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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지방/상해 이야기

상하이의 지식분자: 하나의 고통스러운 존재

by 중은우시 2024. 5. 8.

글: huamulan

이번에 상해로 돌아가서 3주반동안 있었지만, 먹은 것에 대해서는 얘기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제대로 먹질 못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매번 손님이었고, 손님이야 주인을 따라가야 하는 것이어서, 음식에 대해서 발언권이 없었다. 그저 올라오는대로 먹어야 했다. 유일하게 하루 어릴때 친구를 만났는데, 그녀는 나에게 결정하게 했고, 우리는 예원(豫园)으로 가서 난샹샤오롱(南翔小笼)을 먹었다. 나는 감히 말할 수 있다. 그 요리사는 전혀 상하이사람이 아니라고. 겉으로는 난샹(南翔)사람이라고 했지만, 샤오롱빠오(小笼包)는 샹하이의 대도시 맛도 나지 않았고, 상하이의 지방 맛도 나지 않았다. 한 마디로 말해서 맛이 없었다. 그래서 기분을 완전히 잡쳤다.

상하이에서 만난 사람은 기본적으로 모두 지식분자들이다. 대학친구들 중에는 다른 성시에서 온 사람도 있었지만, 이번에 상하이로 와서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상하이 부근에 있기 때문이고, 그래서 통칭하여 상하이의 지식분자라고 부를 수 있다.

기실 대학동창들간에도 정치적이념이 달라서 이슈를 볼 때 의견차이가 이미 심해진 경우도 있고, 그 중에는 기장파(骑墙派, 이쪽 저쪽에 끼지 않고 중간적인 입장을 취하는 사람)도 여러 다른 집단내에 섞여 있었다. 그들이 나와 각각 만났을 때 서로 다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Pro China(친중파)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우리는 펀홍(粉红)이라고 부르는데, 그들은 모두 똑똑한 사람들이다. 다만 기득이익과 당국에서 오랫동안 세뇌당하고 정보를 봉쇄당하다보니 그들은 "대단하다 우리나라!"라는 입장을 완전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매일 푸동과 푸시의 각종 대단한 건축물사진을 올리고, 어떤 친구는 설계와 건설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들이 자부심을 가지는 것은 말안해도 이해가 된다.

일부 완전히 "정교한 이기주의자"는 사회에 계층이 계단식으로 존재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마땅히 유지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렇지 않으면 어디에 가서 집안일을 해주고 노인을 돌봐주는 보모를 구한단 말인가. 그리고 중국은 우회추월을 잘 해냈고, 남은 환경문제는 다음 세대가 해결하면 되고, 지금은 다른 것에 신경쓰지 말고 세계를 앞서가면 된다고 말한다. 듣기에 어디서 많이 들은 말이다. 이전에 등소평이 다음 세대에게 남겨서 해결하자는 말을 했었는데, 그 동창도 그걸 가져와서 그대로 활용한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사회계층의 계단식존재문제는 확실히 자연적이고 영원히 사라질 수 없는 것이다. 서방사회가 극력 평등을 주장하지만 사회계층의 계단식존재를 소멸시키려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가 가치있고, 인격적으로는 고하가 없다고 느끼게 만들려 한다. 동창의 암시는 아주 분명하다. 말하면서 곳곳에서 등급을 나눈다. 그리고 사업을 해서 크게 성공한 사람도 있다. 그는 매일 단체방에 먹고 마시고 노는 사진을 올린다. 그러면 일부는 그걸 보고 좋다는 댓글을 쓴다. 그런데 매일 같은 것이다. 아마도 그것이 새로운 노화방지의 기술인지는 모르겠다. 노인의 뇌를 훌련시켜 치매에 걸리지 않도록 하는.

기실 이런 동창들은 중국에만 살아서 다른 나라와 격리되어 살지는 않는다. 어떤 사람은 해외에 잠시 거주한 적도 있고, 또한 자식을 죽어라 해외로 보내려고 한다.

비교적 존경스러운 동창들도 있었다. 그들은 나와 만났을 때 그들의 인식변화를 얘기했다. 어떤 동창은 그들이 대학에 있을 때 처음 더다양식당(德大西餐)에서 돈까스(중국명은 炸猪排 튀긴돼지갈비)와 러시아솔랸카(스프)를 먹었을 때, 돈까스는 사실 모두 고기였고, 감자와 토마토등이 든 스프의 맛은 아주 신선했다는 추억을 꺼냈다. 나도 거기에 처음 가서 달팽이요리 에스까르고를 먹었던 생각이 났지만, 기실 맛은 전혀 없었다. 그들은 또 어떻게 처음 대광명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았는지도 얘기했다. 모두 그리운 추억들이다. 그중 가장 중요한 일은 대학도서관에서 안목을 넓힌 일이다. 번역된 여러 서방서적들 역사 ,철학등등(아마도 지금은 그런 책들이 모두 금서일 것이다). 그들은 나중에 모두 각자의 직장, 업종에서 일을 하고 있다. 기술분야의 경영진이 되어 있는 사람들이 일반적이다. 다만 그들의 사상은 모두 다른 길로 빠졌다. 그들은 이 나라의 역사, 사건, 사람의 가치 및 국가의 과거와 장래 그리고 고통스러운 현상을 반성한다. 깊이 생각하면서 완전히 Tucker Carlson과 같은 길을 갈 수 있다. 서로 길은 다르지만 도착지점은 같을 수 있다. 그들은 Tucker가 누구인지 모른다. 그리고 미국신문과 미국영화를 매일 보지도 못한다. 그러나 그들 자신은 이미 결론을 내렸다. 그들은 자신과 뜻이 같은 집단이 있고, 사적으로 모임을 가지면서 얘기를 나눈다. 어떤 때는 얼굴을 보기 위해 먼 거리를 여행한다. 당연히 그들은 자신의 견해와 신앙을 위해 자신과 가족을 위험에 빠지게 만들지는 않는다. 모든 업부와 생활은 보통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 그들은 진정한 중국의 지식분자 엘리트들이다. 또한 가장 고통스러운 무리이기도 하다.

남은 지시분자들은 모르지는 않지만, 이미 마비되었고, 아무런 힘이 없어, 그저 세월이 흐르는대로 따라가고 있다. 그리고 다른 것에 대해서는 말이 많은 동창도 정치얘기는 하지 않는다.

정치적 견해가 어떠하든간에, 지식분자는 항상 지식분자이다. 생각할줄 알고, 말할 줄 알고, 자신의 견해가 있다. 다만 기본적으로 그걸 자유롭게 말하지 못한다. 말할 수 있는 것은 매일 무엇을 먹었고, 어디가서 놀았는지 하는 것이다. 이런 나날이 고통스럽지 않을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