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정치/대륙과 대만

제3차 금문대전(金門大戰)이 개시될 것인가?

중은우시 2024. 2. 18. 21:16

글: 조대부화실(趙大夫話室)

대륙의 한 쾌속정이 2024년 2월 14일 오후 1시 45분 금문도(金門島) 북정(北碇)이동 1.2해리 해역으로 진입하였다가 대만의 법집행선박에 추격을 받다가 전복하여, 배 위에 타고 있던 4명이 바다에 빠졌고, 그중 2명은 구조하여 병원으로 보냈으나 결국 사망했다. 보도에 따르면, 2명의 생환자는 대만해양위원회 해순서 정방분서 금문수사대에 억류되어 진술조서를 작성하고 있다고 한다.

사건발생지점은 금문도 동쪽으로 대륙에서 아주 가까운 곳이고, 대만에서는 상당히 먼 곳이다. 즉, 대만의 해상순찰대가 대륙에서 아주 가까운 곳을 순찰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어민의 쾌속선이 전복되고, 어민은 사망했다.

과거 쌍방간의 관례에 따르면, 실제로 샤먼(廈門)과 금문(金門)의 중간에 보이지 않는 선이 있어, 쌍방의 해경은 모두 이 선을 넘지 않았고, 상대방의 지역으로 넘어가서 법을 집행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선을 넘게 되면 그것은 해경의 문제가 아니고, 정치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복건의 '어선'이 월경하여, 금문도쪽으로 가서 어망을 펼쳐 물고기를 잡는 것은 위법한 것이므로 해상순찰대가 집법활동을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그러나 문제는, 대만은 '주권'이 없고, 쌍방의 헌법에서의 영역은 중첩되고 있어, 주권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주권이 없다면 '영해권'이라는 것도 있을 수 없다. '영해권'도 없는데, 복건의 어선이 넘었다는 선은 무슨 선이란 말인가? 대만의 해상순찰대는 무슨 공권력으로 복건어선에 대하여 법집행을 하였단 말인가?

이 사건은 대륙에서 계속하여 논의되고 있다. 2월 15일 오후 웨이보의 인기검색어 1위에 올랐고, 누적 클릭수가 1.2억회를 넘어섰다. 적지 않은 네티즌들은 대륙당국이 실제보복행동을 취하지 않는데 불만을 표출했고, 댓글을 통해 대륙에서 금문도에 대한 물공급을 중지하고, 대만선박을 격침시켜야 한다는 등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 사건이 예전같으면 쌍방간의 우호적인 협상을 통해 적절하게 처리되었을 것이고, 아마도 대국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민감한 시기이니 이것이 도화선이 되어 제3차 금문위기가 초래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평론가는 이번 사건에 의심스러운 점이 있다고 말한다. 마치 중국대륙이 고의로 일으킨 사건 같다는 것이다. 그는 "79년 중국-베트남전쟁 개시전에 중국신문에는 매일 베트남이 어떻게 중국에 도발하고 있는지, 베트남이 또 중국어민을 억류했고, 베트남이 또 중국교민을 추방했다고 실렸다. 지금 중국당국은 대만에 대하여 이런 자태를 보이고 있다. 만일 이런 사건이 갈수록 많아지게 되면, 민의의 불만이 쌓일 것이고, 중국당국은 이를 대만해협전쟁의 핑계로 삼을 수 있다. 옛날 중국이 베트남전쟁을 일으키기 이전과 분위기가 매우 유사하다.

유사한 사건은 미얀마북부내전에서도 있었다.

산우욕래풍만루(山雨欲來風滿樓). 자그마한 금문도가 다시 한번 폭풍의 중심이 될 수 있을 것인가?

  1. 미국측 최근의 동작

이번주 화요일 새벽, 미국의 상원은 오랫동안 기다려온 우크라이나, 이스라엘, 타이완등 동맹에 대한 해외원조계획을 통과시켰다. 수개월간에 걸친 협상, 엄청난 전쟁의 경고와 정치적 말싸움끝에 이 계획은 미국 상원 양당의 지지를 받았다. 다만 이 법은 여전히 미국 하원의 비준을 거쳐야 한다.

이 법안은 키에프에 대하여 601억달러의 원조를 제공하여 미국이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에서의 원조총액이 1,700억달러를 넘어서게 되고, 이스라엘의 하마스에 대한 전쟁에 대하여 141억달러를 제공하며, 48.3억달러를 대만이 중국대륙에 대항하는데 지원한다.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은 이미 전쟁을 하고 있어 미국측의 원조를 받는게 이상할 것도 없다. 그러나 대만이 명단에 오른 것은 비로 금액이 조금 적기는 하지만 이미 최소한 미국측에서 대만해협에 위기가 초래될 수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2. 제1차금문전투

1949년 금문전투의 실패는 인민해방군 역사상 최초의 부대전멸이다.

1949년 10월, 인민해방군은 샤먼을 점령한 후 금문도를 점령할 준비를 한다. 장개석은 전함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고, 복건연해의 눈에 보이는 모든 선박에 대하여 폭격하도록 명령한다.

복건은 이제 막 해방된 지역이어서 군중기초가 튼튼하지 못했다. 적지 않은 연해의 선원들은 배를 버리고 도망쳤고, 어떤 사람은 배를 몰고 곳곳으로 도망다녔다. 그리하여 인민해방군이 금문도를 공격하기 전에 모을 수 있었던 선박은 상당히 유한했다.

당시 금문도를 공격하는데 있어서, 이전에 인민해방군이 국민당군을 공격하는데 추풍낙엽식으로 매우 순조로웠기 때문에,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리하여, '상륙하기만 하면 승리한다'고 여겼다. 결국은 큰 비극을 초래하게 된다.

제10병단 산하의 28군은 3개단 9천여명의 장병을 금문도로 보낸다. 해전경험이 부족하여, 선박이 상륙할 때는 마침 썰물때였다. 그리하여 대부분의 선박이 모래사장에 걸려서 오도가도 못하게 된다. 그리고 장개석의 공군으로부터 폭격을 당한다.

상륙부대가 배에서 내려 전투에 돌입했는데, 국민당군의 해군, 육군, 공군으로부터 삼면에서 협공을 당한다. 3일 밤낮동안 격전을 펼친다. 샤먼의 인민해방군은 선박이 부족하여 증원을 올 수 없었고, 그저 두 눈을 멀거니 뜨고 최종적으로 3개단 9천여명은 식량과 탄약이 떨어져 모조리 전사하는 것을 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대륙의 중점은 항미원조로 옮겨갔고, 금문도를 공격하고 대만을 해방시키는 일은 미뤄지게 된다.

3. 금문포격전

제2차금문전투가 발발한다. 1958년 8월 23일 오후, 샤먼진지에서 대포를 집중 포격한다. 수천수만발의 포탄이 금문도를 향해 날아가고, 금문도는 삽시간에 불바다가 된다.

금문방위부 부사령관 조가양(趙家纕)은 현장에서 즉사한다. 길성문(吉星文)은 중상을 입고, 미국고문은 지하지휘소에를 나오자마자 천지가 진동하여 놀라서 다시 돌아갔다. 이번 진공으로 국민당군 440여명의 사상자를 낸다.

그날 저녁 소식이 대만섬에 전해진다. 담당자는 전전긍긍하면서 금문도가 공격당했다는 소식을 장개석에게 전한다. 장개석은 한참동안 침묵을 지키면서, 분노를 드러내지 않고, 아주 담담해 보였다. 얼마 후 장개석의 입에서는 "좋다!"라는 말이 몇번 나온다. 마치 금문도가 공격받은 것이 좋은 일이라는 듯이.

사실도 그러했다. 장개석은 잘 알고 있었다. "금문도를 포격"한 것인 그에게 '핑계거리'를 보내준 것이라는 것을. 당시 장개석은 처지가 아주 곤란했다. 미국인들은 그에게 중국과 '선을 그을 것'을 요구했다. 즉 장개석으로 하여금 반공대륙(反攻大陸)을 포기하라고 주문하고 있었다.

미국인들에 있어서, 장개석의 '반공몽(反攻夢)'은 악몽이다. 장개석이 이 꿈을 포기하지 않는 한, 미국으로서는 가슴이 조마조마할 수밖에 없다. 언젠가 정말 싸우게 된다면 미국인들은 중국과 다시 전쟁을 벌일 리스크를 부담해야 하는 것이다. 지난번 한국전쟁의 참혹한 교훈이 있으므로, 미국인들은 다시 중국과 전쟁을 벌이고 싶지 않았다.

미국인의 입장에서는 장개석으로 하여금 금문도, 마조도를 포기하게 하고, 점점 대만을 대륙에서 분리시킨다면 심지어 미국이 유엔으로 하여금 대만을 위탁관리하도록 한다면 그것이 바로 '대만독립'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대만독립'은 중화의 죄인이 되는 것이고, 장개석으로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금문도를 포격하는 것은 직접 장개석을 치는 것이지만, 간접적으로 미국을 치는 것이 된다. 당시 국공쌍방은 물과 기름같았다. 그러나 둘 다 하나의 중국을 고집했고, 국외세력의 역량에 의해 분리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리하여 극적인 '금문포격전'이 전개된 것이다. 월, 수, 금은 국민당군이 포를 쏘고, 화, 목, 토는 인민해방군이 포를 쏜다. 일요일에는 둘 다 쉰다.

3. 금문도는 풍향계이자 바로미터이다.

두 번의 금문대전에서 대륙의 뜻은 달랐다. 첫번째는 점령하고자 했으나, 점령하지 못한 것이다. 두번째는 점령하려는 것이 아니었고, 그저 대만과 함께 연기를 한 것이다.

자그마한 금문도는 양안관계의 풍향계이자 바로미터이다. 이곳에서 생사대전도 벌어졌고, 형제의 정도 있었다. 포연이 흩어지면서 옛날의 포탄피는 금문도의 명산 '금문채도(金門菜刀)'의 무궁무진한 원료가 되었다. 적지 않은 금문도 사람들은 샤먼에 부동산을 구매하여 이미 한 가족이 되었다.

사태가 어떻게 발전할지는 앞으로 살펴보아야 할 일이다