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삼국)

원소(袁绍) 휘하의 팔대맹장(八大猛将)

by 중은우시 2024. 4. 25.

글: 사서능헌각(史书凌轩阁)

8. 순우경(淳于琼)

순우경. 자는 중간(仲简)이고, 영천(颍川)이다. 순우경은 성격이 강맹하고 뜻이 커서 조정으로부터 높이 평가받는다. 일찌기 효렴방정으로 서원팔교위(西园八校尉)가 되어 조정의 귀족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때의 순우경은 젊어서 성취를 거두고 큰 권력을 장악했으며, 명성도 드높았다.

순우경은 조조와 교분이 깊었다. 두 사람은 항상 함께 모였으며, 집안에서 웃으면서 얘기를 나누기도 하고, 교외에서 활쏘기를 함께 하기도 했다. 이는 모두 두 사람 간에는 깊은 우정이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다만 시국이 바뀌면서 동한의 난세가 펼쳐지고, 순우경은 점차 몰락한다. 그는 직언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조정은 그런 그를 싫어했고, 황제의 총애를 잃는다. 그러나, 조조는 계속 승진을 거듭했고, 두 사람의 운명은 선명하게 대비되었다.

어쩔 수 없게 된 순우경은 원소에 의탁한다. 관도지전에서 옛친구인 조조와 무기를 들고 맞서게 된다. 그는 <삼국연의>에 그려진 것처럼 술을 많이 마셨다가 일을 그르친 것이 아니고, 있는 힘을 다해서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원소의 전략실수로 인하여 오소(乌巢)의 수비군은 너무 적었고, 조조가 오소를 기습하도록 보낸 것은 최정예기병이었다.

7. 한맹(韩猛)

원소 휘하의 맹장중 "사정일주(四庭一柱)"를 빼놓을 수 없는데, 그중의 "일주(一柱)"가 바로 한맹이다.

한맹은 모든 것을 베어버리는 날카로운 검과 같이 원소가 북방을 평정할 때 혁혁한 전공을 세운다. 장연(张燕)을 토벌할 때, 그는 사나운 호랑이가 산을 내려온 것처럼 연이어 세 명의 장수를 베어버린다. 그리하여 적군은 놀라서 사방으로 도망친다. 한맹은 관오와 마찬가지로 아주 광오(狂傲)했다. 그러나, 한맹에게는 관우와 같은 재능은 없었고, 그저 미치광이같기만 했다.

관도지전때, 한맹은 명을 받아 양초(粮草, 양식과 풀, 양식은 사람, 풀은 말의 먹이임)를 운송한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그의 척후병이 이미 서황(徐晃)에게 생포되어버린다. 한밤중에, 서황은 정예기병을 이끌고 유령처럼 출현했다. 한바탕 혼전이 끝난 후, 한맹의 양초는 모두 잿더미가 되었다. 원소는 그 소식을 듣고 대노하여 한맹을 베어서 군법을 바로잡고자 한다. 그러나, 다행히 여러 장수들이 말려서 한맹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원소는 다시 한맹에게 조조의 양식운송로를 기습하도록 명한다. 이를 통해 그가 체면을 회복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러나 불행하게도, 한맹은 낙산(洛山)에서 다시 한번 조인(曹仁)에게 매복을 당해 다시 한번 패배한다.

6. 장의거(蒋义渠)

관도전투에서 원소의 대군이 패퇴한다. 병사들은 모두 놀라서 사방으로 도망쳤다. 원소도 놀라서 정신이 나가 갑옷을 벗어던지고, 투지도 완전히 잃었으며, 그저 이 패배한 전장을 벗어나고자 했다.

이 혼란과 도망과정에서, 한 사람이 그런 흐름을 거스르고 있었다. 그가 바로 장의거이다. 장의거는 당황하지 않고, 흩어지는 원소의 병사들을 끌어모아서 국면을 뒤집고자 했다. 그는 수호자처럼 원소를 위해 방어선을 쳐서 조조의 추격을 막아냈다. 그의 용기와 의지는 다시 한번 원소대군의 투지를 불러일으켰다.

장의거의 행동은 말이 필요없었다. 역경에서 장의거는 실제행동으로 무엇이 진정한 맹장인지를 보여주었다. 만일 장의거가 아니었다면 원소는 아마도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5. 국의(鞠义)

국의는 뛰어난 무장이다. 그의 명망과 실력은 모두 총사령관급에 이르렀다. 원소가 기주(冀州)를 평정하는데 큰 공을 세운다. 여러번의 전투에서 국의는 냉정하게 지휘하며, 병사를 이끌고 적진으로 돌진해서 성을 점령했던 것이다.

국의는 여러 면이 모두 뛰어났다. 그는 병사들을 훈련시키는데 뛰어났다. 그가 직접 훈련시킨 '선등사사(先登死士, 결사대)'는 원소군에서 가장 용맹한 특수부대였다. 계교(界桥)전투에서 바로 이 부대가 국의를 따라 강대한 공손찬(公孙瓒)의 군대와 맞섰다. 이 전투에서, 공손찬이 자랑스러워하던 정예기병인 "백마의종(白马义从)"은 바로 국의의 '선등사사'에 의해 패배를 당하게 된다.

명망이 날로 높아지면서 국의의 내심에는 교만한 기운이 자라난다. 그는 점점 원소의 지휘를 무시하게 되고, 마치 스스로 왕이 되려는 야심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원소는 그런 변화를 눈치챘고, 먼저 손을 쓰기로 한다. 그리하여 그는 적절한 기회를 잡아, 일찌기 그를 위해 큰 공을 세웠던 국의를 제거해 버린다.

4. 장합(张郃)

장합은 원소 휘하의 "하북사정주(河北四庭柱)"중 한명이다. 조조에 귀순한 후에는 "오자양장(五子良将)"이 된다.

장합은 백전노장이다. 황건적의 난에서 삼국정립까지, 그는 항상 전장에 서 있었다. 처음에는 원소에 투신하여, 공손찬을 격패시키는데 전공을 세워 신속히 중랑장(中郎将)이 된다. 관도전투에서 그는 조홍(曹洪)을 격패시키지 못했지만, 조조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는다. 원소가 패전한 후, 장합은 조조에 귀순하는 것을 선택한다.

조조의 휘하에서, 장합은 여러번 큰 공을 세운다. 하북의 전투이건, 회남, 양주, 한중의 평정이건 그는 모두 혁혁한 전공을 세운다. 한중전투에서, 하후연(夏侯渊)이 전사한 후, 그가 명을 받아 부대를 안전하게 철수시킨다. 이를 통해 다시 한번 그의 능력을 증명한다. 조비(曹丕)가 황제를 칭한 후, 장합은 계속하여 전투에 나선다. 강호((羌胡)를 평정하고, 강릉(江陵)을 포위공격했으며, 가정(街亭)전투에서 마속(马谡)을 대패시켜, 제갈량(诸葛亮)으로 하여금 병력을 퇴각시키게 만들어, 조위(曹魏의 안정에 큰 공을 세운다.

3. 고람(高览)

고람은 원소 휘하의 "하북사정주"중 한명이며, 공융(孔融)은 그를 "세지명장(世之名将)"이라 칭했다. 관도전투에서, 고람은 장합, 순우경과 함께 전투를 치렀다. 조조가 오소를 기습했을 때, 원소는 곽도(郭图)의 계책을 받아들여, 고람과 장합으로 하여금 병력을 이끌고 조조의 군영을 기습하게 했다. 그러나, 그들은 조조의 매복에 걸려들었고, 혼전을 벌이다가 패배하고 돌아온다.

곽도는 마음 속으로 두려움이 들어, 한편으로 원소에게 두 사람을 급히 군영으로 돌아오도록 재촉하게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그들에게 전언을 보내어, 원소가 그들 둘을 죽일 생각이라고 말한다. 이런 압박하에서, 고람과 장합은 조조에 투항하기로 선택한다. 귀순후에 고람은 편장군(偏将军), 동래후(东莱侯)에 봉한다. 그는 조조를 따라 여남(汝南)에 출정한다.

그리고 매복전에서 고람은 유비의 부하인 유벽(刘辟)을 신속히 참살한다. 그러나 그가 유비까지 생포하기 직전에, 조운(赵云)이 나타나 창으로 그를 찔러 말에서 떨어지게 된다. 이전에 고람은 일찌기 허저(许褚)와 정면으로 싸운 바 있다. 두 사람은 이십여회합을 겨루었지만 승부를 가리지 못했었다. 그러나, 조운의 벽력같은 일격에 그는 패배하고 만 것이다.

2. 문추(文丑)

만일 문추가 그 붉은 얼굴에 긴 수염의 남자(관우를 가리킴)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만일 관우를 만나더라도 손이 떨리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그는 다시 몇번 천하를 뒤흔드는 전적을 남길 수 있었을 것이다. 반하(磐河)전투에서, 문추는 십회합만에 공손찬을 이겼고, 그의 네명의 심복장수들을 모두 이긴다. 대단하지 않은가?

그런데 아쉽게도 조운이 어디에서인가 나타나서 문추의 좋은 일을 망쳐버린다. 문추는 조운과 승부를 가리지 못한다. 50회합을 겨루었지만 승부를 내지 못했다. 이는 문추에게 촉한오호장(蜀汉五虎将)과 맞먹는 실력을 지녔다는 것을 말해준다. 연진(延津)전투에서 문추는 화살로 장료(张辽)를 물러나게 만들었다. 그리고 서황은 놀라서 꼼짝도 못하게 만든다. 그때의 문추는 대단한 기세를 지녔다. 누가 감히 그와 싸우겠는가?

그러나, 그러나, 관우의 칼은 정말 섬전처럼 빨랐다. 문추는 일거에 그의 칼 아래 목숨을 잃는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겠다. 그 장면은 너무나 돌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1. 안량(颜良)

안량은 형태(邢台) 사람으로, 그의 위명은 하북대지에 떨쳤다. 안량의 도법(刀法)은 맹호하산(猛虎下山)식의 위맹이었다. "하북사정주"의 으뜸으로서 안량의 실력은 헛된 것이 아니었다. 백마파(白马坡)전투에서 안량은 무예를 충분히 드러낸다. 여포(吕布)의 옛부하들인 송헌(宋宪)과 위속(魏续)이라는 두 백전노장은 안량의 앞에서는 너무나 취약했다. 칼질 세번, 단 세번만에 송헌은 핏물 속에 쓰러지고, 위속은 겨우 한 칼만 버텼을 뿐이다.

서황은 일찌기 허저와 오십회합을 겨루었던 맹장이다. 그래도 안량의 공세를 버텨내지 못했다. 이십회합만에 서황은 힘이 다하여 패전하고 만다. 조위의 장수들은 안량의 무예에 놀라서 아무도 감히 나서지 못했다.

그러나, 이런 사방에 위세를 떨친 맹장도 결국 관우의 칼에 쓰러지게 된다. 비록 관우가 기습한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안량의 패배는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