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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지방/상해 이야기

"취백지(醉白池)": 9백년된 상하이(上海) 최고(最古)의 원림(園林)

by 중은우시 2020. 10. 9.

글: 주걸(朱桀)

강남원림(江南園林)을 얘기하자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눈길은 소주원림(蘇州園林)으로 돌릴 것이다.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소주원림이 나오기 때문에 선입견이 되었다. 원림이라고 하면 우리는 가장 먼저 소주를 떠올리고, 소주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원림의 도시'라는 명칭을 지닌 소주의 경내에 사가원림은 기원전6세기부터 지어지기 시작했고, 청나라말기 성내외의 원림은 모두 170여곳에 이르렀으며, 현재 남아 있는 곳도 50여곳에 이른다. 그중 졸정원(拙政園), 유원(留園)을 대표로 하는 고전원림은 "지척지내재조건곤(咫尺之內再造乾坤)"이라는 평을 듣는다. 중화원림문화의 자랑이자 대표작이다.

 

기실, 강남원림은 소주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상해에도 여러 원림이 있다. 상해시 경내에, 우리가 가장 잘 아는 곳은 예원(豫園)이다. 상해의 노성황묘 부근에 있기 떄문에 그것은 상해의 원림중에서 지명도가 가장 높다. 그외에 가정(嘉定)의 고의원(古漪園), 추하포(秋霞圃), 청포곡수원(靑浦曲水園), 그리고 상해 송강구(松江區)에 위치한 취백지가 있다. 이것을 합쳐서 상해5대고전원림이라 부른다.

 

취백지는 상해 송강구 인민남로에 위치하고 있고, 점유면적은 5헥타르이다. 상해5대원림중 가장 오래된 원림이다. 취백지의 전신은 이미 9백여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 전신은 송나라때 송강의 진사 주지순(朱之純)의 사가택원(私家宅院)이었고 이름은 '곡양원(谷陽園)'이었다. 현재 취백지는 이미 공원으로 확장되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취백지는 계속하여 중수와 확장을 거쳐왔다. 명나라말기(1644년) 송강의 저명한 서화가이자 예부상서를 지낸 동기창(董其昌)은 이 곳에 '사면청(四面廳)', 의항(疑航)등의 건축물을 지었다. 그리고 당시의 시인묵객을 모아서 이곳에서 시를 짓고 부를 지었다. 

 

현재 취백지의 원림경관중 당(堂), 헌(軒), 방(舫), 사(榭)등의 고건축이 남아 있다. 그리고 명청 강남원림의 풍모를 보존하고 있다. 곡란횡함(曲欄橫檻), 회랑곡경(回廊曲徑), 고색고향(古色古香).  취백지는 청나라 순치7년(1650년), 공부주사 고대신(顧大申)이 명나라때의 옛정원유적지 위에 건설한 것이다. 송강의 강남수향, 수려풍광을 이용하여, 700평방미터의 장방형 하화지(荷花池)를 주제로 하여, 불규칙, 대등등 원예수법으로 지안(池岸)을 건설한다. 죽(竹), 매(梅), 가산(假山), 기석(奇石)이 서로 잘 어울리게 배치하여 하나로 융합시킨다. 이렇게 하여 강남에 이름을 떨친 고전원림 취백지가 탄생한 것이다.

 

"수석정사(水石精舍), 고목명화지승(古木名花之勝)"으로 유명한 취백지는 명청시기 강남원림의 산석청지(山石淸池)가 서로 비추며, 낭헌곡경(廊軒曲徑)이 서로 어울리는 풍격을 가지고 있으면서, 역사고적이 아주 많다. 또한 역사상 여러 명인들이 남긴 흔적도 있다. 곡란횡함, 회랑곡경의 취백지, 사면청, 낙천헌(樂天軒), 의방, 설해당(雪海堂), 보성루(寶成樓), 지상초당(池上草堂)등의 정자누각과 방언화상석각(邦彦畵像石刻), 역사예술비랑, "십록구회두(十鹿九回頭)"석각, <적벽부>진적석각, <난득호도(難得糊塗)>석각등 예술품이 있어, 이곳의 역사문화의 저온(底蘊)을 보여준다.

취백지에는 곳곳에 고수(古樹)가 있다. 나무들의 나이는 3,4백년이 된 고은행나무, 고장수(古樟樹)가 있고, 나이가 100년이 넘은 모란도 있어, 이 상해지구의 오대원림중 가장 오래된 원림의 역사적 변천을 말해준다.

 

소주원림과 비교하면, 상해송강구에 위치한 취백지는 설사 상해지구에서 오대원림중 가장 오래된 원림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러나, 아는 사람이 적기 때문에, 지금까지 잘 보존되어 왔고, 과도한 개발도 없었다. 그래서 명청시기의 면모를 잘 보존하고 있고, 입장료도 겨우 12위안이다. 양심적인 가격이라 할 수 있다. 이곳에서 완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이 정원의 전세금생을 이해하면, 고전원림의 예술적 정화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