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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분석/중국역사의 분석

중국역사에 너무 심취하지 말라

by 중은우시 2023. 12. 26.

글: 당세평(唐世平) 복단대학 국제관계및공공사무 교수

필자가 보기에, 중국의 고대 심지어 근대역사에 지나치게 심취하게 되는 것은 아주 건강하지 못하다.

중국의 민중과 엘리트에게 더욱 필요한 것은 현대세계의 형성을 이해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현대사회의 형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현대중국의 형성을 이해할 수 없고, 더더구나 현재의 중국을 이해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중국역사에 대해서는 좀 줄이고, 세계문명을 더욱 많이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1. 고대중국역사: 거의 '현대적 의의'가 없다.

중국역사, 특히 1840년이전의 역사는 아주 재미없다. 그건 그저 왕조교체의 역사이다. 동중서와 왕안석의 변법외에 기본적으로 근본적인 변혁은 없었다. 최소한, 1500년이후의 세계역사만큼 우리에게 중요하지 않다.

더욱 엉망진창인 점은 너무 중국역사에 심취하게 되면 부지불식간에 우리로 하여금 위로부터 아래까지 중국역사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에 도취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권모술수.

어떤 정도로 권모술수는 전체 중국역사를 관통하는 핵심메인스트림이다. 한 사람의 자아경지에 있어서, 최대의 만족은 아마도 확실히 생사여탈권을 쥐는 것이다. 이런 권력은 너무나 쾌감을 준다. 다만, 이는 개인의 자아실현에 대한 것이고, 사회나 국가에 대하여는 최대의 해로움이 된다.

중국은 자고이래로 위로부터 아래까지 인치사회였다. 그래서 겉으로 보기에는 특별히 강조하는 집단이라는 표면의 아래에, 절대다수의 개인은 모두 '파괴적'인 개인주의자이다: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들이 우리가 그들을 위해 정해준 규칙을 따르길 원한다. 다만 우리 자신은 그 규칙을 따르고 싶지 않다. 특히 다른 사람이 정해준 규칙은. 권력이 있는 사람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이 점은 중국역사와 현재 중국관료사회의 각종 난상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2. 너무 중국역사에 심취하면 눈과 귀를 닫는 꼴이 된다.

지나치게 중국역사에 심취하게 되면, 중국은 지나치게 독특하다고 보게 되고, 스스로 눈을 감고 귀를 닫으면서 스스로의 문을 걸어닫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아마 모르고 있을 것이다. 세계역사상, 수십년만에 신속히 굴기하고 휘황한 성취를 이룬 왕조 혹은 국가는 절대로 중국 하나만이 아니다. 수십개에 이른다. 어느 각도에서 보더라도, 스페인이 1469년부터 1500년간에 이룬 굴기와 확장은 여하한 현대국가의 신속한 굴기나 확장에 비하여 손색이 전혀 없다.

영국이 1600년부터 1780년 사이에 유럽의 변방에서 굴기하여, 근현대세계의 제1대제국으로 우뚝 서서 2세기 동안 굳건할 수 있었던 것은 더더욱 경외심이 든다.

미국이 남북전쟁이후 굴기한 것도 대단하다. 아르헨티나, 브라질, 멕시코의 일찌기 2,30년간의 경제고속성장도 괄목할만 하다.

다만, 이들 신속히 굴기하여 휘황한 역사를 가진 국가중에서 결국 30여개가량의 국가만이 진정으로 전면적인 현대화국가가 되었다. 신속한 굴기와 휘황한 역사를 지닌 국가들중 많은 나라들은 침몰했다. 현대화는 마치 고도와 같다. 이 고도를 향해서 헤엄쳐가는 과정에서 실패한 사람이 다수이고, 성공한 사람은 소수이다.

현대화를 향해가는 과정에서 많은 국가들은 제자리걸음을 했다. 소용돌이에 빠져있거나, 심지어 이미 침몰했다. 이들 국가의 침통한 교훈은 절대로 전면현대화의 기회를 이미 한번 잃어버렸던 중국이 반드시 흡취해야 하는 것이다.

너무 중국 자신의 역사에 심취하고 세계의 다른 나라나 지구에서 현대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의 곡절있는 역사를 이해하지 않으려 한다면, 중국은 진정 다른 국가의 경험과 교훈을 섭취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는 결과는 전면현대화를 추구하는 중국이 중국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는 길에서, 우리는 반복적으로 다른 나라들이 이미 지불한 비싼 학비를 다시 지급하고 있다. 그리고 계속하여 불필요한 우회로와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

3. 지나친 '자기사랑'으로는 진정한 국제적 발언권을 얻을 수 없다.

현재의 중국 정계와 학계는 모두 중국이 어떻게 국제사회 혹은 국제업무에서 '발언권을 쟁취할' 수 있을 것인지를 얘기한다. 다만 '국제적 발언권'과 '중국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크게 다르다.

중국은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 다만 만일 그 목소리를 듣는 사람이 없다면 그건 그저 광야에서 혼자 사리치는 것과 같다. 기껏해야 메아리만 돌아올 뿐 아무도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발언권쟁취"는 자신이 자신에게 "나에게 발언권을 달라"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하는 건 그저 스스로가 스스로를 속이는 짓이다.

중국이 국제사회 혹은 업무에서 "발언권"을 가지려면, 자신의 이슈에만 관심을 가지고 말해서는 안된다. 반드시 다른 사람들이 토론하는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우리는 일정한 '발언권'을 가질 수 있다. 다른 사람이 우리의 견해를 처음부터 잘 들어주든 아니든간에.

다른 사람의 문제를 수준있게 토론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먼저 반드시 다른 사람을 이해해야 한다. 세계를 이해하는 기초 위에서, 나아가 세계에 유용한 지식을 제공하여야만(세계문제에 대한 진단과 약방), 다른 사람의 복리를 촉진시키게 될 수 있고, 그래야 중국은 비로소 진정한 국제적인 '발언권'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런 진단과 약방은 확실히 주관적인 억측으로 건립할 수 없다. 세계에 대한 착실한 이해와 연구의 기초 위에서 건립해야만 하는 것이다.

4. 어떻게 하면 좋을까?

세계를 더욱 이해하려면, 중국의 역사 및 사회과학지식의 보급은 모두 방향전환이 필요하다. 과학보급에서 중국역사를 감소시켜야 한다. 특히 중국고대사의 분량을. 이와 동시에, 중국 근현대사와 세계근현대사에 대한 지식보급을 강화해야 한다.

중국고대사를 줄여야 한다. 그리고 다른 지역의 근현대사에 대하여 더욱 많이 이해해야 한다. 세계의 근현대사의 지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중국고대역사에 지나치게 심취하게 됨으로써 우리의 민중과 엘리트들이 세계을 이해하는데 더욱 게을러지게 된다. 특히 현대세계의 형성에 대하여 잘 모르게 된다.

연구에서 중국역사를 줄여야 한다. 특히 중국고대사에 대한 것 및 고대사상사에 대한 것(고고학은 제외). 많은 중국고대사에 대한 연구는 거의 현실적인 의의가 없다. 그저 납세자의 돈만 낭비할 뿐이다.

이와 동시에, 중국근현대사와 세계근현대사에 대한 연구를 크게 강화해야 한다. 특히 비교사회과학연구이다. 비교를 통해서만이 우리는 다른 사람의 경험과 교훈을 더욱 잘 흡수할 수 있다. 우회로나 잘못된 길을 좀 더 적게 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