사내에서 권력투쟁이 벌어져서 결국은 동업을 깨고 만다.

 

다만 푸리는 예외였다. 장리와 리쓰롄간에 불화가 있다는 말은 들리지 않았다. 몇년전의 한 인터뷰에서 장리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그와 리쓰롄 두 사람이 오랫동안 협력했지만, 서로 얼굴을 붉힌 적이 없었고, 싸운 적도 없었다. 의견차이는 분명히 있다. 다만 기본적으로 리쓰롄이 자신의 의견을 존중해주는 편이라고 말했다.

 

장리는 광저우 토박이이다. 빈민출신이다. 일찌기 체재내에서 일하던 그는 일찌감치 부동산개발프로젝트를 접했고, 자신은 사업을 하는 것이 더욱 어울린다고 생각해서 공직을 버리고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그의 성격은 과감하게 추진하고 밀어부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표자두(豹子頭)"라고 부른다.

 

장리보다 4살이 작은 리쓰롄은 말그래도 학력이 뛰어난 인재이다. 홍콩중문대학 수학과를 졸업했고, 호주 매커리대학의 경영학명예박사도 받았다. 리쓰롄이 창업전에 한 일은 증권금융애널리스트였고, 그후에 무역업에 종사했다. 항상 현상에 만족하지 못하고 일을 벌리는 장리와 비교하자면 리쓰롄은 내서적이고 신중하다는 느낌을 준다.

 

한 명은 대담하고, 한 명은 신중하다. 성격으로 보건 성장배경으로 보건, 장리와 리쓰롄 두 사람은 큰 차이가 있다. 다만 부동산개발에서는 두 사람의 죽이 잘 맞았다. 두 역량이 천성적으로 "방향이 일치하면 가장 큰 힘을 낸다"는 이치를 깨닫고 있었다기보다는 두 역량이 미묘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예를 들어 말하자면, 두 오너는 여러 해동안 지분이 거의 균등했다. 푸리지산의 현재 인사구조를 보더라도, 현재 회사의 비상임이사중에는 리하이룬(李海倫)이 있는데, 바로 리쓰롄의 누나이다. 상대적으로 또 다른 비상임이사인 장린(張琳)은 바로 장리의 누나이다. 

 

합작의 세부적인 사항을 보면, 장리는 "공격수"역할이다. 프로젝트개발과 공정관리를 주관한다. 리쓰롄은 "수비수"역할이다. 재무와 마케팅을 책임진다.

 

이는 두 사람의 성격과 자질에서의 장점을 잘 결합한 것이다. 특히 푸리가 창업한 초기에 장리, 리쓰롄 두 사람의 협력은 천의무봉이라 할 만했다.

 

1994년 푸리가 성립된 초기, 광저우시정부는 오염기업을 상당수 정리하려 했다. 당시 대다수의 개발상들은 비교적 자금회수율이 좋은 A급 상업용빌딩에 탄약을 집중시켰다. 다만 장리는 예민하게 구도심개발의 기회를 눈치채고, 배수진을 치기로 결심한다.

 

일찌기 광저우의 체제내에서 일했던 장리는 정부관리들과의 교섭에 능했다. '곳곳에서 꽌시를 따지던' 시대에 이 방식은 아주 유용했다. 소문에 따르면, 초기 푸리가 획득한 토지의 대부분은 구공장철거이전프로젝트였다고 한다. 이들 토지는 많은 경우에 공개입찰을 거치지 않았다. 푸리는 저가로 토지를 구했다. 전형적인 사례는 양치촌(楊箕村)개조사업이다.

 

장리가 앞에서 일을 벌이고 있을 때, 그의 파트너인 리쓰롄도 가만히 놀고있지는 않았다. 무역과 영업을 해본 그는 뛰어난 프로모션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건물의 지붕을 덮을 때면 이미 8,9할은 분양을 완료했다.

 

푸리는 그 몇년동안 기업가치가 몇배 뛰게 된다. 공개된 수치를 보더라도, 1994년부터 2001년까지, 푸리는 광저우에서 10개의 구도심개조프로젝트를 진행했고, 개발건축면적은 250만평방미터를 넘는다. 1999년부터, 푸리는 연속 3년간 광저우에서 판매액 1위를 달성한다. 그후 몇년간 판매액은 거의 매년 배로 뛰었다.

 

단지 모든 경우가 그렇듯이 회사의 확장이 순조로울수록 두 오너의 야심도 점점 팽창한다.

 

2002년 푸리는 32억위안으로 당시 국내최대의 공개입찰 토지를 낙찰받는다. 베이징 푸리청, 푸리는 이 일로 인하여 전국적인 명성을 한꺼번에 얻는다. 베이징 외에, 텐진, 청두, 충칭등지에서도 많은 상업부지를 낙찰받는다.

 

그때, 업계1위가 되겠다는 마음이 두 오너에게 심어졌다. 2004년 보아오아시아포럼에서 공개적으로 완커의 창업자 왕스(王石)에게 대든 것은 룽창(融創)의 오너나, 산시사람 쑨홍빈(孫宏斌)도 아니고 홍콩에서 온 리쓰롄이었다. 당시 왕스는 상업부동산의 지속가능성에 대하여 우려를 표시했지만, 어느 기업인지는 직접 거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그 자리에 있던 리쓰롄이 직접 반박한다: "왕총(王總) 걱정마십시오. 우리는 잘 할 겁니다!" 

 

리쓰롄의 계산으로, 만일 푸리가 매년 실적을 배로 늘이는 식으로 발전하고, 상장후에 자본을 조달받으면, 완커를 추월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보았었다.

 

"빛의 또 다른 면은 그림자이다"

 

다만 이 계산이 정교한 리선생은 몇 가지를 놓쳤다.

 

2005년, 푸리는 홍콩상장에 성공한다. 당시 모집규모가 가장 큰 민영기업이 된다. 비록 그후의 모델은 여전히 장리가 토지를 구해오고, 리쓰롄이 건물을 팔고, 장리가 가격을 정하면, 리쓰롄이 지급하는 것이지만, 장리, 리쓰롄은 아마도 빛의 또 다른 면이 그림자라는 것을 의식하지 못했던 것같다. 옛날에 푸리를 정상으로 끌어올렸던 역량이 자본의 큰손 아래에서는 역효과를 발휘할 수도 있다는 것을.

 

먼저, 푸리는 확장초기 다른 도시의 구도심개조계획을 추진했고, 광저우에서의 성공을 복제하고자 했다. 그러나 '수토불복(水土不服)'은 어쩔 수가 없었다. 우한의 구도심개발프로젝트 쟁탈에서 푸리는 상하이푸디(復地)에 패배한다. 나중에 푸리가 복기를 하면서 깨달은 실패의 원인은 그들이 외지의 지방정부와는 관계가 "그다지 좋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그외에 상업부동산에 강공하는 방식은 리스크가 컸다. 푸리는 국내상업용부동산개발의 선구자라 할 수 있다. 일찌기 10녀년전부터 미친 듯이 토지를 긁어모으고, 거액의 자금을 들여 상업용지를 개발했다.

 

다만 모험은 손쉽게 무모함이 될 수 있다. 상업부동산모델과 주택부동산모델은 자금수요가 전혀 다르다. 후자는 개발과 판매를 굴려가면서 발전시킬 수 있지만, 전자는 자금회수가 비교적 늦고, 자금회전이 느리다. 그래서 자금을 집약적으로 대량투입해야 한다. 이는 부동산기업에 있어서 자금수요가 비교적 크게 되는 것이다.

 

푸리는 당시에 이를 인식하지 못했다. 왕스의 앞에서 큰소리쳤던 것을 이행하기 위해, 푸리는 상업부동산을 대거 발전시킨다. 2008년, 푸리의 상업부동산과 주택부동산개발의 속도는 비율이 1:1에 달한다. 이로 인하여 회사는 부채비율을 높여가야 했다. 상장초기 순부채율은 겨우 20%가량이었는데, 2007년에는 이미 139.5%까지 치솟았다.

 

한번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장리가 이렇게 토로한 바 있다. "토지를 구하는 것은 리선생이 한번도 신경쓴 적이 없고, 내 혼자 결정하면 그만이다. 나도 무슨 사전조사나 시장분석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 이 토지를 살지 말지는 내가 가서 한번 살펴보고 마음 속으로 계산을 해본다. 개략 1시간 정도면 이 토지를 살지 말지를 결정한다. 나는 한번도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은 적이 없다. 다른 사람이 의견을 내봐야 헛짓하는 것이다." 

 

이런 합작모델은 경영진이 시장추세를 얼마나 잘 파악하는지가 중요하다. 다만 장리는 확실히 예측하지 못했던 것같다. 2008년 금융위기로 레버리지비율이 높은 기업에게는 큰 충격을 주리라는 것을. 하물며, 푸리는 자본과 함께 춤을 추는 상장기업이고, 리스크는 커질 수 밖에 없다.

 

그 해에 푸리는 처음으로 자금줄이 끊기는 고통을 맛본다. 만일 정부에서 나서서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이 기업은 일찌감치 사라졌을 것이다.

 

그후 푸리는 많이 신중해진다. 그리고 자신의 전체적인 전략을 조정한다. 아쉽게도 여전히 형세를 오판했다.

 

푸리는 이전에 1,2선도시에 집중하는 전략을 취했다. 2008년 금융위기에 한방을 맞자, 다른 부동산기업들은 이전에 1선도시에서 미친 듯이 땅을 긁어모으다가 급류용퇴하여 2,3선도시를 점령하는 전략으로 바꾼다. 이런 조치는 아마도 급진적인 방식의 문제를 깨달은 후의 반성이기도 하고 아마도 다른 경쟁자와 날카롭게 부딛치는 것을 피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며, 또한 새로운 방식의 도박이기도 했다.

 

차이샹의 통계에 다르면 푸리의 연간재무제표에서 비1선도시의 토지개발에 대한 평론과 기술을 보면, 2009년이래, 집단의 2,3,4선도시에 대한 중시도가 계속 올라간다. 비록 태도가 몇번 바뀌기도 하지만(2015년, 2016년, 2019년). 이에 따라 많은 해에서 푸리는 2,3,4선도시의 토지구매에 열심이었다.

 

나중에 보니 이는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다. 먼저, 푸리의 이런 보수적인 전략은 2011-2013년의 1선도시 부동산가격급등의 이익을 얻지 못했다. 그리고 푸리는 지나치게 토지를 분산획득했기 때문에 지역의 시너지효과를 크게 내지 못하고, 회사의 관리비용만 가중시키게 된다.

 

그외에 지나치게 보수적인 전략은 기업의 혁신역량을 압살시킨다. 비록 푸리가 다원화발전의 안목을 지니고 있지만, 부득이 얘기해야할 점은 최근 들어 동종업계들이 걸었던 길을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헝다를 본받아 푸리축구클럽을 만들고, 완다, 완커를 본받아 의료사업에도 발을 내딛는다. 비꾸이위안의 뒤를 따라 말레이시아 삼림도시에도 진출하여 푸리공주만을 내놓고, 야쥐러의 뒤를 따라 관광사업에도 뛰어든다...

 

확실히 다원화는 부동산사업 단일화로 인한 경영리스크를 분산시켜주고, 부동산사업에 대한 거시조정의 충격을 완화시켜주기는 하지만 재무제표의 수치를 보면 푸리의 비부동산사업이 무질서하게 성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단기부채구조를 보면, "단기차입금"과 "기타미지급금"이 최근 10년동안 "계약부채"와 " "납부할 세액"보다 훨씬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푸리의 업계내 랭킹도 계속 내려갔다. 2011년 푸리는 처음으로 부동산업계 10위권에서 쫓겨난다. 2016년에는 푸리의 랭킹은 이미 Top 20의 끝부분으로 밀려난다.

 

"총명반피총명오(聰明反被聰明誤)"

 

당연히 푸리에게도 '좋은 시절'이 있었다. 바이두지수를 보면, 과거 10년 푸리의 검색은 네번 급격히 늘어난 적이 있다. 2017년 검색지수는 사상유례없이 높았는데, 그 때 푸리가 가장 주목받던 시기였다. 당시 완다와 룽촹의 세기적인 결합이 여론의 촛점이었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마지막 순간에 푸리가 끼어들었다.

 

거래일 당일, 왕젠린(王健林), 쑨홍빈, 리쓰롄이 밀담은 나누는 동안 잔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고, 나중에 그 자리에 있던 소식통에 따르면, 리쓰롄이 거래당일 왕젠린에게 돌연 가격을 깍아달라고 요구했고, 최종적으로 푸리는 199억위안 즉 개략 40% 할인받은 저가로 완다의 77개 호텔을 인수한다.

 

그때 이는 푸리에 있어서 이익만 있지 손해는 없을 것같은 거래였다. 푸리는 2.8억위안의 댓가를 주고 호텔 1개를 손에 넣은 셈이었다. 당시 푸리가 호텔 1개를 짓는 원가는 4.3억위안이었다. 이번 인수로 푸리는 2017, 2018년 글로벌최대의 5성급호텔주가 된다.

 

오랫동안 홍콩에 거주해온 노련한 상인 리쓰롄은 비용을 최대한 깍았을 뿐아니라, 자본게임을 통해 호텔사업을 분할한 후 상장시키려고 했다. 그렇게 하면 더 많은 자금을 조달받을 수 있을 터였다.

 

다만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했다. 리쓰롄은 아마도 호텔사업이 쉽지 않다는 것을 몰랐던 것같다. 2017년 푸리는 완다의 호텔자산을 인수하면서 이윤이 급증한다. 다만 이 이윤은 2018년에 다 토해낸다. 당시 호텔사업의 결손은 4.59억위안에 달했다. 그리하여 그룹의 영업수익의 발목을 잡는 약점사업이 되어 버린다. 2020년 신종코로나로 인하여 관광, 호텔업은 더욱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

 

금년 3월, 푸리의 실적발표회에서 리쓰롄은 투자자들에게 "단비구생(斷譬求生)"의 의사를 표시했다. 이미 적극적으로 호텔자산을 매각하고 있으며, 매각작업은 6개월내에 완료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최근 몇년간, 푸리는 자금부족에 놓인다. 2018년, 2019년 푸리의 이자부채무총액은 각각 200억위안, 300억위안이상 증가한다. 일찌기 3년전에, 3개의 레드라인의 구체적인 내용이 발표되기 전에, 천억위안의 채무를 지닌 푸리는 발견하게 된 것이다. 앞으로 나가는 발걸음은 이미 너무 무거워져 있다는 것을.

 

만일 푸리가 그때 현애늑마(懸涯勒馬)했다면 결과는 달랐을 수도 있다. 다만 굳이 이러한 때, 총명한 대주주는 '멍청한 짓'을 저지른다.

 

푸리의 회사채모집서를 보면 2018년초 리쓰롄은 여러해동안 사용해온 호화요트를 팔았다. 매수인은 푸리집단으로 인수금액은 2,900만위안이었다.

 

이 거래는 회사의 주업을 위해 "더욱 간편하게 고객을 접대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거래가 회사에 확실한 수익을 가져다주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2,900만위안의 돈은 확실히 리쓰롄의 호주머니로 들어갔다.

 

유사한 주주와의 관련거래가 1년후에도 발생한다. 당시 푸리는 겨우 3억위안의 저가로 건물관리회사인 텐리(天力)물업을 대주주인 리쓰롄과 장리에게 매각한다. 다만 공정가치를 보자면 당시 매각한 텐리물업의 평가금액은 22억위안에 달했다. 거래금액의 7배가 넘는 것이다.

 

더욱 기막힌 것은 최근의 거래이다. 대주주는 텐리물업을 인수한지 2년도 되지 않아 비꾸이위안에 팔아버린다. 가격은 100억위안이었다. 즉, 2년만에 한번 사서 한번 팔면서 대주주는 97억위안을 번 것이다.

 

텐리물업을 비꾸이위안에 매각하는 동시에 장리, 리쓰롄의 두 오너는 80억위안으로 회사주식을 매입한다고 발표했다. 그렇다면 이 돈은 위의 97억위안에서 나온 것일까?

 

장리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역부도불위재(力不到不爲財)" 홍콩의 속담으로 힘을 다해서 일하지 않으면 돈을 벌지 못한다는 말이다. 확실히 장리는 회사업무를 위하여 전심전력을 다하는 외에 가족기업도 신경을 썼다. 장리는 일찌기 아들 장량(張量)을 도와 3개의 회사를 상장시키게 했다. 몇달전, 장량이 창업한 스디(實地)그룹이 어음을 만기에 결제하지 못하는 풍파가 있었다. 푸리는 바로 공고를 내서, 스디그룹과 아무런 지분관계가 없다고 밝힌다.

 

이런 성명은 시장의 인사들이 보기에 전혀 설득력이 없다. 어쨌든 작년의 스디그룹의 상장공모설명서에는 98개의 관련회사를 소개하는데 4페이지를 할애했고, 거기에는 푸리계열의 회사들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차이샹은 텐얜차(天眼査)를 통하여 조사해본 결과, 현재 스디그룹과 푸리간에 지분관계는 없지만, 법인대표는 여전히 푸리의 원로인 왕홍즈(王洪志)라고 밝혔다.

 

2018년에 한 매체가 리쓰롄을 인터뷰한 바 있다. "남방오호의 하나로서, 헝다와 비꾸이위안의 급성장을 어떻게 보는가?" 리쓰롄은 이렇게 말한다: "만일 아주 긴 길을 걸어가는 것이라면, 지금은 절반도 가지 않았다." 그리고 한참을 생각하다가 한마디 덧붙인다: "우리는 지금 추격중이다. 아마도 2,3년 추격하면 개략 따라잡을 것이다." 화남오호에서 뒤떨어진 푸리는 요 십여년간 하루도 선두로 치고 올라가려는 생각을 멈춘 적이 없다.

 

리쓰롄은 아주 기민하고 신중하다. 장리는 담량이 있다. 이치대로라면 이는 아주 잘맞는 비지니스파트너이다. 다만 푸리는 굳이 잘못된 쪽으로 걸었다. 신중해야할 때는 과감했고, 과감해야할 때는 신중했다. 경영진이 총명함을 엉뚱한 곳에 써버렸다.

 

4대곤경을 풀어야 한다.

 

푸리가 지금 극복해야할 난제는 적지 않다. 실적문제로 인터넷에는 작년 푸리의 연말모임에서 동사장 리쓰롄은 모든 지역책임자들을 욕했다고 한다. 그러나 금년이 되자 상황은 더욱 심각해져 버렸다.

 

푸리의 반기보고서를 보면, 2021년 6월말까지, 회사에서 예수금을 제외한 자산부채율은 74.9%이고 순부채율은 123%, 현금단기채비율은 0.55이다. 3개의 레드라인에 모두 걸렸다.

 

차이샹은 푸리의 재무제표 수치를 분석한 결과 4가지 곤경에 직면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첫째, 유동성이 박약하고, 단기자금이 부족하다.

 

장기간 상업부동산과 비핵심업무에 돈을 쏟아붓다보니 부채가 많아졌다. 2021년 6월말, 푸리의 단기차입금에 장기부채의 당기부분을 합하면 519억위안이다. 그러나 현금과 현금성자산은 겨우 128억위안이다. 390억의 자금부족이 있다.

 

둘째, 비우량토지가 너무 많고, 재고처리효율이 낮다.

 

과거역사를 되돌아보면, 푸리의 토지구매어프로치는 이러했다: 어느 해 혹은 어느 1,2년에 토지를 대량으로 구매한다. 그후 한동안 이를 소화시킨다. 2017년, 2018년은 푸리가 토지를 대량으로 구매해들인 시기이다.

 

다만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푸리는 이전에 대규모로 분산해서 2,3,4선도시에 진입했다. 이들 토지는 몇년전 부동산시장이 활황일 때 사들인 것이다. 2019년이후 판매할 때가 되어서는 부동산시장이 부진의 늪에 빠져들었다.

 

금년에 푸리는 555.2만평방미터의 토지를 보유하고 있는데, 그중 1,2선도시의 토지는 전체토지의 53%이다. 나머지는 2,3선 혹은 3,4선도시의 비우량토지이다. 유동성이 높지 않아 재고처리의 난이도가 높다.

 

셋째, 판매회수능력이 떨어진다.

 

현금유동성이 느린데, 일부 원인은 판매회수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비록 2020년 경영성현금유동잔액은 플러스로 돌리는데 성공했지만, 이는 주로 토지구매를 줄였기 때문이다. 사실상 2012-2019년 푸리의 경영성현금유동잔액은 이미 연속8년간 마이너스였다.

 

주의할 점이라면, 최근 2년간 푸리건물의 품질문제에 대한 부정적인 보도가 많이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투자자들의 구매의사에 영향을 준다. 2019년 푸리는 직원들의 주택구매붐이 일어났다. 매체에서는 우회적인 판매프로모션이라고 했다. 이를 보면 재고떨이를 하려는 마음이 얼마나 조급한지 알 수 있다.

 

넷째, 채권발행이 어렵고, 자금시장에서 냉대받고 있다.

 

한편으로 3개의 레드라인에 모두 걸렸서 푸리는 자금조달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다른 한편으로 화샤싱푸, 쓰촨란광등 개발상들이 부도를 낸 후, 부동산기업은 국내외채권시장에서 인기가 크게 떨어져 버렸다. 이전에 피치와 무디스는 푸리의 장기외채발행인위약평가등급의 전망을 낮춘 바 있다.

 

국내외의 채권발행시장의 문이 좁아진 후, 푸리에게는 두 가지 선택밖에 남지 않았다: 고금리로 새로 채무를 일으키는 것. 이는 이윤을 잠식하게 될 것이다; 아니면 내부자원을 사용하여 만기채권을 상환하는 것. 이는 아마도 다른 업무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전용하여야 할 것이다.

 

금년 상반기, 푸리는 모두 257억위안의 융자를 받았다. 융자비용은 53%내려가 15.95억위안이다. 동시에 드물게 달러채도 발행했는데 여전히 고금리채이다.

 

옛날 "화남오호"의 으뜸이었던 푸리는 지금 "호랑이가 평지에 내려오니 개에게도 무시를 당한다"는 처지가 되었다. 그래도 힘들게 살아남을 길을 모색하고 있다.

 

이번에는 장리, 리쓰롄의 두 오너가 비꾸이위안의 양씨아가씨와 건물관리회사매각계약을 체결할 대, 혹시 4년전 완다의 왕젠린의 심정을 느껴보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