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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문혁후)

천민얼(陳敏爾): 후계자의 비극적 운명

by 중은우시 2023. 6. 25.

글: 채신곤(蔡愼坤)

 

천민얼이 주변으로 밀려난 것(텐진시위서기)으로부터 후계자의 암담한 최후를 살펴보기로 한다. 후계자가 필요없는 시대에 중국정권의 후계자들은 최후가 좋지 못했다. 모택동시대에, 유소기, 임표, 왕홍문이 모두 참혹하게 죽지 않았던가! 시진핑시대에는 반부패를 명목으로 쑨정차이(孫政才)를 정리했고, 59세의 후춘화(胡春華)는 정협이라는 양로원에 일찌감치 들어가 버렸다. '지강신군(之江新軍)의 강력한 간장(干將)이던 천민얼까지 주변으로 밀려나 버렸다.

 

2015년 천민얼이 구이저우(貴州)성위서기를 맡았을 때, 외부에서는 천민얼이 시진핑의 가장 강력한 후계자로 보았다. 그때는 정국의 향방이 불명확했고, 왕치산(王岐山)이 주도하는 반부패가 전력을 다하여 장쩌민, 후진타오의 사람들을 처벌하고 있었다. 이전의 수십년간 당의 규정이나 원칙에 따르면, 시진핑의 임기는 2022년 20대로 끝나고, 새로운 후계자들이 등장할 터였다. 그러나 헌법을 수정하여 정어일존(定於一尊)하자, 사람들은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후계자에 대한 추측을 그만두었다. 즉, 시진핑은 아예 후계자가 필요없었던 것이다. 헌법을 힘들여 수정해서 연임할 수 있게 되었으니, 최소한 10년이상 내지 종신으로 최고지도자에 남을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시진핑의 후계자는 60후나 심지어 70후중에서 탄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후계자가 될 것이라고 가장 기대를 받았던 60후의 천민얼이 주변으로 밀려나고 심지어 냉궁에 들어가게 될 것이고, 천민얼보다 두 살어린 딩쉐샹(丁薛祥)도 자기 사람을 만들 수 있는 당내의 중요직무에는 앉지 못했다.

 

천민얼은 비록 저장에서 시진핑을 보좌하는데 공로가 있었고, 시진핑으로부터 신임과 능력을 인정받았으며, 천민얼이 시가쥔(習家軍)중에서 가장 먼저 발탁된 인재이여서, 일찌기 2001년 12월 장더장(張德江)이 저장성위서기로 있을 때, 41세의 천민얼은 저장성위 선전부장에 발탁된다. 2002년 시진핑이 저장성대리성장이 되고, 이후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저장성위서기로 있을 때, 천민얼은 계속하여 저장성위상위, 선전부장을 맡는다. 그 기간동안, <저장일보>의 1면에는 특색있는 칼럼난에 "지강신어(之江新語)"가 있었는데, 시진핑이 필명 '철흔(哲欣)'으로 글을 발표했다. 이는 천민얼이 직접 기획하고 추진한 것이다. 시진핑이 2012년 18대에서 중공정권을 넘겨받은 후, 천민얼은 차례로 구이저우성위부서기, 대리성장, 성장, 성위서기로 발탁된다. 2017년 7월에는 천민얼이 낙마한 쑨정차이의 뒤를 이어 충칭시위서기가 되고, 19대에 중공중앙정치국에 진입한다.

 

천민얼은 한때 정계의 새로운 스타로 떠올랐고, 심지어 시진핑이 가장 신임하는 후계자로 여겨졌었다. 단지 이 후계자는 진정 시진핑에게 받아들여지거나 인정받지 못했다. 시진핑이 헌법수정을 완성하여 연임의 길을 닦은 후, 더 이상 소위 후계자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왜냐하면 일단 소위 후계자가 확정되고나면, 시진핑의 '정어일존'의 지위와 권력이 위협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천민얼의 이전의 행동들 예를 들어 딸을 쓰신량(斯鑫良)의 아들과 억지로 결혼시킨 일이라든지, 충칭에서 시위서기로 있는 동안 주변인들이 속속 낙마했다든지 하는 일들이 시진핑으로 하여금 고도의 경각심을 불러 일으켰고, 결국은 정치국상위로 들어가는 입장권마저 놓치게 된다.

 

2019년 나이 겨우 54세이던 충칭시위 부서기 런쉐펑(任學鋒)이 베이징 징시호텔(京西賓館)에서 투신자살한다. 이는 천민얼의 정치생명에 그림자를 드리우게 된다. 비록 항간에 런쉐펑의 사인에 대한 여러가지 견해와 서로 다른 해석이 존재하지만, 런쉐펑과 천민얼간에는 분명 심각한 의견차이가 존재했다. 런쉐펑은 광저우(廣州)시위서기에서 충칭의 3인자로 좌천되었고, 천민얼과 특히 잘 맞지 않았다. 이는 천민얼이 동료간의 관계를 잘 처리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런쉐펑이 자살하게된 주요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이어서 2021년초, 충칭시장 탕량즈(唐良智)가 천민얼의 대비서(大秘書) 얜웨이(顔偉)의 거액뇌물수수사실을 고발했다는 소문이 돈다. 탕량즈는 '시자츠(習家池)'의 기획자이고, 그것으로 인하여 시진핑의 시야에 들어가며, 잠재력있는 배양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이 소식은 비록 공식적인 확인을 받지는 못했지만, 2021년 12월 30일, 탕량즈가 예상외로 안후이성 정협으로 좌천되면서 정계에서 물러난다. 이는 소문이 아무런 근거없는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천민얼의 대비서 얜웨이는 2022년 7월 충칭시 난안(南岸)구위서기 겸 충칭경제개발구당공위서기에서 충칭보세항구개발관리집단유한공사 당위서기, 동사장으로 좌천된다. 충칭보세항구개발관리집단유한공사는 '시산하 국유기업'으로, 1인자는 기껏해야 부청장, 부국장급에 불과하다.

 

공개된 자료를 보면, 얜웨이는 1973년 9월생으로 저장대학 대학원을 졸업한 후 당시 천민얼이 주재하던 저장성위 선전부에서 일했다. 천민얼이 2012년 구이저우로 갈 때, 얜웨이도 따라가서, 먼저 구이저우성정부 응급관리판공실 부주임(정처장급)을 맡고, 이어서 구이저우성정부 부비서장으로 승진하여 관직이 부청장급에 이른다. 천민얼이 구이저우성위서기가 된 후, 얜웨이는 2015년 구이저우성위 부비서장이 되고, 다시 2017년 4월에는 구이저우성위 상무부비서장으로 승진하여, 관직이 정청장급에 이른다.

 

2017년 7월, 천민얼이 충칭시위서기로 옮겨가고 3개월후 중앙정치국원이 되자, 다시 얜웨이는 충칭시위 부비서장 겸 판공실의 업무를 주재하는 상무부주임이 된다. 2년후에는 다시 충칭시 난안구위서기 겸 충칭경제개발구 당공위서기가 된다. 충칭의 관료사회에서 한때 20대에 정치국상위로 들어가는 천민얼이 자신의 충칭에서의 후계자로 배양한 인물이라는 소문이 돌았었다.

 

천민얼은 올해 63세이다. 다시 4년이 지나면 67세가 된다. 설사 21대에 요행히 정치국상위로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확실히 후계자와는 인연이 없다고 해야할 것이고, 기껏해야 시진핑을 따라 1기를 더 할 수 있을 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